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마라나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20)
그 무시무시한 지옥 광경을 본 뒤에 주님과 나는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여 산을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내가'동물의 산'이라고 불렀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내가 앞에서 대략 설명했던 바와 같이 모든 동물들이 사이좋게 함께 어울려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참으로 경이로운 곳입니다.
이사야서는 동물들이 있는, 이 평화로운 장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5:24,25).
고통스러운 지옥 불을 보고 난 뒤라 의기소침해졌던 내 마음은 이 평화로운 광경을 봄으로써 기운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폭력과 절망의 지옥과는 대조적으로 천국은 평화와 기쁨의 장소입니다. 주님의 '동물의 산'은 영원한 기쁨과 행복의 장소입니다.
동물들이 우리와 함께 낙원에서 살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위안이 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애완동물이 그들과 함께 천국에 있게 될 것이지 궁금해합니다. 나는 천국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고 동물들이 평화롭게 거하고 찬란한 빛이 비취는 곳으로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이 다시는 아픔이나 고통이나 죽음이나 고난을 겪지 않는 곳이란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황금의 성들
동물의 낙원을 잠시 둘러본 후, 주님과 나는 순금으로 포장된 길가에 빛나는 저택들과 성들이 서 있는 해변가로 다시 갔습니다. 한 성에 다가가자 주님은 내가 들어가도록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의 어휘력으로는 이 왕궁 같은 집의 실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 벽들은 매혹적으로 번쩍이며 빛나는 갖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 다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줄을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순간 나는 이것이 꿈인가 생각했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은 분명히 실재하는 성이었습니다.
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Tara) 농장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웅장하고 으리으리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을 때 주님은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위층 방들의 웅장함을 상상해 보았을 때 나는 경이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계단 위에서 보니 카펫은 화려한 흰색이었습니다. 나는 사면(四面)이 매우 크고 번쩍이는 거울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파우더 룸에 들어갔습니다. 그 거울들로 인해 방은 더욱 밝아졌고 갖가지 색깔들이 벽을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그 방은 우리가 환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그 어떤 성보다 더 경탄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숨이 막힐 것 같았던 기쁨과 황홀감은 곧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하나의 기억 때문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내 앞을 스치자 나는 다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나는 카펫에 엎드려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주님이 아래층에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몸을 추스르고 내려갔습니다. 나는 앞에 서 계신 주님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주님은 내게 손을 내밀며 물으셨습니다."이 집이 마음에 드느냐?"
"주님,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진실로 행복하지는 않아요. 전에는 천국을 방문할 때마다 기쁨이 넘치고 영적인 찬송을 불렀는데 이번은 그렇지가 않아요."
주님은 이해하셨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내 손을 잡고 그 집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금으로 된 다리를 건너 우리가 옷을 갈아입었던 흰 건물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 흰 건물에서 주님은 매우 인상적인 신사 한 분을 내게 소개하여 주셨습니다."아브라함과 인사하여라."
예루살렘 성은 기다리고 있다!
아브라함! 그는 믿음과 순종의 위대한 조상으로서 온 세상에 맞서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선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초석을 놓고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닦아 놓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이같이 훌륭한 분을 실제로 만난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브리서 11:8-10).
그때 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당화된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만드신 토대가 있는 도성'에서 항상 살고 있었으며, 나는 거기서 그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경이로워서 나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브라함은 긴 백발에 흰 수염을 늘어뜨린 아주 위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인처럼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젊음과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내 어깨에 손을 대더니 "딸아."하고 짧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 가득 찬 미소를 보고 그의 축복이 내 삶에 임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와 이 세상의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은혜를 입힌 이 위대한 인물을 즉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는 것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준 사람은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그는 위대한 족장들과 예언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컫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브리서11:16-19).
생전 처음 나는 아주 명쾌하게 이 구절이 의미하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그리고 믿고 순종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한 도성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자신의 독자를 바쳤습니다. 그는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도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우리 죄를 위한 제물로 주셨습미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묻히셨으나 하나님께서 제3일에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다시는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한 천사를 불러 나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그 천사는 나를 파우더 룸으로 데려갔는데, 나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천국의 의상으로 갈아입고 면류관을 썼습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다시 나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실 때면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노래하고 춤추기 시작합니다.그러나 이때는 그저 울고만 싶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바로 옆에 앉게 하시더니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주님은 내가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에 갖고 있는 슬픔을 감지하셨습니다.
"내 딸아," 하고 부르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그 지옥 구덩이에서 본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네게 이러한 일들을 보여 줄 필요가 없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나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지옥에 나의 자녀 어느 누구도 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누구든지 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게 하려고 이러한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주님은 나의 손을 잡으시고, 아브라함이 있었던 곳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옷을 다시 갈아입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나를 또 다른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거기서 나는 끝없이 펼쳐진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낙심이 완연한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병원의 환자복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힘없이 헤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그들이 입고 있는 회색 옷과 마차가지로 생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발 앞에 있는 땅을 응시하면서 목표도 희망도 없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여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들은 누구예요?"
"그들은 죄를 지은 '크리스천' 들이다"
"무슨 일이 그들에게 생기나요?" 나는 궁금해서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심판 후에 불못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그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해하다가 그들이 있는 이 골짜기가 저 불타는 구덩이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소위'크리스천'이라고 불리지만 진정 주님을 모르고 계속 의도적으로 죄를 짓다가 죽기 전이나 휴거 전에 회개하지 않은 이들은 영원히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9-32절,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모두 이러한 크리스천들이 사는 모습을 실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1:29-32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분쟁,사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자요 비방하는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자요 능욕하는자요 교만한자요 자랑하는자요 악을 도모하는자요 부모를 거역하는자요 우매한자요 배약하는자요 무정한자요 무자비한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갈라디아서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것과 분쟁과 시기과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요한계시록21-8 그러나 두려워하는자들과 믿지 아니하는자들과 흉악한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언젠가 어떤분이 어떻게 죄 있는 크리스천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상에서 선악간에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하여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심판의 보좌 앞에 서야 합니다(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에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내 딸아, 이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순종과 정결한 삶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 말하는 이유란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에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의 아름다운 곳들로 갈때 마다 대개 흰 건물에서 옷을 갑아입고 황금 다리를 건너서 갔지만 그 무시무시한 곳으로 주님이 나를 데려가실 때는 천국문 밖에 있는 다른 길들로 갔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