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붕금어 그 아이처럼
안동 영남초 교장 김진향
25여 년 전 어느 학교에서 1학년을 담임할 때였다. 스무 명 남짓의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교실, 그날은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동시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확한 제목과 내용은 모두 기억나지 않지만 금붕어관련 동시로 일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이들에게 따라 읽기를 시키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내 선창에 따라 귀여운 표정으로 잘도 따라 하는데 유독 금붕어라는낱말을 계속 붕금어로 발음하는 어떤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개인 지도를 하고 있었다.
“자, 잘 듣고 따라 해봐. 금붕어가 살랑살랑 헤엄을 쳐요.”
“붕금어가 살랑살랑 헤엄을 쳐요.”
“붕금어가 아니라 금붕어야. 자, 다시 금붕어.”
“붕금어.”
“음, 아니야, 금붕어라니까. 금붕어.”
“붕금어.”
“이상하네. 왜 금붕어가 붕금어가 되는 거야. 다시금붕어.”
“붕금어.”
“자, 그럼 한 글자씩 따라 해볼까? 금~”
“금~”
“붕~”
“붕~”
“어~”
“어~”
“옳지, 좋아. 그럼 연결해서 금붕어.”
“붕금어.”
“아이참. 붕금어아니고 금붕어라고. 금붕어.”
“붕금어.”
“음~ 천천히 금 붕 어.”
“붕 금 어.”
“후~~~”
“.......”
대부분의 아이들은 글자를 익히고 입학을 해서 따라 읽는 것뿐 아니라 보고 읽기도 가능했지만 이 아이는 전혀 사전 학습이 되지 않은 아이였기에 혼자 읽기는 불가능한 아이라 따라 읽기 밖에 할 수 없는데 그것 또한 안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속이 터졌지만 잠시 숨을 들이마시며 그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사실 동시 공부에서 발음이 뭐 중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발음을 정확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왜 그럴까? 흥미도 생기고 궁금하기도 했다.
‘혀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그 낱말을 들을 때만 청각적인 문제가 있나? 아니면 내가 너무 아이에게 몰아세우듯 한 건 아닐까? 어쩜 내 말과 표정에서 아이는 벌써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짐작으로는 아마도 심리적인 것이 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보기로 했다.
잠시 후
“음~ 천천히 해보자. 그냥 편안하게 따라 하면 돼. 잘 안돼도 괜찮아.”
나는 나름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편안하게 해 준다고 생각을 했지만 또다시 반복되는 현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신기하네. 이게 왜 안돼? 도무지 알 수가 없네.’
그렇다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있는 것 같은 아이 앞에서 차마 이걸 왜 따라 하지 못하냐고 대 놓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아이는 그저 눈을 껌뻑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본인도 알 수 없다는 듯 이해를 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다시 몇 번을 반복해도 여전히 금붕어가 아닌 붕금어로 발음을 했다. 한 글자씩 하면 잘 따라 하다가도 붙인 낱말로 하면 이상하게 또다시 붕금어로 발음을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금붕어와 붕금어를도대체 어떻게 구별하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내가 알 수 없는 그 어떤 장애로 인해 잘 안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도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서로 답답할 뿐이다.
아마 본인도 얼마나 열심히 따라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도무지 어디가 잘못됐는지 스스로 찾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겠지. 주눅이 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모든 공부가 좀 뒤처지는 아이였던지라 무리하게 바르게 잡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단지 유독 그 낱말에 특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당시로서는 무척 신기했다. 물론 며칠 시간을 좀 더 두고 다시 천천히 해보며 한참 후에야 겨우 바른 발음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얼마 전부터 주위의 권유와 앞으로 보낼 여가 시간과 건강을 생각해 이것저것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며 작은 배움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배움이란 것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움이 따른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내가 딱 그 모양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것 같고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몸이 영 따라 주지 않으니 때로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옆에서 열심히 설명해 주면 또 이해가 간다. 시범을 보여주고 따라 하라면 그게 또 마음만큼 되질 않고 이상하게 엉뚱하고 엉성한 자세가 나온다. 답답한 선생님이 한 동작씩 끊어서 가르쳐주면 또 어지간히 따라 한다. 선생님이
“네. 좋아요. 이제 연결 동작으로 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시원하게 하고 잘 될 것 같아 연결해서 해보면 또 되지를 않는다.
“하라는 대로 하시면 되는데 자꾸 엉뚱하게 하시네요?”
“그래요? 난 하라는 대로 하는 건데 몸이 안 따라 줘요.”
그저 구차한 변명으로 계면쩍음을 모면해 본다.
“다시 해보세요.”
“네. 알겠어요.”
하지만 또 이상한 동작이 나오니 선생님은 천천히 끊어서 반복적으로 시범을 보여 주신다. 나는 또 열심히 따라 하지만 또 이상하단다.
“하, 저는 왜 안되지요?”
“처음 배우면 다 그렇죠 뭐. 편안한 마음으로 하세요. 그래도 제대로 동작을 하시려고 생각하며 하셔야 해요.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해볼까요?”
선생님은 아마 내가 심리적으로 위축될까 봐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며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데 한동안 나는 또 계속 엉뚱한 몸짓을 보이니 대 놓고 뭐라 하지는 못하지만 선생님도 답답한 모양이다.
“초보자들이 잘 안되는 이유가 아직 몸에 배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이유가 많아요.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편안하게 하세요.”
하지만 편안한 마음도 안되고 동작이 잘 될 때의 그 느낌을 잘 느껴보라는데 도대체 그 느낌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말은 쉬운데 정말 쉽지 않다.
그러면서 25여 년 전의 그 아이가 문득 생각이 났다.
‘하~ 내가 요즘 그때 그 아이처럼 붕금어가 된 기분이네. 물론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그 티를 좀 벗을 때도 되었는데 왜 아직도 붕금어에 머물러 있는 거야. 선생님의 시범이 머리는 이해하는데 도무지 몸은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이상하네. 이게 왜 안돼?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내게 금붕어는 언제 오는 거야.’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 아이도 그때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이었으려나?
지금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그때의 내 마음 같으시려나?
하지만 그때 그 아이처럼 시간이 좀 지나면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금붕어가 되는 날이 오리라 믿어 본다.
요즘 의도치 않게 붕금어생활을 하다 보니 새삼 그때의 일이 떠오르며 내가 나름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좀 더 세심히 관찰하고 더 이해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그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궁금해졌다. 어떤 어른으로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쯤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잘 살고 있지 않을까?
그 아이는 어린 시절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걸 그 아이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