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올라온 후 부터는 재료상을 거치지 않고 당구장과의 직거래를 통해 시간에 쫓기지도
A/S 및 컴퓨터 교체를 하면서 업주들에게 과다한 금액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재료상을 통해서 수리가 들어오면 수리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해서 재료상에게
전화비 명목으로 몇만원을 줘야 하고, 놈들의 소개로 컴퓨터를 팔면 칼라자동컴퓨터는
당구재료상에 물건을 공급하는 본체(모니터포함)가격 기준에서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수금을 하면 차액뺀 금액인 10~30만원을 모든 재료상에게 돈을 줘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구장을 다니거나, 전화를 이용해서 “그 곳(나를지칭)에서 구입하면
A/S도 안 해주고, 무식한 과자장수가 수리능력이 없다는 등” 사실이 아닌 나쁜 소문을 흘리기
때문에 10년 전부터는 재료상을 통하지 않고 직거래 위주로 수리 및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성실하게 거래를 하는 재료상은 설치방법과 간단한 수리방법을
교육시켜서 직접 일을 할 수 있도록 물건을 공급하고 고장 난 컴퓨터는 지나가는 길에 수거
또는 택배를 이용하여 수리를 해서 보내주는 일을 반복 하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당신은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상대방에게 굽히지 않는 성격이 처음에는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래를 해보니 “인간으로는 KS 순정품” 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거짓말을 할 줄도 잔머리를 쓸 줄도 모른다, 남들이 거짓말하고 잔머리를 굴릴 시간이 있으면
주어진 과제를 놓고 가능하면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 하면서 생활을 한다
생활이 어렵고 살아 가는 것이 고단 할 때에는 더욱 강해 지려고 자신과의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남들이 쉬고 있을 시간인 새벽 2~3시면 매일 그시간에 일어나서 쌓여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헌병대위의 명령에 따라 겁에 질린 체 헌병 집차에 올라타서 연대정문 위병소를 통과하고 나서
대위님께서 담배 갑을 내밀면서 한대 피울 것을 다정한 목소리로 권한다
그리고,
15일간의 휴가증과 약간의 돈(홍천->서울간 버스요금)을 주시고, 헌병대에 가서 퇴색된 작업복과
통일화는 버리고 새 군복과 군화를 갈아 신고 집에 가서 치료하고 복귀 시에는 헌병대로 와서
헌병과 함께 귀대하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전출을 시켜 줄테니 치료나 잘하고 오라고 한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영창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는 슬며시 허벅지를
꼬집어 보니 아픈 통증이 오면서 헌병대 영창이 아닌 입대하고 7개월 만의 첫 임시휴가…
집에 와서 알고 보니 밤새 보초를 서다가 보초교대 문제로 심하게 구타를 당했던 다음 날
아버님이 강원도 쪽에 볼일이 있어 오셨다가 면회신청을 하니 통신대 에서는 훈련을 떠났기 때문에
면회가 불가능 하다는 위병소의 이야기를 듣고 발길을 돌려 부대를 빠져 나오려 할 때 중간고참 중
한 명이 따라와서는 구타를 심하게 당해서 통신대에서 일부러 면회를 안 시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고집쟁이가 틀림없이 큰 사고를 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625전쟁 당시 함께 전투를 치렀던 직속 상관인
당시의 중대장(장성급으로 전역해서 군 관련 업무를 보시는 중)을 찾아 뵙고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시고
그런 상황을 모르는 나는 새벽에 큰 사고를 치고…
집(부산)으로 가기 위해 홍천에서 마장동으로 가는 버스에 승차한 후 구타로 엉망이 된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한 체 긴장이 풀려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는데 누군가가 흔들어 눈을 떠보니
헌병이 검문 중이니 휴가증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벗어라는 지시에 서울에 다왔다는
것을 알았고 용산역에서 밤10시에 출발하는 군용열차에 다시 몸을 의지하고 부산으로…
다음 날 새벽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님은 지쳐 있는 나를 부둥켜안고 눈물부터 흘리시며
아버님 이야기를 듣고 그 동안 걱정이 되어 여러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집에 도착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이틀 동안 잠을 자고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치과에서 빠져버린
앞 이빨 대신 의치를 하고 외출은 못하고 방안에서 뒹굴다 보니 두 눈이 책장 속으로 간다.
무선공학, 무선기기, 공중선과 전파전파, 법규 그리고 통신영어 등..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무선통신사 기사 자격증으로 그 당시에는 3급에서 2급 응시자격은 전문대 2년
또는 경력 3년 이상이 되어야 응시자격이 주어 진다.
머리 속으로 그 동안의 경력환산을, 전화국 8개월, 승선 23개월, 군7개월 총38개월로 시험칠
자격이 되면서 9월경에 있는 1976년 제2회 필기시험 까지는 한달 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경력확인서를 부산체신청과 해운항만청에서 발급받고 군 경력은 부대에 가서 발급 받기로 하고
필기시험 접수를 친구에게 부탁을 하면서 피멍이 들어 있는 얼굴로 시험응시용 사진도 찍고…
책장을 넘겨보니 승선시 조금씩 보아왔던 글들이 한눈에 들어 오면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
=== 열여덟번째 부터는 사정상 매주 화요일 주1회 게시 할 예정입니다 ===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OM님 저도 잘 읽었습니다 바로 옆동네 사시네요 저는 대잠동 삽니다 간만에 eyeball 한번 시도해 봅니다 ^^ㅣ
생생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