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히브리어:יהודי 유대인; Yehudim[10]) 또는 유다인 혹은 유태인(猶太人)은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 민족적인 의미에서는 혈연 또는 개종을 통해 고대 히브리 민족의 후예가 된 유다 민족을 가리킨다. 유대교의 법률인 《하라카》의 정의에 따르면,어머니가 유대인으로서(민족적 의미) 유대교를 따르는(종교적 의미) 사람을 유대인이라 한다. 서아시아의 가나안에서 근원한다. 유대인의 민족, 문화, 종교 및 신앙은 서로 밀착된 강한 관계를 보이며,유대교는 유대인 간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전통종교인 것이다.[11][12][13] 여기서는 민족적인 의미를 다룬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인과 고대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후예로 가나안 땅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고대 히브리 왕국을 세웠다. 2대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정복,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사울왕가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패권을 쥐었다. 그의 아들 3대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유대교 성전을 건축하였다.
하지만 솔로몬 사후에 가혹한 부역활동에 대한 반항으로 반란이 일어나, 북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어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8세기아시리아의 살마네세르 5세에게 멸망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6세기 신(新) 바빌로니아에 멸망하였다. 유다의 엘리트는 바빌론으로 끌려가나(바빌론 유수), 이후 바빌로니아가 벨사살을 암살한 다리우스가 세운 페르시아에 망한 뒤 그중 일부가 유다 땅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인의 명목을 이었다. 보통 구약성서의 역사기록들은 이때까지의 역사가 배경이다.
그 후 유대인들의 땅은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한 후 시리아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승계 셀레우코스(Seleucid)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려 하자 유대교 정통파들은 마카베오 가문(Maccabees)의 지도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된 유대인 왕국을 세웠는데 당시 에피파네스 왕조의 반유다주의 및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은 구약성경의 외경 중 '마카베오 상,하'에 나와 있다.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으로 세워진 왕조를 하스몬 왕조(Hasmonaean Dynasty)라 하는데 기원전 165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누카를 통해 이 사건을 기념한다. 하지만 B.C 63년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유다이아(Judaea) 주로 편입되었다.
AD 66년 유대인들은 총독과 세리를 통해 자신들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로마 제국에 대해 제1차 유다-로마 전쟁을 일으켜 저항하였으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는 이를 철저히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그들 땅에서 유대교를 믿도록 허용했다.
AD 2세기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는 율리우스 세베루스가 바르 코흐바(bar Kokhba)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다이아(이후 이 지방은 팔레스티나 지방으로 불린다)를 파괴했으며 135년 이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다이아 땅의 유대인들은 대다수 노예로 팔리거나 로마의 시민으로 동화되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것을 두고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 상당수는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 등지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로 생각된다. 실례로 외경이 포함된 구약성서인 70인역 성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서이다.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살았으며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는 일부가 인도와 중국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유대인 중 일부는 지중해 연안 외의 지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의 후손인데 하자르인(Khazars), 이두매아인(Edomites), 에티오피아인, 아랍인 등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유럽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수난을 면치 못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직업선택과 거주지에 대한 제한을 두었다. 일반 직업에 종사할 수 없게된 유대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하지 않던 직업인 금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흔히 사용하는 아슈케나짐(Ashkenazim)와 세파르딤(Sephardim)의 구분은 종교적 차이와 민족적 차이를 다 포함한다. 어떤 학자들은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은 팔레스티나 유대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며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식 유대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라 주장한다.
한편 헝가리계 유대인 역사학자 아서 쾨슬러와 일본 학자 우노마사미 등은 아쉬케나지가 인종적으로 셈족이 아닌 백인계 투르크족하자르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텔 아비브 대학에서 중세사 교수를 지낸 폴리악도 1944년에 <하자르 왕국과 유대교 개종>이란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이들이 하자르 멸망 후 동구권으로 흩어져 아쉬케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보통 셈족 유대인들에게는 금발이나 푸른 눈이 없으나 아쉬케나지 중에는 백인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이들이 많은 이유라 한다. [14] 근래[언제?] 인류학과 유전학 연구의 성과로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을 비롯한 기타 유대인의 인종학적 차이가 미미하다는 것이 밝혀져 아서 쾨슬러 등이 주장한 아슈케나짐의 하자르 설은 비판을 받고 있다.[출처 필요]세파라디와 아쉬케나지 사이엔 갈등이 많은데, 세력으로나 영향면에서 아쉬케나지가 압도적이다. [14]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전 세계의 유대인 인구가 1천8백만 정도였으나 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1천만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134개국에 1천4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미국에 5백80만, 이스라엘에 5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그밖에 캐나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독일 등에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유럽의 유대인 인구는 2백40만, 라틴 아메리카는 5십만 이상으로 추정된다.
1948년5월 14일 설립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귀환법 또는 귀향법(the Law of Return)이라고 한다. 이 법률상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 모두 유대인으로 간주된다. 또 유대인 이민자들과 가족관계인 비(非)유대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이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따르는 유대인의 정의보다 일부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 이유는 유대인의 친척들도 외부에서는 유대인으로 여겨 반유다주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대인이 다수민족인 국가는 이스라엘뿐이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은 곳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1백만에서 1백50만 정도가 있다고 추산된다.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과 동유럽으로 현재 많은 유대인이 많이 이주해 온다고 한다.
올림픽에서도 유대인의 활약이 보였다. 20세기 초반에 펜싱의 종주국 헝가리의 우승을 기여한 선수들도 모두 유대인이었다. 4개의 올림픽에 출전하여 총7개의 메달을 획득한 폴란드의 육상 선수 이레나 셰빈스카, 미국의 수영 선수들 중에 뮌헨 올림픽 7관왕 마크 스피츠와 5개의 올림픽에 출전하여 총 12개의 메달을 획득한 다라 토레스 모두 유대인이다.
세계 5대 메이저 식량 회사 중 3개가, 세계 7대 슈퍼메이저 석유 회사 중 6개가 유대인의 소유이다.
중국송나라 시대에 유대인들이 서역을 경유하여 중국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사용한 성씨로는 리(李), 장(张), 안(俺), 진(金)씨 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일부가 고려로 들어오기도 했다. 북송의 카이펑(开封)에 거주하여 카이펑유대인(开封犹太人) 또는 이츠러예(一赐乐业, 일사락업)인(人)으로 불렸다. 이츠러예(一赐乐业)는 북송 황제가 하사한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음역이다. 중국에 진출한 이슬람교의 무슬림처럼 유대인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종교신앙으로 인해,북송시대의 중국인들은 이 두 집단 모두를 고교(古教), 남모회회(藍帽回回) 등으로 불렀으며, 유대인을 죽흘(竹忽), 주오(主吾), 주호득(朱乎得), 축호(祝虎), 주혁(珠赫) 등으로 불렀다. 북송카이펑의 이츠러예인들은 한족과 같이 과거시험을 칠 수 있었으며,명(明)이 건국되자,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색목인(色目人), 회회인(回回人)은 본족내 통혼(本族内通婚)을 불허함을 명문으로 규정하였다.
↑[1] "The Jewish Problem: How To Solve It," 미합중국 연방 대법관 루이스 브랜디스, "Jews are a distinctive nationality of which every Jew, whatever his country, his station or shade of belief, is necessarily a member" (April 25, 1915), University of Louisville Louis D. Brandeis School of Law, Retrieved on June 15, 2009
↑[2] Palmer, Henry, A History of the Jewish Nation (1875), D. Lothrop & Co., Retrieved on June 15, 2009
↑[3] "The Collected Papers of Albert Einstein, Vol. 7: Berlin Years," U.S. Supreme Court Justice Louis D. Brandeis, "The Jewish Nation is a living fact" (June 21, 1921), Princeton University Press, Retrieved on June 15, 2009
첫댓글예루살렘 성은 AD 70년 1차 침공을 받아 점령당했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때에는 로마의 2차 침공을 받았는데 율리우스 세베루스가 바르 코흐바(bar Kokhba)의 반란(132년-135년 사이에)을 진압하면서 굶주림, 방화, 칼에 맞아 죽은 유대인이 58만이었다고 하며 유다이아(이후 이 지방은 팔레스티나 지방으로 불린다)를 파괴했으며 135년 이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축출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때부터 이스라엘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1948.5.14일 회복됩니다.
마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하나님의 일하심은 흩으실 때가 있고 모으실 때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는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인 교회중의 성도들에게 이루어질 천국농사를 종결하는 영혼추수에 대한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예루살렘 성은 AD 70년 1차 침공을 받아 점령당했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때에는 로마의 2차 침공을 받았는데 율리우스 세베루스가 바르 코흐바(bar Kokhba)의 반란(132년-135년 사이에)을 진압하면서 굶주림, 방화, 칼에 맞아 죽은 유대인이 58만이었다고 하며 유다이아(이후 이 지방은 팔레스티나 지방으로 불린다)를 파괴했으며 135년 이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축출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때부터 이스라엘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1948.5.14일 회복됩니다.
마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하나님의 일하심은 흩으실 때가 있고 모으실 때가 있습니다. 육신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는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인 교회중의 성도들에게 이루어질 천국농사를 종결하는 영혼추수에 대한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실례로 외경이 포함된 구약성서인 70인역 성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서이다.-헬리제국의 원조인 알렉산더는 히브리인 랍비들을 각 지파에서 6인씩 선발하여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었던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하였으며 회당들마다 보관하게 하였으므로 예수님이 회당에서 읽은 성경은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성경입니다.
후에 영국의 제임스 국왕은 칠십인 역과 안디옥에서 파송한 사도들의 계보에서 읽던 헬라어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게 하였는데 이 성경이 KJV(킹 제임스 버젼)이며 루터역, 네스틀레 알란트 역 등이 같은 계보이며 라틴어로 번역한 서로마교 계열의 번역본과 대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교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에서 발행한 성서와 KJV(킹 제임스 버젼), 루터역, 네스틀레 알란트 역 등을 반드시 대조하면서 읽고 성경의 흐름을 따라서 성경이 말하려는 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