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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크랩 서장훈이 남긴 위대한 유산.
늘푸른나라 추천 0 조회 282 13.03.20 21: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프로농구가 배출한 역대 최고의 선수가 정든 코트와 작별을 고했다. '국보 센터' 서장훈이 2013년 3월 19일 전주 KCC와의 홈경기를 끝으로 성대한 은퇴식을 가지며 약 30년간 달려온 장대한 농구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루만큼은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울어도 좋아요.

오로지 당신에게만 허용된 시간이고,

당신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요.

 

 ▲ 서장훈, 그가 걸어온 길이 곧 한국농구의 역사다.

 

 

서장훈이 걸어온 길은 그 자체가 한국농구, 또한 KBL의 역사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신동파, 이충희, 허재, 김현준 등 한국농구를 빛낸 수많은 레전드들이 있었지만, 그들과 비교해도 서장훈이 한국농구계에 남긴 업적은 그 이상일뿐 아니라, 프로화 이후만 놓고보면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만하다.

 

 

한국농구의 최고전성기였던 90년대 대학농구의 르네상스와 '농구대잔치 세대'의 주역이었으며, 프로화 1세대로 KBL의 최고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서장훈을 제외하고 한국농구사를 논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정작축구에 차범근-박지성, 야구에 선동열-박찬호같은 슈퍼스타들이 있듯이, 농구에는 곧 서장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그의 존재는 현대 한국스포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휘문중과 고교 시절부터 장신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서장훈은 1993년 연세대에 입학하며 성인농구계에 데뷔한다. 당시는 대학농구의 전성기였고, 실업과 아마팀을 망라하는 '농구대잔치'는 프로화 이전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대의 농구제전이었다. 서장훈은 연세대 1학년이던 93-94 농구대잔치에서 허재-김유택이 이끄는 실업최강 기아자동차의 6연패를 저지하며, 연세대를 대학팀 사상 첫 우승으로 이끌고 MVP에 올랐다. 여드름 티도 벗지못한 스무살의 풋내기가 데뷔와 함께 한국 성인농구계를 평정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서장훈은 이전에 한국농구에 등장한 누구와도 다른 유형의 선수였다. 국내 최장신인 207cm의 신장에 100kg를 훌쩍넘는 거구는 당시만해도 190cm대 초중반의 센터들이 대부분이던 다른 국내 빅맨들과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서장훈은 단지 신체조건만 타고난 선수가 아니었다. 서장훈은 장신임에도 슈터를 능가하는 정교한 슛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신장 대비 준수한 운동능력에 영리한 농구센스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서장훈이 미국유학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1년을 제외하면 연세대는 서장훈이 건재한 동안 국내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96-97년에는 각종 공식대회에서 44연승을 달렸고, 프로출범전 열린 마지막 농구대잔치였던 1997년에는 사상 최초의 전승 우승신화를 달성했다. 서장훈은 졸업반이던 4학년 시절, 아마팀으로만 치러진 농구대잔치에서 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세 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서장훈의 진가가 더욱 돋보인 것은 오히려 프로 입단 이후부터였다. 98년 청주 SK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서장훈은 데뷔 첫해 외국인 선수들을 제치고 리바운드왕(13.97개)에 올랐다. 국내 선수가 리바운드왕에 오른 것은 프로 역사상 지금도 서장훈이 유일하다. 서장훈은 2년차이던 99-00시즌에는 SK를 창단 첫 챔피언전 우승으로 이끌며 프로무대에서도 정상에 섰고 통합 MVP에까지 올랐다.

 

 

비록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분명 그는 이 시대 가장 훌륭한 스포츠 '장인'이었다.

그 변함없는 열정과 진정성에 온전히 경의를 표한다.

 

서장훈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외국인 선수가 지배하던 프로시대에 토종빅맨의 자존심을 지킨 유일한 존재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프로화 이후 국내무대에서 난다긴다하는 토종빅맨들도 외국인에 밀려 벤치를 지키거나 외곽을 맴돌아야했다.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에 코트를 누비던 그 시절, 서장훈의 매치업 상대는 항상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심지어 자유계약시절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사실상 준 NBA급에 근접한 특급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농구에 쏟아져나왔으나 서장훈은 언제나 살아남았다. 달라진 시대변화와 프로의 특성에 맞춰 서장훈은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슛에 특화된 공격형 빅맨으로 스스로를 진화시켰다, 서장훈은 무려 4차례나 평균 20점-10리바운드 이상의 시즌을 기록했으며 그를 제외하면 한번이라도 이 기록을 달성한 국내 선수는 전무하다. LG에서 뛴 2011-12 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모두 평균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고. 데뷔 시즌부터 2004-2005시즌까지는 7년 연속 평균 20점 이상과 국내 선수 득점 1위 기록을 도맡은 것도 독보적이다.

 

 

개인기록만이 아니라 서장훈은 팀에 있어서도 최고의 승리보증수표였다. 서장훈을 보유한 자체만으로도 사실상 외국인 선수를 한 명더 보유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였기 때문이다. 서장훈은 비록 정규리그 우승은 한 차례도 없지만, 챔피언전 우승은 SK와 삼성에서 각각 한 차례씩 두 번을 달성했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총 11회를 기록했고, 여기에는 99-00시즌부터 08-09시즌까지 역대 최다인 10년연속 PO진출 기록도 포함되어있다.

 

 

서장훈의 활약은 국제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서장훈은 1993년 아시아선수권을 시작으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까지 13년간 태극마크를 달았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에 20년만의 금메달을 안기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NBA리거 야오밍을 온몸으로 육탄수비하던 서장훈의 모습은 농구팬들에게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한국농구가 아직 세계무대와 거리가 멀던 그 시절, 한국이 내놓을수 있는 유일한 장신빅맨으로 서장훈은 언제나 골밑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해야했다.

 

 

뭐니뭐니해도 서장훈의 업적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1만득점-5천 리바운드 동시 달성이라는 대기록이다. 서장훈은 15시즌 동안 SK, 삼성, KCC, 전자랜드, LG, KT 등 총 6개팀을 거치며 프로 통산 688경기에서 2만2834분을 뛰었고 통산 1만 3231점 5235리바운드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모든 부문에서 프로농구 통산 1위 기록이다. 이밖에 1077어시스트(14위) 356스틸(16위) 463블록슛(2위)도 기록했다.

특히 득점과 리바운드는 두 기록을 따로 떼어놓고봐도 서장훈에 근접할 선수는 보이지않는다. 득점과 리바운드 역대 2위인 추승균(1만19점) 조니 맥도웰(3829리바운드)은 이미 은퇴한지 오래고, 현역선수중 유일하게 김주성(8,076득점-3.363리바운드)이 뒤를 따르고있지만 워낙 기록차이가 현저한데다 그 역시 은퇴가 멀지않은 노장이다. 저득점시대와 대형빅맨 기근을 맞이하고있는 한국농구에서 아마무대를 둘러봐도 서장훈의 대를 이을만한 유망주는 보이지않는다. 10년은 고사하고, 20~30년 이내에도 서장훈의 아성을 위협할만한 선수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출범 16년의 짧은 역사를 보유한 프로농구에서 서장훈이 쌓아올린 기록들은 곧 한국농구가 걸어온 길이자, 후배들이 도전해야할 하나의 롤모델이 된 것이다.

 

 

 서장훈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한국농구의 자랑인 동시에,

포스트 서장훈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농구에는 그 이상의

스토리텔링을 위하여 뛰어넘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 포스트 서장훈 시대, 한국농구에 남겨진 과제

 

 

하지만 이런 위대한 기록들도 서장훈의 가치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서장훈의 남긴 업적이란 눈에 보이는 수치를 넘어선, 기록 뒤에 담겨진 인간 서장훈의 땀과 눈물, 그리고 철학의 산물이었다.

 

 

서장훈이 프로무대에 데뷔한 98년 이래 서장훈보다 오래 뛴 선수는 없다. 그것도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한팀의 주전급이자 비중있는 해결사로 활약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한 경우는 전무하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집요한 승부근성, 그리고 농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선수 서장훈은 이른 나이부터 항상 최고의 자리를 달렸지만, 인간 서장훈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오히려 대기만성에 가깝다. 서장훈만큼 뛰어난 실력에 비하여 대중의 호불호가 엇갈렸던 선수도 찾기 드물다. 안티도 많았고 루머도 많았다. 항상 최고이기를 기대하는 주변의 시선과, 선입견으로 얼룩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서장훈과 대중 사이에 보이지않는 선을 그어놓았다.

 

 

서장훈에 대한 대중의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놓은 것은 결국 '진정성'이었다. 대중의 시선에 맞추어 타협하지도, 굳이 스스로를 바꾸려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서장훈은 꾸준히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제나 코트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부상과 노쇠화, 개인사등이 겹쳐 힘겨운 시기를 보내면서도 코트위에서만은 끝까지 열정을 잃지않는 그의 우직한 프로의식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KT에서 보낸 마지막 1년간의 시간은 서장훈과 팬들이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고별여정이었다. 서장훈은 마지막 시즌 유난히 잦은 부상에 고전하면서도 변함없는 기량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비록 선수생활 내내 잦은 이적으로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되지못했지만,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찾는 경기장마다 농구팬들은 따뜻한 박수로 서장훈과의 작별을 아쉬워했고, 상대팀도 떠나는 레전드를 기념하는 행사를 통하여 최대의 예우를 갖췄다. 특정한 팀을 넘어 한국농구의 아이콘으로서 서장훈이기에 가능했던 이벤트였다.

 

 

심지어 마지막 은퇴경기와 은퇴식에서도 서장훈은 한결같았다. 경기전까지 은퇴에 대한 구구절절한 감상보다는 '농구선수로서만' 집중하겠다는 프로의식을 버리지않았다. 비록 플레이오프 탈락은 확정되었지만 고별경기에서 33점을 몰아넣으며 왜 서장훈인지를 입증했다. 승부처에서는 멋진 바스켓카운트까지 얻어내며 주인공으로 화려한 마무리를 끝냈다.

 

 

코트에서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태우고 마침내 작별인사를 위하여 단상에 올랐을때야 그동안 복받쳐던 감정을 드러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전설의 퇴장에 어울리는 이벤트였고 박수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던 서장훈이었다. 은퇴 경기에서 땅볼을 치고도 1루가지 전력질주했던 양준혁의 사례처럼, 서장훈 역시 떠나는 순간까지 후배들에게 '진정한 프로의 모범'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서장훈이 한국농구에 남긴 위대한 유산은, 농구계의 자랑인 동시에 무거운 숙제 또한 동시에 남겼다. 현재 농구계에 서장훈만큼의 존재감, 업적을 대체할만한 선수는 어디에도 없다. 서장훈 역시 국제적 위상이나 대중적 지명도 등 넘지못한 한계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서장훈만한 선수가 언제 다시 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공교롭게도 한국농구가 극심한 경기력 하락과 스타 부재, 승부조작 논란 등까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있는 가운데, 또 한명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를 잃었다는 아쉬움은 큰 공허함으로 다가올수밖에 요즘이다.

 

 

서장훈이라는 시대의 아이콘과 그가 남긴 업적들을 이제 '전설'로 떠나보낸 지금, 한국농구는 포스트 서장훈 시대를 채울수있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한다. 서장훈과 농구대잔치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한국농구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너무나도 부족한 저에게 20년 넘게 과분한 헌신과 성원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가능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구단 관계자분들과 농구선수 선후배 동료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들과 함께 농구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 농구선수 서장훈의 은퇴사(2013년 3월 19일,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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