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하나 계절의 여왕 5월 산행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문경 주흘산에서 푸르름이 짙어가는 문경새재 달빛 사랑길을 맨발로 걷노라면 괜시리 그리워지는 역사의 뒤안길이 쌔록쌔록 떠오르는 장원급제 과거길 새재 주흘산으로 우리정인 산님들을 초대하오니 개나리봇짐 둘러메고 과거시험 급재길로 많은 동참 바라옵나이다~
♣어느날☞2014년 5월 27일(넷째화요일)록음이 짙어가는 봄날에~~~ ♣어디서☞귀빈예식장 07時,범어로타리15分,동아쇼핑25分,성서홈프러스40分,
(제 1관문 주흘관) #.풍경 둘 어찌하여 내 이름이 "주[主屹]흘"이 되었을꼬?
잘은 모르지만 문경의 진산 주흘산은 우리말 이름에 한자 음을 따서 불린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지만 확실한 것은 알수없다. 주흘산[主屹山]그대로 풀이하면 주인[主]우뚝할산[屹]우두머리 산 우뚝솟은 산'이다. 전설에는 주흘산이 한양의 산이 되려고 한양에 갔는데 삼각산[북한산]에 자리를 빼앗겨 문경으로 내려와 한양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은 한양의 산이 되려고 다투리 만치 우람하고 중출한 산이라는 설과 남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어 남쪽에서 보는 주흘산의 모습이 정면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 중 남에서 보는 주흘산의 모습이 가장 우람하고 훌륭하다. 동서를 가르는 능선이 하늘을 가르고 우뚝솟아 과연 우두머리 산이라 할만하다. 문경쪽으로 길고 높게 절벽을 이루고 있어 더욱 웅장한 느낌을 주며 금방이라도 내려 누루려는 기세를 하고 있다. 거대한 기와지붕처럼 보이기도 해서 진안의 운장산을 북쪽에서 보는 모습과 흡사하다. 주흘산을 남쪽 문경벌에서 올려다보는 맛도 일품이지만 고스락에 서서 남쪽을 내려다 보는 조망 맛 또한 장관이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천 길 낭떠러지 위 벼랑 끝에 서서 문경벌을 내려다보면 마치 하늘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것 같고
가슴이 활짝 열려 날으고 싶은 충동에 호연지기를 느끼지 않을수 없다. 주흘산 일대 옛스러운 분위기 제2관문 조곡관 근처 경관이 좋고 올려다 보는 눈맛' 매바위 기암괴봉과 부봉이 하늘금을 이루고 태조 왕건의 촬영지 궁예가 최후를 맞은곳 초가지붕 나무울타리 주막에 새재길을 걷노라면 마치 조선시대 장원급제 과거길을 내가 가고 있는양 착각을 일으키고 위풍 당당한 성곽과 조곡관에서 창.칼이 번득일 듯하고 계곡을 끼고 흐르는 낭낭한 맑은 물의 기품이 그 옛날 송죽[松竹]같은 선비들의 정신을 엿 보는듯 해 흐뭇함이 온 몸을 감싸돈다.
"꼭"알아야 할 선견지명(先見之明)다가올 일을 미리아는 지혜로움
60~70년대 전국 방방곳곳 마을길도 도로도 넓히고 시멘트 아스팔트 포장길이 한창일때 故 박정희 대통령이 문경새재 길 만큼은 옛날 그대로 보존 할것을 지시해 오늘날 후손들이 그 옛날 선조들의 삶을 체험하며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됨을 정말 다행이 아니라 할수없다.그린벨트.포스코.경부고속도로.카이스트,계획도시 창원.오늘날의 경주.구미.울산.새마을운동 등등' 그 얼마나 반대를 무릅쓰고 고독한 고뇌속에 외로운 결단을 내렸을까? 과연 각하에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산업화의 물결속에서 제일 많은 것들을 얻고 부를 누리는 기득권자들과 툭 하면 비난만 일삼는 소위 민주화 세력들 과연 그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지 않고 문경 새재길을 걸어보지도 않았는지 되물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청문회에 불려 나와 진땀을 흘리며 지네들 밥먹듯이 거짓말을 해데는 탐관 오리들과 정치한다는 위정자들은..... 꼭 한번 이길을 걸어 자기의 본 모습을 돌아보라 이르고 싶다. 중략
직인다~폼 대궐터(약수터)테크길
소원성취 탑에서 소원성취 빌고 포즈를 취한 이쁜산님 무엇을 빌었을꼬???
꾸구리 바위 꾸구리가 뭘까요? 옛날 과객들이 땀이라도 식힐겸 안락 쇼파처럼 가장 자리가 움푹 파인 바위에 걸타 앉으려면 물속에서 화가난 꾸구리가 바위를 마구 흔들어 혼쭐을 나게 했다는 전설의 바위.요 쪼그만게 공갈이 넘 심하지 않나요. 요놈이 꾸구리란 놈 울~나라 특산 어종으로 맑은 계울물에 살며 머리는 크고 몸통 길이는6~10센티다. 궁예의 최후~잘나갈 때 잘하지~ 궁예가 최후를 맞은 너럭바위 교귀정~조선시대 신구 감사[오늘날 군수]가 임무를 교대하며 관인을 주고 받던곳 장원급제 청운의 꿈을 품은 선비와 거부의 꿈을 안은 장사꾼과 과객들이 한잔의 술로 정담을 나누던 주막집
주막집 별채 초가 모임지붕 문경새재 장원급제 길 문경은 영남지방 선비들의 과거 급제한 경사스러운 소식을 제일 먼 저 듣는 고을이라 들을문[聞]경사경[慶]문경이라 이름 지어진곳 그러나 이 반가운 소식도 높은 재를[嶺]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니 공중을 날으는 새도 날개가 아파 쉬어가는 재 이름하여 새재 즉 새 조자를 붙혀 조령[鳥嶺]이라 했던가?또 한편 조령산[鳥嶺山]남쪽에 이화령 재 포암산과 부봉사이 하늘재가 주흘산 조령산 주변 3대 재[嶺]다.
문경새재의 제일 가슴아픈 역사는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군사와 의병8.000명이 새재에서 진을 치고 왜놈들을 기다리다 참모들의 간곡한 충언도 거절하고 천혜의 군사 요충지인 새재를 버리고 허수아비만 세워둔체 후퇴해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소서행장과 결전을 벌여 전멸하고 자신은 살아남은 부하 장수들과 조령을 버린것을 후회하며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사람 인 신라시대 "우륵"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자리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몸을 던져 투신 자살하였다.참모들의 말을 듣고 새재를 버리지 않고 방어했다면 임진왜란의 전세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조령원터 오늘날 여관 그 옛날 한양길 오고가는 과객들이 하룻밤 묵어 가든곳 글쓴이 산대장 이 해식 |
|
첫댓글 우리 정인님들 이 좋은 곳으로 지인들과 손잡고 마니마니 동참하세요~~~
이명화 부장 외3명 신청 감사 합니다.
좋은곳으로 안내해준 대장님께 감사 요~^^
송이도 몇명 델꼬 맨발로 뛰어볼라꼬예~ㅋㅋ
열심히 섭외해보겠심다~~~ㅎ
이명화 부장 1명 추가~ 감사 합니다.
김시열 접수 고마워요.
김영자/유춘옥 접수 감사 합니다.
성서 조현숙 1명 참석입니다
조영화씨 외 1명 접수 감사 합니다.
조상래 회장/박경희 두분 신청 접수 했습니다. 감사 합니다.
최영규 신청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