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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을 휩쓸고 원기충천
-AMP35기 전북 고창 여행기-
1. 일시: 7월 16일(금) 오후 2시-17일(토) 오후 11시
2. 모임 장소: 5호선 여의나루역 4번출구 앞
3. 여행코스: 서울→채석강→곰소나루→선운산→서정주 생가→김성수 생가→고창읍성→신재효 생가→백양사→서울
4. 참석자: 김강삼, 김선희, 김태완, 오일균, 이수록, 이점옥, 임수경, 주영룡, 최창하(9명)
장마라서 비가 오락 가락 하는 날씨가 계속 된다. 출발 하루 전날에 모든 참석예정자들에게 전화로 확인을 했다. 아무도 비가 많이 와서 안 간다고 하거나, 가지 말자고 하는 분이 없다. 단단히 준비를 해 가지고 오시라고 총무님이 자세한 준비물을 안내했다.
7월 16일 금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비가 엄청 퍼붓는다. “그래도 간다” 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챙겨 여의도로 향했다.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하고 드디어 출발.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 되긴 한다. 김강삼 사장님과 김태완 사장님에게 안전운전하시라고 부탁드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거리 여행 동안 안전운전 해 주신 두 분 사장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우리 동기 중에는 오일균 사장님이 있어 걱정을 덜어도 될 듯 싶다. “내가 가는데 비 오는 거 봤어?” 하면서 본인도 말씀 하시 듯, 아마 내일 등산 할 때는 비가 안 올거야 하고 기대했다.
길이 막히는 비 속을 헤치며 장시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고창에서 유명하다는 채석강이다.
서울은 비가 많이 왔었는데 이곳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는다. 서울은 비가 많이 온다고 가족들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여기는 비가 안온다고 안심하시라고 대답했다. 역시나 오일균 사장님의 氣가 센 것 같다(오일균 사장님, 비 맞지 않고 여행하게 해 주신 것이 사장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해수욕도 할 수 있고, 층암절벽인 채석강의 절경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바위가 단층을 이루어 마치 책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점옥 사장님은 톡톡 치면 하나씩 쪼개질 것 같다고 하신다(점옥 언니, 넘어진 상처는 잘 치료하셨나요?). 이수록 사장님은 소녀처럼 좋아라 하면서 가재도 잡고, 소라도 따고, 미역도 따고, 집에 가서 국을 끓여 드신다고 하신다(수록 언니, 감정 풍부하고 정이 넘치십니다). 즉석에서 파는 소라와 해산물을 안주로 소주를 한잔씩 하고 사진도 찍고 채석강을 떠났다.
채석강을 기점으로 해서 도로를 따라 가면서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갯벌을 보면서 한 시간 쯤 가서 도착한 곳은 곰소나루이다. 나루는 인적이 없고 활발하지 못한데, 곰소의 젓갈은 유명하다고 한다. 젓갈 가게가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지역가이드인 김강삼 사장님의 안내로 한 가게에 들어가서 모든 분들이 하나씩 골고루 젓갈을 샀다. 창란젓, 낙지젓, 전어젓, 멸치젓, 새우젓, 토하젓, 오징어젓 등 수많은 젓갈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조개젓을 샀는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신선하고 너무 맛이 좋다. 어머니는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큰 걸로 살걸 그랬다고 하신다. (김강삼 사장님, 북분자주 선물 고맙습니다.)
예정보다 도착시간이 늦었고 구경할 곳이 많아 저녁시간이 늦었다. 선운사 가까운 곳에 이 지역의 특산물인 북분자와 豊川장어를 하는 식당이 많았다. 우리는 김강삼 사장님이 미리 예약해 둔 집에서 풍천장어를 안주로, 김강삼 사장님 댁에서 직접 담근 복분자주를 특배송해서 저녁을 너무나 유쾌하고 맛있게 먹었다. 원기회복 시키는 장어와 '요강이 뒤집어진다'는 복분자술(엎어질 覆, 동이 盆)을 모두 적당히 마셨다. 김태완 사장님은 컵에 쭉 따라 댓잔은 들이켜야 효과를 본다는 말에 큰 컵에 따라서 조금 많이 마셨다.
특히 오일균 사장님의 생일이라고 해서 생일 축하 건배를 하고, 생일 축하 노래도 하고, 임수경 고문님은 미니골드 제품으로 선물도 하셨다.
세심한 배려에 너무 감동적이고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다. 너무나 부러워서 다음 모임은 9월 13일로 잡을까 보다. 오일균 사장님은 모든 이들에게 청이 있다고 하였는데 날이 날이니 만큼 모두 들어주었다. (오일균 사장님, 귀엽고 깜찍하게 우리를 유쾌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임수경 고문님, 언제나 해박한 문학과 음악에 관한 지식으로 감동시키시는데, 어제도 감동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날 밤 ‘동네가 절단날까’ 걱정하던 염려는 조용히 지나갔다.
짧은 잠을 얇게 자고나서 아침을 맞았다. 음식점 주인이 서비스로 주신 복분자 원액과 콩나물국밥 또한 너무 맛있게 먹었다(사장님 고맙습니다).
아침을 즐겁게 든든히 먹고, 장비를 점검하고,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러지는 선운산으로 향했다.
선운산 입구의 선운사는 한국의 명승고찰로 유명하고, 송창식 가수의 노래로 들어 본 적이 있는 절이다. 선운사 창건은 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이자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다. 선운사에는 보물, 유형문화재 등이 있다. 또 수령 500여년의 동백나무숲과 장사송, 송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꽃은 4월에 핀다고 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잔한 전설이 서린 상사화(相思花)는 늦여름에 피어 보지 못했다. 대신에 원추리꽃이 무리지어 우리를 맞아주었다. 초가을에는 꽃무릇, 늦가을에는 단풍이 계절 따라 색깔을 달리하면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詩碑도 있었다.
선운산은 해발 400여미터로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아담하고 정감있는 느낌을 주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의 제1코스 등산로는 울창한 수목이 터널을 이루고 있고 거의 평지인 느낌으로 가뿐했다. 도솔암 부근에는 수령 600년의 장사송(長沙松)이 있었다. 그 옆에는 진흥굴(眞興窟)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출가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마애불이 있다. 가로 5M 세로 3M 정도의 불상이 새겨있었고, 여기저기 구멍이 많았다. 명치 끝에는 돌출부가 있는데 여기에 예로부터 신비한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서구가 배꼽을 열어 보니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뇌성벽락이 치자 두려워 책을 도로 넣고 봉했다고 한다.
선운산 정상인 낙조대를 올라가는 길은 철제 계단길이다.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난간을 부여잡고 올랐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선운산이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낙조대라는 이름을 확인하려면 저녁에 와야 될 듯 싶다.
김강삼 사장님의 동생 분도 우연히 산에서 만났는데 그 분은 벌집을 밟아서 걱정했는데, 말벌로 비싼 봉침을 맞았다고 좋아하신다(괜찮으세요?). 주영룡 사장님이 주신 반창고를 붙인 탓인지 하산길에 무릎도 건강하다(주영룡 사장님, 고맙습니다). 김태완 사장님이 준비해 온 맛있는 오미자차를 마시며 천천히 하산을 하고 등산장비를 정리하였다.
이제부터는 드라이브 코스이다.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생가는 소박했고, ‘국화 옆에서’가 생각나게끔 국화꽃을 많이 심어놓았다. 바로 옆에는 기념관이 있었고, 친필로 쓴 ‘무등을 보며’가 액자로 걸려있고 친필 원고도 있고, 예금통장, 임명장, 소지품 등이 있었다. 날은 ‘푸르른 날’이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10분쯤 차로 가니 인촌 김성수 선생의 생가이다. 생가는 대문이 여러개 있는 부자집이었다. 작은댁을 거쳐 큰댁으로 들어가야 하는 구조였다. 모두들 큰 댁을 걱정하는 말을 한마디씩 했다. 인촌은 전라도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김경중의 4남으로 태어나 세살 때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들어갔다. 동아일보를 창간, 고려대학교를 발족, 경방과 삼양사를 설립하고, 제2대 부통령에 피선되었다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었다.
계속 드라이브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유적지 밀집지역을 지났다. 푸른 초원 위에 늘어선 고인돌이 색다른 분위기를 주었다.
구경할 곳이 많아 늦은 점심을 했다. 현지 가이드인 김강삼 사장님의 안내로 간 음식점의 민물매운탕은 정말 감칠맛이 있었고 골다공증 예방에 일조를 할 것 같았다. 또 임수경 고문님이 담궈 오신 매실주를 곁들였다. (음식점, 숙박지 예약해 주시고, 현지 가이드로 고생하신 김강삼 사장님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여유있게 커피까지 한잔씩 하고 고창읍성으로 향했다.
고창읍성은 조선시대 왜침(倭針)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고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성은 아름다웠으며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며 성곽 위를 한번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번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번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한다. 한가지 소원을 가슴에 담고 돌을 머리에 이고 돌려고 했는데 시간도 짧고 돌이 자꾸 떨어져서 소원이 이루어지긴 힘든 것 같다.
고창읍성 바로 옆에는 신재효 생가와 판소리 박물관이 있었다. 동리(桐里) 신재효는 조선 후기 판소리 연구가로 고창에서 태어나 판소리 여섯마당, 즉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가사를 정리하고 판소리의 이론을 정립하였다고 안내문에 있었다.
조금 다리가 피곤하다고 느끼면서 드라이브를 즐기는데 이점옥 사장님은 '전국 최고의 맛'인 고창수박 맛을 보지 못하면 서울로 못 간다고 하신다. 바로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달고 시원한 수박 한통을 해치웠다(점옥 언니, 덕분에 수박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녁 6시가 넘어 백양사를 들렀다. 입장료가 비쌌는데 운무와 물안개의 황홀함에 입장료 값을 한다고 생각했다. 오일균 사장님은 셔터 눌러대기에 바쁘다. 비도 조금씩 와서 아름다운 나무터널 속을 우산 쓰고 데이트 하는 기분도 맛보았다.
백양사는 서옹 스님이 출가하고, 91세에 “이젠 가야겠다”고 앉은 채로 열반하고 입적했다고 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는 가운데 스님들의 진지한 기도소리는 듣기가 좋고 경험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다. 벌써 8시가 되었다. 그래도 아무도 빨리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다. 전통찻집에서 쌍화탕을 마시면서 해단식을 했다. 밤과 은행이 잔뜩 들어있는 쌍화탕은 피로를 풀어주고 저녁 요기가 되었다.
죽전 휴게소까지 열심히 달려 마지막 아쉬운 이별을 하고 헤어졌다.
이번 여행은 예정했던 일정대로 꽉 차고 충실했던 여행이었다. 몸에 좋은 보신 음식 열심히 먹고, 열심히 놀았으니 원기 충만, 빵빵해진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야지.
<P.S.>
* 김기상 사장님 가고 싶어 하셨는데 출장 잘 마치고 오셨나요? 복분자주 마실 때 사장님 잔 옆에 놓고 마셨습니다.
* 영찬 친구 일 끝나면 온다고 한숨 푹 내쉬며 “못가는 사람 심정은 오죽 하겠냐”고 했는데 결국 못오고, 우리만 너무 재미있게 놀아서 미안하네.
* 민준씨 억대 계약은 잘 마쳤나요?
같이 가신 모든 분들, 함께 가지 못하신 모든 분들, 8월에 外島에서 다시 회포를 풀자구요!!!
<새끼총무 전합니다.>
첫댓글 써니! 그대의 글속에 한바탕 여행을 또 한듯하오 ....
김강삼 사장님! 고맙습니다. 총무님<새끼총무포함> 수고하셨습니다.
글만 읽어도 대략 짐작이 됩니다. 좋아하는 분들의 만족스러운 여행에 축하를 보냅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복분자에 장어드시고 어떠 하셨나요. 정말 궁금하네요... 답변을 기대해도 될런지요?
짱동건 님은 궁금 할테지... 覆盆子 + 장어 = 잠 못이루는 밤 ㅎㅎㅎ...
아! 잘 읽었다. 진짜 한번 더 같다가 왔네(잠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서 기쁘고, 더우기 함께한 모든 친구(형,누나,동생)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기쁨을 함께 하였으면 좋겠네.....
짱동건님 함께못해서 아타까운 이루말수 없었읍니다. 복분자 성분 역할이 발생할 가능성 충분합니다.짱동건님 산행총무 묵묵히 잘해주시니 제가 복분자주 챙겨 두었읍니다.수일 내로 접수바람니다.서울역에서...댁에 어르신 하고 대작하시죠.연락 주세요.
여독이 아니라 주체 못할...그거 땜에 다들 조용하군요...챙겨준 복분자 잘마셨습니다...~~~빈술잔에~~~~마지막 잔을 채워준 님들이여 !행복하소서...날로 늘어가는 산행일기가 안가도 다녀온듯한 여정의 내음이 내 옷깃에 묻어나옵니다.....비가 너무와서 걱정반 시기,질투반 ...생각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금강산님! 말씀만 이라도 감사합니다. 수일 내로 찾아 뵙겠습니다.
전 누군가 큰잔느오 연거푸 4잔을 마셔야 효가가 있다기에 그냥 마셨다가 가 버렸네요.. 힘은 써 보지도 못하고..이번 여행.산행은 모든 면에서 너무 완벽하고 행복한 기회 였습니다.
북분자 술로 버티어 왔는대 앞으로 무엇으로버티죠???
앞으로는 바이첸으로 버티죠....
8월에 外島가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