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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낙제생 제자
낙제생 제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낙제생 제자는 가롯 유다입니다. 그러면 가롯 유다는 어째서 낙제생 제자가 되었겠습니까?
1.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못하였습니다.(마26:25, 49)
가롯 유다는 남쪽 가롯 지방 사람입니다. 남쪽 유다 가롯 지방에서 북쪽 갈릴리까지 찾아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보통 열심히는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믿고 섬긴 가롯 유다는 왜 낙제생 제자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삼년동안 동고동락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며 섬겨 왔습니다. 또 저들은 회당 교육을 통하여 메시야가 오실 것도 배워 알고 있었으며 또 메시야가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실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언행과 모든 표적과 이적 행하신 것을 보고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신앙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한번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였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랍비로만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구원 얻어 천국 가는 신앙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고백 하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못하는 신앙은 구원을 얻지를 못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교회에 나와 학습을 받골 또 세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리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심지어 목사가 되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못하고 랍비로만 믿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 얻지 못합니다. 성경은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고 중생하지 못한 심령으로 성경을 인간의 이성에 맞추어 해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소위 신 신학 자 들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이나 표적의 기사를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하려니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만 믿을 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산상 보훈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믿는 것을 인격 수양으로 보는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당할 것을 전하여 주었을 때 롯의 사위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것처럼 농담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가롯 유다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못하고 랍비로만 믿는 자들은 낙제생 제자가 됩니다.
2. 가롯 유다는 그 속에 마귀가 들어 간자 입니다.(요13:27)
낙제생 제자 가롯 유다는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갔기 때문에 낙제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 입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 들어가야지 들어가서는 아니 될 것이 들어가면 탈이 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더니 최초의 범죄자가 되어 죽음을 가져 온 것입니다.(창2:17, 3:6, 19)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니 벌거벗은 수치를 들어내었습니다.(창9:21). 입이 있다고 독약을 먹으면 죽는 법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창1:26),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령님의 전이라고 합니다.(고전1:26) 그러므로 사람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이신 삼위 일체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모시고 섬겨야 할 삼위 일체되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서는 아니 될 마귀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는 은 삼십 량에 스승을 원수들에게 넘겨주는 배신자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귀신이 들어간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 막5:1-20에 군대 귀신 들린 자는 쇠고랑을 끊고 아무돌 저를 제어할 수 없는 자가 되어 밤낮 무덤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다(막5:4-5)고 하였습니다.
b. 마17:14-20에는 귀신이 들린 아이는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 지더라 고 하였습니다.
c. 막7:31-37에는 귀신이 들어가니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비추어보니 가롯 유다는 들어가서는 아니 될 귀신이 들어갔으므로 낙제생 제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의 모 신경외과 의사이신 장로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아주 예쁜 아가씨 환자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한번씩 발작을 하면 살며시 웃으면서 사지가 틀어지는 병이 생기더랍니다. 결국 뇌 사진을 촬영해 보니 뇌에 이상이 있어 뇌수술을 하였답니다. 뇌수술을 하고보니 대뇌 속에 회충이 들어 있더랍니다. 회충이 가만히 있을 때는 아가씨도 정상적이 되지마는 회충이 대뇌신경을 자극할 때마다 아가씨는 발병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대뇌를 건드리던 회충을 잡아 내고나니 아가씨는 깨끗이 정상으로 고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대뇌 속에 들어가서는 아니 될 회충이 들어가니 마친 병이 발작을 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으로 날마다, 날마다 깨끗이 가꾸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가롯 유다는 예수님과 근본이념이 다른 자였습니다.(행1:6-8)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라는 로마의 지배 아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사상은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메시야 고대 사상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유대나라의 국권을 회복시켜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적 상황의 때에 예수님이 나타나사 권능과 이적을 행하시니 모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유대나라를 로마의 속국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야로 알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고 서로 다투기도 하였습니다.(마18:1-8)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그의 두 아들 즉 요한과 야고보를 예수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기를 간청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마20:20-28).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직전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 니이까?(행1:6)고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유대나라 회복의 때가 기한은 내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7-8)고 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나라는 지상 유대나라 국권 회복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었던 것입니다. 불타고 없어질 세상 나라 건설이 아니라 새 하늘, 새 땅, 천국 하나님의 나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도 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고(요18:36)하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제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야 사상 즉 지상 유대나라를 회복하는 메시야 사상을 버리고 예수님이 부탁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성령 받고 순교자로서 증인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부탁하신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성령 받고 증인이 되는 길을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가롯 유다는 끝까지 지상 유대나라 국권 회복을 위하여 예수님을 배반하면서까지 이용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주장과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과 뜻이 주님의 주장과 뜻에 맞지 아니할 때에는 우리의 주장과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롯 유다처럼 자기의 고집과 뜻을 성취키 위해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주님을 이용하려는 자는 낙제생 제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셔서 가롯 유다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518장을 불러 봅시다.
1. 신자 되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 되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2.사랑하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3. 거룩하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4. 유다처럼 안 되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유다처럼 안 되기를 진심으로
5. 예수 닮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 합니다 진심으로
4. 가롯 유다는 탐욕의 사람 즉 도적이었습니다(요12:6-8)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 이러라고 하였습니다. 가롯 유다 그는 열심 있었고 총명하였고 지혜 있었고 또 동료들로부터도 신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재정을 맡아 살림살이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가 맡아 살던 살림살이는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가 훔쳐간 돈은 하나님의 것을 훔쳐간 도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는 낙제생 제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마22:21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리차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가 가진 소유 중에서 우리의 것이 있고 또 하나님의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주의에서 하나님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것이겠습니까? 목사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계1:10에 주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레 중에 한날은 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우리의 날이지마는 이레 중의 한날은 주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의 날에 하나님께 경배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말3:8-10에 십일조는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소득의 십일조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하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아니하고 십일조를 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일조 사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갑이라는 사람은 90,000원을 투자하였고 乙이라는 사람은 10,000원을 투자하여 자본금 100,000원으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甲이라는 사람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힘써 부지런히 장사를 하였고 乙이라는 사람은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한달이 되었습니다. 손익을 계산하여 보았습니다.
자본금 100,000원을 두고 순이익이 100,000원이 되었습니다. 이 순이익금 100,000원을 甲이라는 사람과 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분배를 하여야 하겠습니까?
1:9로 나누어야 합니까? 아니면 2:8로 나누어야 합니까? 아니면 3:7로 나누어야 합니까? 아니면 4:6으로 나누어야 합니까? 아니면 5:5로 나누어야 합니까?
주식 투자는 투자한 비율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甲은 90,000원을 乙은 10,000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10,000원을 가지고 한달 생활 할 수 있겠습니까? 혼자 산다고 하면 10,000원으로 라면 두 상자를 사서 끓일 필요도 없이 날것으로 먹고 물을 마시면 살아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장가를 가면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생기면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고 공부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10,000원으로는 절대로 생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乙이라는 사람은 甲이라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익금을 5:5로 나누어 줄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甲이라는 사람은 乙의 간청을 듣고는 乙의 요구대로 5:5로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9:1로 나누어 주되 자기의 몫인 90,000원을 乙에게 주고 대신 乙의 몫인 10,000원을 가져오도록 바꾸어 주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하며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올 때에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 아닙니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와 여러분들이 생활하며 산다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값없이 주신 하나님과 합작 투자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소유에서 무엇이 내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간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의 소득에서 십의 구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십의 일로 내가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인생이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 십의 구는 하나님께 드리고 십의 일만 가지고도 우리는 넉넉히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인생이 되었기 때문에 나의 것인 열의 하나를 가지고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것인 십의 구 몫과 나의 것인 십의 구 몫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인데 우리는 바꾸어 주신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마저도 에누리하고 아예 떼어먹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드리면서 복을 달라고 하니 얼마나 기가 차는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은 성도는 주의 은혜 감사하여 십일조뿐만 아니라 십의 구까지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가롯 유다 그는 사람의 것을 훔쳐간 도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훔쳐간 도적입니다. 그러므로 가롯 유다 그는 낙제생 제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롯 유다처럼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아멘.
글/ 자성대교회 이 종영 원로목사
주님을 사랑하는 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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