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캠페인(Campaign)
● “우리 함께해요!” 캠페인
♣ 신행(믿음과 수행)
- 법회 및 각종 사찰행사, 주지스님과 함께하는 신행 간담회 등에 참석하기
- 생활 속의 수행 실천하기(참선, 염불, 주력, 사경, 간경, 기도, 절 등)
♣ 배움과 실천
- 배움(경전강의, 건강.문화 강좌, 참 나를 찾아 떠나는 ‘산사의 하룻밤’ 프로그램 등)
- 실천(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
♣ 봉사
- 사찰행사 봉사활동,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하기
♣ 신도회 활성화
- 지역별 신도모임 구성과 참여, 조계종 신도증 발급, 카풀(car pool)운영 등
♣ 포교
-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수도암 카페참여,법보시,전법활동 등)
수도암 불자님은, 5가지의 “우리 함께해요!” 캠페인을 통해,
서로 소통과 화합을 이루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고자 합니다.
■ 수도암 소개
역사
● 창건역사
수도암은, 서기 859년. 약 1,155년 전 통일신라 말기 헌안왕 3년에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고, 이 절은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수도암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선원이며, 이름난 수행처로 명성을 이어
가고 있으며, 풍수와 선(禪)을 한 맥락으로 여기고 전국 3,800여곳을 돌
아 본 도선국사가 이 절터를 찾은 기쁨에 일주일간 춤을 추었다고 한다.
● 역대 선승
근현대에 한국불교를 이끈 여러 큰스님들이 수행 정진하였으며, 수도암에
는 이런 큰스님들의 치열한 구도 정신이 스며있다.
(경허, 한암, 경봉, 보문. 효봉, 동산. 금오. 전강. 구산, 관응, 고송, 석주,
법전, 보성 큰스님 등)
문화
● 불령산(佛靈山) 수도암
약 100여년 전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가피가 많다고 하여 사람들이 ‘불령
산’ 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으며, 또한 이 곳 석불 이마에서 자주 방광(放
光 : 빛을 내어 멀리 뻗어 나감)이 있었으므로, ‘불령산’이라 불리기도 한
다. 또한, 수도암은 수행자가 모여 수도하며 마음 밝히는 곳 이라 하여
수도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 사찰 안내와 설화
♣ 대적광전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수도암의 중심전각으로 맞배지붕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적광전 안에는 창건 당시 조성되어 보물 제307호
로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높이 2.5m 의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 작은 입, 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
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
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맨 위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데,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며
탄력이 줄어든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도선국사가 이 부처님을 조성할 때, 수도암 터에 어울리는 탑과 모든 것
을 조성했으나 석불을 만들 만한 석재가 없었다. 산 너머 거창 땅 부처골
에서 큰 돌을 발견하고 다듬기 시작해서 드디어 칠 척이 넘는 거대한 부
처님을 조성했으나 수도암까지 옮길 일이 막막했다. 이에 모든 대중들이
지극정성으로 7일 기도를 올리는데 마지막 날 수염이 하얀 노스님이 나
타나 부처님을 옮겨준다며 큰 석불을 등에 업고 나는 듯이 산을 오르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수도암 근처 지금의 아홉 살이에 이르렀는데
그만 칡덩굴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것이다. 이에 노스님은 수도산 산신을
불러놓고 “부처님을 모시고 오는데 칡덩굴에 걸려 그만 부처님께 큰죄를
지을 뻔하였다. 앞으로 다시는 이절 주위에는 칡이 자라지 못하게 하라.”
고 호통을 치고는 부처님을 수도암에 모셔놓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때문인지 이곳 수도암 주위에서는 지금까지 칡덩굴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선원장 원인스님은 “노스님은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표적을 그와 같
이 남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6.25전쟁 당시 이곳까지 북한군이 들어왔는데 부처님을 향해 총을 쏜
북한 병사가 그 자리에서 죽은 이야기도 있다. 큰 법당 석조비로자나불좌
상 얼굴에 총알이 스쳐 지나간 자리가, 지금도 자세히 보면 왼쪽 뺨에는
눈물자국처럼 흉터가 있다.
♣ 약광전과 석조약사여래좌상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약광전안에는
도선국사가 사찰의 창건당시에 조성했다고 전하는
약사여래좌상은 보물 제296호로 지정되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좁은 이마의 중앙에 커다란 백호(白毫)
가 박혀 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풍만한 모습으로 온화하면서도 중
후한 느낌을 주며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道)가 나타나 있다.
몸에는 선으로 표현된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좁은 어깨는 굴곡이 없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 보
살(菩薩)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인 형태나 손가짐으로 볼 때 여래상에 가
깝다
수도암 약사여래는 직지사 삼성암 약사여래, 금오산 약사암 약사여래와
함께 ‘삼형제’로 불린다. 모두 한 석공이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 석불이 하품하면 다른 불상도 따라서 하품을 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특히, 수도암 약사전에서 기도한 후 법당이나 주위 마당에서 한약냄새를
맡으면 어떤 불치병도 낫는다는 말이 있다.
♣ 나한전
수도암의 얘기에 등장하는 나한은 처음에는 큰 법당 옆에 모셔져 있었는
데 1969년 법전 스님이 중창 불사를 하면서 청암사 백련암에 한때 모셨
다. 그런데 이 암자에서 수행하는 비구니의 꿈에 나타나 수도암으로 보내
달라고 현몽하시어 다시 지금의 나한전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야기의 주
인공으로 등장하는 동자승도 지금 나한전 왼쪽 맨 끝에 자리하고 있다.
수도암 나한전은 모셔진 나한(羅漢)들이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여러 얘기
가 전해온다. 나한은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했다고 전하나 정확한 조성 연
대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옛날 대적광전 뒤에는 큰 느티나무(혹
은 전나무)가 서 있었다. 괴목이 기울게 자라더니 급기야 법당의 기와를
상하게 해 비가 새어 스님들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베어 버리
려 했으나 건물이 상할 것을 염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스님은 출타를 하고 노승 한 분이 절을 지키
고 있다가 삼매에 들었다. 그런데 꿈결 같은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깔깔대며 웃는 동자 소리와 박장대
소하는 사람 소리가 들려 황급히 법당 앞으로 나와 보니 그렇게 고민하
던 괴목이 뿌리째 뽑혀 있었다. 정신을 수습한 스님이 이상한 생각이 들
어 나한전을 들여다보았다. 나한전 안의 16나한들의 어깨에는 나뭇잎이
얹혀 있고 손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수도암의 영험
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스님들은 나무를 잘라 겨울철 땔감으로 사용하고 나무 밑둥치는 근년까
지 남아있었다. 선원장 원인스님은 "1969년 선원을 지을 때 나무가 뽑힌
자리에 큰 웅덩이가 있었다"며 "나무가 쓰러지면서 법당 앞 서쪽 석탑에
부딪혀 탑 일부가 부서졌으며 요사채 앞에 디딜방아가 있었는데 나무가
덮쳐 못 쓰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큰 괴목이 넘어지면서 법당
은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아 온전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추운 날 거창의 나이 든 불자가 공양미를 갖
고 힘들게 산을 넘어오는데 한 동자승이 나타나 "수도암 스님이 저를 보
내 공양미를 받아 오라고 했습니다"라며 쌀가마니를 메고 쏜살같이 산을
올라갔다. 고맙게 여긴 노인이 절에 도착해 보니 마루에 쌀가마니만 덩그
렇게 놓여 있을 뿐 조용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동자는 없고 스님만
선실에서 공부를 하는지 기척이 없었다. 큰 소리로 스님을 불러 자초지종
을 얘기하며 "누군데 그 무거운 쌀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나는 듯이 왔을
까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스님은 "따라오시오"라
며 앞장서 노인을 데리고 나한전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나한전 맨 끝 조
그만 동자승 어깨에 짚 검불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스님은 "다른
스님들이 출타하고 나만 절을 지키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식량이
떨어져 걱정을 하고 있었다"며 "처사님께서 무겁게 공양미를 지고 오는
것을 보고 이곳 동자승께서 받아온 게지요. 큰 복을 받으실 겁니다"라고
했다.
또 수도암 아래 수도리 마을에 동지를 맞아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동자
승이 나타나 팥죽을 달라고 해 드시고는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팥죽을 드
실 수 있도록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것. 마을 아낙이 끓인 팥죽을 들고
따라나섰는데 앞서 간 동자승이 암자에 들어간 뒤 보이지 않았다. 아낙이
사실을 스님에게 말하고 함께 법당 안을 둘러보니 동자승 입가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 관음전
1969년 법전스님이 부임하여 사찰을 중창 불사하면서 관음전을 짓고, 이
법당 좌.우로는 종무소와 공양간, 요사채가 같이 들어 서 있다. 관음전은
스님들의 공양 장소와 매월 셋째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경전 강의 장소로
도 활용하고 있다.
♣ 수도암 삼층석탑
보물 제 297호로 지정된 수도암 삼층석탑은 대적광전과 약광전 앞에 동
서(東西)로 서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강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세웠
다는 설이 전해온다. 대적광전 앞에는 서탑이 있고, 약광전 앞에 동탑이
서 있어 쌍탑으로 보기에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고, 조성기법도 차이가
있어 단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동쪽의 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였고, 그 하부에는 지
대석 위에 넓은 판석을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1층 탑신에는 사방에 감실
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는 연화대 위에 여래좌상을 1구씩 배치했다. 탑 높
이는 376cm로 상부에는 노반과 복발, 보륜의 일부가 남아있다.
서탑은 동탑과 같은 양식이나 세부 기법에서 차이가 있는데 1층 탑신 사
방에 동탑처럼 감실을 형성하지 않고 부조상으로 처리하였다. 높이가
425cm이며 상부에 노반과 보주가 남아있다.
탑의 위치가 높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운무(雲霧)가 그득한 날에는 구름
위에 탑이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석주(石柱)
약광전 앞에는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사각의 돌기둥이 하나 서 있다.
세월의 풍상에 마모가 되긴 했으나 “창주 도선국사(刱主 道詵國師)”라고
돌기둥에 새겨진 글씨를 알아보는데는 어려움이 없다.
♣ 기타 설화
수도암에는, 스님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예불을 모시지 않으면 나한님이
법당 종을 쳐서 잠을 깨우고 경책한 일도 전한다. 가난한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부자가 된 이야기, 기도해서 병 나은 이야기, 기도해
서 득남한 이야기 등 영험담이 많이 전해온다.
선원장 원인스님은 "이런 영험은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오는 복
보이나 여기에만 집착하면 참된 신앙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일과 어리석
은 일을 참회하고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
한다. "바른 기도를 통해 바른 이치를 알게 되고 바른 생활로 이끌리게
된다. 따라서 모든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니며 쉬움도 또한 자연스러워 모
든것에 자유로움을 얻게 될 것이다"는 경계의 말씀을 전한다.
청정 수행도량
●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명당에 자리한 수도암
수도암은 김천에서 가장 높은 1,080m에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젊은 여인이 앉아서 비단을 짜는 ‘옥녀직금형’의 명당으로 불린다. 멀리
보이는 가야산 정상이 실을 거는 끝게돌이 되고 동.서로 나눠 서 있는 탑
이 베틀의 기둥이며,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을 모신자리가 베를 짜는 자리
가 된다는 것이다. 관음전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베틀에 필요한 물을
제공한다고 한다. 연못에 물이 가득하면 사운(寺運)이 창성한다고 전한다.
절 왼쪽으로 청룡등이 길고 힘차게 뻗어 수도암 터를 감싸고, 우측으로는
백호등이 웅장하게 내려와 선방 앞에 묘한 봉우리를 만들어 절을 지켜주
고 있다. 정면에는 가야산이 연꽃이 피어난 것처럼 솟아있어 또다른 의미
로 지혜와 덕을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가야산을 연화봉이라
부르며, 연화봉 앞에는 일자봉이 있어 연화봉을 받쳐주고 있다. 연화봉은
공덕을, 일자봉은 평등한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며, 이런 연유로 수도암은
지혜와 덕을 현출하고 있다고 한다.
지기가 잘 모여 있는 깊고 고요한 최적의 외적인 조건으로 기운이 수성
하여 수행스님이 오래 자지않고 공부할 수 있어 발심수행에 도움이 된다
고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수도암은 청정한 기운이 항상 함께한다.
● 청정 수행터
수도암에는 산왕대신, 도선국사, 독성각을 모신 조사전과 참선 하는 스님
들이 계시는 수도선원, 무문관(無門關)인 정각암, 서전암, 낙가암, 한적대
의 청정한 수행도량이 있다.
일반인을 위한 시설
● 육화료 요사채
2011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한 2층, 총면적 701m2(212坪) 규모의 육화
료 요사채는 2012년 10월 7일 상량식을 하였고, 2013년 8월 경 완공
예정이다. 1층은 식당, 주방, 창고, 보일라실, 화장실, 샤워장 등이 들어서
며, 2층은 종무소, 편집실, 숙소동, 공동 화장실, 샤워장, 세탁장 등이 마
련된다. 1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은 지상 관음전과 연결되는 평지
가 된다. 방은 총 13개 규모이며, 방 규모는 성인 3명 정도가 숙박 할 수
있다.
수도암 요사채 육화료는 문화재청, 경상북도, 김천시의 지원과 수도암의
일부 분담금으로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 공양간
관음전 정면에서 보아 우측에 공양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30~40명이
동시에 공양 할 수 있는 규모이며, 음식에 쓰이는 재료는 친 자연환경
식자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공양 후에는 커피나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전기 포트기와 차 종류가 구비되어 있다.
● 낙가암 요사채
해우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0여 미터쯤 가면 낙가암이 나오고, 그 옆
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요사채가 있다. 육화료 요사채가 2013년 8월경 완
공 되기 전까지 사용하기 위해 지은 조립식 건물로 방이 14개가 마련되
어 있고, 사찰 종무원과 장기 기도를 하는 신도분이 머물기도 하는데, 평
소는 약 5~7개 정도의 방이 준비되어 있다. 방의 크기는 성인 약 3~4명
이 숙박 할 수 있을 정도로, 공동 샤워장과 세탁장이 구비되어 있고, 1박
숙식비용은 1인당 20,000원으로 사전에 반드시 종무소에 전화로 문의하
고 예약을 해야한다.
● 화장실(해우소)
절 입구에 자리한 해우소(解憂所)는 톱밥을 사용,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자연
● 수도산
수도산은 해발 1,317m 로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와 수도리 일대에
서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일대에 자리잡은 거대한 육산으로, 고산준령
과 굽이친 계곡 곳곳에 울창한 수림과 담소가 어우러져 철따라 비경을
연출하며, 산 북쪽의 굽이친 계곡은 ‘불령동’으로 불리는 청정지역이다.
● 사계절 산행과 트레킹의 보고(寶庫)
♣ 수도암 - 수도산 - 단지봉 - 목통령 - 가야산 으로 이어지는 평균 고도
1,200m 의 능선 종주코스가 유명하다.
♣ 수도산은 가을 억새 산행과 겨울 심설 산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 가족과 즐기는 청정계곡
♣ 수도암 계곡의 무흘구곡(武屹九曲)은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6곡 옥류동, 7곡 만월당, 8곡 와룡암, 9곡 용추폭포가 그 비경을 자아내
고 있다.
☞ 무흘계곡 이름은 경북 성주 출신인 도학자 한강(寒岡) ‘정구’선생이 남
송 주자의 ‘무의구곡’을 모방하여, 그의 대부분 삶을 보낸 100리길 대
가천을 거슬러 오르면서 풍광이 아름다운 아홉 곳의 명소를 골라 차례
로 이름을 붙이고는 무흘구곡(武屹九曲)이라고 하였다.
무흘구곡은 경북 성주군에서 제1곡에서 제5곡 까지가 존재하고 있으
며, 제6곡에서 제 9곡까지는 김천시 증산면 수도계곡에 산재하고 있다.
♣ 증산 수도계곡 캠핑장을 2014년 까지 조성한다.
수도리 54번지 일원을 문화체육부에서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쾌적하고
저렴한 숙박시설을 제공하여 국내 관광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국민
여가 캠핑장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관광진흥개발기금 사업으로 진행
한다.
♣ 무흘구곡 경관조성을 2015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며, 증산면 평촌리와
수도리 일대 3만 4천여m2 부지에 총 연장 10.3km 산책로, 진입로,스토
리보드를 설치하여 Storytelling 및 관광체험 Infra Program을 마련 할 계획이다.
● 체험과 참가의 현장
♣ 증산면 평촌리 ‘옛날 솜씨마을’ 과 ‘수도산 목통령 고로쇠 축제’(매년 3
월경 개최)
♣ 수도산 자연휴양림을 대덕면 추량리 산 141번지 일대 59ha에 2014년까
지 조성할 예정이며, 산림 휴양관, 물놀이 장, 등산로, 숲 체험로, 케이
블 카 등의 시설을 갖추게 된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