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더 5장 1~14절>
서론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재판정에 서서 오직 '법대로'를 외칩니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 안토니오를 합법적으로 죽이겠다는 악독한 집착이었습니다. 만약 법정의 저울이 그대로 움직였다면 안토니오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포샤가 등장하면서 법정의 공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포샤는 샤일록이 철석같이 믿었던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전혀 다른 판결을 이끌어내며, 죽음의 재판정을 생명과 구원의 자리로 반전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인 거대한 재판정과 같습니다. 하만이라는 악한 자가 왕의 조서를 통해 유다 민족을 합법적으로 멸할 음모를 꾸몄고, 이제 심판의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오늘날 성도들이 세상의 영적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반전을 이뤄낼 수 있는지 그 천국의 비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내 의를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에 5:1) 개역개정 성경에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로는 옷이라는 단어 없이 ‘에스더가 말쿠트(מַלְכוּת, 왕권/왕의 위엄)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는 단순히 예쁜 옷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나아갈 때, 왕비로서의 당당함과 왕국의 품격, 즉 '왕의 위엄' 자체를 온몸에 휘감고 나아간 것입니다. 포샤가 친척 법학자의 법복을 입고 재판관의 권위를 대변하며 당당히 법정에 섰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죄와 부족함을 고발하며 “네가 그러고도 성도냐? 네가 그러고도 복을 받겠느냐?”라며 우리를 위축되게 만듭니다. 이때 내 행위의 옷, 내 의의 옷을 입고 나아가면 우리는 백전 백패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오직 하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 세상 앞에 설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만왕의 왕이신 예수의 권세, 즉 ‘말쿠트’를 입고 당당하게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2. 세상의 법을 이기는 하늘의 은총을 구하라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에 5:2)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페르시아의 엄격한 법이었습니다. 에스더가 뜰에 섰을 때, 법대로 라면 시위대들이 칼을 뽑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에스더를 보는 순간, 성경은 에스더가 왕의 눈에서 ‘헨(חֵן, 은총, 은혜, 매력)’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사랑스러운'으로 표현했지만 히브리어 '헨'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압도적인 은총이자, 보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신비로운 매력입니다. 왕은 법을 집행하는 대신, 손에 잡고 있던 금 규(Scepter)를 내밀어 그녀의 목숨을 구하고 소원을 묻습니다.
포샤가 샤일록에게 “자비(Mercy)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단비와 같아서, 세상의 권력을 신의 권력과 같게 만든다”라며 법을 초월하는 자비를 구했던 것처럼, 에스더에게 임한 하나님의 ‘헨’은 페르시아의 시퍼런 법을 단숨에 녹여버렸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차갑고 냉정합니다. 스펙의 법, 물질의 법, 인맥의 법이 지배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세상의 법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총, 즉 ‘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면, 닫혔던 문이 열리고 원수의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척박한 법 속에서 낙심하지 말고, 오늘 이 아침에 “주여, 오늘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헨(은총)’을 입은 자로 살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세상의 거짓 영광에 속지 말고, 반전의 장대를 바라보라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에 5:11) 에스더의 잔치에 초대를 받고 나온 하만은 기고만장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아내 앞에서 자기가 가진 권력과 재물의 ‘카보드(כָּבוֹד, 영광/부함)’를 마음껏 자랑합니다. 하만은 자신의 ‘카보드’가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영광의 이면에는 모르드개를 향한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집착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날 밤,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50규빗(23m)이나 되는 높은 나무 장대를 세웁니다. 한편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에게 왕은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에 5:6) 말했지만 에스더는 바로 요구를 말하지 않고 "내 요구를 시행하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한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에 5:8)라며 왕이 전에 모르드개가 왕의 목숨을 살린 공적을 보게 할 시간을 버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죽일 생각에 날카롭게 칼을 갈며 "계약서 대로 안토니오의 살을 1파운드 가져 가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때, "계약은 유효합니다.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져 가십시오"라고 포샤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샤일록은 이 말에 기뻐합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살을 베어 갈 수 있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피를 흘릴 권리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살을 베다가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거나 정확히 1파운드에서 조금이랴도 많이 베거나 적게 베면 베니스 법에 따라 당신의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될 것입니다" 라는 말로 결국 포샤의 지혜가 안토니오를 살렸습니다.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죽일 칼을 갈며 기뻐할 때, 바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는 파멸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하만이 세운 그 장대는 정확히 이틀 뒤 자기 자신이 매달리는 반전의 도구가 됩니다. 세상의 카보드는 이토록 허망합니다.
세상은 돈의 영광, 권력의 영광이라는 ‘카보드’를 자랑하며 성도들을 기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악인의 영광은 자기 무덤을 파는 장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야 할 진정한 영광(카보드)은 하만이 세운 저주와 죽음의 장대가 아니라, 우리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의 장대’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 장대에 매달아 승리했다고 기고만장했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인류 구원과 부활이라는 위대한 반전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세상의 헛된 자랑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만의 장대는 무너질 것이나, 예수의 십자가는 영원한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우리를 향해 냉혹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위협하지만, 우리에게는 절망의 재판정을 뒤집을 천국의 전략이 있습니다.
오늘도 내 능력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인 ‘말쿠트(מַלְכוּת, 왕권)’를 입으십시오.
세상의 규칙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헨(חֵן, 은총)’을 구하십시오.
세상의 썩어질 ‘카보드(כָּבוֹד, 거짓 영광)’를 부러워하지 말고, 승리와 반전을 주시는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를 죽이려던 원수의 장대는 무너지고, 우리의 삶에는 에스더의 승리와 포샤의 판결 같은 위대한 구원의 반전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