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칙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세속적인 바른 견해를 견지하는 것이 된다.
일단 이런 견해가 확립되면 다른 다양한 형태의 잘못된 견해와는 공존할 수 없으므로 잘못된 견해들은 그 즉시로 배제할 수 있다.
즉, 금생의 내 행위가 미래의 나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확실히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삶이 금생에서 끝나고
우리의 의식은 죽음과 더불어 끝난다는 허무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또 이 견해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선과 악, 정과 사를 구분하기 때문에 선악을 개인적 의견의 단순한 발로나
사회 통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 주장하는 윤리적 주관주의와도 상반된다.
또 이 견해는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기는 해도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이 언제나 어쩔 수 없는 필요에 따라 내려질 뿐이고 그러므로 자유의지란 환상이며 도덕적 책임 역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완고한 결정론적' 노선과도 상반된다.
업과 그 과보를 바로 살펴보라는 '바른 견해'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 중 어떤 부분은 오늘날의 사고경향과 상충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바른 견해'에 대한 가르침은 선과 악, 정과 사의 문제가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엇이 좋고 나쁘며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상투적 의견들을 초월하는 심오한 문제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한 사회 전체가 무엇이 도덕적으로 바른 가치인지에 대해 혼란에 빠질 수 있고, 그래서 심지어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어떤 특정 행위를 옳다고 손뼉을 치고 그와 다른 행위를 그르다고 비난한다 해서 그 도덕적 가치가 진정으로 옳거나 그른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며 따라서 가변적일 수 없다.
행위의 도덕성 여부는 그 행위가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느냐 하는 조건에 매여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어떤 행위를, 또는
그 행위를 이루는 배경인 도덕규범을 평가할 도덕성의 객관적인 기준은 엄존한다.
도덕성에 대한 이러한 객관적 기준이야말로 담마[Dhamma 法]가 담마되는 소이(所以)이다. 의욕이라는 모태에서 행위가
나오며 행위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 그리고 행위와 결과 간의 상응성은 근본적으로 의욕 그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은 법의 타당성에 초개아적 기반이 되는 것이며 담마기 진리와 정의로움에 대한 객관적
법칙이 되는 소이인 것이다.
여기에 신과 같은 재판관이 있어서 상벌을 통해 전우주적 상황전개를 관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행위 그 자체가 원래 띠고 있는 도덕적, 비도덕적 성격으로 인해 그에 알맞은 결과를 발생시키고 있을 뿐이다.
첫댓글 의욕에서 행위가 나오며 행위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은
행위와 결과 간의 상응성은 의욕 그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담마가 진리와 정의로움에 대한 객관적
법칙이 되는 까닭이다.()()()
법보시 감사합니다()()()
금생의 내 행위가 미래의 나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