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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꾸라지고 넘어지고 자빠져도 가야 할 길
그게 길이며 사람이다
가는길에 꽉 채운건 비워내고
비운 건 다시 채운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파도 중 하나의 파도를 또 넘는다.
만항재에서 우여곡절 끝에 정선군 고한읍으로 택시로 되돌아 나가 여관에서 몇시간 자고 이른 새벽에 다시 만항으로 올라와 새벽길을 열어간다.
달빛은 밝고 총총한 별들은 제 각각이지만 서로가 빛을 내지 못하니 누군가의 도움으로 빛을 내며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만항에서 걸음을 걸은지 몇 시간이 지나 주위로 어둠이 물러났지만 아직도 새벽녘이다. 영월군 상동면 구례리 마을의 열려각을
지나며 지난번 대간 둘레길에 보이던 그 많던 태양열 판은 어디로 갔는지 모두 철거되어 있고, 무속인 마을을 접어드니 집집마
다 키우던 개들이 낯선 이의 발자국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야단이다.
백두대간 구룡산에서 발원해 우리나라 전투기 사격장이 있는 곳을 지나는 맑은 옥동천과 우람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장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 영월 옥동천 따라 철종 때 이름은 남긴 유명한 시인 한분이 계셨던 곳이다.
김삿갓(김병연)은 조부(김익순: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 가산 군수인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칼에 맞아 죽었으나,
선천 부사 김익순은 농민군에 항복해 농민군으로부터 직함을 받았고, 이후에 김익순은 모반 대역죄로 참형을 당하였고
가산군수였던 정시는 만고의 충신이 된다)를 조롱하는 시로 장원 급제한 인물이죠
조부를 조롱하는 글을 써서 장원한 후 이사실을 어머니께 들은 김병연은 부끄러움에 하늘을 볼 수 없다며 삿갓 쓰고 세상을
다닌다.
김삿갓은 전국을 떠돌다 쉰일곱에 전라도 땅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의 아들이 시신을 거두어 고향땅 영월군 김삿갓면 마대산
아래 와석리에 묻는다
정선군 상동면에 들어와 지난번에 아침식사를 해 주시던 그 식당에 불이 켜져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를 알아보시고는 아직 밥이 준비가 안되었다며 사랑 듬뿍 라면을 끓여 주셨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일어선다.
조선 팔도를 거지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녀서 일까 한번 간 곳에 다시 가면 어지간하면 알아보신다.
상동면을 지나며
금방이라도 불탈 것 같은 석화성(石火城)의 장산 줄기가 고개를 내밀고
상동면 덕구리 마을에 들어오니
배짱이 덕구님과 함께 사시는 개미 부인께서 밭 일을 하고 계시다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니
"오늘 올 줄 알고 밥을 해 놨는데 집에 가서 아침밥 드시고 가라"고 하신다
"아뇨! 조금 전에 라면 먹어서 그냥 커피나 한잔 주시면..."
상동에 살고 계시는 배짱이 덕구님
동해안으로 길 떠날 준비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일주일간 동해안은 잘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일은 개미 부인께서만 하고 덕구님은 일은 안 하시는 전형적인 배짱이 같으신 분이죠
대간 둘레길하며 인연이 되어 가끔 연락을 하며 안부를 여쭈는데 늘 웃으시며 잘 지낸다고 하신다.
삼동재로 오르기 전에 아침에 상동면 어느 슈퍼에서 사 온 팥빙수를 바나나 우유와
고루고루 비벼서 입에 털어놓고
아이고 삭신이야 어깨는 빠질듯 아프고
잠은 오고
다리는 또 얼마나 아픈지
오늘 해질녁까지 의상께서 창건하신 부석사에 당도해야 할텐데 ...가보자
상동재로 올라가는 길
너무나도 아름답고 싱그런 풍경이 이어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길에 골골마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앞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곳은 강원도 영월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 땅을 가르는 곳이니 임도길만 내려서면 영월 김삿갓면이고
몇 발짝 더 가면 경상도 땅에 들어간다.
길고 지루하던 강원도 구간이 끝나지만 경상도 땅은 얼마나 더울지 미리 걱정 아닌 걱정부터 해보고
(361km 지점)
영월군 김삿갓면으로 들어와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 그리고 싱그런 자연이 일품인 땅이다.
이런 곳에 땅이라도 조금 사놓고 싶지만 대구에서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마음으로 하늘 끝 닿는 곳까지
내 것으로 눈도장 찍어 놓고
영월과 경북 춘양을 잇는 도로 따라 오르면 우구치 휴게소가 나온다.
경상도 땅에 들어오니 벌써 기온이 다르다 32도란다.
멀리서 반가운 분들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루트를 알고 계시기에 멀리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셨고, 미리 이곳 우구치 휴게소에서 닭 한 마리 잡아 놓고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휴게소에 들어가니 뽀얀 속살에 빨간 고춧가루 옷을 입은 닭이 발가벗고 누웠는데 이리저리 저어가며 가며 맛있는 부위를 골라
먹기 좋게 한 접시 담아낸다.
두 분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하고 콜리님은 오전 약수터로 가시고 동강 누님과 함께 구룡의 그늘인 도래기재로 오른다.
최고의 절집이라는 영주 부석사로 가야 하기에 도래기재에서 백두대간 옥돌봉으로 오르며
적멸보궁 성지길을 만들기에 도래기재에서 박달령으로 가는 임도길을 따라야 하지만 2-3시간을 돌아가야 봉화군 물야면
오전약수로 가기에 백두대간 옥돌봉으로 오르기로 한다.
수백 년 된 철쭉나무를 만나고
허리가 휠 것 같은 무게에 두 다리는 터질 듯 아프고
반가운 벗들이 멀리서 또 찾아오신다고 하니
잠시 쉬는 시간도 아까워 봉화 물야면과 춘양면을 이어주는 주실령으로 내려간다.
대간길은 서쪽으로 가고 우리는 문수지맥 주실령으로 내려가며
우측으로 문수산이 보이고 그 아래는 백두대간 수목원이 있으니 야간에 이곳에 서면 수목원의 호랑이 울음소리도 들린다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운곡천이며 낙동강으로 흐르는 물 길이다.
그리고 송이의 고장이라는 춘양 땅은 한겨울에는 거의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듯 추운 곳이나 지금은 그저 덥기만 할 뿐이고
문수지맥길 주실령에 도착해서 봉화군 물야면 오전 약수로 내려오니 종환님과 깽이님이 찾아와 주셨다.
두 분은 약수터 인근 슈퍼에서 뽀글이 라면을 드시고 계셨는데 "한입 하라"는 말씀도 안 하시고 게눈 감추듯 드신다.
내성천의 발원지로는 백두대간 옥돌봉 서쪽과 산달산 아래 늦은목이 샘터와 두 곳이 있지만
옥돌봉 서쪽 계곡이 200미터가량 더 길다.
종환님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하러 민박 집으로 가시고 콜리님은 부석사로
우리는 지난날에 걷던 대간 둘레길인 소백산 자락길로
도로 따라가면 두 시간 거리지만 소백산 자락길인 사과 밭으로 가면 시간이 많이 단축된다.
해넘이는 시작되고 깽이님과 동강 누님이 앞에서 진행하시고
7시에 부석사 도착하니 마침 저녁 예불 시간이라 범종 소리가 들린다.
주위 풍경으로는 조선 최고의 절집이라는 문경 희양산 아래 봉암사가 있지만
이곳 봉황산 부석사 역시 주위 풍경으로는 봉암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봉암사는 병풍같은 희양산과 구왕봉을 등지고 있으나
부석사는 안양루에서 산 아래로 펼쳐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나무 본연의 속살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석사 무량수전
인자하신 부처님께 골짝 대장님의 빠른 완쾌를 바라며 3배 하고 나와
안량루가 유명한 건 어찌 보면 김삿갓 어른의 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삿갓 어른께서 영월군 김삿갓면 어둔리 생가를 오고 가며 선달산 서쪽에서 발원하는 마포천 따라 백두대간의 마구령을
넘어 부석사 찾으니 그곳이 바로 당대 최고의 건물이라 평가받는 부석사와 무량수전 앞 안양루다.
그의 글은 조선시대 사회상부터, 자연, 사람, 동물 다루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으며
글자를 붙이고 뒤집고 쪼개며 형식을 바꿔 새로 만들어 가며, 붓 가는 대로 손가는 대로 시를 써내려 갔다
안양루의 김병연 시를 보면
"평생 여가 없이 이름난 곳 못 왔었네
백발이 다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처럼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과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나이가 40 넘어 남도로 향할 무렵이라 벌써 "라는 표현을 한 듯
부석사를 나오니 해는 저물고 콜리님께서 준비해주신 펜션에 들어가 동강 누님이 차려주신 밥 먹고
윗방에 놀러 온 가족? 인지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에 집이 꺼질듯하여 종환님께서 마당에 쳐놓은 텐트에서 잠을 청하기로 한다.
침낭에 들어가자 말자 골아떨어짐
오늘은 해 질 녘까지 예천군 용문면까지 가면 되기에
조금 늦은 05시 무렵에 나와 선비촌의 소수서원에 들러본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 소수서원은 문이 닫혀있다.
소수서원은 통일신라 시대 때 숙수사가 있었던 자리였으나 조선시대는 불교를 탄압하던 시기라 숙수사를 싹 밀어 버리고
서원을 지은 곳이다.
서원은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순흥 출신의 고려시대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사묘를 지었고
다음 해에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 그리고 자연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순흥지역의 고분군을 찾아가며 탐구하는 두 분 깽이님과 동강 누님
아름다운 모래강 내성천을 이루는 서천에서
함께 해 주셨던 종환님, 깽이님, 동강님 콜리님과 풍기역 앞에서 자장면 한 그릇으로 소중한 추억을 남겨 주셨고
세분은 대전으로 올라가시는데 지친 저의 뒷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골목으로 얼른 사라진다.
잠시지만 찾아와 주신 지맥 아우님과 미주님 반가웠습니다.
강원도에서 경북으로 넘어오니 날씨는 연일 32도라고 한다
풍기에서 예천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고항치 오르는 길,
아스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대단하지만, 더워도 가야 하니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뿐인 윤장대가 모셔져 있는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로 가는 길
한천 발원지
백두대간 묘적령 남쪽이다
경북 예천군에는 용이 산다는 토끼와 거북이의 용궁면이 있고
용이 들고 나는 용문면이 있다.
용궁면의 용왕 아들들은 모두 구룡(九龍)인데
용궁면에 사는 회룡(회룡포), 풍양면에 구룡리. 와룡리. 아룡
이웃동네인 문경시와 용궁면 사이에 오룡리, 영순면의 비룡리가 있다.
모두가 용궁면을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잠시 더위를 먹었나 백두대간 둘레길인 효자면 백석리로 올라와서 첫 번째 성황당
두 번째 성황당은 200년 되었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이길로 가도 되지만 야간에 용문산을 넘어야 할 것 같다, 설령 용문산을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 시간이면
용문사의 산문(山門)도 닫힐 것 같아 다시 왔던 길로 빠꾸
그늘도 없고
무겁고 힘들어서 그런가 입술은 터지고
길을 걷다가 나는 자연인이다 341회에 출연하셨던 장병건님을 만나서
차량 이동이 뜸한 도로가에 마주 보며 앉으니 자연인께서 차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오신다
저는 오늘 아침에 동강 누님이 챙겨준 파전을 꺼내 놓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멀리서 맥가이버님 부부께서 오신다
자연인께서 꼭 밥 한 끼 해주시고 싶다며 백두대간 솔봉 아래에 집으로 가자고 하시는데
갈 길이 멀어 사양하니 저녁에 다시 용문면으로 찾아오신다고 하셔서 약속하고
맥가이버님 부부께서 먼길 찾아와 주셨고
사모님은 운전하시고 맥가이버님과 함께 걸으며
수년 전부터 하천길을 걸으며 바닥에 버려진 반쯤 들어있는 물병을 많이 보는데
뚜껑을 열고 물병 속의 물을 다시 자연으로 보내준다.
맥가이버님도 앞으로는 이렇게 물을 자연으로 다시 보내주신다고 하셨으니
깽이님과 맥님 이렇게 물사랑을 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이제 용(龍)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예천군 용문면 십승지 마을이죠
해는 넘어가고 갈길 잃은 빛의 여운만 길게 남아있다.
용문면은 대부분 전통 마을답게 한옥이 가득하고
맥가이버님과 한달음에 찾아오신 자연인님과 함께 늦은 식사를 하고
두 분은 집으로 가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등어와 쌀을 가지고 오셔서 밥해서 같이 먹자고 하셨는데
제가 산 아래서는 불을 피우지 않기에 자연인님 포터 뒤에 자리 깔고 같이 누워 봅니다.
밤하늘에는 북극성과 칠성 그리고 카시오의 자리가 점차 움직일 무렵 무논의 개구리는 짝을 찾느라 구슬피 울고 있다
마치 천군만마가 벌판을 달리는듯한 개구리 소리를 벗 삼아 잠이 들었는데 자연인께서는 저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용문사까지 왕복 14km를 준비한다.
용문사
조선시대 때 이곳까지 소백사 자락이었나 봅니다.
닫힘도 열림도 없는 일주문 그 산의 내력을 말없이 전해주죠
오래된 일주문 아래 또 다른 일주문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다음에 찾아가면 웅장한 일주문을 만날 것 같다.
사방을 지키고 사찰을 지키는 사천왕의 부릅뜬 눈은 언제나 위축되게 만들지만 합장하고 천왕문을 소리 없이 지나서며
산문은 열렸는데 법당은 자물쇠로 잠겨있어 계단 모퉁이 아래 쪼그려 앉아 40분 정도 기다립니다.
보광명전
신라 870년 경문왕때 무운 대사께서 창건한 절이며 후삼국 때 왕건이 이 절이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했고 임진란 때 승병의 지휘소가 있던 곳이라 호국불교로써 중요한 자리였던 용문사이다.
1984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지은 건물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셨다.
5시 무렵에 노(老) 스님에 의해서 산문이 열리고 비로자나불에 3배하고 나와 우리나라 국보 328 대장전과 윤장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대장전에는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이 있고 그 옆으로 높이 4,2m의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를 돌아보고
용문사의 산신각에 들러 이곳까지 무사히 내려올 수 있게 해 주신 산신님께 합장하고 나와
자연인께서 기다리시는 용문면으로 향한다.
초간정
금곡천이 흐르는 곳에 자리 잡은 초간정은 조선 명종 때 권문해가 심신을 수양하고자 만든 곳
단아한 여인처럼 저곳에 앉으면 심신수양은 그냥 될듯하지만
벗들과 함께 막걸리 한잔 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등어에 쌀밥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제가 가스버너를 가지고 다니는 줄 아셨다고 하시며 훗날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
소중한 인연이라 전화를 자주 드리며 인연을 이어 갑니다.
자연인님 감사했습니다.
이제 경북 의성군 다인면 비봉산 아래 노무현 대통령께서 검사 공부를 하시던 천년 사찰 대곡사로 이어간다.
논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당산나무와 거석이 보이고
마을의 안녕과 무사를 알리기 위해서 만든 서낭당 같은 것이죠
예천 비행장 옆길로 이어와
도로 갓길 어느 편의점에 들러 칼국수 진짜 맛없네
그냥 버립니다.
덥고 덥고
더워서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고
아름다운 내성천에 들어와 이제 회룡포로 가서 아침 겸 점심 겸 찾아 먹을 시간이다.
몇 해 전에 센드런을 추진하던 내성천의 아름다움은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지지는 곳은 없지만
맑은 물과 뽀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 마을에 들어오니 1만평 넘을듯한 밭에 온통 꽃들이 피어있다.
꽃구경 좋지만도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 13주기 날이라 회룡포에서 밥 한술 뜨고 해지기 전에 대곡사로 가야 한다.
회룡포 마을 안 식당에 들어가 고기 2인분 시키니
주인장께서 맞은편에도 밥 한 공기 더 가져다 놓으신다.
삼겹인듯한데 굵은 소금에 살짝 찍어 맛보니 어허!~ 맛이 예사롭지 않다.
간밤에 습기로 젖은 침낭을 꺼내 햇볕 잘 드는 곳에 널어놓고 양말도 툭툭 털어 햇볕에 말리고
고기는 다 못 먹으니 반쯤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지고 간다.
회룡포 앞 내성천을 건너며
회룡포 인근 안내도
지나온 회룡포 마을
달봉산과 삼강 주막이 있는 곳
낙동강 물이 유유히 흐르고 삼강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잔하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늘 없는길을 왕복하기에는 너무 덥다.
삼강 주막에서 달달한 막걸리 한잔하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4대강을 포크로 싹 밀었지만 이곳 삼강 주막 인근은 포크의 삽날을 피한 곳이라 꾸미지 않은 낙동강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멀리 가야 할 비봉산이 우뚝하고
지나온 낙동강과 우측으로 지맥길의 나부산이 보이고
낙동강 자전거길 땡볕은 유명하다
머리 위에 양은 냄비 올리고 1시간만 걸으면 라면을 끓여도 될듯한 날씨
그늘도 없고 얼마나 더운지 삶는 것 같다
예천군과 고향 의성 땅
비봉산 대곡사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 말사의 절이며
고려 이전에는 태행산으로 불렀고 조선시대 때는 자미산으로 불렀다가 지금은 비봉산으로 불리는 곳
공민왕 때 인도의 지공 대사가 창건하여 원나라와 고려를 오고 가며 불법을 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곡사라 하였다.
비봉산 대곡사 일주문
두 아름 크기의 기둥이 주는 위압감을 느끼며 몇 발짝 걸어가면 길 양옆에 잡인은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며 서있는 도깨비
석장승을 만나는데 뫼부리코 그리고 덧니까지 만들어 무서움을 더하지만 유심히 보면 귀엽기만 하다.
해 질 무렵이라 절을 찾는 이 하나 없고 범종 소리도 염불 소리도 그쳤다
대곡사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여래 삼존불이 모셔져 있어 조용히 삼배하고 밖으로 나오니
절을 관리하시는 총무님께서 차 한잔하고 가라며 들어오라고 하신다.
강원도부터 양산 통도사까지 5대 8대 적멸 보궁 길에 들렀다고 하니 이곳 대곡사까지 넣어서 성지 순례길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다음에 오시면 스님과 함께 차 한잔 하자고 하신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면 인사를 드리고
범종 누각인데
지금은 누각 아래로 다니지만 예전에는 1층에 방을 만들어져 있어서
저곳에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공부를 하셨다는군요
오늘 노무현 대통령 13주기를 맞아 그리운 대통령 노무현 전임 대통령님을 생각해본다.
봉황의 자리에 세워진 대곡사를 떠나는 길에
예전에 방이 있었다는 범종 누각 아래 기둥 하나를 만져보며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을 한번 더 생각해보고 다음 갈길로 이어간다.
길을 걷는 도중에 이곳 다인에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분께서 잠시 차를 세우시더니 오늘 저녁 잠자리를 제공해 주시겠다며
친절을 베풀어 주신다.
말씀은 고맙지만 다인에 지인분이 계신데 지금 이리로 오고 계시다 말씀드리고
길을 걸으며 참으로 많은 분들이 친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이겠죠
인연을 함부로 만들지 말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며
걸으며 만나는 인연은 분명 소중한데... 제가 생각하는 인연과는 "사뭇 다른 인연이 있는가 보다"며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다인에 살고 계시는 산사랑님과 남편이신 개인택시 기사님
두 분과의 인연은 이곳 의성을 지나는 지맥 할 때부터 오래되었구요
맛있는 고깃집에서 술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집니다.
새벽에 산사랑님의 사랑하는 남편분의 도움으로 전날 저녁때 마친 그곳에 와서 다시 이어 갑니다.(507km 지점)
두 분의 친절 잊지 않겠구요 보내주신 후원금은 소고기 값으로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다인에서 냉산 아래 도리사까지 가야 하는데 얼마나 더울지
문암산 방향으로 해는 뜨고
다인 들판으로 모내기는 거의 끝나갑니다.
위천으로 가는 길에 본 거북바위
멀리 상주의 갑장산이 보이고
군위군 삼국유사면에서 흘러온 위천은 말없이 흐르지만 물빛은 지난날 보던 것보다 더 흐리고 더럽게만 보인다.
저물이 맑아지길 기다린다면 아마도 피라미가 베스를 한입에 삼킬 무렵이 아니겠나 생각이 든다.
좌측에 비봉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문암산이 고개를 내미는군요
맑은 것 같지만 물속 풍경은 말 그대로 아주 더럽고
비봉과 문암이 잘 가라며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의성군 구천면 조성지를 지나며
군위군 소보면 보현리 마을에서
바람이 잘 불어오는 정자에는 마을의 남자분들이 쉬고 있고 물 몇 병 보충할 겸 마을 회관에 들어가니 할머니분들이 앉아 계신다.
"할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수돗물 몇 병 받아가도 되나요? 하니 정수기의 시원한 물을 두병 담아 주신다.
물도 보충하고 다시 정자에 와서 마루 끝자락에 걸터앉아 병든 닭처럼 졸고 있으니 마을에 사시는 또 다른 한분이 점심밥을
가지고 와서 마루 바닥에 상을 차리신다
보따리 준비해서 일어서 가려니 밥이나 한술 같이 뜨고 가라며 올라앉으라며 자리를 권한다.
그러고 보니 아직 쌀 구경을 못한지라 배는 고프고 "염체 불고 하고 그럴까요!" 하며 마루에 올라가 밥 한 공기와 소고깃국을
게눈 감추듯 먹고 감사한 마음에 허리를 굽혀 배꼽 인사를 드린다
멀리 보현 지맥 길이 길게 이어지고 청화산 옆으로 난 임도길 따라 한참 올라오니 날씨는 무지막지 더우나
간간이 바람이 불어오고 조망이 아주 좋다.
비가 오지 않으니 계곡으로는 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그늘지고 바람 드는 임도길 갓길에 돗자리 깔고 잠시 참을 청하니
작은 개미들이 오늘날 잡았다며 온 몸 구석구석 기어 다니니 잠자지 말고 빨리 일어나 가란듯하여 돗자리 정리하고
임도길과 가야 할 태조산 (냉산)
땅재에 도착해서
군위군에서 만들어 놓은 등산로 따라 오른다.
지난날 다녔던 길이건만 오르고 또 오르니 어디가 어딘지
그저 숲 속이라는 생각만 하고 잠시 오르면 능선에 다다른다
마루금으로 올라오니 누군가 조금 전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 깨끗한 등산로가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도대체 누가 산에 올라와서 빗자루로 쓸고 간 걸까
냉산에 올라와본 분들은 알겠지만 빗자루로 쓸고 말고 할 것 없는 산길인데..
너무나 고마운 분이 지나간 것 같아 아무도 없는 산길에 "고맙습니다" 소리를 질러본다
덥다
뜨거운 도로와 임도길에 비하면 산은 그저 시원하고 쉬운 길인데
도로나 임도길은 어떻게 걸어도 적응이 안 되니
도리사 석가모니 사리탑
1976년 6월 아도화상의 석상이 발견되어 77년 4월에 세존 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석가모니 진신사리 1 과가 발견되었다
다른 5대와 3대 적멸보궁은 대부분 자장 율사께서 당나라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서 신라 최초의 사찰(546km 지점)
아도화상이 겨울인데도 복숭아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걸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칭했다고 한다.
멀리 금오산과 영암산 자락이 보이는 걸 보니 오늘 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간다면 왜관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도리사에서 부처님께 지금은 고인이 되신 클럽의 산악인 네 분(편한 세상님 자경산인님, 대왕암님, 소욕지족님)을 위해 108배를
드리고 나오니 비슬산 아래 현풍에서 오셨다는 아가씨 두 분이 계단에 앉아 계신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몇 마디 주고 받는데 파란 치마를 입은 아가씨께서 꼭 커피 한잔 사드리고 싶다고 하신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서" 라며 인사를 드리니
가는 길에 꼭 커피 한잔 사서 드시라며 만원짜리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 주신다.
감사하게 잘 사 먹겠다고 하고 30분 정도 내려왔는데
검은색 디스커버리 차량이 한대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앞에 서더니 창문이 열린다
누군가 싶어 보니 조금 전에 도리사에서 만났던 아가씨들이다.
"먼길 가시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하며 휴대폰 보조 배터리 새것으로 하나 주신다.
저기 앞에 검은색 차량이 아가씨들 차량인 듯하네요
고맙다며 인사를 드리고 흰 옷에 아가씨들 친필 사인 하나씩 받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한다.
길이란 이렇듯 새로운 인연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낙동강 자전거 길로 들어와
그늘도 없고 덥기는 무진장 덥다
구미에 살고 계시는 미소 대장님께서 자전거 타고 나와 주셨고
저녁 8시까지 걸어서 구미 산호대교까지 진행
미소대장님 차 타고 왜관으로 나가서 밥 먹고 9시 무렵에 모텔에서 자는데
옆방에서 뭔 놈의 지랄을 하는지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 택시로 구미 산호대교로 와서 조금 걷다가 남구미 대교 아래
나무 의자에 침낭 꺼내 모자라는 잠을 청한다.
첫댓글 와...그냥..
삶과 생 그리고 무언가 모를 고요함이 전해 집니다...
혹자는 시간이 많아 그리
이곳저곳 다니누? 라며 말할지 몰라도..
진정 멋이 느껴지고
글에서 음악이 들려 옵니다..
진정 부러운 걸음이고
넘어서지 못할 발자취 이십니다..
그 멋진 걸음에 동화되어
모두가 그 걸음을 바라보며 걷는가 봅니다.
골짝대장님의 무사 귀환은 저역시 강하게 원하고 갈망 합니다.
부디 방장님과 모든 이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 합니다.
무탈한 걸음의 가르침
계속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하는일이 그렇다 보니
한겨울 아주 추운날 그리고 한여름 장마철에 주로 먼 길을 떠나는데
주위 사람들은 말합니다 배방장이 가면 꼭 비가 온다고... 그렇습니다 늘 비가 오거나 엄청 춥습니다.
그런 궃은날만 골라서 길을 떠나니 춥고 비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길은 클럽의 아픈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서 떠나다 보니
다행이 날씨가 아주 좋아서 뜻밖의 길이 되었구요
장문의 글 감사드리며 늘 행복한 길 열어 가겠으니 지켜봐 주시면 더욱더 고맙겠습니다.
아참!~ 골짝 대장님은 많이 좋아 지셨다고 어제 연락이 왔었답니다..
@배병만
머릿말로 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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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꾸라지고 넘어지고 자빠져도 가야 할 길
그게 길이며 사람이다
가는길에 꽉 채운건 비워내고
비운 건 다시 채운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파도 중 하나의 파도를 넘는다.
---중략---
이 글이 너무 좋습니다!!
많은 생각과
더 해야할 걸음에 대해
알려 주시는 듯 합니다.!
무탈한 걸음 이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
골짝대장님 소식은 정말 반갑습니다 😁
@시노기 골짝 대장님은 몇 달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짠하고
우리들 곁에 나타날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구요
시노기님도 건강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강산 마음것 누리시기 바랍니다.
인복이 많으십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쌍해 보여서 그렇나 다들 너나 할것없이 식사대접한다고하고..ㅎㅎㅎ
항상 새로운길 도전과 열정으로...
이제 조금은 쉬엄쉬엄하시죠...
인복은 과히 천하 무적이죠
지나는길에 부처님의 많은 도움이 있었구요
그래서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올수 있었습니다.
아우님도 쉬엄 쉬엄 하시고
방장님의 후기 사진 하나하나 글 하나하나는
후기로 만나는 이 순간 아름답기 그지 없지만
그 아름다움을 꽃피우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고통 노력이 얼마나 뿌리를 뻗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어지지 않습니다.
길가의 닫힌 물병 속의 물 하나도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그 손길이며...
방장님 곁에서 참 많이 배우며 삽니다.
그게 행동으로 많이 나타나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네요. 이타적인 그 마음이며...
적멸보궁 이번 후기에서도 심장이 묵직해집니다.
고생 많으셨구요.
늘 모든 걸음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는 방장님의 말씀
이번 후기 속에서도 실감해보며 세상 참 따뜻하다~ 행복하다~ 여겨봅니다.
늘 건강 잘 챙기시구요. 방장님.
늘 물을 닮고자 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처럼 쉬운가요? 그렇죠
잡에만 오면 구정물도 못되니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물 사랑 꼭 실천해 주시고
좋은날 한번 봅시다.
읽어내려갈땐 생각이 많이 들더니
막상 적을려니 ....
항상 건강한 걸음 이어 가시길요
힘듦이 힘듦을 넘어서는~~
슬픔이 슬픔을 구하듯이요~~
글은 길지만 별로 볼게 없죠
적멸보궁길에 많은 분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게 사람사는 풍경이죠
수많은 책이나 경전 그리고 불경을 읽어도 그 끝은 결국은 사람이니 사람이 곧 진리 인가 보더군요
글 감사합니다.
지리,역사,인문 두루 공부하고 갑니다
소중한 인연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날 하천을 걷고 산을 걸으며 얻은것들이 이렇게 도움이 되더군요
성지순례길에 많은것들 보고 배우고 지났지만
다른것도 궁금해 또다른 길을 준비중입니다.
성하의 계절에 늘 시원하게 보내시기 바라며
글 감사합니다.
항상 장거리를 새로운길을 개척하면서 선구자격으로
전국 방방곡곡 구비구비 산골까지
많은 인연과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네요
항상 덕을 얻고 다니것 같지만 덕을 쌓고 다니시는 방장님
먼길 수고하셨습니다
잠시지만 해질녘까지 같이 걸어서 너무 좋았었습니다.
낙동강과 금오산이 보이는 낙동강길 그리고
해는 넘어가고 구미시의 화려한 불빛도 참 좋았구요
길을 걸으며 늘 소중한 분들을 만나는데
그중에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오래 만난 대장님 같으신 분들도 있죠
인연의 소중함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참 편안한 답사기 한편 읽고갑니다 멋진 말이 생각이 안나네요 머리가 마음을 못 따르니 어이 하것소.....
저짜서 와서 이짜로 가는 시간 동안 지부장님과 통화를 많이 한듯합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전화를 받아 주셔서 감사드리며
이번주에는 또 어디로 가실지 궁금하네요
지금 막 빗소리에 잠에서 깨면서 문득 글귀 하나를 얻었습니다.
주유천하지상존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시는 분이)
무애응물유인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물을 대하되 오직 중요로운 건 사람이라.)
아마 방장님에게 맞는 말이 아닌가 싶어 급히 여기다 적어둡니다.
저도 새벽녘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는 그치고 어둠만 있더군요
수 많은 파도중 하나를 넘었으니 또 다른 파도를 넘어볼까 준비를 해봅니다.
오늘도 좋은날 되시고 후학들 웃음으로 잘 지도 하시기 바랍니다.
@배병만
周遊天下地上尊
無㝵應物唯人耳
방장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새 계획이 너무 으마으마한 것만 아니면 좋겠어요.
험한 산길과 달리 만나는 인연이 많으니 김삿갓 느낌도 나고...
세속을 벋어난 느낌도 살짝드니 수행자 같기도하고...
글을 읽으며 여러 생각과 느낌이 교차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성지 순례길은 저 개인의 걸음보다 클럽의 아픈 분들과 지금은 운명을 달리한
편한세상님,자경산인님 대왕암님 소욕지족님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참 멀고도 먼 걸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감사합니다.
인연이란 참 소중하지요.
그 인연들과의 만남 참 보기 좋습니다.
정겹고 친근한 도리사 모습 잘봤구요.
그 아가씨들 참 착하네요 ㅎㅎ
걸음하면서 많은 분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인연의 시작은 언제나 첫걸음부터 시작되네요
아가씨들 착하죠
길 위에서의 만남 그 인연 또한
소중한 만남이지 싶습니다
산길에서 느끼는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느껴집니다
성지순례길 만남과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고 다니셨네요
장거리 걸음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