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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낮-20180701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
대하34:1-13
찬송가 94장에 보면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의 부귀와, 이 세상 명예와,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바꿀 수 없네.’ 그랬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이런 것들하고, 예수님 하고 바꾸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이 너무 좋고. 사람이 너무 좋고. 물질이 너무 좋고, 권력이 너무 좋아서 예수님과 바꿔버리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신론자. 신이 없다. 어떤 사람은 무관심론자. 관심이 없어요. 무관신론자. 신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잘 지켜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라고 하는 왕은 아주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아주 훌륭한. 그러한 사람입니다. 요시야는 자신의 연령과 역양(歷陽)과 또 모든 것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는. 그러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너무 조급해도 일을 망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너무 느긋해요. 너무 느긋해가지고 계획만 하고, 회의만 하고. 회의가 많아지거나 회의가 길어지게 되면 회의가 생깁니다.
또 기도만 하고, 신중히 생각만 하다가 시간 다 가고. 은퇴하고, 죽는. 그런 교인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라고 하는 왕은 단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지속적으로 일을 잘 해서 열매를 많이 맺었습니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요시야처럼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좋은 믿음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첫 번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본문 3절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요시야가 여덟 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어려움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에 부모님 다 죽고, 가족들 다 죽고. 불행하게. 여덟 살에 왕이 되었고. 왕이 되고 팔 년 후에. 열여섯 살 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열여섯 살에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교회 다니고 봉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만나지 못했어도 교회 다니고, 교회 다니다가 하나님 만날 수 있고, 하나님 만나지 못했는데 봉사하다가 하나님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데 요시야 같은 경우에는 열여섯 살 때에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그러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보면 ‘요시야는 다윗의 길로 갔다.’ 그랬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사밧과 히스기야. 두 사람과 요시야까지. 세 사람이 다윗의 길을 갔다. 그랬습니다. 본문의 말씀에 보면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말은 요시야에게만 해당 되는 겁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그리고 다윗의 길을 쭉 갔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최고의 은혜요. 축복이요, 기적이요. 행운인 줄 믿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 어마어마한 사람 만난다 할지라도 한평생 살면서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죽으면, 그건 비극이고, 지옥이고, 멸망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좀 힘들고 어려움 있어도. 뭐, 대단한 사람 만나지 못했다할지라도 하나님 만난 사람.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미국의 무디 목사가 어느 성도님이 ‘심방을 와주십시오.’ 해서, 심방을 갔는데 양조장. 양조장 하는 데였어요. 술 만드는 공장. 아시죠? 양조장. 술 만드는. 막걸리 만드는. 술 만드는 공장이었습니다.
거기서 예배드린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양조장에 가 가지고, 잘 되게 해달라고. 그러기도 뭐하고. 또 문 닫게 해 달라. 망하게 해 달라. 그러기도 참 어려웠어요.
그런 가운데서 무디 목사님이 예배를 잘 마쳤습니다. ‘마음을 바꿔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사랑하는 성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그렇게 해서 예배를 잘 마쳤습니다.
예배를 마친 이후에도. 신앙생활, 목회생활 하면서 그분을 늘 볼 때마다 기도했어요. ‘하나님. 인도해 주십시오. 마음을 바꿔주십시오.’ 근데 어느 날, 그 양조장 주인 성도가 무디 목사님을 찾아왔어요.
무슨 얘기할 건가? 그랬더니. ‘이 넓은 술 공장, 양조장을 교회와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 때부터 그곳을 신학교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오늘날 시카고에 무디신학교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만남은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 만나고, 언제나 하나님 만나고, 평생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어떤 성도님은 ‘왜 주일을 지키느냐? 왜 십일조를 하느냐? 왜 봉사하느냐?’ 물으면, ‘하나님 두려워서. 한 방 치시면 나는 끝장나기 때문에. 그거 안 맞으려고.’ 그러면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볼 때 ‘아이구. 한 방 맞을까봐 저렇게 신앙생활 하는구나.’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두려워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하나님과의 친밀성이 회복이 되고, 친밀성이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부모와 자녀들도 두려움의 관계이면 모두가 다 불행합니다. 친밀성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과 친밀해지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더 친밀성이 깊어지는. 이러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람이 위로해 줄 수 없는 것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몸도 마음도 상처도, 반드시 어루만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만나면 양조장이. 술 공장이 신학교로 바뀌는 역사가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늘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잘 이루어 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상을 척결했습니다 본문 7절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오늘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여덟 살에 왕이 되고, 열여섯 살에 하나님을 만났다 그랬습니다. 그렇지요? 여덟 살에 왕이 되고, 열 여섯 살에 하나님을 만나고, 사년 후에. 스무 살에. 스무 살에 모든 우상을 척결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자마자 모든 우상을 척결하고자 하는. 그러한 조급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고. 자신감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힘이 모자랐어요. 내가 힘이 있어야 물살이 쎈 데 가서도 견딜 수 있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내가 힘이 약하면 내가 떠내려가고, 잘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을 척결하는 것.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영적으로 약하면. 우상에게 지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그들의 방해 때문에 그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요시야 같은 경우에는 열여섯 살에 하나님 만나고, 사년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내공을 기르고, 영적으로 충만하고, 또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고, 그래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모든 우상을 척결하게 되었습니다. 서두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요시야가 우상을 척결한 것을 보면 산당, 아세라 목상, 아로새긴 우상, 부어 만든 우상, 바알 제단, 태양 상들을 찍고 빻고 불살라서 제거했다. 그랬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 다음에 유다 남단, 납달리 할 것 없이 전 나라에 모든 우상, 가지가지 모든 우상, 지역 지역마다 모든 우상을 찍고 빻고, 불사르고. 그래서 가루를 만들어 다 척결하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에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 만나고, 4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기다렸다가 스무 살에 모든 우상을 척결하였습니다.
혹 오늘 우리 속에 어떤 우상이 있습니까? 건강, 권력, 자녀, 물질, 명예, 세상적인 거. 다양한. 수많은 우상들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이러한 모든 우상을 찍고 빻고, 불사르고, 가루로 만들어서 다 버리는. 척결하는. 이러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장미꽃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가시를 주셨습니까? 왜 가시를 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가시를 준 것이 아니라 원래 가시나무였던 너에게 내가 장미꽃을 주었다.”
내가 너에게 꽃을 주었다. 너는 원래 가시나무였는데 내가 너에게 꽃, 장미꽃을 주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셨다고 그럽니다.
똑같은 환경 가운데서도 가시를 보면서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가시 같은 인생에 장미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이지만 불평의 마음과 불평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불평거리가 됩니다.
불평은 ‘불행의 문’을 열지만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엽니다. 불평은 사람을 떠나게 하지만 감사는 사람을 돌아오게 합니다.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지만’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
요시야는 열여섯 살에 하나님을 만나서, 4년 동안 준비기간을 거쳐서 스무 살에 전국의 모든 우상을 척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했습니다.
불평하면 사명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감사하면 사명이 보입니다. 불평하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감사하면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사탄이 나타나서 ‘너 기도 안하면 내가 네 자녀들을 일류대학, 멋진 대학에 보내 주겠다.’ 그랬더니 그 성도가 ‘나는 그래도 기도하겠습니다.’
또 열심히 기도하는데 또 사탄이 와가지고 ‘네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멋진 집, 큰 집, 또 여러 건물들, 부귀영화를 너에게 주겠다. 네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그랬는데도 ‘나는 그런 것을 받는다할지라도 기도 안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랬습니다.
근데 사탄이 또 나타나가지고 네가 계속 기도한다면 ‘네 자녀들이 일류대학, 멋진 대학에 가는 거. 멋진 집, 여러 건물들, 부귀영화를 네 친구에게 주겠다.’ 그랬더니. 그 성도가 기도를 뚝 그쳤다.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사람 마음속에 시기심, 다른 사람보다 잘 되고자 하는. 우상. ‘다른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안 돼야 된다. 나보다 밑에 있어야 된다. 다른 사람들의 자녀들은 내 자녀만 못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집도, 다른 사람의 모든 것도 나보다 못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은 못 본다.’ 이러한 마음.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내가 마치 고상하고,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인 것처럼.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의 실패요 불행인 것처럼. 이런 우상적인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고,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것이라 할지라도 사탄이 주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것만이 선물입니다.
우상과 선물을 혼동하지 말고, 모든 우상을 다 척결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어떤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끝까지 하나님 잘 섬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성전을 수리 하였습니다. 본문 8절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요시야가 열여섯 살에 하나님 만나고, 스무 살에 우상을 척결하고, 스무 여섯 살에 성전을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만나자마자 열여섯 살에 성전 수리하려고 대들었다가는 큰 일 날 수가 있습니다.
종교편향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저런 반대. 또 반대하는 사람 여론으로 인해서 그 일.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난 지 4년 만에. 스무 살에 우상을 척결하고. 하나님 만난 지 10년. 스무 여섯 살에 성전을 수리하는. 이러한 단계적으로 일을 잘 처리했던 겁니다.
성전을 수리할 때 율법 책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 율법 책을 읽으면서 왕과 모든 백성들이 옷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수리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또 성전을 수리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수리하는 사람들에게 다 맡겨서 그들이 성전수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일하는 것도. 돈도, 물질. 모든 문제들을 다 맡겼더니 그들이 너무너무 잘 하게 되었던 겁니다.
어떤 주부가 삶을 비관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삶이 너무 힘들어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나를 좀 대려가 주십시오.”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래. 천국 가는 것은 가는 것이지만 그 전에 네가 몇 가지 좀 잘 정리해라.” 그랬어요.
“먼저는 네 집안에 좀 드럽지 않느냐? 집안 청소나 잘 해놓고, 천국에 가야지.” 그래서 청소를 아주 잘 해 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네 아이들. 네 자녀들을 사랑으로 잘 품어줘야 되지 않겠느냐? 나중에 우리 엄마는 정말 사랑이 많았던 분이다.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아이들 사랑해주고, 음식도 만들어주고,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제 마지막으로 네 남편에게 잘 해줘라. 좋은 아내로 살다가 가야되지 않겠느냐? 예를 다해라.” 그래서 마음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서 아주 공손하게 음식도 잘 해주고, 남편에게 서비스도 잘 해주고. 그랬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나타나셔가지고 “이제 천국에 가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네 집을 쭉 둘러봐라.” 그래서 이 부인이 자기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집이 깨끗해졌어요. 아이들이 밝아졌어요. 남편의 얼굴이 밝아지고. 미소가 가득했어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게 내 집 맞습니까? 언제 이렇게 달라졌습니까?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든 것이다. 네가 정리하고, 네가 수리하였기 때문에 네 집이 잘 되었다. 집도 깨끗해지고, 아이들도 밝아지고, 남편도 행복해지고,”
그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나중에 천국에 갔다 그런 얘깁니다.
수리하는 거. 이게 중요합니다. 가정도 거저 되지 않고. 교회도 거저 되지 않고, 이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시야가 성전을 깨끗이 수리했습니다. 스무 여섯 살에 수리했습니다.
경험을 쌓고,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서 성전을 깨끗이 수리했을 때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수리수리 마수리.’ 그런 소리 들어보셨습니까? 수리수리 마수리. 수리수리 독수리. 수리수리 남수리. 수리는 나부터 하는 거예요. 수리수리 나수리.
나를 수리해야 돼요. 남. 다른 사람. 하라고 하기 전에 나를 해야 합니다. 수리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나를 수리해야 됩니다.
나의 못된 거. 나의 더러운 거. 나의 냄새나는 거. 나의 고장난 거. 나의 불순종하는 거. 나의 깨진 거. 밝지 못한 내 얼굴, 고르지 못한 내 성격. 쉽게 분노하는 거. 파벌, 세상적인 거. 인간적인 거. 살인적인 거. 이러한 모든 것들. 내가 나를 수리해야 돼요.
근데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나를 수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남을 수리하려고 합니다. 자꾸 다른 사람들을 수리하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저 사람 바꿔야 되겠다.’
나도 못 바꾸는데 누구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가 저 사람. 인격과 마음을 바꿔야 되겠다.’ 누가 누구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안 바꾸면서 내가 교인들을 바꾸고. 내가 교회를 바꾸고. 한국교회를 바꾸고. 종교를 개혁하고. 나라를 뜯어고치고.
누가 뜯어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나를 수리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너 수리해라.’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이 회개하는. 변화되는. 대 역사. 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수리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게 되고, 회개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우리 가운데 반드시 들려지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두르지 마세요. 다 단계가 있습니다. 내가 뭐 다할 수 있습니까? 지금 대통령이 5년 동안 뭐 다할 수 있습니까? 5년 하고 나면 한국이 끝납니까? 그렇지 않거든요.
할 거만 하면 됩니다. 너무 오버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할 거만 하면 됩니다. 나에게 주신 사명. 그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됩니다. 내게 주신 사명 그 사명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 부르시면 가면 됩니다.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귀한 사명. 너무 서두르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또 그 모든 것 속에서 순종하며 잘 감당해야 됩니다.
요시야처럼 나이와 능력에 따라 하나님을 만나고, 몇 살에 하나님 만났다고 했어요? 열여섯 살에 하나님 만나고. 그 다음에는 우상을 척결하고. 몇 살에? 스무 살에. 우상을 척결하고.
그 다음에는 성전을 수리하고. 몇 살에? 스무 여섯 살에. 능력과 나이와 시기에 따라서 모든 일을 잘 감당했어요.
오늘 설교 제목처럼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됩니다. 내가 나도 감당 못하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합니까? 술 먹고.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고, 왔다갔다 쓰러지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신앙도 없고. 요만한 신앙 가지고 흔들리면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로잡고, 교회를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이런 분명한. 굳건한.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요시야처럼 주님께서 주신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늘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그 은혜가 크고 놀랍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보답하며 살지를 못했습니다. 이 시간 용서해 주시고, 이제 주님께서 주신 은혜로 늘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게 하옵소서.
요시야처럼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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