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17]《스님의 고백.》
노가다 하기 전, 만화 스토리 쓸 때,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 참 많이 다녔고
가장 많이 간 곳이 절(사찰)과 섬인데
오늘 이야기는 절에서 있었던 이야깁니다.
스님들에겐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 세 가지 있는데요,
나이, 고향, 중이 된 이유.
이런 질문을 스님에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불가의 불문율입니다.
근데, 절에 몇 달씩 있으면서 스님들이랑 친해지고
삼겹살 구워서 소주 한잔 하고 나면
좀 전까지도 처사님으로 부르던 호칭이 형님, 혹은 동생으로 바뀌면서
묻지 않아도 자기 이야기를 술술 잘 해줍니다.
스님들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단연, 보살들 이야긴데요,
절에서는 남자 신도를 처사님, 여자 신도를 보살님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까, 보살들하고 연애한 이야기! 보살들 따먹은 이야기!
엄청 재미있어요.
좀 잘 생기고 인기 있는 스님은
보살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난리라는데요, 뭐.
옷 해주고, 용돈 주고, 차 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그거 대 주려고 육탄돌격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대처에 처자식 숨겨놓은 중들이 쌔고 쌨어요.
하루는 어떤 스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슬며시 하는 말이
△△스님에게 출가한 이유가 뭔지 그걸 좀 물어보라는 거예요.
다른 스님들은 자기 이야기를 다 했는데
△△스님만 아직 자기가 왜 중이 됐는지를 숨기고 있다는 겁니다.
△△스님이 그렇게 철저히 숨기는 것으로 봐서
뭔가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거예요.
이유를 그렇게 감추니까 더 궁금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스님들이 총동원 되어 별짓을 다해봤지만
아직 △△스님의 입을 열지는 못했다는 것이고
도대체 저 작자가 중이 된 사연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치고 환장하겠어서
하루는 큰스님이 △△스님을 불러서 꿇어 앉혀놓고 호통을 쳤답니다.
『야, 이 놈아! 빨리 말을 해! 네가 절간에 들어온 이유가 도대체 뭐야?
지금 이 자리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거면
네 놈은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
보따리 싸서 당장 나가! 너 같은 놈 필요 없어!』
큰스님 앞에 △△스님이 고개를 푹 떨구고 꿇어앉아 있고
그 주위를 20여 명의 스님들이 둘러앉아 있는 상황!
무거운 침묵과 팽팽한 긴장감 속에
40개의 눈이 △△스님을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고.
과연, △△스님은 입을 열까?
그렇게, 긴장된 침묵이 한참 더 흐른 뒤
△△스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느닷없이 큰스님에게 절을 세 번, 3배를 올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큰스님! 이렇게 못난 저를 제자로 거두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대처에 나가더라도 큰스님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면, 내내 건강하기고, 안녕히 계십시오!』
그러면서 천천히 돌아서는 △△스님.
『야, 이 놈아!』
△△스님이 다시 큰스님 쪽으로 돌아 섰습니다.
『지독한 놈!... 알았다, 이 놈아! 말하지 마! 그냥 있어!』
스님의 이 말을 들으니까, 내 머리털이 단번에 확! 곤두서더라구요.
왜냐하면, 당시 나는 만화 스토리 작가였잖아요.
작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곧 돈이라구요.
만화, 영화, 드라마, 소설은
누구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는 경우가 엄청 많거든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엘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15권짜리 만화를 한 편 쓴다면
원고료, 돈이 자그마치 1.800 만 원!!!
그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스님이 출가한 사연을 듣기 전엔
1년이고 10년이고 이 절을 떠나지 않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님의 사연을
꼭, 반드시, 기어코, 끝끝내, 듣고야 말겠다!
그런데, 나도 만화 스토리 작가잖아요.
그래서 작가다운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쳐보는 겁니다.
△△스님이 출가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선 가장 흔한 사례는 여자 문제인데요,
뜨겁게 사랑하는 여자와 장래를 약속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출가를 결심한다는.....
만일 △△스님의 출가의 사연이 이런 거라면, 들을 필요도 없어요.
이런 줄거리는 너무 흔해 빠져서 만화나 영화로 만들어봐야 팔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스님의 사연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자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게 당시 나의 직관이었고,
나중에 알고보니 나의 이 직관은 보기좋게 들어맞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입을 안 열더라구요.
한 번은 이 스님을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등을 밀어주며 자연스레 물어봐도
『뭐... 이유랄 게 없어요. 그냥... 어릴 때부터 스님 되는 게 꿈이었어요.』
이러고 말았는데, 이런 시시한 수법으로는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시간과 노력을 왕창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옷 빨아주고, 운동화도 빨아주고, 스님이 해야 하는 일도
내가 도맡아서 대신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쓸기, 설거지, 법당 청소, 뭐 그런 잡일들.
그랬으면, 고맙고 미안해서라도 얘기를 좀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안 해 줘요.
『그냥... 어릴 때부터 스님 되는 게 꿈이었다니까요.』
줄곧 이러고 말더라니까요.
아, 힘들다!
도대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절절한 사연이기에
저렇게까지 입을 꽉 닫고 철저히 숨기는 걸까!
하기는, 큰스님이 쫓아낸다는 데도 열지 않은 입인데!
하지만, 그럴수록, △△스님이 함구할수록 그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나의 의지도
점점 더 불타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돈을 좀 쓰기로 작정하고
△△스님을 고급 횟집 조용한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둘이 술을 진탕 마셨어요.
그랬더니 어! 이게 웬일입니까! △△스님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양 처사님! 제가 출가한 이야기를 꼭 듣고 싶으세요?』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아!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드디어 듣게 되는구나!
『예, 스님. 꼭 듣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푹 떨군 채 한참을 고민하더라구요.
그렇지. 그렇게 가슴 쓰린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할 수는 없지!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손에는 흥건히 땀이 쥐어지면서
초조와 긴장으로 내 머리가 곧 터질 것 같더라니까요.
그렇게 뜸을 들이더니 그로부터도 한참 만에 입을 열었는데
『어릴 때부터 스님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만 갑시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먼저 내빼더라니까요!
아유, 저 개 씹새끼를 그냥 확!!!!!!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진짜로 △△스님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 그 이야기도 △△스님이 꾸며낸 가짜 아니냐구요?
아니요, 진짜예요. 들어보면 진짠지 꾸며낸 말인지 정확하게 아는데
그 이야기는 100% 사실이에요.
미향이라고, 면목동에 사는 내 여자 후배가 하나 있는데요,
엄청 예쁘고 요염하고 애교가 철철 넘치는 앤 데,
그 애한테 내가 전화를 했어요.
『미향아! 너 오빠 살리는 셈 치고, 오빠 좀 도와줘라
일만 잘 되면 용돈 듬뿍 줄게!.』
이래서 미향이가 내려왔고
△△스님과 함께 셋이서 술을 한 잔 걸친 다음 노래방을 갔고
미향이가 스님의 목을 껴안고 부르스를 추면서
작업을 아주 확실하게 해놓고 올라갔습니다.
그 이튿날,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았더니
△△스님이 사과를 깎아서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 오더라구요.
그리고는, 머리도 긁적거리고 쭈뼛쭈뼛 거리다가 이러는 거예요.
『저기... 미향이 보살님은 겨, 결혼은 하신 분이세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구라를 왕창 쳤어요.
『아니요. 출판사에 근무하는데, 아직 애인도 없어요.』
『종교는... ?』
『성북동에 법정스님이 세우신 길상사 있잖아요? 그 절 신도에요.』
『그러면... 우리 절에도 가끔 오시라 그러세요.』
『거, 좋지요. 기차타고 여행와서 기도두 하고, 등산도 하고...
미향이한테서 좀 전에 전화가왔는데, △△스님 성격이 너무 좋다고 그러던데요.』
『아유, 제가 뭘...!』
『스님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몇 달 후에 한번 더 오겠다 그러더라구요.』
『아, 예. 근데 저기...』
『뭐요?』
『미향 보살님 저, 전화번호 좀... 』
『안 돼요! 스님은 나한테 아무 도움도 안 주는데,
내가 뭐하러 스님을 돕겠어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출가한 이야기...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예. 그런 얘기도 하나 안 해주는데, 나라고 전화번호 대주고 싶겠어요?』
『제 얘긴... 사실... 별거 아닌데요.』
『별 거 아닌데 왜 말을 못 해요?』
『좀... 쪽팔려서요.』
『그러면, 나 혼자만 알고 있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 얘기 해봐요!』
이랬더니 그제서야 바른말을 하는데,
듣고 나니까 참 어이가 없더라구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갑자기 머리가 막 빠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요?』
『겨우 3학년 때 대머리가 된 거예요.』
『그래서요?』
『그래서, 대머리도 괜찮은 직업이 뭐 없나 생각하다가...... 』
『그러면, 대머리 때문에 출가를 했다구요?』
『예. 스님은 머리 없어도 되니까, 제가 딱이잖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꾸민 건 아니고, 사실은 사실인데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참 기가 막히고, 맥이 탁 풀리면서, 울화통이 터졌고
내가 장장 석 달을 쫓아 온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 없고, 이렇게 시시하고, 이렇게 짧은 이야기일 줄을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솔직히 반짝, 하는 재미는 있어요. 그런 얕은 재미는 있어서 웃기긴 웃기는데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 장편 만화로는 쓸 수가 없는 소재인 거예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은 후련한데, 돈이 아깝더라구요.
회 샀지, 밥 샀지, 술 샀지, 노래방 비에다가
미향이 차비 20 만 원 줬으니, 이게 얼맙니까!
거기에다가 이 새끼 빤쓰 빨아주고, 양말짝 빨아주고,
마당 쓸고, 법당 청소하고, 설거지 하고... 니미 씨펄!
아, 존나 억울하고, 열 받는다!
이 개새끼는 이렇게 후진 이야기를 가지고
마치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처럼 온갖 똥폼을 다 잡았으니!
성질 같아서는 주먹으로 이 새끼 대갈통을 한 방...
『스님, 얘기 잘 들었구요, 나 글 써야 되니까, 그만 나가보세요!』
『저기... 미향 보살님 전화번호는... ?』
『지금 사람 약통 올리는 거유??? !!!』
2018년. 2월. 19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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