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苧童 권 녕 하
진부한 꿈 이야기다. 평생 살면서 요상한 꿈을 한두 번 꾸어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써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꿈의 경계선이 요 모양 요 꼴로 헷갈린다면, 과연 뭐가 현실이고 사실은 무어란 말인가. 그래서 써서 남겨야겠다고 판단했다.
한 밤중 야밤에 걸려온 휴대폰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셋이서∽, 기념으로∽, 반가우니까, 사진 한 장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지금 오겠어?”
말인즉슨, ‘기념사진을 함께 찍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바로 올 수 있는지’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게 ‘전화해보라’고 시킨 분이 누구인지 굳이 밝히고 있었는데, ‘그분의 초청이니 거절하지 말라’는 일종의 압력까지 느껴지는 어투였다. 이런! 말이 초청이지, 대놓고 아랫사람을 호출하듯 하는 수준이었고, ‘전화 해보라’고 시켰다는 그 분은 바로 스승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양하거나, 거절하기에 많이 난처했지만, ‘지금 오라는 지금’이 야밤이지 아니한가.
도대체 한 밤중 이 시간에 뭔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 말에 따르자면, 자다 말고 한 밤중에 외출하여 사진 찍으러 나가게 생겼으니! 기념사진이라면, 내일 밝을 때 찍는 것이 낫지, 한 밤중에 불러내다니! 참 딱한 노릇아닌가. 평소 같았으면, 그 분의 의견과 결정 그리고 처신을 존중해왔기에, 당연히 “네, 가겠습니다” 했을 터이지만, 지금은 깜깜한 한 밤중 아닌가!
그렇다 해도, 전화까지 주셨는데, 오해 없도록, 듣기 좋은 말로, 좋은 자리에 불러주셨는데, 개인적 사정 때문에, 오늘 밤에는 못 갈 것 같다고, 사양하는 것처럼, 거절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정도 상황은 오히려 내 쪽에서 ‘배려 해드려야 한다’는 판단까지 들었다. 그리하여, “나 혼자 오라하십니까? 저는 몸이 좀 불편해서, 혼자 움직이기 힘든데∽ 아마, 스승님이 외로우신가 봐요? 잘 좀 다독다독, 위로 좀 해드리세요” 라며 완만한 어투로 이상한 상황을 모면한 다음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그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이 두 분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잖은가? 전화를 한 사람이나, 내가 오길 바란다는 그 분이나, 이미 저승에 간 사람이지 아니한다. 이런! 그렇다면 이미 죽은 사람들이 전화를 했다는 건데, 저승에서 만난 두 분이, 내 생각이 나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자고, 날 오라 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결론은 죽은 사람이 건 전화를 받느라 한밤중에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핸드폰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난 분명 자다 말고 깨어나 그 전화를 받았는데,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이게 말이나 될 일인가! 이걸 누가 믿겠나!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때부터 온 몸에 찬물을 끼얹듯 오싹 소름이 일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에게서 온 전화를 다 받다니! 그것도 사진을 같이 찍자고 호출을 받다니! 소름은 팔에서 다리로, 가슴에서 배 그리고 등으로 온몸으로 번져가며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숨이 가빠지고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저항도 못하고 안간 힘을 쥐어짜고 있는데, 이 때 어디선가 갑자기 비몽사몽간에 대빗자루가 불쑥나타나더니 거칠고 따끔거리는 마른 댓살로 온 몸을 쓸고 때리고 이리저리 굴리고 한동안 난리법석을 치기 시작했다. 그 난리통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어라? 이런! 잠은 이미 깨어있지 않았던가? 여태 깨어있던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게 맞는 거야? 좀 전에 새로 든 정신은 어떻게 된 거야? 더구나 온 몸에 소름이 끼쳐서 죽을 것 같다가 겨우 살아난 것 같은 이 느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꿈속이었는데 깨어있는 걸로 착각했다면, 이렇게 사실적 체험감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 머리 아파!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 원 참! 세상 살면서 별별일 다 겪고 살아왔지만, 잠에서 깼는지 아직 꿈인지 육신의 신경감각이 구분을 못할 정도로 헷갈렸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평소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뽀얀 맨살에 베옷을 걸치고 선녀처럼 눈앞을 날아가도 그러려니 여기곤 했지만, 허공중을 휘청 디뎌 밟고 사직동에서 인왕산 위로 떠올라 목멱산 허공중 위에서 해 떨어지는 한강 하구를 휘 돌아보다 강화도 인근 조강祖江의 혈구穴口를 산부인과에서 치욕스런 자세로 누워있는 여자 진찰하듯 바다에 서서 바라보기도 했지만, 서역으로 급히 떠나기 전 황토고개 너머 잠깐 들른 한옥 대문 앞에서 ‘곧 돌아온다’고 ‘꼭 다시 온다’고 다짐하며 되넘는 황토고개길 장면이 필름 되감아보듯, 완벽하게 똑같은 장면을 수십 년을 반복해서 반강제적으로 꿈에서 보아왔지만, 그리하여 이제는 지구에서 살다가 죽는 게 그리 신기할 것 하나도 없는, 우주의 무수히 많은 생명체 중 하나가 생성되고 소멸해가는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지난 밤 꿈에서 느낀 것처럼, 아니 꿈처럼, 아니 꼭 사실처럼, 드러내 보여준 이 현실감, 이 느낌, 이 이질감이 즉시적인 생명현상처럼 살아있는 육신의 신경계통에 인지되다니!
이같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공존하거나 간혹 범벅이 되어 현실처럼 드러내 보이는 현상이 또 반복되기라도 한다면, 이 현상을 어이 받아들여야 하고, 앞으로 이 세상을 어이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황망하고 정신나간 상태로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정신이 뒤범벅될까 걱정스러워, 결코 두렵지는 않지만, 이 상황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차분하게 현실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앞으로 그나마도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그것도 두 번이나 걸려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져 병원까지 갈 힘도 없을 정도로 빌빌거릴 때였다. 매일 아침 눈 뜨면, 산 건지 죽은 건지, 정신은 있는데 기력은 다 빠져나가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력 하나도 없이,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냥 이대로 죽어도 할 수 없지! 라는 생각까지 들던 때였다.
그 후 수 삼년이 지난 오늘날, 그 때의 황망스런 체험이 떠오를 때마다 분명한 것은, 아직 살아 있을 때 영정사진 쯤은 미리 찍어놓으라는 예지몽을 꾼 것이었고, 언젠간 죽을테니 죽으면 ‘꼭 여기 와서 같이 있자’는 스승님의 초청을 미리 받아놨다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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