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2월19일
제비 추쿠바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날 제2독서는 일본인 신자들의 미사 시간이지만
(한국인들도 같이 참여하므로) 한국어로 낭독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츄쿠바 성당은 매주 주일 오전 10시부터는 영어로 진행하는 미사를 하고,
그 다음 11시부터는 일본어 미사를 합니다.
신자수가 가장 많은 주 미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 150여명과 한국인 20여명이 같이 미사드립니다.
일본인들과 힌국인들은
구별이 잘 안되어 섞여 앉아도 표가 안납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다른 외국인들과 섞여 있으면
대번에 표가 납니다.
영어 미사는 주로 일본에 외국인노동자로
많이 와 있는 필리핀인들과
구미에서 연구원으로 온 백인들을 위한 미사 시간이고,
일본어 미사는 주로 원주민인
일본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을 위한 미사입니다.
신부님은 영어, 일본어 미사 모두 집전하시는데
아무래도 일본어 발음이---.
그날 미사드릴려 가서 한국인 신자들끼리
제2독서를 누가 하느냐 문제로 의논이 있었는데,
제비처 카타리나가 우리말로 된 매일미사책을 가지고 제2독서를
낭독하기로 결정된 것입니다. 제비 상당히 떨렸습니다.
제비처 카타리나가 떨려야 할 것을 제비가 대신 떨고 있었습니다.
우리 말을 못할 것이 뻔한 마이클 신부님이
미사 후에 카타리나보고 일본말로 "잘 했다;
스바라시 데스"하는 것입니다. 신부님들은 본래
칭찬을 누워서 떡먹기로 잘 하신다고 들은 바 있지만,
이건 좀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한국말을 못하는 그 신부님이
어떻게 잘 했는지 못 했는지
아실 수 있습니까.
그 미사를 드린 며칠 후에
제비처와 함께 인근 나리타 공항 근처에
제비처와 친하게 되었던 젊은 부인들과
맛있는 스시(초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사진의 왼쪽 분은 친정이 영덕인 이혜경씨로
일본사람에게 시집을 와서 이웃에 사는
일본인 할머니한테서 카톨릭을 전도받고
그 분을 대모로해서 성당에 나오시는 분으로
성격이 제비처 만큼이나 좋은 분입니다.
츄쿠바 시민회관에서 요즘도
한국어와 김치 담그기 등을 가르치시며
성당 바자회에서도 가장 큰 일을 척척척 해내시는 분입니다.
우리 집에 지금도 수시로 전화를 많이 합니다.
그녀가 보낸 일본 부인들을 제비처 카타리나가 안동 버스 터미널에서
인계받아 하회마을 북촌댁(그 집에 배용준씨가 자고 간 방이 있어
일본 중년부인들이 꼭 그집에서 잔다고 합니다)에
차 태워보내주기도 합니다.
오른쪽 안경끼신 분은 삼성연구소에 다니는 분의 부인으로
천주교 신자분은 아니지만 아내의 소개로 이혜경을 알게되어
서로 언니동생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이사 짐들도
모두 그 부인이 자기들 포장이사짐으로 실어주어
그기서 보던 TV, 자전거까지 다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