♡8월 1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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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Mary) 성모 승천 대축일
축일 8월 15일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복되신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로
공경 받으시고 신도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48-49) 하신
마리아의 예언대로 특히 에페수스 공의회
(Council of Ephesus) 이후로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이 같은 마리아 공경이
비록 온전히 독특한 것이긴 하나,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부께서 성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골로 1,15-16), 성자 안에 모든 충만함이
머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골로 1,19;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66).
성모 마리아에 관한 축일은 다음과 같다.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선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8월 22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1월 21일,
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9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 31일,
루르드(Lourdes)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7월 16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0월 7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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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축일: 8월 15일
'스텔라'라는 성녀는 없습니다.
스텔라는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별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마리스텔라'라고 하지요. 망망한 바다에서
희망의 상징이 되고, 삶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성모님이시기에 이러한 상징어로 성모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텔라'라는
세례명을 가지신 분은 성모님의 축일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본명축일로
정하시면 됩니다. 가장 많이 정하는
축일은 8월 15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는 성모몽소승천 대축일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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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타니슬라오 코스트카(Stanislaus Kostka)
축일 8월 15일
폴란드 로스트코보 성에서 태어난
성 스타니슬라우스 코스트카(또는 스타니슬라오)는
폴란드 원로원의 아들이다.
그는 개인교수로부터 교육을 받고 14세 때에
비엔(Vienne)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근면과 신심 그리고 고행으로
유명하였는데, 수차례에 걸쳐 환시를 보았다.
그는 마침내 예수회원이 되려고 하였으나
비엔의 관구장으로부터 반대를 받았다.
그는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와 함께
350마일을 걸어 딜렌겐으로 갔다가 다시
로마(Rome)로 갔다. 그는 마침내 1567년에
예수회에 입회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그는 더욱 엄격한 고행을 하였고, 미사 중에
자주 탈혼하였으며, 거룩한 삶을 살다가 예수회
수련자로서 단지 9개월을 지낸 뒤 사망하였다.
그는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 1726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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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르눌포(Arnulf)
축일 8월 15일
아르눌(Arnoul)로도 불리는
성 아르눌푸스(Arnulphus, 또는 아르눌포)는
플랑드르(Flandre) 사람으로 프랑스의
앙리 1세와 로베르군의 장교였으나,
세상보다는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 길로
수아송에 있는 생-메다르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수 협소한 방안에 들어가서 절대 고독을
즐겼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은 전혀 없이
오로지 기도와 보속에만 전념했다. 그는
이런 생활을 원장으로 선출되어 억지로
불려나갈 때까지 계속하였다.
1081년 수아송의 성직자와 주민들의 선거에서
그가 주교로 선출되었음을 알렸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주님, 몇 가지 보속밖에 아무런 공이 없는
이 죄인을 떠나가소서.” 그는 거의 강제에
의하여 주교직을 맡았지만 모든 업무에서
놀라운 지혜와 정열을 보여주었다.
1120년에 소집된 보베(Beauvais)의 회의에서는
그의 생애를 찬양하고, 성인을 위하여 경당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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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리피오(Alypius)
축일 8월 15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
태생인 성 알리피우스(또는 알리피오)는
어린 시절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8월 28일)의 절친한 친구였다.
카르타고(Carthago)에서 그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그의 부친이 아우구스티누스와 상종하지 말라고
금지할 때까지 그와 함께 마니교도가 되었다.
성 알리피우스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Rome)로
가서 판사가 되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직책에서
은퇴하고 함께 밀라노(Milano)로 갔다.
그곳에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주교의
지도로 교리를 받고 387년 4월 13일 부활성야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는 카시치아쿰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있다가 388년에 그와 함께 아프리카로
돌아 왔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세운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3년 동안 타가스테에서
기도와 보속의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들은 히포(Hippo)로 가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팔레스티나(Palestina)를 순례한 후
성 알리피우스는 393년에 타가스테의
주교가 되어 30년 동안 봉사하였다.
그 이후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위해 여생을 보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카시치아쿰에서 쓴
“대화”란 책 속에 잘 묘사되어 있으며,
158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에
의해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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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타르시치오(Tarsicius)
축일 8월 15일
이탈리아 로마(Rome)의 부제였던
성 타르시키우스(Tharsicius, 또는 타르시치오)는
감옥에 있는 어느 신자에게 성체를 모시고
가던 중 폭도들에 의하여 아피아나 가도
(Via Appiana)에서 끌려가서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이 사건은 와이즈먼(Wiseman)
추기경의 소설 “파비올라”(Fabiola) 속에도
묘사되어 있고, 교황 다마수스(Damasus)는
그에 대해서 시를 남겼다. 타르시키우스는
첫 영성체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