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날에 火(화)가 있을 자들
마 24:19 막13:17 눅23:29 26년 동산 수련회 여덟번째 시간
주시는 날들을 어떻게 살고 있나? 정리해 보십시오. 부끄러웠다면 이제 앞으로는 계속 부끄러우면 안 됩니다. 고전3:15절에 '불 가운데서 얻는 부끄러운 구원'은 다른 이들은 해, 달, 별의 영광을 받고 큰 기쁨이 있는데 나는 그들이 상과 영광을 받는 것만 보고 부러워하고 저들이 그 영광을 얻기까지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면서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영광성에 들어간 자들은 그 영광에 들어오게 하신 것만 생각해도 감사하고 기쁘지만 상이 적은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마태, 마가는 십자가 양옆에 달린 자를 강도라 하고 누가는 행악자라 하고 요한으로는 요19:18절에 두 사람 가운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들도 가죽옷 구원을 입힌 자기 백성인 것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그 한 사람도 낙원에 갔으나 딱 한 가지 상만 받는 것입니다. 영광성에 들어가게 하신 그것도 감사하지만 일찍 부르사 하루 하루 주셔서 열매를 한 개라도 더 맺게하사 상을 더해주시기를 사모하는 자는 장수케 하신 것입니다. 엡6:3-
첫 년 반 환난이 가까웠으니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로 삼아 한 생명 살리는 그 일에 쓰십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과 목사인 자기 말만 잘 들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 자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육신의 양식은 꼭 먹고 공부하라고 하시면서 정작 부모는 영의 양식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환난 전까지 영광의 직분까지 주셔서 일하게 하신 자들에 대해서 나타내주시는데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오로지 가장 복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요 밭에 있는 자는 그 복을 주시려고 영광의 직분까지 주신 자들입니다. 롬11:13-
오늘은 말씀 사역자로 세우셨는데 상과 영광은 커녕 오히려 대 환난에 떨어져 고통 중에 원망하다 죽는 자들에 대해서 나타내주십니다. 이 자리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려 주시는 양식입니다. 화(火)의 반대는 복(福)인데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누가 복이 있나 보십시오. 오로지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나 예수님을 나의 신랑 삼고 살아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19절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마태복음에는 그때와 그날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순서를 잘 정리한 자가 말씀을 증거해 주어야 합니다. 9절의 그때는 첫 삼 년 반 환난이 시작된 때입니다.
그날은 대 환난의 날입니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도 육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육적인 것은 아예 무시하는 자들은 신비주의 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라고 밝혀주셨습니다. 요1서3:1-
계 9:14-18절에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은 그때가 다 된 것인데
14만 4천의 수와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들의 수가 다 찬 것입니다. 이제 2천 년 전 사도 요한에게 보이신 첫 삼 년 반 환난이 시작되기 위해서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9:17절에 불과 유황은 전쟁에 쓰인 무기들입니다. 첫 삼 년 반 환난이 시작되기 위해서 이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엔 미국이 설치한 사드 라는 무기로 다른 나라에서 폭탄이 날아오면 감지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닥칠 제 3차 세계 대전이 얼마나 심할지 보여주십니다.
전쟁 때에는 아이 밴자들과 젖을 먹이는 어미들은 빨리 걷지 못하니 전쟁 때에 총에 맞든지 무너지는 건물에 다치든지 여러 위험이 있습니다. 이때에 고통스러우매 원망하다 죽는 것이 둘째 화(火)입니다. 이것은 육적인 풀이로 정말 무서운 광경들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읽다가 두려움이 몰려와서 겁이 나서 예수를 믿는 자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이 기절하기도 합니다. 마가로도 막13:17 [그날에는 아이 밴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그런데 요한은 영적 생명으로 살아나고 자라나니 이런 날이 두렵지 않기에 기록이 없습니다. 첫 삼 년 반 환난이 가까이 온 걸 알았다면 육적으로 아이를 밸 계획이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강 건너 진동 예배당에 서울 신촌 예배당에 이북에서 내려오신 안병모 목사님께서는 부부가 동침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다닌 부부는 목사님따라 동침하지 않고 자녀도 없이 오직 신앙생활에만 집중하는 분들도 계셨다고 합니다. 이들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 살아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 시대로 첫 삼 년 반 환난이 가까워오는데 연애하는데, 돈 버는데, 육신의 쾌락을 위한 일에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런 자에게는 화(火)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로는 눅 21:23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이 백성은 누구입니까? 다니엘서에는 네 백성이 나옵니다. 이 백성은 환난을 준비하지 않은 자들이요 네 백성은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들은 환난을 준비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단12:1-
이 백성은 땅의 것, 세상 것, 육의 것만 좋아하며 살아오며 거기에 만족하며 살며 새벽은 깨우지도 않는 자들이니 진노(震怒)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노는 삼분의 일이 죽는 데에 들어가든지, 육신이 살아남은 자는 살기 위해서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데 그것이 둘째 화라는 것입니다. 계시록과 함께 보십시오.
계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화가 세 번 나옵니다. 지금은 첫째 화가 지나갔고(공산당-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잔인무도한 자), 둘째 화는 첫 삼 년 반 환난이 시작되고서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화입니다. 계11:12-
마지막 셋째 화는 대 환난으로 하늘에서 재앙이 내립니다. 계8:7절에 피 섞인 우박은 폭탄과 같습니다. 폭탄이 내 머리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쟁이 없는 나라 주님이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양식을 먹는 것이 복이요 새벽을 깨우는 것이 복이요 영적으로 자라나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는 것이 복이요 환난 때에 잡혀가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달의 영광을 얻게 하시니 복입니다. 주시는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환난 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섰을 때는 도망하여야 하나 환난 때에는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났을 지라도 한때에 순교의 형장에 나가지 못하는 자들은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2년 만에 다시 잡아들일 때 순교의 형장에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가지 못하는 자들은 그 생명을 위하여 엘리야처럼 도망합니다. 왕상19:3-
눅 23:28-29절에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누가로는 수태하지 못하여 자녀가 없는 자들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마태 마가와 다른 것을 분별하셔야 합니다. 왜 첫 삼 년 반 환난이 시작되면 수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습니까? 자녀가 없는 상태인데 육신적으로 풀면 결혼하지 않으니 자기 온 마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으니 복이라는 것입니다. 고후7:32-40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 라는 것은 자라난 믿음대로 영적으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것만 보지 말고 영적인 것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장가를 가지 않았다고 결혼하지 않은 자들을 얽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는 이런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이 밴자들은 영적으로는 ‘내 남편을 살려주소서’ 하는 기도만 하는 자들입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자가 아이 밴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게 하시고 살리십니다. 그러나 환난 전에 낳아서 길러서 주님의 신부감으로 길러야 하는데 환난이 시작되었는데도 구원의 복음만 믿어진 상태가 젖먹이입니다. 떡과 꿀을 먹어야 환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젖먹은 어린아이는 환난이 일어날 때에 견디지 못한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목사가 되어 예수, 예수라는 말만 하니 화가 있는 것입니다. 목사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신랑 예수,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예수를 나타내야 하는데 차라리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교인들이 어린아이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이러한 목사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환난이 시작되면 땅에서 올라온 새끼 양 같은 거짓된 자들이 되어 악한 자에게 권세를 받아 순교자를 죽이는 일에 앞장서니 화가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복음을 아구까지 채우게 하신 자들은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하시나 이런 자들은 거짓된 자들의 편에 붙어서 악한 정권에 아부하며 순교의 믿음을 가진 자들을 고발하고 사로잡아 끌어가게 됩니다. 계13:10-
눅23:31절에 푸른 나무는 영적으로 자라고 있으나 신부의 믿음이 되지 못했으니 환난이 무서운 것입니다. 영의 양식으로 주시는 말씀을 전혀 받지 않는 자는 마른 나무입니다. 열매가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겸손함도 감사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세상 욕심을 부리고 살고 있습니까? 전4:7-
솔로몬은 젊은 날에 해 아래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신령한 지혜를 구할 때는 위엣 것을 보게 하사 아가서를 짓게 하셨는데 부와 명예까지 다 허락해 주었더니 교만하여 세상 것에 미혹되어 아래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면 헛됩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있나? 라고 후회하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19:12절에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찌어다] 스스로 된 고자는 세상 적인 기쁨은 하나도 없으니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게 하신 것은 신앙생활을 홀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도 하나님이 보내신 택자인 것을 깨닫고 부모님께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심어 그 한 생명을 살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늙었다 하여 이미 살리는 일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첫 삼 년 반 환난이 가까워 오면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기를 기쁨으로 여기며 사니 즐겁습니다. 내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 되어 나의누이 나의 신부라 불러주시는 것을 확신하고 나아가니 누가 뭐라고 하여도 즐겁고 기쁘기만 한 것입니다. 마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