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인 안동으로 올라가다보면 항상 지나게 되는 길에 영천 신흥사 신월동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제 465호인데 탑만 보면 내려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여 오늘은 여유도 있고 하여 들러기로 하였다. 큰 도로에서 얼마들어가지 않는 곳에 신흥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집 마당에 우뚝 서 있는 탑이 바로 신월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이 곳에 있던 절의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신흥사라는 절집이 있으며 이 곳에서 보호를 하고 있다고 한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 우뚝 서 있는 탑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 동안 지나만 다니다. 이렇게 이탑을 보게 되어 기쁘다. 다시 발길을 돌려 의성으로 향했다. 의성5층석탑(국보)이 보수에들어간지 꽤오래되어 다시 찾아 갔더니 아직도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2015년 11월에 보수작업을 마친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하여 다른 곳을 찾아 보았더니 안평면에 적석탑이 있어 찾아 갔다. 사진 상으로는 산청의 구형왕릉과도 흡사한 모습이라 호기심이 생겨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 들어가는 입구에 멋진 바위산이 있었다. 누륵바위라고 한다. 마치 누룩을 빚어 켜켜이 쌓아놓은듯한 형상이다. 아름다웠다. 변산반도의 채석강의 바위들과 흡사하다. 입구에서 차로 약 10분정도 들어가니 의성 석탑리 방단형적석탑이 나왔다. 겉보기는 구형왕릉처럼 돌무덤으로 보였는데 가까이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니 석탑이 틀림없다. 기단과 층탑이 구분되고 1층탑의 사방에는 부처님을 모셔두었던 감실이 있었다 두개의 감실에는 아직도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두개는 감실만 남아 있었다. 이와 비슷한 형식의 적석탑은 안동 북후면에도 있다. 고려시대삭탑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 보물제465호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4.75m이다.
탑이 세워질 당시의 절의 이름이나 규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최근 이 터에 법당을 짓고 신흥사(新興寺)라 이름지어 탑을 보존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기와집 모양의 탑신(塔身)을 3층으로 쌓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기단은 위아래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 부분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 각 면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8부중상이란 불법을 지키는 여덟신의 모습으로 석탑에서는 주로 기단에 새기는데, 탑신에 모셔진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사용하였으며,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1층 몸돌에는 4면 모두 문짝 모양의 조각을 새기고 각각 그 안에 자물쇠와 문고리 모양의 조각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모두 4단으로 새겼고, 처마선은 수평을 이루나 두꺼워 보인다. 지붕돌 경사면의 네 귀퉁이는 이러한 두터운 지붕돌에 비해 아주 경쾌하게 위로 치켜올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1층 몸돌이 큰 것에서 오는 불균형이 있고 각 4면에 모두 조각을 새겨 과장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당시의 수법만은 잃지 않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1호. 높이 4.46m. 석탑은 남북으로 좁게 이어진 골짜기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변의 산세는 동쪽과 남쪽에 비해 북쪽과 서쪽이 다소 높지만 대체로 나직한 편이다. 때문에 깊은 골짜기 속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이 조용한 일반적인 산지 사찰의 석탑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석탑에서 북서쪽으로 100여 m 떨어진 산 중턱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듯한 부도 1기와 석등이 파손된 채 있고, 작은 건물터와 함께 소규모의 축대가 흩어져 있다.
석탑은 주변의 지세로 인해, 동쪽에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평평한 대지 위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다층석탑인데, 단면이 네모난 층단을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시켜 여러 층 쌓아 올린 모습이다. 현재 부분적으로 훼손된 상태이다.
석탑은 대체로 반암(斑岩)을 깨뜨려 만든 깬돌로 조성되었다. 각 층단의 바깥면은 널판처럼 넓은 돌을 가로로 넓게 쌓아 올려 반듯하고, 그 안은 작은 깬돌로 채워져 있다. 층단은남쪽면과 동쪽면이 6층이고, 서쪽은 가장 아래 층단이 파묻혀 있어 5층만 드러나 있다. 가장 아래 층단을 기준으로 하면, 이 석탑의 층수는 5층이 되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각 층은 위로 올라갈수록 비슷한 비율로 축소되었는데, 받침층에서 2층까지는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줄었고, 3층 이상은 평면이 점차 직사각형으로 줄어 들었다.
2층 각 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감실(龕室)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으며, 안쪽에 높이 78cm 가량의 석불이 안치되어 있다. 감실은 안쪽 벽이 3층의 면석 부분과 같은 면이지만, 폭과 높이는 조금씩 다르며, 바깥벽과 받침돌, 바닥돌을 널돌로 세우거나 쌓은 구조이다. 감실 안의 불상은 원래 네 면에 모두 있었는데, 현재는 남쪽과 동쪽의 감실에만 자리하고 있다.
석불은 옆면의 반 정도를 돋을새김한 좌상인데, 흰색 안료인 호분(胡紛)을 덧입힌 흔적이 남아 있으며, 뒤쪽에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모두 갖춘 거신광(擧身光)의 광배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 뿐 아니라 조각 수법도 같아서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크기가 감실의 크기에 알맞으므로,
석탑 역시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문화재청 자료)
의성 안평리의 누룩바위
이 누룩바위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오는데
이 누룩바위 틈새에서 항상 술(약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이 술을 한잔씩 마시면서 갈증을 해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술은 꼭 한잔 씩만 마셔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의성장에 갔다오던 행인이 목이 너무 말라 두잔을 마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안타깝게도 이 누룩바위에서는 술이 흘러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모른 행인이 이 곳을 찾아 수릉르 마시려고 하였으나 술이 흘러 나오지 않아 홧김에 사발을 건너편 음지산으로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음지산은 사발음지로 불린다.
단호샌드파크로 가는 길의 키작은 코스모스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