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유업이 한국야쿠르트에 인수된다는 소식을 다들 접하셨죠?
‘시대의 풍운아’ 최명재 회장이 만 60세에 세운 파스퇴르는 탄생(87년)부터 상당한 화제를 뿌린 기업이죠.
87년에는 ‘저온 살균 우유’가 진짜 우유라며 다른 우유를 가짜 취급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프리미엄 우유 시장을 열었습니다.
다른 우유 회사들은 파스퇴르가 미우면서도 프리미엄 우유 시장을 열어줘서 고가의 우유를 팔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 데 대해서는 파스퇴르에 속으로는 고마워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이 때를 기점으로 ‘생필품’ 취급을 받던 우유시장에서 무슨무슨 성분이 들었다며 값을 두 배 정도 올린 것도 나올 수 있었죠.
파스퇴르의 첫 번째 공격 마케팅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죠.
그러나 두 번째의 야심작은 실패한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름 우유’ 논쟁이 그것입니다.
파스퇴르는 95년 다른 회사의 우유 속에 체세포가 포함돼있다며 이를 ‘고름 우유’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죠. 이 단어가 가진 선정성, 파급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요즘 ‘쓰레기 만두’ 파동을 생각해보면 아실 겁니다) 당시 우유 소비 전체가 급감했으며 타사 뿐만 아니라 파스퇴르의 우유 소비도 줄어들었죠.
당연히 다른 우유업체, 한국유가공협회 등과 ‘명예훼손’ 소송이 이어졌고 결정적으로 파스퇴르는 이 소송에서 지고 맙니다. 업계에 따르면 한 업체에서 파스퇴르 우유의 근간인 최 회장이 일군 성진목장에서도 다른 우유와 별반 다를바 없는 제품이 나오고 있더라는 폭로도 큰 타격이었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도덕성’ ‘선명성’에서 상처 입은 파스퇴르 최 회장은 그 다음해 야심차게 준비해온 강원도 횡성군에서 민족사관고를 가동하게 됩니다. 최 회장은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해 노벨상을 받을 사람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말로 ‘영재 학교’에 대한 소망을 절절히 드러내곤 했습니다.
이 학교는 지금도 ‘화제의 대상’이죠. 유학반이 따로 있어서 하버드대학교 등 해외 유명 대학에 5년 동안 유학반 전원을 합격시켰습니다. 강남의 열성 학부모뿐만 아니라 전국의 교육열 높은 학부모는 이곳에 입학시키는 것을 그 어떤 국내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보다도 자랑스러워 할 정도지요.
이곳의 교사들은 영어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어로 대화를 합니다. 58명의 교사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28명에 이를 만큼 실력이 있는 교사들이 많고 대우도 역시 다른 학교의 배 이상 받았다고 하네요.
이런 최 회장은 ‘화상 사고’로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2000년 제주 서귀포의 롯데호텔 사우나에서 열탕에 들어갔다가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은 뒤 호텔측과 소송을 벌여 최근 2억5000만원의 보상금을 받기도 했죠. 그는 “만 81세까지 더 일할 수 있다”며 5억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는 “오너경영인의 근로정년은 만 76세 9개월”이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사고 이후 최 회장은 실제로 기업 경영에서 손을 뗍니다. 몸이 아파서 예전처럼 기력을 차릴 수 없었기에 그의 부인이 대신 경영을 맡고 그는 민족사관고 교장으로서 생활해왔습니다. 이번 파스퇴르 유업 매각으로 최 회장 일가는 이제 민족사관고 운영에 몰두하게 되겠지요.
전북 김제 출신으로 서울 상대를 ‘수료’한 최 회장은 상업은행을 거쳐 중동에서 운수사업을 하는 등 범상치 않은 인생역정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절정’은 바로 파스퇴르, 민족사관고교와 함께한 60~77세 사이가 아닐까 싶군요. 그는 평생 하고 싶던 일을 집약적으로 했고 2005년이후 앞으로도 민족사관고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