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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포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1996년 2월 11일 김 원호 형제
<권리포기 강의를 부탁받고 주제 말씀에 대해 하나님께 물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
*갈 2:20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와 함께 나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내게도 주장할 권리가 없다. 즉 죽은 자는 자기 것을 주장할 어떤 권리도 없다. 크고 작은 모든 결정에 대해 모두 하나님의 의견을 듣는다. 죽은 자는 자기 스스로 포기할 권리 조차도 없는 것이다.
룻 4:1-10 (:7) 자기 권리를 포기한다고 하는 일의 확정을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신을 벗어 상대에게 주는 관습이 있다.
다른 예는
1. 출애굽기에 호렙산에 나타난 하나님
2.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군대장관이 한 말(수5:13-15)
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가까이에 갔겠는가. 전쟁에 한번도 임해보지 못한 백성과 함께 전쟁에 임해야할 지도자로서 그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먼저 그 성을 살피고,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 수1:1-9
:13의 여호수아의 질문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의 필요에 대한 것
군대장관의 대답은 (영역)나는 네 편도 적의 편도 아니다‘는 것
:14의 여호수아의 반응과 군대장관의 네 신을 벗어라.는 대답
수1:3 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전쟁에 나간 군대가 신을 벗을 수 없으므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권리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이 전쟁을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승리해야 겠다는 생각조차도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주여, 나는 당신의 종일 뿐이며, 당신이 하라는대로 행하기만 하겠습니다.
:15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 후에 하나님이 작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하신다.
2. 출3:1-5
히11:24-26 모세가 포기한 것.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과 애굽의 모든 보화를 다 포기한 모세. 이 모세에게 더 이상 하나님은 무엇을 포기하라고 하시는가.
출3:6-11 11절의 하나님께 대한 모세의 반응.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생 각 12절 (창25: )
14-22
4:1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3번째 거절 두번의 기적을 통해, 네 모습이 뱀같고, 문둥병 환자같더라도 나는 너를 사용하겠다.
:10 주여, -주의 종... . 주인 앞에서 아무 권리도 없는 자이나, 입으로는 그렇게 시인하면서 도, 실제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모세의 태도
:11, 12 다시 설득하시는 하나님.
:13 ‘주여’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자신의 입장과
:14-17 노를 발하시면서 다시 설득
:18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행한 것 처럼 보인다. (수5:15 에는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말씀) 여기에는 그런 고백이 나오지 않고, 그대로 장인에게 가서 ‘가게 해 달라’고 말함.
:19 여섯번째 까지 순종하지 않고 미디안에 가서 안주하고 있는 모세에게 다시 나타나, 애 굽의 상황에 대해 미리 고지해 줌.
일곱번째에야 하나님을 조상의 하나님으로 인식 순종.
민20:2-12 모세가 단 한번 신발을 신은 때
수9:10- 여호수아가 단 한 번 신발을 신은 때
수 1:1-2 모세가 죽은 후에야 하나님은 내 종 모세라고 말씀
수24:29 단 한번 신을 신은 후, 평생 죽을 때까지 신을 벗고 걸어간 그를 향해, 하나님은 여호 와, 나의 종이라고 죽은 다음에 불러 주심.
* 우리는 주라고 고백한 그 분에 대해, 엎드려 듣고 순종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이것이 신을 벗은 자의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종이면, 사람들 앞에서도 종인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삶은, 신발을 벗고 하나님 앞에서 걸어갔던 그 후의 삶이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의 삶은 신을 벗고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종의 삶을 사는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모세는 일곱번째 가서야, 자기를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다.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않고, 불빛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일곱번 들었다. 오직 일곱번째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야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우리는 몇 번째에야 신을 벗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겠는가. 모든 설교와 강의, DTS강의를 다 들었음에도 여전히 신을 벗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마 1:1 권리를 포기한 사람의 표본을 보여주시기 구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귀절.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포기한 것이 무엇인가
** 창 12:1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모든 안정감이 되었던 것들을 다 떠나라고 말씀하심.
히 11: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말함
수24:2 아브라함의 부친은 우상을 섬겼던 사람. 아브라함과 같이 떠났던 친척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던 사람. 이러한 주변 사람에도 불구하고 히11:8 에는 믿음으로 순종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첫번 부르심에서 모든 사회적인 안정감을 다 포기했다.
원호형제님의 성령세례 전의 모든 안정감과 가치는 직장, 지위 등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급과 보직을 약속하고 들어오라던 직장의 요구에 귀국하여 들어오니, 오히려 퇴직이 기다리고 있었고, 대신 발령받은 직장을 사직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생활
이전에 교회의 제도가 주는 잘못된 태도를 통한 안정감, 장로로서 받는 모든 섬김을 즐기며 그러한 것을 통해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자신을 보게되는 사건(예배당 건축을 위해 다른 곳에서 평신도들과 무릎을 맞대고 예배드리면서 경험했던 불편함, 예배드리지 못함) 이제 더 이상 모든 세상적 가치들은 안정감이 될 수 없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번 말씀했을때, 그는 순종하여 좇음. 자신의 모든 안정감이 되었던 것을 포기하고 좇은 그 사건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이 됨
창22:1-12 아브라함이 두번째 포기한 것.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정체성과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이삭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떠나는 아브라함. - 이미 신발을 벗은 사람은 다시 신을 것 이 없다. 즉, 하나님의 어떠한 요구도 다시 포기해야할 것이 아닌 것이다.
*사라의 반응 ;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떠났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왜
냐하면, 이제 가면 돌아오지 못할 아들이기 때문에. 사라의 반응에 대해 어떤 묘사도 없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주라고 고백한 사라에게도 역시 포기해야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갈대아를 떠날 때, 신을 벗은 사라에 대해 의심할 수 없다. 이 두 부부 는 함께 신을 벗고 하나님 앞에 걸어가는 자들이었다.
*이삭의 반응 ; 약15세 정도의 이삭이 반항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또한 쓴뿌리로 인해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반항했다는 어떤 기록도 없다. 그는 신을 벗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걸어가는 부모의 삶의 모습을 통해 그도 동일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음을 볼 수 있다. 신을 벗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이 이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 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원호형제의 모든 삶의 가치와 안정감은 돈에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모든 삶의 다루 심 가운데 재정에 대한 포기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포기의 댓가로 하나님은 더 크신 것을 주시겠다고 (창13:14) 약속하심의 설교(오 대원 목사)를 통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확인.
삼상19:9-15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때, 다윗이 취한 태도.
첫번째 복수할 기회;삼상24:2-7 다윗을 사무엘을 통하여 이미 왕으로 기름부으신 후 의 일.
두번째 복수할 기회;삼상26:7-12 :12b 하나님이 잠재우시고 다윗이 신을 완전히 벗었 는지를 확인
다윗은 두 번 다 복수의 권리를 포기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증명
삼하 1:23,24 두 번의 복수의 기회를 포기한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은 자의 고백 ; 자신을 죽이려고 그렇게 쫓아다니던 자의 죽음 앞에서 한 다윗의 고백
◎ 예수님의 포기
1. 세상 풍속을 따라가는 권리를 포기하셨다. 마26:48 제자들과 동일한 옷을 입은 어두움 속의 예수님을 지목하기 위해 배반의 가장 힘든 방법(입맞춤)을 택했다. 예수님은 세상 풍속을 따라 옷을 입지 않았다.
사53:1-3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는 배배 꼬인 기름기 없는, 그래서 전혀 고운 모양이 없는 흠모 할 어떤 것도 없는, 사람들이 싫어버린바 되었고, 보기 싫어 얼굴을 가리운바 된 것이 예수님의 외모였다.
마8:20 예수님의 집모양 세상 풍속을 따라 사셨더면, 예수님은 그럴듯한 집을 짓고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멋있는 삶을 사셨을 것이다.
막14:3 세상 풍속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교제의 대상) 마9:11 세리 죄인들과 함께 잡수신 예수님
세상풍속을 따르는 자라면 값진 의복을 입을 이유가 없다.
음식도 세상풍속을 따라서 먹을 이유가 없다.
가구도 세상풍속을 따라서 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세상풍속을 따라서 살지 않아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사랑과 감사를 받을 권리도 포기 하셨다.
막11:6-11 이것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는 광경이다.
마27:20-26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리다. 이것은 바로 위에서 찬송했던 자들이 한 말이다. “백성이 다 가로되” - 예수님을 따라서 다녔던 자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 의리를 지켰던 자가 없다. 그래도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이것은 사랑받을 권리를 포기한 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들을 사해 달라고 말했다. 권리를 포기한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김원호 장로님의 청년회 교회봉사 경험을 간증함.)
사랑받기를 원치 않고 감사받기를 원치 않는 간증이었다.
원호형제님은 아내로부터 사랑받는 권리도 포기한 삶을 살고 있다. - 아내를 향한 기준을
포기하고 산다. 아내가 어떻게 해도 그 권리를 포기한다면 섭섭하거나 화나는 것이 없고, 조금만 잘해 주어도 감사하다. 그렇다면 아내를 향한 불평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3, 예수님은 그분의 영광을 누릴 권리를 포기하셨다.
마15:29-31, 눅13:10-13, 마9:6-8 이 세구절을 공통점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했길래 고침받은 자들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가? - 영광을 취할 권리를 포기한 것을 철저히 나타내셨다. 예)마9:1-3, 12:14-16,
사역 가운데서 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할때에 생각하는 말씀 - 눅17:9-10
예수님은 이세상을 사시면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시는 것을 포기하셨다.
하나님의 것으로 영광을 취할려는 욕망을 회개하면 산다.
4. 예수님은 “예수님의 왕국” 세우는 권리를 포기하셨다.
요6:15 - 이때는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후이다.
예수님은 충분히 자기의 왕국을 세울수 있는 여건과 조건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 권리를 포기하 셨다. 또한 예수님은 또다른 자기 교단을 세우는 일을 포기하셨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따랐었 다. 그 숫자라면 새로운 교단을 세울 수 있었다. 인적 물적 자원이 충분했었다.
‘빌라도의 보고서의 서문’를 본다면 그럴수 있는 권리도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준다. - 정 략적으로 빌라도는 예수님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3/12
모든 것을 포기하셨던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가?
* 그물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따름. ;예수님께 불평, 불만할 권리 포기
요2:6-11 ※11절을 통해 제자들이 신발을 벗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임을 알 수 있다.
마27:34 예수님께서 세상을 퇴장하시는 장면 ; 예수님의 이러한 퇴장에 대해 아무런 불펑도 하지 않은 제자들을 통해 신발을 벗은 제자들의 태도를 볼 수 있다.
행1:3 * 예수님을 비판할 권리를 포기
마19:16-22 (마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 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의 이러한 (:21) 말씀으로 청년을 되돌아 가게 한 것에 대해 예수님을 비판하지 않았다.
막12:41-44
마23:25-36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이 가졌다는 권리를 포기할 수 있게 한다.
* 영적 지도자들로 부터 찬밥 취급을 받아도 불평하지 않는 권리
마17:1-9
막5:35-37 세 사람만 가까이 두시고 세 사람과만 비밀을 나누신 예수님에 대해 제자들은 전혀 반발하며 대적하지 않았다.
마16:16-19 다른 제자들은 동등하게 취급받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반발하지 않았다.
* 영적 지도자들로 부터 상처받을 권리를 포기했다.
마16:21-23 사단이라는 말을 들으므로 인해서 받았을 상처에 대해서도 전혀 반응이 없다.
요6:66-71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 이 말씀에 대해 베드로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요21:15-17 세번씩이나 사랑을 확인하는 예수님 앞에서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 베드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말씀을 하실 때에도 제자들은 상처받지 않았다.
마20:20-21 마27:56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 자리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도 있었던 것 을 보아 그녀는 예수님이 자신의 청을 거절한 것에 대해 상처받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아브라함, 여호수아, 다윗, 모세, 예수님, 제자들)이 어떻게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과 주를 따랐는지를 보았다. 그들이 권리를 포기하면 할 수록 그들은 하늘의 영광을 보고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권리포기를 통해 하늘의 비밀과 기사와 이적을 보여 주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우리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랐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진정 주님의 받으실 만한 것들이 될 수 있겠는가.
왜 우리는 신을 벗어야 하는가.
매년 정월 초하루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일년을 살게 하실 말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을 배웠다. 마22:37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이와같이 사랑하는 것인가. 내가 가진 자녀, 배우자, 재물,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 놓으므로 내가 가진 것이 없는 자. 그러나 오히려 그 모든 것에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것은 포기하므로 없어지거나, 뺏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으로 취하신 후, 아버지의 자녀로 우리가 아버지의 가지신 모든 것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나의 것은 다 네 것이다. ”
1. 최근에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나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2. 내가 하나님 앞에서 포기해야 할 권리는? 자신이 가진 권리.
3.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든 권리들을 포기하는, 결단하는 기도를 하라.
4.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약속을 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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