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16)
이것이 인간인가
- 쉐마
오늘도 저녁이면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다정한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당신.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행복이라는 말조차 모른 채 진흙탕 속을 뒹굴며
오직 빵 한 조각을 위해 싸우다가
‘예스, 노’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생사가 오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과연 인간인지….
한 올의 머리카락이나 이름도 없이
무뇌아나 한겨울 개구리처럼 텅 빈 두 동공과
생리마저 얼어붙어버린 그런 여자들이 있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과연 인간인지….
난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당신 스스로 깊이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당신 가족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따뜻한 집에 있을 때든, 혼자 길을 걸을 때든
잠자고 있을 때든, 깨어있을 때든
항상 가슴 깊이 반추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 가족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결국
당신도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 히브리어 쉐마Shema는 ‘너희는 들어라.’라는 뜻으로 유태교의 주기도문 같은 것이다. 유태인은 어릴 때부터 이것을 가르쳐 성인이 되면 아침과 저녁마다 쉐마를 부르며 기도하는데, 이 시의 마지막 몇 구절은 그것을 재구성한 것이다.
- 프리모 레비(1919-1987),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 이산하 편역, 노마드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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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으로 인한 양측 누적 사망자가 15일 현재 4,000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가자지구의 사망자는 2,670명이라는데 사망자들 중 60%가 어린이와 여성이랍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전해지는 뉴스에서의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처참합니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지난 8월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를 소개하면서 언급하기는 했으나 세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번 전쟁에 관한 뉴스를 통해 많이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애초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역사 외에도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여러 전쟁과 관련된 기록들을 챙겨 살피다가 폭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거의 민간인이고 그들 중 60%가 여성과 어린이라는데 새삼 역사적인 기록들을 들춰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다 덮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전쟁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의 범주에 드는 것일까도 사실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시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이 시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수기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화학자이자 파시즘에 저항한 유대인 레지스탕스이기도 했던 시인은 24살 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10개월의 수용소 생활을 경험하였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40여 년간 증언자의 삶을 살았지만 1987년 68세 때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합니다. 무엇이 그를 자살로 이끌었을까요. 그 원인이 요즘 가장 많이 지목하는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요. 피해와 가해의 범주는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유대인은 서구의 역사에서 엄연한 피해 민족이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코 피해국이 아닙니다. 무장군의 공격에 민간인 학살로 대항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의 질문은 어느 한 시대, 어떤 특정한 민족에게만 향하여 있지는 않습니다. 이 질문은 동일한 상황이라면 어느 시대, 어떤 민족, 누구에게라도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이번에는 시인의 자민족에게로 이 질문을 돌려세웁니다. (20231018)
첫댓글 유태인 시인 프리모 레비의 절규처럼 모든 생명파괴 행위들을 즉각 그치고 생명공경의 본성이 드러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