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자병차 보이차 녹인

● 제목 : 보이차에 대한 소개(1).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애용되는 차(茶)는 커피나 기타 음료의 음용량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음료입니다. 중국 보이차는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세계적 명차입니다. 보이차는 주로 타이족(族). 묘족(苗族). 이족(彛族)등 20여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중국 운남(雲南)성 일대의 동백나무과 대엽종 찻잎(茶葉)을 발효시켜 만든 '미생물 발효차'를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서도 보이차를 가장 많이 만드는 곳이 운남성의 서쌍판납의 6대 차산이고, 물론 만드는 주민은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태족, 백족 등)입니다.
오늘날 학계는 티베트와 운남성 사천성의 경계를 이룬 산악지대를 차나무의 원산지라고 추정하며 그 지역 특히 운남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이야말로 최초로 약 3 천 여년 전에 차를 음료로 사용하며 차를 생산한 차 문화의 시조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당, 송 시대에나 와서야 비로소 차가 대중적으로 상음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차 이름이 그 생산지를 중심으로 이름 붙여지듯이, '운남차'나 '서쌍판납차'라고도 부를 것 같은데 '보이차'라고 부르게 된 것일까 궁굼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역사적인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운남성 각지에서 생산된 차들이 중국과 서부지역인 티벳, 신강, 청해 등으로 교역되기 위해 최종적으로 모여서 거래가 되던 보이차 집산지가 '보이현'이었기 때문에 차의 교역이 점점 왕성해지면서 그냥 "차" 이던 것이 "보이차"로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처음부터 보이차라고 불리어진 것은 아니고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곳에 보일부(步日部)를 설립한 다음>이었습니다. 그 보일부가 후에 음이 변하여 지금이 '보이부'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그 지역의 원 주민들이 부르던 음가 <푸얼:Pu-Erh>를 한자로 한국에서는 그대로 사용하여 음차(音差)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이렇게 "보이차"의 연원은 매우 오래되어 차의 역사와 출발점을 같이하지만 "보이차"라는 이름은 명나라 때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청나라 옹정 10년(1729년)에 정식 진상차로 선정되면서 그 뒤 약 200년간 보이차는 중국내와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차는 한 지역 한 종류의 찻잎을 가지고도 살청방법이나 건조, 악퇴의 유무 등에 의해서 약 40종류가 넘는 보이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문헌적으로 보이차에 대하여「본초강목십유-本草綱目拾遺」에서 약리적 특성을 기록하기를 "보이차의 향은 독특하며, 숙취를 깨게 하며, 소화를 잘 돕고, 가래를 녹인다. 우리 몸에 해로운 기름기를 제거하고 장을 이롭게 씻어 내며 진액을 생성한다. "는 문헌적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차가 왜 갑자기 유명해지는 이유는 문헌적 해석보다는 중국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중국 차 시장을 영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차는 녹차(용정차)었고, 명(明). 청(淸)왕조 이후 청차(靑茶)인 오룡차 계열도 많은 다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목생활을 많이 하고 있는 변방 민족들은 중원의 한족(漢族)들처럼 고급 녹차를 마시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불가피하게 발효차를 마시게 되었고, 또한 생활상 쉽게 이동 및 보관하기 위해 차를 쪄서 압력을 주어 형태를 갖춘 덩어리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근세에 중국 및 일본 의학계에서 육류를 많이 섭취한 변방 유목민족들이 예외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원인을 역학 조사한 결과 해답은 그들이 마시는 덩어리 차에서 발견됩니다.
중국 현대 의학에서 임상 실험을 통하여 증명된 것은 보이차는 다른 차보다 인체의 지방질 및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현저히 낮추는 약효가 있습니다.
또한 보이차를 자주 마시면 체중을 감량시킬 효과가 있어 외국에서는 보이차를 '감비차(減肥茶- 지방을 줄여주는 차)' 혹은 '요조차(窈窕茶-예뻐지는 차)'라고도 칭한다. 이러한 논문이 세계적으로 발표된 후 많은 다인들은 성인병 예방 및 치료하는 차원에서 기왕 이면 차를 마실 때 건강에 유익한 것을 찾게 되었고 다른 차 보다는 흑차인 보이차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차 보급에 있어 많은 잘못된 지식들이 어느 경로에 통해서는 모르지만 분명히 잘못 전해지고 있는 부분이 많아 실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제다한 10년 미만의 보이차의 품질도 훌륭합니다.
중국 청나라 황실에서 애용했던 보이차는 청초 옹정제 때부터 황실진상품으로 지정되어 청나라 황실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습니다. 청나라의 귀족 계층이었던 만주족은 원래 육식을 즐겼기 때문에 더욱 보이차가 입맛에 맞았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항주 서호에서 나오는 용정차를 마시고, 겨울에는 보이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산재합니다.
'조설근'의 소설 홍루몽을 보면 주인공 가보옥이 '보이여아차(普濔女兒茶}'를 마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청나라 당시의 귀족 계층에서 보이차 음용이 보편화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여아차가 인기가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여아차는 미혼의 처녀들이 딴 찻잎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당시 여러 종류의 보이차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품목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소엽종(재배형 관목) 찻잎으로도 만들지만 원래의 정통적인 보이차는 야생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집니다. 보통 녹차와는 달리 빈대떡과 같은 검은 덩어리차로서 병차(떡차)가 대종을 이룹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1960년대 초 강진 월남사지와 화순 운주사 주변에서 생산된 돈차와 비슷한 차입니다. 그 차를 부수어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시면 됩니다.
보이차는 기본으로 지푸라기 썩은 것과 같은 맛처럼 나오는 향을 '진향'이라고 하는 향이 나오지만 오랜 세월 동안 발효된 차를 '진년(陳年) 보이차'라고 부르며, 이 차를 우리면 특유의 그윽한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데, 그 향기는 운남성에서 생산된 대엽종에서만 나올 수 있는 특이한 향기로서 ‘장향(樟香)’이라고 부릅니다. 맛은 진하고 감칠맛이 나며 여러 번 우려내도 처음의 향기와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탕색은 등황색을 띠며 오래된 차일수록 밤색에 가까워집니다.
보이차의 생산지 운남 지역의 기후는 온화하고 강우량이 풍부하며 토양이 비옥합니다. 특히 토질의 상층부는 풍부한 유기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차 역시 풍부한 영양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특히 ‘폴리페놀’류의 성분이 많습니다.
최근에 보이차의 인기가 높아지자, 군소차창이 난립하면서 운남성 이외의 지역에서 보이차를 생산하기도 하고, 보이차와 유사한 제품이 나오기도 하는 등 시장이 어지러워졌습니다. 그래서 2002년 '중국보이차국제학술연토회'에서 보이차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3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보이차라고 인정하자는 것인데,
첫째는 운남성에서 생산된 원료로 만든 것,
둘째는 대엽종 잎으로 만든 것,
셋째는 쇄청모차(햇빛에 말린 차청)를 사용해서 만든 것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소엽종 찻잎으로 만든 것은 보이차로 포함되기 어려우며, 운남성 남쪽 태국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든 것도 보이차가 아닌 것이 됩니다.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지만 당장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보이차의 약리적 기능을 중시해서 인기가 있습니다. 보이차를 마시면 소화가 촉진되고 변비를 예방하는 등 배 속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보이차의 주산지는 서쌍판납(西雙版納), 난창(瀾滄), 사모(思茅) 등지에서 생산됩니다. 보이현은 운남성의 중요한 무역지이며 차 시장으로서, 각지에서 생산된 차를 보이현에서 모아 출하하였기 때문에 보이차라는 이름을 붙었습니다. 문헌에 보이현에서도 보이차가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지금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운남지역 이외에도 사천, 광동 지역에서도 소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보이차의 원료가 되는 찻잎은 이무산(易武山, 혹은 역무산)을 비롯한 육대차산에서 생산된 것을 최상품으로 치며, 다음으로는 맹해, 봉산, 사모, 강성 등지의 차원에서 생산된 것을 우등품으로 칩니다. 그래서 미안마, 태국 등지의 보이차엽을 수입해서 운남에서 가공 생산하는 제품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