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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2]
천도교현대사 사건과 인물
천도교 대의원대회와 교헌 개정
탁암 심국보_편집주간
올해 9월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 천도교단의 방북은 배제된 상황에서 내년의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이 언급되었다. 또 정부는 동학혁명의 성지이기도 한 서소문공원의 ‘가톨릭성지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불교나 기독교(개신교, 가톨릭) 중심의 편향적 정부 정책이 바뀔 이유가 없다. 다른 까닭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단을 가까이 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남북 종교교류는 천도교에게는 좋은 기회이고, 천도교의 교세가 성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인가. 앞으로 그렇지 않을 듯하다. 현재 북한의 조선종교인협회 회장은 가톨릭에서 맡고 있다. 조선종교인협회는 천도교의 최덕신 전 교령이 북한에서 시작했고 오랫동안 천도교인이 그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북한 천도교는 북한정권의 도움과 지원을 받고 북한 사회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다고 하지만, 북한이 싫어서 탈북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도교는 북한정권과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불신, 외면하는 경향이 크다.
천도교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은, 이제 정치적 상황으로 천도교를 성장시킨다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교리현대화의 실패, 교령들의 월북, 미미한 사회참여 등으로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천도교를 불신하고 외면한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하고자 천도교는 ‘중흥’ 또는 ‘대도중흥’을 내걸고 반성과 실천과제를 꾸준히 발표를 해왔지만 성과는 적었다.
정확하게 30년 전인 포덕 129년(1988), 종의원이 행한 설문조사는 모범적이었다.
이때 나온 응답은 ⓵포덕교화부문 ⓶교직자 ⓷교단의 체제와 기구 ⓸재정문제 ⓹부문단체와 부설기관 ⓺기타 여섯가지로 정리되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단의 체제는 개편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였고, 개편이 아니라 개혁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교령중심보다는 종무원장 중심제로 가야하고, 속인제 연원조직을 속지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재정 또한 성미를 철저하게 실행하고, 재단운영 또한 임대사업을 넘어 산업사회에 맞게 수익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재정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총부 산하 단체나 부설기관들의 활동이 부진하나 사회참여에 적극 나서기를 바라는 의견도 나왔다. 전위단체의 새로운 조직, 동학의 문화유산 계발과 전승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사는 1995년, 1996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있었다. 조사와 설문은 있었고 해법도 비슷했지만 해법에 대한 실천은 없었다. 대학은 설립되지 않았고, 여전히 교령중심적이며 속인제 연원조직도 그대로이며 천도교유지재단의 수익사업 중심의 재산관리 또한 현재까지도 비판받고 있다.
이글에서는 천도교대회의 현황을 중심으로 몇몇 과제에 대해 알아본다.
대의원대회(127.4.2)
대회와 교헌 개정의 흐름
천도교교헌은 63년 전, 포덕 96년(1955) 1월 임시대회가 소집되어 중앙대교당에서 제정되었다. 당시 ‘교약’을 교헌으로 하고 ‘천도교총부’를 천도교중앙총부로 바꾸고 교령제를 채택하였다. 그때의 교령은 공진항이었고 부교령은 이병헌이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천도교교헌은 수차례의 개정되었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포덕 102년(1961) 4월, 교헌 개정을 통해 부교령제를 폐지하고 종무원을 신설하여 종무원장 중심으로 조직 구조를 변경했다. 새 교헌에 따라 부교령제 대신 종무원장제를 채택하여 종무원장으로 하여금 교화행정의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포덕 104년 4월 전국대회에서 교령에 신용구가 재선되고 종무원장을 선출하였다.
개정된 교헌에 따라 종무원장 중심체재로 운영된다. 포덕 105년 12월 전국대회를 개최하여 교헌개정하고 총부임원을 선출하고 신용구 교령은 주로 지방에 상주하면서 대외포덕과 교인들의 교화에 전념하였고, 총부에는 김경태 종무원장을 중심으로 교무행정이 이루어졌다. 이 무렵 의암성사동상건립, 의암성사전기간행, 새국민강좌(청년회), 교역자강도회 등의 성과가 있었다.
포덕 107년(1966) 12월 전국대회, 특히 연원회를 개최하여 현기실을 질적 양적으로 강화하여 중앙총부의 권위와 위상을 높여 교단중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원주직으로 10년 이상 종사한 70세 이상의 생계가 어려운 교역자를 봉양하기 위해 정양원을 설치하기로 하고 정양원 규정을 의결하였다.
포덕 108년 2월 10일 신용구 교령이 노환으로 환원하자, 4월 임시전국대회에서 최덕신 전 외무장관을 교령으로 추대하고, 이해 12월 임시전국대회를 개최하여 교령이 연원회의장을 겸임하는 교령중심제로 교헌을 개정하고 최덕신을 교령으로 재선출하였다. 화악산수도원 건립, 새인간연맹창립, 수운회관건립(112.4) 등이 이루어졌다.
수운회관은 최덕신 교령의 추진력과 건립특성금을 낸 많은 교인들의 정성이 모아져 이루어졌다. 준공 후 체불된 건축비로 곤란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부채문제는 청산되었고 교회중흥의 꿈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수운대신사유허비건립, 구미용담성지 성역화사업 등이 실시되었다.
수운회관 건립(112.4.5)
겉도는 종무원장중심제
최덕신 교령 사임 이후, 지나치게 강력한 교령의 권한을 줄이기 위한 교헌개정을 시도하게 된다. 현재 교령의 임기는 3년 단임제로 포덕 135년(1994) 제28차정기대의원대회에서 개정된 교헌에 따르고 있다. 그전까지는 연임이 가능했지만 연임으로 인한 교권의 독재화를 우려하여 단임제가 유지되고 있다.
임기가 너무 짧아 제대로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거나 교령이 너무 자주 교체됨으로 해서 대외적으로 교단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가질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교령 임기에 관해 천도교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교헌을 개정하자고 하고 있지만 여전히 3년 단임에 그치고 있다.
포덕 136년(1995) 개정된 교헌에서 교령에의 권한집중을 지양하고 교무를 종무원장 책임하에 두는 종무원장 중심제로 전환한다며 천도교유지재단 이사에 교령과 연원회의장을 제외하여 이들의 신앙 교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나 후속조치가 따르지 못하여 말뿐인 종무원장중심제였다. 2000년에 들어서 교령선거관리규정과 교령선거관리운영예규가 삭제되었다.
교령이 새로 선출될 때마다 3년 임기 내에 천도교를 발전시키겠다는 발언을 하지만 변하는 것은 크게 없었다. 천도교의 조직은 3년마다 변화를 추구했지만 큰 변화가 없었고, 당연하게도 세력확장, 포덕활동에 한계를 노출하였다.
포덕 115년(1974)년 5월 최덕신 교령, 김경태 연원회의장 공동명의로 발표된 ‘대도중흥에 적극 참여하자’는 담화문은 천도교단의 이러한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한 것이었다.
독신교인!
신앙에 충실한 사람을 구하자는 이 담화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이다.
“전국의 교세현황을 세밀히 분석 검토한 결과 오관실행 교인과 도가완성이 된 독신교인이 너무 적을 뿐 아니라, 교회조직의 근간이 되는 각급 교역자마저도 독신교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 교회 각급 기관을 독신교인으로 구성하여 교회의 근간을 확고히 해나가겠다.”
당찬 수련과 사회참여
이십여 년 전인 포덕 137년(1996) 3월 발표된 ‘천도교교역자 의견 조사보고’를 살펴보자. 이 조사보고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천도교의 교세가 크게 위축된 원인으로는 가장 큰 이유를 ‘교단내부갈등’(53.8%)과 ‘교육(인재양성)기관의 부재’(53.8%)를 꼽았다. 천도교 발전방안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앙심 강화(74.0%), 대학교 설립(59.5%)이었다. 천도교의 현재 모습은 ‘앞으로 잘 될 것이다’가 61.3%, ‘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다’가 25.4%였다.
천도교는 전문성직자 양성뿐만 아니라 천도교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대학설립은 실패했고, 천도교 교육기관이라 할 종학대학원 역시 다른 종교와 비교했을 때 수강생의 수와 교육체계는 많이 뒤떨어진다고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천도교의 교세확장을 위한 기관은 부족하고, 전위단체의 활동은 다양하지 않다.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학교나 사회복지시설의 수는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적다. ‘교단내부갈등’ 역시 해결할 방도는 여전히 어려워 보이는 만큼 천도교가 ‘앞으로 잘 될 것이다’ 이라고 대답했던 것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천도교 발전방안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신앙심 강화’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
천도교신앙이란 무엇인가? 수운대신사의 고행수련의 동기는 개인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적 성격이었다. 대신사의 이상을 잘 이어받아 천도교는 주문수련과 함께 사회참여에 열심이었다. 신성사님은 그 빼어난 모범이었다.
작금의 낮은 수련, 미미한 사회참여를 극복하는 길은 신성사님을 따라 ‘죽기로 작정하고 뭉쳐서’ 모임을 만들고 ‘당찬 주문수련을 계속하고 사회참여를 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길이 없다.
학생특별연성(118.8.3)
‘다시 개벽’의 힘을 기르자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덧붙인다. 밴드에 올라있는 어느 분의 글이다.
“천도교가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종교 방북단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기독교 불교와 원불교만 포함되었다. 근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천도교가 이처럼 찬밥 대우를 받으리라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용담성지에 정신기관의 총애가 될 기관을 집결할 수 없는가. 향후 예상될 험고를 타계할 방안으로 전 교인 천일기도를 시작하자. 다시 개벽의 힘을 기르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하여 본다.”
또 덧붙이는 아래 글은 지난 12월 중순 종의원운영위 등에서 논의된 의견의 일부이다. 이러한 의견이 천도교대의원대회 등을 통해 얼마만큼 실천되는가는 천도교인들의 동귀일체의 정도에 달렸다 해도 될 것이다.
교헌 등 천도교의 제도는 한때 우리나라 민주주의 제도의 시발점이기도 하였다. 작금의 천도교 현실은 우리사회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뒤져있다. 이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와 천도교의 간격은 더욱 벌어질 것이고 천도교는 쇠락할 것이다. 쇠운을 종식시키는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1. 지방교구의 자치강화는 천도교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교헌개정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분야이다. 지역 대교구창설이 필요하다.
2. 교령사를 용담으로. 교헌 제4조의 ‘서울특별시’를 삭제하여 용담으로 교령사 이전이 가능하게 한다. 교령사를 용담으로 옮기는 것은 경주를 동학 천도교의 도시로 만드는 시작이며, 천도교 포덕의 강한 거점 마련이다.
교령을 연원회에서 선출하고 임기 등 조정, 현기사 등 교령자문기관 강화, 경주시 등에서 추진하는 용담 성역화사업, 해월신사생가복원사업과도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
3. 종무원장 중심제로 전환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신설하여 교령, 종무원장 등 출마자들의 기탁금, 자격 등을 규정한다.
4.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연원제를 교구별 연원제로의 전환한다. 도정, 도훈 등 기득권을 가신 분들의 조건 없는 양보가 필요하며, 허심탄회하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고심하여 작심하여야 한다.
5. 감사원의 감사기능을 유지재단, 종의원 등으로 대폭 이관하고 현 감사원 기능을 조정한다.
6. 여성의 비율을 40% 이상으로 하여 일남구녀一男九女를 실현한다. 대회대의원, 종의원, 종무위원 등 모든 선출직, 임명직에서 여성의 비율을 높여, 어느 한 성性이 60%를 넘지 않도록 한다. 자리를 마련하고 역할을 주고 능력이 부족하면 키워야 한다. 이는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마찬가지이다. 당장 40%가 과하다면 30%로 경과조항을 두면 된다.
7. 교헌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포덕 160년 1월 중에 열어 위 사항을 구체화하고 교헌개정의 세부적인 안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