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의 讚美 윤심덕 1926 (김우진 작사/이바노비치 작곡)
사의찬미 / 부활의깃붐윤심덕
사의찬미 / 부활의깃붐 앨범 앞면, 신나라레코드 소장 초기 대중가요사 속 번안곡의 수용1907년 우리나라에 첫 상업 음반이 나온 후 대중가요 음반 발매 전까지, 초기 대중가요는 대개 일본·서양 번안곡이었다. <사의 찬미>도 이바노비치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 일부에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다. 윤심덕 혹은 김우진 작사로 추정되나 가사지에 이름이 없어 단정은 어렵다. <도나우 강의 잔물결>은 1880년경 작곡된 이래 각국에서 음반으로 발매됐다. 일본에서는 이 곡에 타무라 테이이치의 노랫말을 붙인 <도나우가와노사자나미(ドナウ河の漣)>가 발매됐지만,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곡이라 <사의 찬미>의 비장함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情死) 사건이 노래가 유명해진 것은 일본에서 <사의 찬미> 등을 녹음한 윤심덕이 귀국 중인 배에서 애인인 극작가 김우진과 바다에 투신했기 때문이다. 일본 동경음악학교 출신의 소프라노 윤심덕은 활발한 신여성이었으나, 유부남과의 사랑을 비관해 동반 자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 사건에 대해서는 이후 많은 추측이 있었다.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둥, 실은 죽지 않고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는 둥 1930년대까지도 윤심덕에 관한 온갖 풍문이 만연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정사 사건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이 컸음을 의미한다. 유성기 음반 시장의 가능성을 입증한 계기1920년 일본 오사카에서 창립한 일동축음기주식회사는 1925년 9월부터 한국 음반을 내기 시작했다.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약 180매 가량을 냈는데, <사의 찬미>는 윤심덕이 녹음한 다른 노래와 달리 음반 번호가 2249인 것이 이채롭다. 이는 일동축음기주식회사의 일본 음반 번호 체계를 따른 것이다. 가사지에 “결사의 절창”이라 적힌 것으로 미뤄보아 윤심덕이 죽은 후 급하게 음반을 찍는 과정에서 일본 음반 번호 체계를 따른 듯하다. 음반 라벨도 ‘ 시노산비(死の讚美)’라고 일본어로 표기했다. 발매 당시 꽤 인기를 얻은 이 음반은 여러 번 재발매되었다. 심지어 윤심덕(尹心德)이 아닌 이심덕(伊心德)으로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까지 있었다. 윤심덕의 정사 사건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음반의 인기도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유성기 음반 시장의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영화와 노래로 되살아난 <사의 찬미>1932년 김선초의 목소리로 녹음한 <사의 찬미>는 윤심덕의 노래와 유사하리라 추정되나 음원은 확인할 수 없다. 광복 전에는 <사의 찬미> 커버 곡을 찾기 어려운데 그만큼 원곡이 강렬했던 탓이다. 광복 이후엔 김정호, 이미자, 나윤선, 한영애 등이 <사의 찬미>를 불렀다. 윤심덕의 정사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69년 개봉한 안현철 감독의 <윤심덕>(신성일·문희 주연), 1991년 개봉한 김호선 감독의 <사의 찬미>(장미희·임성민 주연)가 대표적이다. 특히 영화 <사의 찬미>는 1991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의 찬미> 유성기 음반을 소장한 신나라레코드는 1990년 유성기 복각 시리즈 45회전 LP로 이 음반을 재발매했다. 현재 극소량만 남아있는 20년대 원반은 2015년 일본 야후 경매에서 5,000만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되어 한국 대중가요 음반 중 최고가로 평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의찬미 / 부활의깃붐 - 윤심덕 (가요앨범 리뷰, 한국대중가요연구소) |
출처: Nature & Life story 2007 원문보기 글쓴이: Natur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