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난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고 대안을 만들어 가기 위해, '공평과 정의'라는 성서적 원리에 비추어 조선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민생의 근본인 토지제도를 개혁하고자 애썼던 한반도의 개혁 정치가들을 살펴보며 하나님나라의 통치 원리와 오늘의 시대를 돌아보려 합니다. 여말선초의 개혁 정치가 정도전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600년 한반도 역사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필자 주 |
하나님나라와 정도전
하나님나라는 죽어서 가는 내세와 영적인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얼마나 오늘 현실의 세계에 깊은 관심이 있는지 이집트 파라오 체제의 폭압으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구성한 이스라엘의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의 가장 밑바닥 히브리 노예들은 새로운 사회의 주체가 되어 착취적 관계가 아닌 이웃과의 평화를 항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새로운 사회를 꿈꾼 그들의 나라가 이집트의 기득권 수호 체제와 다를 바 없이 변질하였을 때 하나님나라의 선명한 기준은 분명한 심판을 선고한다. 남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예레미야를 통해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사회의 불의와 상관없는 성전과 예배를 향하여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라고 일갈한다.
역사의 주관자이며 모든 피조 세계의 창조자인 하나님의 통치 섭리는 한반도의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여말선초의 정도전을 주목한 것이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도전은 백성의 처절한 삶에서 고려의 명운이 다된 것을 확인하였고 새로운 조선의 건설에서도 그의 혁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척도로 백성의 현실과 삶을 주목하였다. 정도전이 주목한 백성의 현실과 하나님나라가 주목하고 있는 가난한 자의 현실은 놀랍도록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민본 사상의 출발, 백성과의 만남
정도전의 사상은 나라의 모든 일에 있어 백성을 근본에 둔다는 '민본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혁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백성들의 삶의 현실이었다. 그가 고려 말 당시의 일반 정치인들과 달리 이토록 선명한 기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백성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민왕의 마지막 개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권문세족은 애초의 친원 정책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기득권이 고려의 핵심 주변국인 원나라와 가까웠던 것이 중요한 배경이다. 개혁적 성향이 강했던 신진 사대부들과 함께 정도전은 강력히 친원 정책에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친원 정책은 공민왕의 개혁 정치를 물거품이 되게 하는 것이었으며 권문세족의 기득권 유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쇠퇴해 가는 원나라와의 관계보다 새롭게 부상하는 명나라와의 관계 강화가 실리에 부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힘이 없는 말직 관리에 불과했던 정도전은 권문세족과의 강력한 충돌 이후 9년간 유배를 떠난다. 백성들의 삶의 현장에 깊이 다가간 9년간의 그의 삶은 단순한 개혁 정치인을 넘어 사상가이자 혁명가로서의 길을 걷게 한 분수령이 되었다. 백성의 삶과 유리된 정치 그리고 사상은 그에게 있어 보잘것없는 말장난이었다.
▲ 드라마 정도전의 인기로 출판계에도 정도전 바람이 불었다. |
민본 사상의 구체화, 토지개혁!
정도전은 기존의 기득권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다. 그리고 고려의 현실에서 개혁이 아닌 혁명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권문세족의 막강한 힘을 대적하기 위해 신흥 무장 세력인 이성계와 손을 잡는다. 위화도 회군 후 정권을 잡은 정도전이 가장 집중한 영역은 바로 토지개혁이다.
토지는 백성의 삶과 직결된 구체적인 문제였고 이에 대한 정도전의 뜻은 확고부동했다. 땀 흘리는 자가 따로 있고 땅의 열매를 독점하는 자가 따로 있어 땅 주인 행세를 하며 호의호식하는 지주들이 주인이 된 고려는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꿈은 간단명료하다. '계민수전(計民授田)', 백성의 수대로 땅을 나누어 주어 지주가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닌 자작농, 즉 땀 흘려 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꾸었다.
정도전의 꿈이 개혁의 과정에 그대로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조준 등과 함께 과전법의 이름으로 토지 겸병과 권문세족의 막대한 토지 기득권을 분쇄하였다. 당시 개성에서 불타는 토지 문서의 불길이 며칠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권문세족의 횡포에서 벗어나 삶의 현실이 개선된 백성의 해방감은 앞으로 전개된 조선 건국의 중요한 정치적 배경이었다.
지속 가능한 혁명의 모색 : 재상 정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 한 번의 일시적인 혁명은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정도전의 조선 건국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정도전은 새로운 조선이 또 하나의 고려가 아닌 혁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구상한다. 그 핵심에 바로 '재상 정치'가 있다.
재상 정치의 구상은 조선의 과거제도 및 관료 체제의 정비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의 신진 관료는 철저한 과거제를 통해 실력과 자질이 검증된 사람을 관료로 채용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고려의 권문세족과 같이 세습으로 기용되는 관료들의 기득권 형성 가능성을 차단했다. 오직 세습이 허용되는 조선의 왕은 덕의 정치를 펼치고 실질적인 행정 전반의 업무는 재상이 담당한다. 왕은 세습으로 인해 덕성과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채 왕위에 오를 불확실성이 있다. 반면 재상은 과거제를 통한 자질 검증, 다년간의 실무 검증을 통해 간택되기 때문에 훨씬 안전하고 민의를 대변하기 더 좋은 구조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상 정치의 구상을 자칫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조선의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신권이 강화되지만, 노론 독재에 의한 신권과 민의를 대변하는 구조로서의 재상 정치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정도전의 재상 정치는 지속적 혁명의 구조를 산출하려는 노력으로서 당대의 맥락에서 매우 진일보한 개혁의 구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도전의 마지막 과제, 요동 정벌
정도전의 총체적 비전에서 최후의 과제는 요동 정벌로 상징되는 외세로부터의 자유 및 주체성의 확보였다. 백성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려면 국내의 개혁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 정립 및 조선의 분명한 주체성 확립이 있어야 한다고 정도전은 판단하였다. 이 점의 중요성은 실제로 한반도의 역사에서 나라의 주체성이 얼마나 강대국들에 의해 유린당하였는지의 여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체의 흐름을 보게 되면 강력한 주변 강대국은 한반도의 주요 영향력을 확보하여 자국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과 친밀성이 높은 국내 기득권 형성에 깊이 관여한다. 고려의 경우 친원파가 고려 기득권의 핵심을 이루게 되며 정도전의 사후 조선 역시 친명 사대주의의 일관된 흐름에 노론 기득권이 앞장선다. 이런 흐름은 조선 말기로 가게 되면 친일파 문제와도 연결된다. 조선의 주권이 일본에 넘겨질 때 귀족의 명예와 재산을 받은 당시의 지배층이 바로 대부분 노론 출신이었다는 사실만 놓고도 민족 주체성의 확립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정도전은 사병을 혁파하고 요동을 타격하여 동북아의 여타 민족을 규합하고 조선의 주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민본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여겼다.
새로운 사회의 구상과 건설: 이스라엘 건국과 희년 정신
그렇다면 정도전의 '민본 사상'과 하나님나라는 어떤 관계인가? 정도전이 주목한 백성들의 살림살이와 성경이 주목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 그리고 이웃의 삶에 대한 책임이 바로 그 실마리다. 새로운 사회를 상상했던 정도전의 조선 건국은 새로운 사회가 가능하리라 믿었던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파라오의 강력한 폭정에서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히브리 노예를 주목한 것이 하나님나라였다. 히브리 노예는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야 할 책임 있는 주체였고 체제의 정비뿐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습속을 몸에 익혀야 했다. 가나안에 입성한 히브리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자신이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충분히 얻어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 밑에서 안연히 거할 수 있는 자신의 땅이었다. 자신의 땅은 한 세대에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50년마다 토지가 반환되는 희년 체제로서 지속 가능한 자작농의 나라를 꿈꿀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 땅을 확보한 이스라엘에 부여되는 책임은 바로 내 이웃에 대한 책임이다.
지속 가능한 자작농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온전한 책임의 주체가 된 기업(땅)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의 증식에 파묻히기보다 내 이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분명히 져야 했다. 이 책임이 간과된 존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하나님나라는 히브리 노예를 주목했고 과부와 고아의 삶의 수준을 사회의 건강한 척도로 보았으며 가난한 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을 촉구한다. 정도전이 혁명의 척도로 보았던 저잣거리의 현실과 가난한 백성의 현실이 바로 하나님나라가 주목하는 고통 받는 자의 현실과 깊은 상관성이 있다.
하나님나라의 구체적 출발, 이웃에 대한 책임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렘 2:33~34)
예레미야는 이웃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잊어버리고 부의 탐욕에 빠진 백성들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그들의 옷자락에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잊고 무시한다고 없어지는 책임이 아니다. 가난한 자의 강력한 피 냄새를 못 맡는 자에게 강력한 심판이 임한다.
정도전은 저잣거리에서 그리고 나주의 소재동에서 자신의 옷에 묻은 가난한 자의 절규와 피 냄새를 맡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책임감으로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있는가? 하나님나라의 꿈은 얼마나 총체적으로 우리를 몰아붙이는가? 남루한 신앙으로,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마주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의 도전이 정도전을 통해 엄습해 온다.
김덕영 / 희년함께 사무처장
연재 목차 ① 정도전과 하나님나라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② 정도전과 예레미야1 : 국가멸망의 징조 ③ 정도전과 예레미야2 : 왕조의 멸망을 대하는 두 사람 ④ 정도전의 민본사상과 하나님나라의 공평과 정의 ⑤ 두 진정성의 충돌 - 정도전과 정몽주의 우정과 갈등 :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연대와 우정 ⑥ 민본사상의 구체화, 계민수전 & 공평과 정의의 구체화, 희년 ⑦ 역사 속 하나님의 통치는 유효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