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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진 선교사 성경공부(주인, 청지기)
▣ 역사의 주인
세상이 분요할 때마다 묻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은 누구의 세상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 세상이 사람의 세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인본주의의 생각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상대화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이 세상을 사단의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독교적 비관주의는 우리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도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생각을 주님은 비웃고 계십니다. 이 세상은 그분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잠시 세움을 받은 소위 지도자들이 자꾸 반 그리스도적이고, 반 신본적인 정책으로 세상의 참된 주인 되신이의 뜻을 거스리고, 주인의 법의 속박을 벗어 나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뿐 아니라,세상 도처에 세움받은 모든 지도자들의 행태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역사의 한 기점에서 역사의 주인은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이라고 선언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아들로 세상의 주인 행세하던 사단의 계략을 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 임금과 철학이 상상할 수 없던 죄악을 이기신 그분의 지혜 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 복음이십니다. 그로 역사의 주인되게 하시고 그는 말씀하십니다.--그를 입맞추라고. 그를 사랑하라고.
* 기도: 역사의 주인되신 주님이시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희망을 잃고 방황할때 십자가를 바라볼수 있는 시선을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우리는 당신만이 역사의 유일한 희망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로 당신만을 경배하게 하시고 당신만을 따르게 하옵소서. 아-멘
ⓒ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오, 나의 주인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가 소유욕이라는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고운 옷이 아니라 남루한 옷이 제 차지가 될 때에도 불쾌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하소서.
멸시와 천대를 당할 때에도 나의 주인님을 의지함으로 제가 진정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주인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의 가시가 돌같이 굳은 저의 심장을 찔러 심장의 중심에 단단히 박히게 하소서
주인님이 쓰신 가시면류관의 가시가 돌같이 굳은 저의 심장을 찔러 심장의 중심에 단단히 박히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 상처를 통해 제 온몸의 해로운 피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주인님의 거룩한 사랑의 증거인 그 가시가 제심자에 계속 박혀 있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제 마음은 악의 가시와 유혹의 엉겅퀴를 모두 뽑아버리고 아름다운 밭으로 바뀔 것입니다.
오, 나의 주인님! 이제야 저의 전부를 주님께 바칩니다!
- 토마스 아 켐피스,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중에서
▣ 운명의 주인
"눈의 색깔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눈빛은 바꿀 수 있다. 입의 크기는 바꿀 수 없지만 입의 모양은 미소로 바꿀 수 있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씩씩하게 걸을 수는 있다."
지금 이 순간 운명의 모습을 바꿀 메스를 쥐어라.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잘라내고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삶을 덧붙여라. 그리하면 분명 운명의 주인이 될 것이다.
- 김현태의《성공감성사전》중에서 -
* 나의 운명은 물론이고 내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내가 주인입니다. 내가 찡그리면 다른 사람도 찡그리고, 내가 나를 가볍게 다루면 다른 사람도 나를 가볍게 다루고 맙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면서 주인 노릇을 못하면, 남(客)이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어떤 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종교학 시험 시간이었습니다.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의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라는 것이 그날의 문제였습니다. 강의실 안의 모든 학생들은 저마다의 답안을 열심히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감독을 하던 교수는 답안지에는 단 한 글자도 적지 않은 채 창밖의 먼 산만 바라보는 한 청년을 발견했습니다. 그 교수는 그 청년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왜 답안을 작성하지 않나?" 그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쓸 말이 없습니다." 교수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기 5분 전까지도 그는 미동도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강의실엔 그 교수와 청년만 남았습니다. 그 교수는 청년에게 다가가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쓴다면, 낙제는 없을 걸세." 그 청년은 이윽고 펜을 들더니 답안지에 답을 적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이 답안으로 인해 최우수 학점을 받은 그 청년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바이런이 왜 불멸의 시인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천재성을 그는 그 한 줄에 유감없이 담아내었습니다. 그의 답안에 최고점을 준 교수 역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이런의 답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통전적인 이해와 통찰이 들어있습니다.
/최태선 목사
▣ 두 주인
성경: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어떤 신학교 교수님이 방학을 맞아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에게 "지금 당장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천국에 가겠느냐, 집에 가겠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학생은 "천국에 가기 전에 아무래도 집에 먼저 둘러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과 세상을 저울질하던 무리들에게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대학 입학 시험을 앞둔 자녀는 교회에 보내지 않는 신앙인들, 사업이 잘되고, 일이 잘 풀리면 하겠다고 계속 교회 봉사를 미루는 집사님들, 교회에 와있어도 천국의 소망보다는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차를 바꾸는 일에 더욱 즐거움이 많은 성도들, 천국과 세상을 저울질 하는 이 모습들이 바로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일생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천국과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 기도: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게 하소서
▣ 교회의 참된 주인
한국 교회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농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한 분이 천국에 도착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목사님을 보자마자 너무 열렬히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의 평신도들이 예수님께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세상에서도 목사님들이 제일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천국에서까지도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며 환영하십니까? 너무하십니다.”
이런 항의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너희들이 참으로 오해하였구나. 목사를 차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하도 오지 않다가 아주 오랜만에 왔길래 너무 반가워서 내가 이렇게 환영하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목사를 너무 바라보거나 높여서도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나의 교회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주인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이동원 목사
▣ 교회의 주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생가가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위대한 인물이 살았던 집은 특별하게 보존된다. 건물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 집에 누가 주인으로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똑같은 집도 왕이 살면 왕궁이요, 죄인이 갇혀 살면 감옥이다.
중세시대 때 어느 교황이 "과거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이 없다(행 3:6)'고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교회에 재정이 풍족하니 걱정안해도 되겠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수도사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이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어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만약 교회가 은과 금을 주인으로 삼는다면 세상 모임과 무엇이 다를까. 교회의 주인은 성령님이다. 지난 주일 새벽,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는 성도 수만 명이 비바람에 아랑곳없이 부활절 연합 예배를 드렸다. 부활의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자 하는 성도들이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 주인을 기다리는 충견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보다 충성스러운 인간’을 거의 볼 수 없는 세상에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변함없이 주인을 사랑하고 따르는 충성심을 개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만족한 웃음을 드러낸다. 특히 명견은 한 사람을 자기 주인으로 인정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도 그 마음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 대단한 충성심이 있다고 한다.
일본 시부야 역 앞에는 충견 하치의 동상이 있다. 그 개로 인하여 젊은이들은 그곳을 약속장소로 삼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하치는 일본의 천연기념물인 아키타견의 혈통을 갖고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진돗개가 일본으로 건너가 아키타견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가만히 아키다견의 외형을 들여다보면 삼각형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두 귀나 오른 쪽으로 말린 꼬리와 까만 주둥이와 코를 보면 영락없는 진돗개다.
‘하치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이 되기도 했다. 고마바의 농학부 교수였던 우에노가 출근을 하게 되면, 항상 그 개는 주인의 뒤를 따라 나와 배웅을 했다. 그리고 우에노 교수가 퇴근을 할 때도 하치는 그 역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게 우에노 교수와 하치는 남다른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우에노 교수가 하치를 목욕시키고 옆자리에 그 개를 두고 잠을 자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그 개를 사랑했는지 부인이 심하게 질투를 할 정도였다. 어느 날이었다. 그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우에노 교수가 강의를 마치고 동료와 담화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게 된 사건이었다. 그 이후에 하치는 9년 8개월 동안이나 시부야 역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에노 교수를 기다렸다. 이미 고인이 된 주인을 기다리는 그 개의 충성심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기금을 모아 하치의 동상을 시부야 역 앞에 세워주었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주인이었던 우에노 교수를 기다리던 충견 하치는 병에 걸려 1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하치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식을 치른 후에 하치의 뼈 가루를 우에노 교수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다.
왼쪽 귀가 늘어지고 앞 다리가 유난히도 굵어보였던 까만 눈의 하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가죽은 우에노 과학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지금도 하치는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박제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순종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구세주가 되시고 친구가 되시며 위로자와 안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삶이 신앙의 뿌리다.
/김학규 목사
▣ 쉼터의 주인과 일꾼
예수 그리스도는 삶에 지친 메마른 몸과 마음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아늑한 쉼터의 주인이십니다. 그 누구에게도 우리의 답답한 사정을 말할 수 없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동무로 우리의 넋두리를 귀담아들어 주고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세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생명의 양식으로 먹여 주십니다. 판화가 이철수는 충청도 시골에서 청정 농사를 지으면서 맑고 깨끗한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온갖 오염이 집중되어 있는 도회지 한 복판에서도 맑고 깨끗한 쉼터의 일꾼 노릇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더러움도 더럽히지 못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오염의 한 복판에서 삶의 청정 농사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삶에 시달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다둑여주고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 자기가 주인된 인생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을 쓴 작가 모파상은 신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방황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후에 신앙과 결별하고 자기가 주인이 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후 문학에 뜻을 두고 정진해서 10년 만에 유명한 작가가 되고 돈도 많이 벌어 지중해의 요트와 노르망디의 저택, 파리의 호화아파트를 소유했고 쉴 새 없이 아내와 애인을 바꾸며 살았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군중들은 그를 흠모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는 안질과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1892년 1월 1일 밝아온 새해. 한해를 살아야할 아무런 이유를 갖지 못한 모파상은 자기가 항상 사용했던 종이칼로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으나 정신이 파탄 난 그는 정신병동에서 몇 달 동안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허공을 향해서 절규하다가 그의 나이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말년에 쉴 새 없이 하던 그의 말이 적혀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그는 부자의 꿈을 이룬 것 같았지만, 실상은 처절하게 가난했던 일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순서가 틀리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십시오.
* 기도: 주님, 징계가 오기 전에 회개하게 하옵소서.
* 묵상: 성공하는 인생보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내 삶의 주인
내 삶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음미해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경매장에서 그럴듯한 물건들은 모두 팔려나가고, 마지막에 낡고 보잘것없는 바이올린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런 물건을 누가 사겠느냐?’며 한 사람이 농담조로 빵 하나 값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고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경매인의 손에서 바이올린을 건네받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방안 가득 흘러 넘쳤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지고, 그 바이올린은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낡은 바이올린이 경매인의 손에 들렸을 때는 가치 없는 물건으로 여겨졌지만,훌륭한 연주인의 손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집니다. 지금 내 삶이 보잘것없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렇다면 창조주의 손에 내 삶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잘 조율하시고, 가장 잘 연주하실 수 있는 그분께 말이예요.
- (오인숙/교사, 작가)
▣ 삶의 주인과 종의 차이
주인과 종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손님이 오면 주인도 종도 모두 정성껏 접대하며 섬깁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기의 손님이라 여기며 기꺼이 마중하고 접대합니다.
그러나 종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삶에 주인이 되고픈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기꺼이 맞으며 섬겨야 합니다.
<이주연>
▣ 손님과 주인
신앙이 좋고 선정을 베풀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궁궐을 빠져나가서 서민들과 사귀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한번은 믿음이 좋은 한 과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여왕은 과부와 함께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과부의 믿음에 감동을 받은 여왕은 “부인을 찾은 손님 중에 가장 고귀한 분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왕은 과부가 “예수님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가장 귀한 손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왕 폐하이십니다. 제 생애 최고의 손님이십니다.”
그러자 실망한 여왕은 “부인을 찾아 주신 최고의 손님은 예수님이 아닐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과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여왕 폐하, 예수님께서는 결코 손님이 아니십니다. 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집에 처음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당신의 예수님은 필요할 때 부르는 손님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십니까?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진정 제 주인이 되셔서 저를 다스려 주소서.
* 묵상: 당신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김장환 큐티365>
▣ 생명의 주인
그간 사회적 논란이 돼온 '환자의 존엄사'와 관련하여 대법원 판결에 따라 병원이 며칠 전 식물인간 상태의 김모 할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러나 의학계의 예상을 깨고 할머니는 자발적인 호흡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생명은 의학적 지식이나 법의 판단에 맡겨질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는 신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이때에 교회는 세상을 향해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론적인 생명관과 구원관을 분명하게 선포해야 한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욥 1:21) 그 누구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가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타인의 목숨을 가해해도 안 된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명을 주장할 수 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주인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김성영 목사 <전 성결대 총장>
▣ 말과 냉정한 주인
명마가 있었다. 그 속력과 힘이 월등해서 주인을 전쟁터에 수없이 태워다 주면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게 지켜주었다. 주인 병사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보살폈다. 그는 매일같이 털을 잘 손질해주었고, 상처라도 나면 잊지 않고 정성껏 약을 발라주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주인은 말을 밭에다 내몰아 일을 시켰다. 말은 쟁기를 끌고, 무거운 바윗덩어리도 나르고, 힘들게 마차도 끌어야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데도 먹이는 왕겨와 밀짚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전쟁이 다시 터졌다. 그 주인은 무장을 다 갖춘 다음에 자기 말에 다시 한 번 올라탔다. 그런데 평소에 잘 먹지도 못하고 일만 죽어라 하다 탈진한 말은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절뚝거리며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병사가 말을 꾸짖자 말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쟁터의 명마로 멋지고 힘차게 달리길 바랐다면, 왜 나를 농장의 당나귀처럼 취급하셨나요?”인간 관계에서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식의 너무나 얄팍한 처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 신의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는 전화하고 찾아가고 선물하지만, 별볼일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안면 몰수한다. 이런 때일수록 구약의 한 시대를 곱다랗게 무늬 놓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이야기를 상기한다. 요나단은 한낱 양치기에 불과한 다윗에게 변함 없는 우정을 쏟아 부었다. 훗날 다윗은 망해버린 사울 가의 한 사람, 요나단의 절름발이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본다. 책임지는 우정이다. 요즘 당신이 홀대하는 ‘말’은 누구인가?
-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살지는 않는가 / 이진우
▣ 주인과 종의 화해
2009년 1월 20일 미국 제 44대 대통령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버락 오바마가 취임한다. 그의 조상이 미 대륙에 도착한 이래로 흑인들은 상당한 시간 동안 종이었다. 링컨에 의해 해방 선언이 이루어졌고 흑인들의 괄목할 만한 인권 증진이 있어 왔지만, 아직도 그들의 의식의 밑바탕에 도사린 노예 의식과 열등감이 그들을 지배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은 법적으로는 자유인이었지만, 의식적으로는 아직도 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미국과 전 세계에 사는 흑인들은 엄청난 감정의 분출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예 의식을 청산하는 해방된 의식의 배설을 경험한 것이다. 나의 한 동역자는 그 이튿날 아침 미국 거리에서의 달라진 세태를 전해왔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흑인들의 의젓함, 여유로움, 그리고 친절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그것은 노예 의식이 주인 의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역사적 풍경이었던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주인이며 동시에 종이다. 그것을 우리는 성서적 역설이라고 부른다. 모순되어 보이지만 진리인 것이다. 마치 루터가 성도는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한 그의 영원한 종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창조의 시간부터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위임된 청지기적 주인인 것이다. 성도의 정체성은 이 두 가지의 긴장 관계에서 형성된다.
만일 우리가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인 것만을 의식하고,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매우 교만한 인생을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매인 종의 자아상만을 기억하고, 만물을 위탁 받은 주인 됨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소심하고 때로 비굴한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인 의식과 종의 의식은 화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주인 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한 종이지만, 동시에 만물의 청지기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 내에서의 흑인들의 진정한 미래는 그들이 쟁취한 자유 못지 않게, 하나님 앞에서의 종된 겸허함을 잃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들의 주인 됨이 방종이 아닌 책임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그들의 창조주 앞에서 그들은 아직도 종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런 주인의식과 종의 의식의 화해가 이루어진 우리 가정과 우리 직장과 우리 공동체는 내일 아침은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를 꿈꾸어 본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 추수의 주인께 기도하라
갓프리드 오세이-멘사(Gottfried Osei-Mensah)는 신자들이 세계복음화 사역에서 제 몫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긍휼 때문이라고 믿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울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자신의 그 긍휼을 우리도 품기 원하신다. 그 긍휼이 있을 때 우리는 추수의 주인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란 우리를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믿음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확고한 뜻에 우리를 내어 드리는 것이다. 그런 기도는 의당 행동을 낳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과 발이다. 그분의 심장이다. 하나님은 부담을 품고 기도하는 자들을 세계복음화와 가장 직결된 특정 사역으로 인도하신다. 세계복음화란 모든 인간을 회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 속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려면 문화와 언어가 다른 모든 부족 집단 내에 말과 삶으로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전파하는 신자들의 무리가 있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잃은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신자들이 점점 더 많아질 때, 우리가 기도에 헌신하며 직접 그 기도 응답의 일부가 될 때, 지구상 모든 부족 내에 누구나 보고 배울 수 있는 신자들 무리를 이루려 함께 노력할 때, 우리는 세계복음화가 성취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일할 수 있다.
- 「21세기 제자도 사역 핸드북」/ 스티브 & 로이스 레이비
▣ 까다로운 주인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주인’이라며 스스로 그들의 종이 되기를 자청했던 자선 사업의 수호 성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1581-1660).
그가 창립한 ‘사랑의 딸’ 회의 첫 수녀를 일터로 내보내며 그는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요안나, 이제 알게 되겠지만 사랑이란 무거운 짐이란다. 국냄비나 가득 찬 빵바구니보다 더 무거운 거지…. 그래도 친절과 미소는 늘 지켜야 해. 국하고 빵을 나누어주는 게 전부가 아니야. 그거야 부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너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여종이야. 언제나 미소짓고 좋은 마음으로 지내는 ‘사랑의 딸’임을 잊어서는 안돼. 네 주인은 가난한 이들이야. 그들이 무척 과민하고 까다로운 주인들이라는 걸 곧 알게 될 거야. 그들의 몰골이 추하고 더러울수록 부당하고 상스럽게 굴수록 너는 그만큼 더 그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해. 네가 주는 빵을 가난한 이들이 용서하는 것은 네 사랑을 보아서, 오직 네 사랑을 보아서일 뿐이야."
▣ 착한 빵집 주인
이웃 동네에 있는 어느 착한 빵집 주인에 관한 얘기다. 그 주인은 매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을 하나씩 선물했다. 스무 명쯤 되는 어린이들 앞에 빵을 담은 바구니를 내밀고 한덩이씩 가져 가게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앞다퉈 제일 큰 빵을 고르느라 경쟁했다. 그런데 아이들 중 한 소녀는 언제나 마지막까지 기다리다가 남은 것 하나를 받아가면서 꼭 주인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어느 날 그 소녀는 받은 빵을 들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빵을 쪼개다 빵 속에 동전이 몇 개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소녀는 바로 그 돈을 돌려주려고 빵집 주인을 찾아 갔다.하지만 빵집 주인은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착한 아이야, 내가 잘못해서 돈을 빵 속에 넣은 게 아니란다. 너를 위해 제일 작은 빵 속에 그 돈을 일부러 넣은 거란다”. 선한 생각과 착한 마음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듯 사랑의 파장을 일으킨다.
착한 일, 선한 일에 주인공이 되자.
▣ 주인이 누굴까?
개 한 마리가 두 사람을 따라가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그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는 그 개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갈림길에 이르러 한 사람은 이쪽 길로, 또 다른 사람은 저쪽 길로 갈 때 비로소 당신은 그 개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세상에 속해 육신적으로 살면서 신앙고백도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주인이 하나님인지, 세상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갈림길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리면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 길 저편에서 부르시고 세상은 저 길 너머에서 부를 때, 그 사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면 그는 세상을 버리고 신앙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정한 주인이 세상이라면 하나님과 양심과 신앙을 버리고 정욕을 따라 가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갈림길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 길을 택할 갈 것인가?
- 어스카인
▣ 주인이 가져간 보석 두 개
어떤 랍비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외출한 사이에 두 아이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는 두 아들의 시체를 방안으로 옮겼다. 한참 후 랍비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귀중한 보석 두 개를 맡기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그가 찾아와서는 그것들을 돌려달라는데 이럴 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는 별 생각 없이 쉽게 대답했다. “아니 주인이 달라고 하면 당연히 돌려주어야지” 그제서야 아내는 랍비를 데리고 두 아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방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놓으셨던 귀중한 보석들을 찾아가셨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도로 가져가시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가자. 그리하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박상훈 목사<승동교회>
▣ ‘종’이 된 주인
무디 성경학교 교장인 조셉 스토웰 박사는 사무실이 행정관 9층에 있기 때문에 얼마간의 시간을 엘리베이터에서 보냈다. 어느 날 스토웰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150cm 정도의 키로 짐작되는 여자 관리인이 엘리베이터 문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 위쪽까지 닦으려고 했으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애를 먹고 있었다. 스토웰은 이렇게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같이 탄 사람이 없군. 누군가 같이 탔다면 도울 수 있을 텐데. 교장 체면에 엘리베이터 문을 청소할 수야 없지.” 그러나 스토웰은 곧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다. 최근 그리스도의 겸손하신 지상 사역을 묵상하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관리인에게 그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을 닦아 줄 테니 걸레와 스프레이 병을 달라고 했다. 그가 높은 곳을 닦기 시작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서 몇몇 학생들과 직원들이 탔다. 스토웰은 문 닦는 일을 계속했다. 몇 주 후에 스토웰은 엘리베이터 문 닦는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녀가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좋아요. 이제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세요.”
예수님은 전달하시기 어려워 반복적으로 가르치시며 친히 모범을 보이셔야 했던 교훈들이 있었다. 겸손한 봉사에 관한 교훈이 바로 그런 부류였다. 손짓만 하시면 천군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실 수 있는 영광의 주님이 제자들의 흙 묻은 발을 씻겨 주셨다. 창조주이자 우주의 주인께서 자청하여 사람의 종이 되셨던 것이다.
- 「예수 닮기」/ 레슬리 플린
▣ 주인을 잘 만나야 빛이 난다
유럽의 탐험가들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처음 갔을 때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바닷가에 갔더니 흑인들이 조개속에서 번쩍이는 것을 물로 휙휙 던지고 있었다. 무엇인가 해서 가까이 가보니 값진 진주였다. 약삭빠른 탐험가들은 가지고 간 빵과 장난감들을 주고 그것을 모아와 큰 부자가 됐다. 보화도 주인을 잘 만나야 빛이 나는 법이다. 무지한 사람에게는 값진 진주도 돌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얼마전 유네스코에서 천연 관광지로 지정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근처 하롱베이를 보고서 느낀 게 많다. 바다에 수천 개의 천연섬을 무뿌리처럼 심어놓은 듯이 보였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자연이 빛을 못보고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아 안타까웠다. 하롱베이는 마치 원주민에게 맡겨진 진주 같았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차라리 더 개방적으로 외국 자본이라도 유치해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유내강의 생활철학은 좋아도 지나친 고집은 무지일 수도 있겠다.
/김순권 목사 <경천교회>
▣ 시간의 청지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걸려온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입금을 하면서 당신에게 꼭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안에 반드시 이 돈을 써야 하는데 조건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익하게 쓰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1,440만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또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입금된 돈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돈은 주인이 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하기를 오늘 그 돈을 찾아서 쓰시면 그 돈은 당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미심쩍어 하면서도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다가 기분 좋게 다 써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또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또 쓰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은 또 썼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었는데 그 돈을 쓰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은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 1,440만원은 주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1,440분의 시간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을 공평하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이것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청지기입니다.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에스겔 7: 4)
/이동원 목사
▣ 청지기의 마음
종종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남의 물건을 빌려다가 오랫동안 쓰고 나면 내 물건인줄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돌려줄 때가 되면 아쉬운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이런 착각은 귀한 것일수록 더욱 심해진다. 사실 생명도, 자녀도, 건강도, 생명도 내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맡아서 관리하다 보니까 어느새 내 것인 줄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청지기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내게 주신 모든 소중한 것들은 일정 때가 오면 다 되돌려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잠시 내게 맡겨졌을 뿐 내게 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결산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자신이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 결국 내게 남는 것은 사랑의 잔고다.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신경하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
▣ 청지기
본문: 신15: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오리건주의 메드포드에 사는 고든엘우드라는 사람은 철저한 내핍생활로 '자린고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사망했을 때 유산은 무려 10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유서 한 장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절약한 이유를 밝히고 있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쌌습니다. “내 유산중 900만달러는 적십자사와 구세군에 남긴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는 100만달러를 남긴다”
시카고에서 여비서생활을 하며 평생을 홀로 지낸 글래디스홈은 주식투자로 18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녀 역시 소아암과 사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용해달라며 전액을 아동병원에 희사했습니다. 모텔에서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지내는 어윈 유런은 자신의 친구가 시장으로 있는 한 마을의 주민들의 위해 사용해달라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미국은 검소한 부자들이 많습니다. 한국도 검소한 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의 내핍생활로 기부한 기부금이 더욱 많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기부금을 전달받은 사람들은 가슴이 더욱 아파집니다. 호화 백화점의 고가 상품은 없어서 못판다는 뉴스를 들으며 길거리를 거니는 노숙자, 소년 소녀 가장들이 절로 떠오릅니다. 물질을 가치있게 사용할 줄 아는 청지기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 기도: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해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기도뿐 아니라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물질로도 구원하는 합심이 이 나라에 넘쳐나게 하여 주소서.
* 묵상: 당신은 바로 자기 자신의 창조자이다
* 출처 <새롭게하소서>나침반 출판사
▣ 말씀의 청지기로서의 부모
성경: 잠6: 20, 23
“아이들아,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져버리지 말아라. ...
참으로 그 명령은 등불이요 그 가르침은 빛이며 그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다.”
유대인들의 격언 중 그리스도인들은 수용할 수 없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실 수 없어서 부모를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격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부분적으로 공감할 수는 있습니다. 우선, 부모는 하나님의 권위를 부분적으로 허락받았다는 것이고, 부모는 그 권위로 자녀를 보호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능적으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보호의 충동을 지니고 자녀를 양육하도록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녀의 유익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양육의 수단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동일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계시로 주어지기 전 하나님의 말씀은 구전으로 부모를 통해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아니 기록된 계시의 말씀으로 믿음의 조상들에게 전달된 후에도 한 동안 성경의 두루마리는 서기관이나 랍비와 같은 소수의 학자나 종교 지도자들에게 접근 가능했기에 성경을 해석한 말씀은 부모를 통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나간 성경 시대에 자녀들에게 부모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은 곧 빛의 길을 걷는 것이요, 말씀의 훈계를 따라 삶을 고치는 것은 곧 생명의 길을 걷는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보편화되어 쉽게 접근이 가능한 오늘날 얼마나 이 시대의 부모들은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청지기의 소명을 감당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 기도: 주님, 오늘날 우리들 부모의 가장 큰 청지기적 소명이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훈계하는 일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모든 소유권이 주님께 있으니
입대할 때 나는 주일예배를 꼭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그러나 군대에서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주일 아침에는 보통 중대 고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축구를 한다. 어느 주일 아침에도 축구를 하고 있는데, 예배당 종소리가 들렸다. 난 축구하다 말고 큰 소리로 말했다. "김판수 병장님, 저 교회 가야 됩니다!" 고참들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누가 네 마음대로 교회 가래!" '아차! 교회도 내 마음대로 못 가는구나.' 그래도 지지 않았다. "저, 교회 가야 됩니다." 김판수 병장이 말한다. "야, 보내!" 그 후로 주일에는 교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김판수 병장은 크리스천이었다.
뜻하지 않게 군종 사병이 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의정부로 나왔다. 그럴 때면 자장면을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구걸하는 이에게 자장면 값을 헌금해야 한다는 부담이 느껴졌다. 변명이 떠오른다. '하나님, 돈을 줘 봤자 저 사람은 술 사 먹고 말 겁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헌금해라.' 결국 점심 값을 주고 말았다. '길아, 네가 저 사람에게 점심 값을 준 것은 너의 생명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니 마음이 행복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나를 사셨다고 말한다. 난 예수님께 팔린 것이다. 그분의 종이 된 것이다. 내 모든 소유권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마음에 갈등이 없어진다.
「증언」/ 김 길
▣ 나의 죄를 정케하사 (찬송가 320장, <통> 350장)
1. 나의 죄를 정케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2. 내게 부어 주시려고 은혜 예비하신 주 그 은혜로 채워 주사 능력있게 합소서
3. 죄의 짐을 풀어주신 주의 능력 크도다 나를 피로 사신 예수 내맘속에 옵소서
4.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사 생명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후렴]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
아멘
▣ 주인, 청지기에 관한 성경 말씀
0 (창세기 24: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0 (마태복음 13: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0 (마태복음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0 (마태복음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0 (마태복음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0 (마태복음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0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0 (누가복음 12:42, 43)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0 (누가복음 12:44- 48)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0 (누가복음 16:1- 3)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0 (누가복음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0 (누가복음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0 (디도서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0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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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완 목사 주제별 예화모음(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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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목사님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