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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아~
요즘 온국민이 '세월호'와 단원고 2학년 학생들에 슬퍼하고 있어 웃고자 하는 글과 영상을 올리지 못한다.
하여 현재의 '세월호'의 경우처럼 국가가 국민에게 제대로 처신하지 못하고 제대로 배려하지 않은 경험이
해병대에도 있었기에 답답한 마음에 해병대 망치부대의 실체 및 존재에 대하여 진실을 알리고자 동영상 및
사진을 함께 올린다.
해병대 망치훈련은 내가 산 증인이다.
1982년 1월 어느날 내가 근무하던 해병대 1사단 32대대에 한밤중... 전원 소집 명령이 떨어진다.
1사단 22대대, 72대대에도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일명 망치요원 지원 및 차출하려는 소집이었다.
이때는 망치훈련이라는 정식명칭을 쓰지 않았다.
다만 동계수색보수교육이라는 명칭으로 3개월간의 훈련과정이었다.
사실 한겨울 그것도 1월달 바닷가 해안 모래사장은 곡괭이로 파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IBS 침투 훈련 중 파도가 보트 안으로 들이치면 슈트를 입지 않은 온몸은 바닷물에 젖어 순식간에 꽁꽁 얼어버릴
정도의 추위가 몰아치기에 정식 수색교육은 4월부터 실시된다.
어떤 특수부대도 한겨울 강추위와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해상에서 3개월간의 장시간 바다훈련은 실시하지 않는다.
슈트를 입지 않은 만큼 가혹하고 더 혹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병대 IBS 특화 실무부대(IBS 기습특공 부대)에서는 동절기에 월마다 2주씩 동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IBS 기습특공 부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1년 12개월 동안 1개월에 2주씩은 반드시 IBS 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한 겨울 동절기에도 실질적으로 해상에서 동계 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런 동계훈련 중 낮에 훈련하는 동안 얼어 붙어 아삭 아삭거리는 위장복을 다시 입고 IBS 야간침투 훈련을
받은 것도 다반사요 부지기 수였지만... 3개월 동안이나 동계수색훈련을 한다는 것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하였기에 한겨울 그것도 1월에 동계수색훈련를 실시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했었다.
해병대 1사단 각각의 2대대는 IBS 기습특공 부대로 침투훈련이 주 임무다.
원래는 공수대대인데 전두환이가 못하게 했다.
해병대 1사단 각각의 2대대는 다른 훈련을 다 이수하면서도 IBS 침투훈련을 병장을 기준으로 봤을 때
대략 20주~40주 가까이 받았다. 특수부대를 포함하여 전군 통틀어 해척조로는 최고의 베테랑들이다.
적진 침투시 IBS 기습특공대의 척후조(본대에 앞서 7인승 보트로 잠입하여 적의 경계병을 제압하는 침투조)는
해안가에서 경계중인 적의 초병들을 기도비닉 상태에서 소리없이 신속하게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플루트(악기 플루트처럼 생긴 기다란 대롱에 독침을 넣어 쏘는 기구), 석궁, 표창 등 무성무기 훈련도 같이 한다.
우리때도 IBS 침투훈련과 무성무기 훈련을 병행하여 실시했다.
이런 IBS 침투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 바로 동기 故 도정근(1사단 22대대 5중대)이다.
정근이는 침투공비로 오인받아 총알 7발을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다. (참조 아래사진)
정근이는 나와 생일이 같아 군번 1번이 차이 나는데 그것이 운명을 결정할 줄 몰랐다.
우리가 어릴적 어른들의 우스갯소리 중에 "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 해병대는 생일순으로 군번을 매기는데 만약 내가 정근이 뒤에 섰다면 저 척후팀에 내가 있었을 것이고
내가 사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도 살고 정근이도 살고 하는 삶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아프게도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씀이 사실이 되어 버렸다.
좀 더 부연한다면.....
해병대원 척후조 13인이 IBS 척후 보트로 야간 12시경 작전지역에 투입 되었다.
척후팀은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운용되지만 통상 척후팀은 7인 1팀으로 7인승 보트로 운용된다.
이 IBS 척후 보트에 동기 정근이가 탑승하고 있었다.
척후팀를 태운 보트는 초수평해역(수평선 너머 해안가에서 보이지 않는 먼 바다)에서 출발하여 월포 앞바다에
도달했고 암초섬인 오도를 지나 야간 패들링으로 해안가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원래 실전에서는 그믐날이나 비가 오는 날 등 달빛이 없는 야음을 틈타 침투하는 것이 보통인데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야간 침투 훈련이다 보니 이러한 조건들이 배제되어 달빛이 있는 야간에도 침투 훈련을 실시한다.
다만 이러한 야간 침투 훈련시에는 대상 침투지역 해안경계부대로 훈련상황을 통지하여 미연의 사고에 대비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야간 침투 훈련 통지가 되지 않은 해안선에는 해병대 척후 보트를 무장공비로 오인한
육군의 해안경계부대 및 5분대기조까지 대폭 증원 편제되어 잠복 대기하고 있었고...
해병대 척후 보트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병대 척후 보트가 해안선 15m 가까이 도달했을때 드디어 공격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공격은 크레모아였다.
꽈광~~~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크레모아 2기가 폭발하면서 대략 탄알 1500발이 공중으로 산개 되었다.
크레모아 폭발 소리와 동시에 해병대 척후조는 순간적으로 라이프자켓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이어 수류탄 5발이 척후조 해병대원 근처로 날아와 폭발했다.
보트안으로도 수류탄 한발이 날아 들었으나 마음이 다급했던 육군 경계병이 안전핀을 못 빼고 던져 그나마
많은 대원들이 살아 남았다.
이어 기관총 소사와 M16소총 난사가 이어졌고... 해병대원들은 그대로 그 총탄세례를 맞아야 했으며
총탄을 피했다 해도 암초에 맞고 튕겨져 되돌아 오는 총탄 파편에 희생 당했다.
이 사건으로 해병대원 척후팀 13명 중 사망 3명, 부상 7명, 3명은 다행히 파편 한발 안 박히고 살아 남았다.
지금도 그때 박혔던 파편 수십발을 몸에 지니고 사는 해병대원중 나와 가까이 지내는 대원이 있다.
의사가 파편 제거중 신경과 동맥을 건드릴까 못빼낸다고 하여 포기했다고 한다.
그날 새벽 포항병원 군의관과 간호장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왜 육군지역으로 해병대 기습특공대가 침투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길어지므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아무튼 해병대 1사단 각각의 2대대는 적진 침투에 척후조로 쓸 목적으로 수색교육을 보냈기에 그 일환으로
동절기 수색교육이 소집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 동계수색 훈련중 414기 故 이광석 선배해병이 사망했다.
나도 그때 영일만 도구 앞바다에서 IBS 침투훈련때마다 시신을 찾으러 다녔다.
시신은 3개월 후에 발견 되었고 현재 故 최광오 동기 곁에 계신다.
해군비문으로 되어 있어 해병앵카 부착해 드렸다. (참조 아래사진)
해마다 6월 6일이면 433기 동기생들이 오전에는 대전국립묘지에 들러 IBS 침투훈련 중 순직한
동기 故 도정근해병, 故 정병구해병, 故 김병칠해병을 참배하고 오후에는 故 최광오 동기의 참배와
더불어 故 이광석 선배해병의 참배를 실시하고 있다. (참조 아래사진)
우리 중대에서 433기 동기인 이찬섭, 송원영, 정찬모가 이 훈련을 다녀 왔다.
우리 중대에서 무려 20~30명이나 이 훈련에 참가 했다.
이 훈련을 망치훈련이라 부르며 이들은 812요원이 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해
북파공작부대로 운용하였고, 망치부대 해체후 이들이 모태가 되어 나중에 백령도의 수색부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도 망치부대의 존재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고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세월호'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가 국민을 살피고 배려하는 측면에서
발전한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망치훈련에서 빠졌냐구?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최고의 임무인 대통령 경호를 주임무로 하는 구구부대 요원이었고
(대통령 경호부대는 해병대 99부대, 특전사 27부대가 있고, 청해대 경호는 해병대 99부대가 담당한다)
곧 임무가 개시될 예정이었으며, 나는 이미 IBS, 유격, 공수교육까지 다 마친 상태였다.
해병대 망치부대 동영상
IBS 침투훈련 중 순직한 故 도정근 동기 묘
IBS 침투훈련 중 순직한 故 정병구 해병 묘
IBS 침투훈련 중 순직한 故 김병칠 해병 묘
헌병대 근무 중 순직한 故 최광오 동기 묘
812 망치훈련 중 순직한 故 이광석 선배해병 묘 (해군 글자 위에 해병앵카 부착해 드림)
해병앵카를 붙이기 전의 故 이광석 선배해병 묘
故 도정근 동기의 묘에 해병앵가 부착모습
해병앵카를 붙이기 전의 故 도정근 동기 묘
일단 오른편에 해병대 주물앵카를 먼저 붙이고 해병대 양철원형앵카를 붙일 예정
위의
비문과 같이
죽어서도 해병을 해병이라 못하고
해군으로 방치한 것이 국가의 묘역 관리 실태이다.
해병이라는 명예로 죽고 사는 해병대원임에도 그 자긍심을 살려 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이런 소소한 것부터의 관리가 국가의 국민에 대한 배려와 처신에 해당하는 것일진대 관리가 안되고 있기에
433기 동기들이 대전 국립묘지 故 도정근 해병, 故 정병구 해병, 故 김병칠 해병 묘역부터
동작동 현충원 故 최광오 해병, 故 이광석 해병 묘역 등
해병앵카 부착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첫댓글 죽으면 개죽음인게 대한민국이라니...
현재 우리중대에 같이 근무했고 망치훈련에 참가했던
경기법대 교수 정덕채 선배가 망치부대 대표로 유공자 및 보상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니
우리 동기인 이찬섭, 송원영, 정창모의 소재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내게 연락처를 알려주기 바란다.
이찬섭이는 내가 연락해 줬다.
동영상 2분 43초에 나오는 가운데 있는 사람 혹시 수색대에 있던 우리동기 이광희 아닌가?
좋은 자료 올리느라 고생했다 좋은 결말이 있기를 모두가 바란다.
종만이 고맙고... 6월 6일 현충원에서 보자~
오전에 대전국립묘지 정근이 보고 오후에는 동작동국립묘지 광오 만나러 간다.
동기님.자랑스런. 헌병대서. 근무햇구만.특수훈련두. 받구. 고생좀. 하셧네.위험한. 훈련인가보네.망치. 훈련이.나두. 후반기. 진해가서. 고생좀. 햇는데. 암튼 자랑스런. 나의 동기네!수고. 많앗어.!
도창이 고맙네... 헌병대 근무는 아니고, 단원고 아이들 구조모습 보면서 국가가 무엇인가 하고 서글퍼서 몇줄 적은 것일세^^
좋은 자료 잘보고 갑니다.
오~ 김포뺀찌 잘 지내고 있지~ 건강은 좀 어떠신가?
그때 우리 뺀찌가 故 도정근 해병 및 순직하신 해병대원 운구했다고 들었었는데...
필승
필씅! 6월 6일 11시에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모임이 있으니 참석 바랍니다.
딱 그겨울(82년초) 지나고 사단본부 갔다 오는길에 동기(누군지 감감)를 만났었는데 새까만게 사람이 아니더라 ㅎㅎ
그겨울에 바닷속에서 훈련 받아 그렇다고 해서 가슴 아팠었는데, 이제보니 당신들이었구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