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감에서 나오다 왼쪽으로 가면 공묘로들어가는 문이 나오고 문을 들어서면 비석림이 줄지어 서있다. 이 비석들은 과거에 급제한사람들의 이름과 글이 새겨져 있다. 비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대성전이 나오고 대성전 앞에는 공자상이 서있다. 대성전은 문 앞과 뒤쪽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고 좌우에는 종과 북이 걸려있다. 문 양쪽으로 10개의 석고(石鼓)가 있고, 여기에 건륭황제가 썼다는 옛시를 새겨 넣었는데 이를 석고문(石鼓文)이라고 한다.그러나 이들은 모두 복제본이고 원본은 고궁박물관에 보존되여 있다고 한다. 다음에 갈 곡부의 공묘와도 비교해 보아야겠다. 특히 이곳의 대성전은 황색오지기와를 얹어 훨씬더 웅장해 보인다. 공묘에서 나와 우리는 북경에 오면 먹어야할 북경오리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갈 시간을 맞추기 위해 주변에 있는 예술의 거리도 돌아보고 눈팅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북경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날아든 비보는 비행기가 결항한다는 소식이다. 북경공항의 하늘사정이 좋지않아 많은 비행기들이 뜨지 못하다가 지금 순서대로 뜨는데 우리비행기는 김해공항이 밤 11시 이후에는 착룩할 수가 없어 오늘은 뜰 수가 없다고 한다. 새벽 2시30분에 비행기가 뜬단다. 고로 11시 30분이 되어야 출국 수속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돌려보낸 버스를 다시 불러 북경 시내로 들어갔다. 다른 팀들은 마냥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그래도 우리는 사장님덕분에 공항에서 죽치고 있어야하는 불상사는 없어 다행이었다. 일단 저녁을 먹고 솔라나라는 쇼핑몰에가서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9시30분에 예약되어 있는 발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그동안 고생한 미스터정과도 작별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이번여행은 참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던 여행인 만큼 많은 추억이 담긴 여행이었다. 사실 몸은 힘들었어도 눈은 호강한 그런 여행이었다. 함께한 일행들께 감사드리며 여행사 고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비석군
원.명.청나라 시절에 과거시험의 최종단계인 진사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비석
이곳에 줄지어 서있는 비석에는 5만 1,600 여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백상상(柏上桑)
국자감에서 공묘로 들어가면 문 가까이에 있는 큰나무가 있다.
백상상(柏上桑)이란 이름의 나무다.
밑둥치는 측백이고 위는 뽕나무이다. 원나라 때(1206~1368) 심은 측백나무가
세월이 흐르면서 속이 텅빈 고목이 되었고, 흙먼지로 채원진 그속에서 새들의 배설물에 섞여 날아든 뽕나무 씨앗이 뿌리를 내려 이런 모습으로 자라게된것이라한다.
대성전 앞의 공자상
강희제가 직접 쓴 만세사표(萬世師表) 의 편액
공자를 '학식과 인격이 높아 만대에 모범이 될만한 사람 이다'란 뜻으로 쓴글
대성전은 공자의 신위를 모신 정전(正殿)
황제들이 공자에게 제사지내던 곳으로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永? 재위1402~1424)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한다.
한가운데 공자의 위패가 있다,
동서 양편으로 공자의 제자인 중국의 12철인(哲人)의 위패와
편종(編鐘),거문고(琴)등 옛 악기들이 놓여 있다.
촉간백
대성전의 뜰에는 편백나무 고목들이 많이 있는데 대성전의 돌계단을 오르기 전 왼편으로 있는 이나무는 간신을 혼내주었다는 수령700년이 된 촉간백이다.
황제를 대신하여 제례를 지내려 왔던 간신 엄승이 나무밑을 지날 때
나무가지가 그의 모자를 후려쳐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간사한 무리를 제거하는 나무" 라는 뜻으로
제간백(除奸柏)이라고도 불리운다고 한다.
솔라나거리에 있는 음악분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풍경에 사진을 찍었다.
결항된 비행기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비행기 결항이 우리에게는 더 좋았나? ㅋ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