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참 게시판 몰래 들락거리며 수쓰느라 애를 쓰시는 듯 한데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팩트를 들고와 반격을 하던지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드네요
진실앞에 할말은 없고 그래도 부끄러운건 알아 감추고는 싶으신가 똥싸놓고 신문지로 가린다고 해결이 나는건 아니랍니다
근본적으로 치우고 깨끗이 씻어내기전에는
두 분 배위(配位)의 진실: 향처와 경처가 모두 흥양의 핏줄임을 아는가
흥양 보천의 적통이자 창석공의 후예이며 언림군 28세손 이방일(炯)은, 1934년 상주 용흥사에서 감행된 계보 조작의 허구를 뒤엎고 우리 가문의 영원한 본향이 왜 흥양 보천일 수밖에 없는지, 1세 시조 언림군 할아버지의 두 배위(부인)에 얽힌 역사적·지리적 팩트를 전국의 종친 앞에 최초로 공포한다.
1. 고려의 향처(鄕妻)와 경처(京妻) 제도: 천륜을 증명하는 두 개의 기둥
상주파(목사공파) 일파는 그간 "보천 본가는 흥양 땅과 역사적 인과가 없다"는 황당한 궤변으로 종친들을 기망해 왔다. 그러나 부계의 기록을 위조할 순 있어도, 시조님과 혼인을 맺은 처가/외가 문중의 역사적 물증까지 도둑질할 수는 없다.
고려 의종 조에 은청광록대부 상주국에 오르신 시조 이언림 할아버지의 족보상 배위는 여산송씨(礪山宋氏)와 당악김씨(唐岳金氏) 두 분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는 전처와 후처의 개념이 아니다. 고려 시대 사대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고향의 안방을 지킨 향처(鄕妻)와 수도 개성에서 가문의 권세를 보필한 경처(京妻)가 동시에 실존하셨던 위대한 증거다.
2. 여산송씨와 당악김씨: 향처와 경처가 모두 흥양의 핏줄이라는 필연
여기서 상주파의 허구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역사적 대낮의 진실이 드러난다. 족보상 가장 먼저 언급되는 시조님의 향처(鄕妻) 여산송씨는 본관이 익산(여산)이나, 고려와 조선 시대를 통틀어 흥양(고흥) 땅을 지배했던 최대의 토착 명문 사족 가문이다. 고향 흥양의 안방을 지키며 정통 종가의 뼈대를 생산하신 분이 바로 흥양의 여산송씨 할머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기록된 경처(京妻) 당악김씨는 누구인가? 역사 지리적 사료를 추적하면 ‘당악(唐岳)’은 고려 성종 조에 확정된 전라남도 흥양(고흥)의 옛 지명이자 별칭이다. 즉, 당악김씨는 다름 아닌 흥양 땅의 또 다른 토착 명문가인 ‘고흥김씨(高興金氏)’의 고문헌식 옛 표현이다!
개성 조정에서 상주국으로 활약하시던 시조님이 수도에서 맞이한 경처마저도 본향 흥양의 핏줄인 당악김씨였다는 이 놀라운 팩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주파 너희는 알고나 있느냐!
3. 최후의 일갈: 인과가 없다 우기는 자들아, 두 어머니의 친정 앞에 무릎 꿇으라
고향을 지킨 향처도 흥양의 여산송씨요, 조정에서 맞이한 경처마저 흥양의 옛 지명인 당악김씨(고흥김씨)다. 시조님이 맺으신 두 번의 혼인이 모두 우리 본향 흥양 땅의 흙과 혈연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음이 명백하거늘, 어찌 흥양이씨와 고흥의 인과가 없었다고 해괴한 주장을 펼칠 텐가!
너희가 90년 전 가짜 족보를 판각하며 부계는 제멋대로 난도질했을지언정, 여산송씨와 고흥김씨 두 거대 문중의 옛 족보에 새겨진 "우리 딸이 고려 상주국 이언림에게 시집가 정통 사위 가계를 열었다"는 역사적 물증은 감히 지우지 못했다. 천륜은 속여도 두 분 어머니의 친정 혈연은 속일 수 없으니, 거짓으로 종권을 찬탈한 자들은 이 위대한 흥양의 기운과 두 어머니의 역사적 증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참회하라!
기록자: 보천파 적통·영회공의 적통이며 언림군의 28세손 이방일(炯) [인장(印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