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刑, 쓸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 -이청준論
이청준은 1939년 8월 9일 전남 장흥에서 출생하였다. 고향집에 가기 위해서는 전남 장흥읍에서 솔티재를 넘어 천관산(天冠山)을 넘어야 한다. “하늘에 관을 씌운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 산은 어찌 보면 작가의 탄생을 예견하고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청준 말고도 한승원, 이승우와 같은 출중한 작가들이 모두 이 고장 출신인 것이다.
그가 태어난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는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산이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진목 마을은 영화 『축제』에서 오정해가 포구 마을의 한 횟집에서 술에 취해 노래하는 연기를 펼친 곳이다. 또한 그의 작품 중 단편 「침몰선」, 「노송」, 「돌아온 풍금」의 배경이며, 장편 『흰옷』의 초등학교 여선생이 부임하고 떠나던 포구이기도 하다.
이곳 오지벽촌에서 중학교 입학 전까지 부모님과 일곱 형제와 함께 살았고, 고등학교는 광주로 유학을 가 광주 제일고를 다녔다. 이청준은 광주 유학생으로서 마을의 자랑거리였다. 부모님은 물론 마을 모두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출세가 보장되는 법학을 택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던 문학의 세계를 향해 서울대 독문학과에 진학하였다.
이청준이 문학으로 나아가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그가 여섯 살 나던 해 어느 봄날 새벽, 세 살짜리 막내가 홍역으로 죽은 것을 시작으로 연달아 맏형과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다. 멋쟁이로 통했으며 책읽기를 즐겼던 맏형은 스물 여섯 한창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다시 2년 후에는 그 맏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던 부친이 타계했다. 어린 이청준은 형이 읽던 책들의 행간에 적어놓은 단상이나 일기장, 생전의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형과의 정신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글을 통한 인간의 정신적인 재생을 믿게 된다. 그 경험은 이청준의 문학적 상상력에 근원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청준의 어릴 적 체험으로 빠뜨릴 수 없는 커다란 기둥은 가난과 어머니이다. 이청준은 공사석을 막론하고 스스로 그리 말했으며, 「눈길」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1977년에 쓰여져 이청준의 가장 빼어난 단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의 배경은 이러하다.
그의 형은 고약한 술버릇으로 전답과 집까지 홀랑 팔아먹고 만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청준은 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는데 어머니는 그 사실을 감춘 채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서 내 집인양 아들을 맞이하여 밥을 해 먹이고 잠까지 재워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신새벽에 눈 쌓인 산길을 걸어 아들을 읍내 차부까지 배웅하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자신이 걸어갔던 눈길에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 발자국에서 아들의 목소리와 온기가 그대로 느껴져 아들의 발자국만을 밟으며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눈앞이 가리도록 그 발자국 위에 눈물을 뿌리면서 말이다.
이청준의 어머니는 1994년에 세상을 뜨셨다. 이청준은 어머니의 부재를 글쓰기를 통해서 메운다고 한다. 이청준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고향 나들이를 할 때면 원죄의식과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이 많다. 그것은 이청준 자신의 고향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어릴적 고향은 그 시절 어디나 다 그랬었던 것처럼 가난하고 남루하였다. 이청준은 가난한 고향을 부끄러워하며 빠져나왔다. 나이가 좀 들고 난 뒤 고향과 화해를 하고 그곳을 다시 찾고 싶어졌을 때 그 옛날의 일들은 그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그는 지금도 고향집을 찾을 때면 공연히 무언가 떳떳치가 못한 느낌 때문에 될수록 날이 어두운 때를 타서 들고나곤 한다. 그는 그 부끄러움이 소설을 쓰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서울대 4학년 재학중이던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退院)」이 당선되면서 이청준은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시기 이청준은 독일 소설을 통해 늘 만나던 주제인 “인간의 심성”,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맞는 초고를 65년의 노트에서 골라내어, 약 일주일에 걸쳐 손을 본 다음 완성한 소설이 바로 「병신과 머저리」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67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후에도 1969년「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75년「이어도」로 한국일보창작문학상, 1978년 「잔인한 도시」로 이상문학상 수상, 1980년「살아있는 늪」으로 중앙문예대상, 1986년「비화밀교」로 대한민국문학상, 1988년「날개의 집」으로 21세기문학상, 1990년 「자유의 문」으로 이산문학상 등을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다.
이청준의 소설에는 도공이든 소리꾼이든 일종의 예술가들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한의 구조를 실타래 풀듯이 풀어가 보는 것이 많은데, 특히 몇 년 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서편제』는 소리를 찾아 떠도는 광대의 애절한 삶과 한을 그리면서, 그 한의 극복과정을 통해 전통을 재창조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청준은 평소 “문학이란 불행의 멋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의 큰 난국을 겪으며 가끔 “이 고통 앞에 혹 소설쓰기란 부질없는 넋두리요, 혹 뻘판에 얹힌 배를 배 위에서 미는 것처럼 허황된 짓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천형이라 했던가. 기술과는 달리 글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힘에 겨워오는 작업이다. 자기모방이 심해지고 소재도 고갈이 되고 특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발표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이청준은 서재로 들어오기가 무척 망설여지고 때론 끔찍스럽기까지 하다고 한다. 그래서 퇴근(작업실을 나가는 것) 후엔 반드시 술부터 마시는 것이 일과가 됐다. 하지만 또 쓸 수밖에 없는 게 작가의 운명이다.
이청준은 판소리를 좋아하고, 소싯적에는 좋아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서양음악은 클래식이건, 팝송이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 출신의 여자 가수 나나 무스쿠리를 좋아한다. 남들은 〈자유여 너를 위해서 노래 부른다〉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도, 그는 유독 〈숲속의 빈터〉라는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
이청준은 ‘작가라는 것은 세상을 향해 뭔가 끊임없이 자기 진술을 계속할 의무를 자청하고 나선 사람들’, ‘문학인은 구체적으로 농부가 농사짓는 일을 통해 그의 삶을 살아내듯이, 말과 글을 통해 그의 삶과 꿈을 실현하려 하며 그 방법을 탐색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문학인의 가치를 장인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청준의 작품 세계에는 다양한 삶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기 일에 만족해하지 않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와의 불화 속에 빠져 있는 인물들이다. 이청준은 그들의 비극적인 삶이, 힘이 지배하는 사회제도와 장인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불행은 한결같이 불행한 과거 속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청준은 현실에 대한 참담한 인식에서 비롯된 죄와 용서의 개념을 특별히 규정짓지 않는다. 두 사람 이상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출발한 불화와 대립은 누구의 죄가 크고 작음을 따질 수가 없으며,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이청준의 글은 정치적이면서도 종교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정치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하고, 종교적인 그 어떤 것에도 쉽게 동의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그 시대 정치의 부재를 의미하거나 신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소망하는 세계는 신이 없는 제사, 모든 사람이 제주가 되는 제사이다. 말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말이 되는 화해. 그는 소설을 통하여 그 존재적 언어와 관계적 언어 질서를 조화롭게 통합하는 삶을 꿈꾼다. 대립과 갈등이 점철된 불화의 세계에서 소설이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해 그는 신이 있는 종교가 아닌, 문학의 종교 가능성을 꿈꾼다.
이청준은 음모를 꾸미기를 좋아한다. 음모라고 하면 컴컴한 구석이 연상되지만 그가 주로 생각해서 만들어 내는 일은 저녁을 집에서 먹을 것인가, 밖에서 먹을 것인가, 주말에는 남한산성이라도 한번 올라가 볼 것인가, 누구를 꾀어내어 술이라도 빼앗아 먹을 것인가 하는 하찮은 일들이다. 그러느라고 머리카락이 은빛이 되었다고 한다.
이청준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하는 월급쟁이처럼 시간표 짜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그의 작업실(사실 그의 집에 있는 공부방을 말한다)에 출근하고, 점심 먹고 다시 들어가서 일하다가, 저녁 여섯 시에 퇴근하는 월급쟁이 생활인 셈인데 월급쟁이와 다른 점은 월말이 되어도 아무도 그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충실하게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까지 근무하고 주말이나 휴일을 꼬박꼬박 기다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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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연보
·1938년(1세) 8월 9일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현 회진면 진목리)에서 출생. 그의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 자신을 포함해 5남 3녀. ·1944년(6세) 어느 봄날 세 살 짜리 막내가 홍역으로 죽고, 반년 뒤 맏형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1946년(8세) 맏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아버지 타계. ·1948년(10세) 국민학교에 입학. ·1954년(16세) 장흥 대덕동초등학교 졸업. 광주에 있는 서중학교 입학.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광주에 있는 친척집에 기식하다, 3학년 때부터 독립, 자취 생활함. 고향 마을에서의 가난이 의식되면서도 고향에 대한 탈향의 욕망을 느끼며, 장차 도회의 생산적인 의식층으로 당당히 성장할 것을 다짐한다. ·1957년(19세) 광주 서중학교 졸업. 고3때 문학과 진학을 결심. ·1960년(22세)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 입학. 대학초년 시절에 4.19와 5.16을 겪는다. ·1965년(27세) 단편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당선. ·1966년(28세) 2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상계사 입사. 단편 「임부」를 《사상계》에, 「무서운 토요일」을 《문학》에, 「병신과 머저리」를 《창작과비평》 「줄」,「굴레」발표. ·1967년(29세) 단편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 수상.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문학》에 발표. 「공범」을 《세대》, 「등산기」를 《자유공론》, 「행복원의 예수」 《신동아》, 「마기의 죽음」 《현대문학》, 「과녁」《창작과 비평》에 발표. ·1968년(30세) 「석화촌」 《월간중앙》, 「매잡이」 《신동아》 등을 발표. 《아세아》창간에 참여. 그 해 10월 결혼. ·1969년(31세) 단편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신인상) 수상. 「보우너스」 《현대문학》,「선고유예」 《문학비평》, 「소매치기올시다」 《사상계》, 「꽃과뱀」 《월간중앙》, 「꽃과소리」 《월간중앙》, 「가수」 《월간문학》, 「6월의산화」 《아세아》, 「변사와연국」 《여원》, 「원무」 《조선일보》, 「마스코트」 《한국전쟁문학전집》, 「쓰여지지 않는 자서전」 《문학비평》, 「이상한 나팔수」 《여성동아》, 「개백정」 『68문학 제1집』발표. ·1971년(33세) 「소문의 벽」을 《문학과지성》에 발표. 이 해 9월에 20편을수록. 《일지사》에서 첫 창작집 『별을 보여 드립니다』출간. 월간 《지성》 창간에 참여. 「발아」 《월간문학》, 「목포행」 《월간중앙》, 「미친 사과나무」 《한국일보》, 「괴상한 버릇」 《여성동아》 발표. ·1972년(34세) 단편 「석화촌」이 영화화되어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 창작집 『소문의 벽』이 민음사에서 출간. 단편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월간중앙》, 「조율사」 《문학과지성》, 「어떤 귀향」 《세대》, 「배꼽을 주제로 한 변주곡」 《신동아》, 「현장사정」《문학사상》, 「가면의 꿈」 《독서신문》에 발표. ·1973년(35세) 《세대》에 「떠도는 말들」을 발표. 삼성출판사에서 중편 「조율사」를 출간, 「그 가을의 내력」 《새농민》, 「엑스트러」 《여성동아》, 「대흥부동산공사」 《자유공론》, 「떠도는 말들」《재수록,(문학과지성)》 발표. ·1974년(36세) 장편 『당신들의 천국』을 《신동아》에 연재, 중편 「이어도」 《문학과지성》, 「건방진 신문팔이」 《한국문학》, 「뺑소니 사고」 《한국문학》, 「낮은 목소리로」 《현대문학》, 「줄뺨」 《세대》, 「안질주의보」 《문학사상》에 발표. ·1975년(37세) 중편 「이어도」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수상. 장편 『쓰여지지 않은 자서전』이 일본의 ‘泰流社’에서 일역 출간. ·1976년(38세) 본격적으로 고향 방문을 계기로 「서편제」, 「눈길」등이 쓰여진다.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창작집 『이어도』를 ‘서음출판사’, 「서편제」 《뿌리깊은 나무》, 「자서전을 쓰십시다」 《문학과지성》, 「황홀한 실종」 《한국문학》, 「꽃동네의 합창」 《한국문학》, 「치자꽃 향기」《한국문학》에 발표. ·1977년(39세) 「눈길」 《문예중앙》, 창작집 『자서전을 쓰십시다』 ‘열화당’, 『예언자』 ‘문학과지성사’, 「연」 《동아일보》, 「지배와 해방」 《세계의문학》, 「불머금은 항아리」 《문학과지성》, 「춤추는 사제」 《한국문학》, 「불알 깐 마을의 방」 《뿌리깊은 나무》에 발표 ·1978년(40세) 「잔인한 도시」로 제2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은 손」 《열화당》, 창작집『남도사람』 ‘예조각’, 「남도사람」《전남일보》, 장편 『이제 우리들의 잔을』 ‘예림출판사’ 발표 및 출간. ·1979년(41세) 「빈방」 《문예중앙》, 『선학동나그네』 ‘문학과지성사’, 「지배와 해방」 《세계의 문학》. 장편 『춤추는 사제』 ‘홍성사’, 「흐르지 않는 강」 ‘문장사’, 「겨울광장」 ‘문학사상사’에서 출간. ·1981년(43세) 소설집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장편 『낮은 데로 임하소서』‘홍성사’ 출간. 「노송」 《소설문학》, 「다시 태어나는 말」 《한국문학》, 「돌아오지 않는 탕자」 《문학사상》, 「가로수씨의 마지막 심술」 《소설문학》 간행, 중편 「이어도」 (극단 ‘서울예술좌’)가 연출·공연. ·1982년(44세) 「과녁」 《문학예술사》, 「여름의 추상」 《한국문학》. 창작집 『시간의 문』 ‘중원사’간행, 「제 3의 신」《현대문학》 ·1983년(45세) 창작집 『제3의 현장』 ‘동화출판공사’, 『백조의 꿈』 ‘여학생사’출간. ·1984년(46세) 「병신과 머저리」 ‘홍성사’, 「눈길」 ‘홍성사’, 「흐르지 않는 강」, 「여름의 추상」‘홍성사’,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 지성사》, 「황홀한 실종」 《나남》, 「조율사」‘홍성사’ 출간, 「노거목의 대화」 《현대문학》 『가위 및 그림의 음화와 양화』 《세계의 문학》 간행. ·1985년(47세) 「비화밀교」 《문학사상》, 「벌레 이야기」 《외국문학》, 『흰 철쭉』 《현대문학》, 『비화밀교』 《나남》, 『쓰여지지 않은 자서전』 《중앙일보사》, 「말없음의 속말들」 《나남》, 「쓰여지지 않는 자서전」 《중앙일보사》, 「숨은 손가락」 《문학과 지성사》, 「나들이하는 그림」 《현대문학》, 「해변아리랑」 《문예중앙》, 「밤에 읽는 동화풍」 《현대문학》간행. ·1986년(48세) 중편「비화밀교」로 대한민국문학상(우수상)수상. 한양대학교 출강. 「따뜻한 강」 《나남》, 「섬」 《현대문학》간행. ·1987년(49세) 「흐르는 산」 《문학과비평》 발표. 『겨울광장』 《한겨레》 출간. ·1988년(50세) 『벌레 이야기』 ‘심지’, 『남도사람』 ‘창작과비평사’, 『아리아리 강강』 ‘우석’, 『이교도의 성가』 ‘나남’ 등을 출간. 「전짓불 앞의 방백」 《문학과사회》에 발표. ·1989년(51세) 「금지곡 시대」 《문예중앙》, 「이 여자를 찾습니다」 간행, 「키 작은 자유인」을 《문학과지성》에 발표. 『자유의 문』을 ‘나남’에서 출간. ·1990년(52세) 『자유의 문』으로 이산문학상 수상. 『키 작은 자유인』 《문학과지성사 》, 『이제 우리들의 잔을』 ‘동아’, 「용소고」 《현대문학》, 「지관의 소」 ‘문학정신’ 출간. ·1991년(53세) 중편 「이어도」와 「예언자」가 프랑스 ‘악트쉬트사’에서 불역 출간. 「새 가운들」 ‘청아’, 「젊은 날의 이별」 ‘청맥’ 「세월의 덫」 《문예》 창간호, 「선생님의 밥그릇」 《경향신문》, 「작호기」 《경향신문》, 「씌여지지 않는 자서전」 출간. ·1992년(54세) 「가해자의 얼굴」 《월간중앙》에 발표. 『별을 보여드립니다』 『가해자의 얼굴』‘중원사’에서 출간. ·1993년(55세) 「서편제」가 영화화되어 대종상최우수작품상 수상. 『서편제』 ‘열림원’ 출간. 『당신들의 천국』이 프랑스에서 출간 ·1995년(57세) 『춤추는 사제』‘도서출판장락’ 출간. 『흰옷』 ‘열림원’ 출간. ·1996년(58세)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와 동반 창작의 장을 연 『축제』 출간, 판소리소설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 「놀부는 선생이 많다」 출간. ·1997년(59세) 동화집 「뻐꾸기와 오리나무」 출간. ·1999년(60세)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2000년(62세) 소설집 「목수의 집」, 동화집 「선생님의 밥그릇」 ‘다림’에서 출간,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출간. ·2001년(63세) 프랑스 ‘Actes Sud’에서 『흰옷』이 『L'Harmonium』(譯Patrick Maurus, Son Mi-Kyung) 제명으로 출간. ·2003년(65세) 『이청준문학전집』에 ‘열림원’에서 완간, 장편 『신화를 삼킨 섬』1, 2권 ‘열림원’ 출간. 『흙으로 빚은 동화 숭어도둑』 ‘디새집’에서 출간,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 ‘현대문학’에서 출간, 『병신과 머저리』 ‘이가서’에서 재출간, 『당신들의 천국』 스페인에서 출간. ·2004년(66세) 산문집 『인생』 ‘열림원’ 출간. 시인 김영남, 화가 김선두와 고향을 그리는 산문집 『옥색바다 이불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를 ‘학고재’에서 출간. 산문집 『아름다운 흉터』 ‘열림원’ 출간. 작품집 『꽃 지고 강물 흘러』 ‘문이당’ 출간. ‘한림출판사’가 기획한, 한·영 대역본 ‘한국현대단편문학시리즈’ 이청준 「눈길」(이현재 번역·최재은 그림) 출간. 『당신들의 천국』이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 번역지원으로 『Your Paradise』(제니퍼 리·티모시 R. 탱걸리니 공역) 제명으로 미국에서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