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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큐슈 마쿠라자키 차시험장 및 호시노다원 방문
(2011.1.13.~16. 영남차회 회원들과 함께)
(사)영남차회 교육원장 박용구
영남차회가 설립 된지 26년 만에 처음으로 차를 테마로 해외 나들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책으로만 듣고 배운 것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보고 얻는 지식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학습효과가 있는 교육방법이라고 한다.
2008년 사단법인으로 시작한 영남차회가 초급, 중급, 고급 그리고 차문화대학원이 설립되어 명실상부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주변 인접국가의 차산업에 대해 공부하여 왔기 때문에 이번 일본 방문은 큰 의의를 가지는 여행이었다.
겨울 방학 중에 비행기 사정이 좋지 않아 어렵게 준비된 3박4일 간의 비행기 여행 스케쥴은 처음 계획했던 것 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으나 그런대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여행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차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차나무 연구에 대한 방법과 그 발전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이번 일본여행은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일본은 상당히 이른 시간에 품종개량사업을 실시하여 많은 신품종을 개발하여 보급해 왔으며 재배 방법과 기능성 제품 생산도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 있는 일이였다.
또 한편 제품 특히 말차 생산을 하는 호시노다원를 방문하여 말차 생산 과정과 제품 등을 접해보는 기회를 가진 역시 차 공부를 하는 사람들로써 매우 뜻 깊은 일이였다.
그러나 이 두 곳 중에 한곳인 차연구소는 가고시마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시노제다원은 후쿠오카 구루메 근방에 위치하고 있어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방문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서 가기 전에 준비 시켜 놓았던 차품평에 대한 것과 일본차 행다 시연을 볼 수 없었던 것이 큰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여행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날짜별로 정리하였다.
2011. 1. 13. 수요일 맑음
아침 6시10분 대구에서 김해공항 가는 경북고속버스 회사의 리무진 버스를 탔다. 여행에 참여한 인원이 전체 16명(장명숙, 김혜자, 김정규, 김명규, 이후임, 김영우, 박숙조, 안옥임, 김명희, 김주애, 정연찬, 최재영, 최억희, 김점호, 조규용, 장명숙, 김혜자, 박용구 총 16명. 조규용과 정연찬 영남차회원 이외 분들이 2분 참석함)이 출발하였다.
김해 공항에 도착한 것이 7시30분 그곳에 안내양으로 나온 사람이 이영미씨로 지난번 대마도 레지오 회원들과 갔을 때 안내 받은 기억이 있어 반가웠다. 9시에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 공항으로 날라 갔다. 비행시간 약 30분 후에 도착하였다.
10시 후쿠오카 공항 밖에서 기다리는 일본 성북 관광회사(운전기사 有田香男 城北交通 熊本縣 山鹿市平山5384-1) 22인승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후쿠오카를 출발하여 가고시마로 달려간다. 환하게 맑지는 않지만 후쿠오카에서 고속도로에 올라 구마모토 근방의 휴게소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좀 많이 짜서 맛이 별로 없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달리고 달려 오후 3시30분에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성당에 도착하였다.
이 성당이 일본에 처음 가톨릭이 들어와 지어진 사비에루 성당이라고 했다. 가톨릭 가고시마 사교구의 사교좌성당(Cathedral)성당이다. (사교구 성당이란 교구민의 어머니가 되는 교회로서 그 신앙생활에 봉사하는 곳이며 가고시마의 복음선교의 거점 성당이다. 그리고 일본에 가토락 복음을 처음전한 성 후란시스 사비에루 가고시마 상륙 기념비를 세운 곳이다.
이 성당은 이층의 성당 안에서 바라보면 내부 채광이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다. 사비에루의 성유골이 모셔진 곳이었다. 일본에 가톨릭이 전해진 것이 1549년 8월 후란시스코 사비에루신부가 가고시마에 상륙 번주인 가고시마貴久에 포교의 허가를 받아 100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550년 7월 사비에루신부는 후쿠오카현의 平戶(히라또)에 가서 포교를 시작하였다. 1587년 또요또미히데요시(豊臣秀吉)이 바테렌추방령을 발표하고 1614년에 도쿠가와이에야츠(德川家康)가 크리스교 금교령을 발표, 1869년 나가사기의 그리스도인 375명을 가고시마로 귀양 보내고 그중 57명은 가고시마에서 죽었다. 1873년 그리스도교 탄압을 철폐, 1890년 6월 嶋田喜藏신부가 가고시마에서 선교활동시작, 1891년 교회부지확보, 1945년4월 교회폭격으로 전소, 1999년 사비에루교회 건립을 완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당을 구경하고 시내 박물관 앞에 있는 사이고다까모리(西鄕隆盛) 동상을 구경하였다. 박물관 앞 도로변에 하수도위에 작은 물길을 만들어 큰 비단잉어를 넣어 보기에 좋았다. 오후 4시 사쿠라지마 관광 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배를 타고 사쿠라지마로 건너갔다.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사쿠라지마는 아직 분화구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고 있지만 가까이서 볼수록 그 위용이 대단했다.
사쿠라지마에 내려 사쿠라지마 방문 센터에가서 영상을 보고 나와 바다가에 있는 족탕에 가서 여러분들이 족탕을 즐겼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으나 아랑곳없이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에 즐거워보였다. 다시 자동차를 타고 사쿠라지마 관광대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화산이 분화구에서 분진을 내품어서 하늘에서 모래 같은 화산재가 떨어져 머리와 옷 위에 쏟아져 다시 자동차를 타고 사쿠라지마를 돌아보면서 기리시마에 있는 호텔로 갔다. 호텔까지 거의 두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하였다.
호텔은 특급으로 기리시마로얄호텔 1628호에 머물게 되었다. 방도 넓고 침대도 3개나 있는 가족실에서 혼자 잠을 잤다. 저녁에 같이 합류해온 74세의 권사장이 가고시마 특산 흑소주를 사서 같이 나누어 마면서 지나온 인생 이야길 듣고 돌아와 대온천장에 가서 온천을 하고 잠을 잤다.
아침에 대구를 출발하여 일본 구주 가장 끝머리에 있는 기리시마에서 잠을 자는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40여년 전 유학시절을 생각해 보면 교통 상황이 매우 좋아진 것같았다.
일본 성북관광버스 가고시마 사교자성당 사무장과 함께
사이고다까모리 동상(박물관앞) 사꾸라지마 족탕(피곤이 한꺼번에 풀림)
사쿠라지마 관광센터 앞 사쿠라지마 활화산 분연
2011. 1. 14. 목요일 맑음
아침 8시 호텔을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다. 다들 8시에 차에 올라있었는데 중급반 4명이 15분이 지난 후에 자동차에 승차하여 출발이 늦었다. 가고시마 시내를 거쳐 다시 내려가 지란을 거쳐 마꾸라자끼 시험장에 10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일본에 차가 도입된 것은 805년 최증과 공해에 의해 중국 송나라에서 도입되었으며 1590년 일본의 우라센케이가 일본다도를 정립하여 일본의 다도가 크게 퍼져 나갔으나 상류사회에 머물고 있었다. 1865년 막부 말에 수출산업 진흥책에 따라 홍차 생산을 확대해갔으며 1875년에는 중국의 차기술자들을 불러 차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900년대에 들어와 다원면적이 증가되고 차가 수출 주요 작물이 됨에 따라 차의 번식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잎을 채취하는 기계의 보급에 따른 적당한 재배기술의 개선이 뒤따르게 되었다. 나아가서 기계제다가 성행하고 차 성분을 밝혀내기 위해 제다기술이나 제다화학과 같은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농사시험장에서는 일부문인 제다부 만 가지고는 이와 같은 광범위한 부분의 연구를 만족시킬 수 없어 1916년에 국립다업시험장 신설을 건의하여 1919년 4월 靜岡縣 金谷町에 국립다업시험장이 신설되었다.
시험장의 설립에 있어서 정부의 방침을 [차나무의 품종개량에서 재배, 제조에 관한 학문, 기술 및 경영방법의 연구와 함께 홍차, 전차(磚茶)의 생산 및 판매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며 다업에 관한 강습 및 기술자의 양성을 한다]라고 정했다. 이에 따라 차 생산의 중심지인 靜岡縣의 한가운데 차 연구기관이 설립되어 차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보다 먼저 鹿兒島縣에서는 靜岡縣보다 빠른 1901년 鹿兒島縣 농사시험장 다업부가 소규모로 설치되었으며 본격적인 시험연구의 개시는 1929년에 鹿兒島縣 知覽村에 鹿兒島縣농사시험장知覽분장이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1929년에 농림성의 홍차 지정시험사업이 위탁되어 그 후 일본의 국산홍차의 연구 및 품종육성에 있어서 많은 성과를 얻게 되었다.
정부에서 설립된 연구기관 뿐만 아니라 明治시대(1868~1912)의 중기에는 이와 같은 품종개량이 민간에서도 시도되었으며 차밭에서 조생종 또는 만생종의 차나무가 선발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靜岡縣安部郡有度村의 杉山彦三郞 이다. 그는 [八重穗], [藪北], [小屋西], [六郞] 등 수백 종이 넘는 품종과 계통을 선발하였으며 품종 선발 방법으로 취목, 삽목기술을 연구하여 차 업계에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야부기타]는 전후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서 1953년에는 茶農林 6호로 지정되었다. 재래종에서 품종의 갱신이 활발하게 되었으며 1970년이래에는 靜岡縣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증식이 되어 현재 일본 차밭면적의 76%를 차지하고 있는 독점품종이 되었다.
그 후 중앙정부나 현의 다업시험장의 품종개량이 괘도에 올라오게 되어 민간육종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방문하려고 하는 마꾸라자끼 연구소 설립역사와 연구내용에 대해 본 중점기관에서 만든 홍보자료를 참고로 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연혁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1900년 초 가고시마현 시험장이 설립되었으며 그것을 기점으로 처음 홍차연구를 위해 1960년 중앙정부의 구주농업시험장 차업부로 3개 연구실과 서무과가 설치되었다. 그 다음해인 1961년 12월 차업시험장 지장으로써 재편되었으며 그 후 4개 연구실로 확장되어 1960년대 후반까지 일본 유일의 홍차연구 기관으로써 서남난지에 있어서 홍차산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일본 홍차에 대한 국내외 정세가 바뀜에 따라 녹차연구로 바뀌어 1970년대 난지녹차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에 공헌해 왔다.
1980년 후반에는 전국적으로 녹차산업이 성숙함에 따라 다시 연구체제를 개편하여 1986년 12월에 야채시험장에 통합되어 야채, 차업시험장 구루메 지장(枕崎)으로 되었으며 난지차의 육종, 素材化연구 및 난지녹차식물의 육종 재배연구의 거점시험장으로써 3개 연구실, 1개 총무실 체제로 재발족 되었다. 그후 1991년 10월에 녹화식물연구실이 본장으로 이전되어 2개 연구실로 재편되었으며 1996년 10월에는 2개연구실이 통합되어 暖地茶樹育種硏究室로 개편하여 차재배부에 편입 되었다.
국가행정개혁에 따라 국립시험연구기관이 독립행정법인화로 추진되어 2001년 4월부터 독립행정법인 농업기술연구기구 야채다업연구소 마쿠라자끼다업.농업.생물계특정산업기술연구기구로 재편되었으며 2006년 4월부터서는 비공무원화된 독립행정법인 농업.식품산업기술총합연구기구의 야채다업연구소 마꾸라자끼다업연구거점으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조직
2006년 4월부터 야채다업연구소의 조직이 크게 개편되어 팀제로 운영되게 되었다. 본 거점은 茶施肥削減技術硏究팀, 茶IPM(Integrated Pest Management)연구팀, 野菜.茶機能性팀연구원 및 기획관리부관리과枕崎관리팀, 연구지원센타 업무 제2과로 구성되었다. 각 연구원은 차육종팀으로 속하게 되어 거점 내 보존된 3,000점이 넘는 다양한 차 유전자원을 이용하여 지난 날 해온 차나무육종연구를 계승 발전시키며 새로운 품종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야채다업연구소 조직은 마쿠라자기와 金谷에서 차와 야채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외에 安農, 쯔구바, 武豊에서는 야채연구를 하고 있다. 애채다엽연구 거점 조직은 소장 밑에 다업연구감, 기획관리부, 차시비삭감기술연구팀, 차 IPM연구팀과 야채 차기능성 연구팀이 각각 金谷와 枕崎에 있다.
3. 직원
일반직 2명, 기술직 2명, 연구직 5명 계약직원 10명(전문직 1) 총 19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4. 토지
건물 29,295m2, 포장 84,674m2, 산림 등 12,913m2 합계 126,882m2로 3만8천평에 달한다.
5. 각 연구팀의 연구목표
1) 차시비삭감기술연구팀
다원에서 질소 환경 부하를 낮추기 위해 액비 점적(点滴)이용이나 뿌리구역 환경의 개선에 의한 효율적시비기술개발과 소비적응성품종 개발을 하고 있으며 이들을 조합한 포장시험을 통해 질소시비삭감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
2) 차 IPM(종합해충관리) 연구팀
환경보전형의 병충해관리를 목표 길항미생물, 천적의 탐색이나 성페로몬, 병해저항성유도물질 등을 이용하는 방제기술을 개발한다. 또한 DNA 마카 등을 이용한 탄저병, 깍지벌레저항성계통을 개발한다.
3) 야채.차기능성연구팀
동물세포, 동물, 사람을 이용하여 야채, 차생활습관병예방효과, 명역조절작용 등을 해명한다. 또한 폴리페놀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차육종소재, 카페인 저함유 차계통 등을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가지유전자원에서 고기능성 안토시아닌을 탐색한다.
4) 차육종 구릅공통
차유전자원의 수집, 보존. 평가를 실시하여 육종소재를 개발한다.
6. 최근의 주요연구결과
* 만생으로 양질인 녹차용 품종"はるみどり"(1999년)
* 세포질유전하는 DNA 마커를 이용한 일본의 차품종의 유형화(2000년)
* 차의 적엽고병감염에 의한 “やぶきた"생체방어관련효소의 활성화(2001년)
* 차나 동백나무에 이용할 수 있는 규조토를 사용한 식물 DNA 신속 단리법(2001년)
* 차의 탄저병확대저항성 검정법(2002년)
* 선명하지 않은 RAPD밴드를 선명한 밴드로 변환시키는 e-RAPD법(2002)
* 아미노산 함량과 질소함량을 지표로 하는 차나무의 소비적성품종의 검정(2002년)
* 차품종 계통 및 유전자원의 탄저병 확대저항성평가(2003년)
* 깍지벌레 저항성 DNA마커선발이 가능한 차중간모본후보 2계통(KM8, Km62)(2003년)
* 안토시아닌 함유 차육성에 이용할 신중간모본후보 “F95181"의 육성(2003년)
* “靜-印雜131”유래 호기성분 안토라닐산메칠의 함유를 지배하는 Mat유전자좌(2004년)
* 차계통 “금곡13호”에 대한 깍지벌레 저항성 기구분석과 DNA 마커(2004년)
* 감자밭 간작에 의한 신식다원의 潮風害 방지효과(2004년)
* 난지조장지대에 있어서 “べにふき"녹차의 메칠카데킨다수적체법(2006년)
* 식물활성화에 의한 차의 병해저항성유도(2006년)
* 극조생 녹차용 신품종“しゆんたろう"(2009년)
* 고안토시아닌 신품종 “サンルズユ"(2009년)
* 탄저병, 윤반병 저항성 조생품종후보 “枕崎30호”(2010년)
7. 육성품종
* 베니히카리(다농림28호) 1969년 등록만생으로 다수, 고품질의 홍차용 품종, 떫은 맛이 적으며 향기가 진하며 홍차 뿐만아니라 우롱차와 같은 반 발효차에도 적당한 품종이다.
* 사에미도리(다농림 40호) 1990년등록조생종으로 단맛이 있으며 떫은 맛이 적은 매우 우수한 고품질 녹차품종이다. 오래전부터 품질을 인정받아 재배 면적이 증가되고 있다.
* 베니후끼(다농림44호) 1993년 등록만생, 다수, 고품질의 홍차용 품종이지만 녹차로 만들 경우 항알레르기 기능성을 가진 메치루화가데킨의 함량이 높아 주목을 받고있다.
* 하루미도리(다농림 48호)2000년등록만생으로 다수, 고품질의 녹차용품종이다. 본 거점에서 육종된 최신 품종으로써 조생종 “사에미도리” 조합해서 재배한다면 적체기를 분산 시킬 수가 있다.
* 슌-다로우(제23693호)2009년 출원극조생종으로 탄저병, 윤반병에 저항성을 가진 난대성품종이다. “구리다와세” 재배가 가능한 곳에 보급하기에 적당하다.
* 산류-슈우(제23693호) 2009년 출원중생 안토시아닌 함유품종, 항피로효과가 있으며 색소원료로 기대되고 있다.
버스기사도 처음 가는 길인가 겨우 찾아가 네즈미(根角)씨를 만나 강의실에 들어가 30여분 일본의 차강의를 듣고 나와 차수확기 기계를 타고 직접 운전해 보고 그리고 11시40분에 시험장을 떠나서 지란식당에서 일본 정식을 먹고 다시 차를 타고 호시노(星野)를 향해 달렸다. 시험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네즈미상에게서 시험장에서 생산된 차2봉지와 시험장 안내책자를 받았다. 우리는 가져간 고령요 백영규씨 조선다완을 한 점을 선사하였다. 시간이 짧아 많은 이야길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차시험장 앞에서 네즈미연구관과 함께(멀리 사즈마후지산)
지란식당앞에서 (중급반) 차 관리기를 직접 운전(김명규 씨)
호시노에 오후 3시 도착하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것, 5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내일로 바꿔보려고 안내양이 전화를 했으나 내일은 호시노 다원에 결혼식이 있다고 하여 문을 닫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오늘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일반도로로 들어오자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 되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호시노의 좁은 길을 타고 올라가는데 버스 기사도 길을 잘 몰라 우왕좌왕하면서 호시노를 찾아갔다.
오후 6시 호시노에 도착하여 박물관(오후 5시에 끝난다고함)도 못보고 일본 행다 시연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5년전에 만난 호시노제다 부사장인 山口敏之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선 전시장 앞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말차 공장에 안내 되어 말차제조과정을 견학하였다.
이곳에서는 아사쯔유 품종을 말차 생엽으로 이용하며 4월 15일 경부터 차나무 위에 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볏짚을 덮어 99% 정도 햇볕을 차광하여 20여일 자란 15cm 이상 자란 줄기를 수확한다.
이것을 제조실에 넣어 10초정도 105도씨 수증기로 처리 한 후 바람으로 차 잎이 서로 붙지 않게 만들고 그 다음 건조실에 넣어 180도씨로 열처리한 후여 콤베어 5단 벨트로 30분간 처리한 후 잎부분과 엽맥부분을 바람으로 분리한 다음 잎부분을 모아 맷돌에 넣어 1분에 55번 갈아 10마이크론 입자가 되는 말차를 생산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말차는 그 품질을 인정받아 일본 전국 말차대회에서 세 차례에 걸쳐 금상을 받은 우수한 품질의 말차라고 하였다. 공장내에 말차를 포장하는 방은 마치 반도체 생산 라인처럼 철저하게 먼지를 제거한 청결방을 만들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눈에 돋보였다.
제품 전시장으로 나와 말차를 시음하고 다시 호시노말차 오레를 맛보았다. 이 독특한 맛이 나는 신제품은 시판이 잘 되고 있다고 하였다. 차선으로 거품을 내어 마시는 복잡한 방법을 간단한 방법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항상 쉬지 않고 연구하고 새롭게 개선해나가는 호시노 제다원의 노력이 오늘날의 명성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항상 쉬지않고 노력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교훈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매장에서 차 대접을 받고 회원들이 호시노 차제품을 많이 사가지고 나왔다. 야마구치씨에게 청류다원에서 사가지고 간 말차 사발을 선물로 주었다. 이영미 안내원까지 17명에게 호시노 말차 오레를 한 갑씩 선물로 받고 호시노제다원의 방문을 마쳤다. 이제 오늘 밤을 지낼 호텔로 가기위해 다시차를 타고 가메노이 아마기호텔을 찾아 갔다.
호시노다원(www.hoshinotea.co.jp)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후쿠오카 야에지방은 옛날부터 고급차의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오쿠호시노에 위치하고 있는 [호시노마을]은 전국적으로 매우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고급옥로차의 산지였다. 이곳에서는 안개가 짙은 호시노마을에서 양질의차를 전통방법으로 생산해 오고 있다.
최근 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도 다양해졌으며 또한 [보다 위생적] [보다안전]한 상품을 찾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철저한 품질관리와 함께 제조, 정선 가공하여 년중 변하지 않는 고품질차를 제조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회사의 역사는 1946년에 창업하였으며 1947년 차재배 제조시작, 1951년 차제품 가공 및 제품판매시작, 1968년 완제품 공장과 냉장고 시설, 1953년 진공통조림차제조, 판매시작, 1978년 현재위치의 신공장 설립하여 이전함. 1981년 제35회 전국품평회옥로부분 일등상 수상, 1982년 주식회사 호시노제다원설립, 1983년 제37회 전국품평회옥로부분 일등상 수상, 1989년 구주최초 전격적인 차공장완공. 50대 맷돌 설치하여 말차생산 시작, 1998년 고급인스탄트티를 개발판매시작, 1999년 근대적 설비를 가진 정선가공시설과 냉동냉장창고신설, 2005년 ISO 9001을 취득함. 2008년 2개라인의 말차원료재료공장을 신설함, 2009년 抹茶工場을 증설하고 맷돌50대를 새로설치하였다.
또한 1985년~2010년까지 여러차동호 단체로부터 [星の昔」,「弥名の白」,「星友の昔」, 「一ノ白昔」,「星の初鷹」,「星の奥」,「天河乃昔」,「星宵の白」,「妙峰の昔」、「星霜の白」「杜の昔」,「森の白」「延年之昔」、「舞之白」,「聖福の昔」、「仙涯の白」,「孤峰の昔」、「不白の白」,「榮西」등의 제품명을 받았다.
■ 회사 위치 및 공장, 제품판매소
주식회사 호시노제다원은 후쿠오카 야에시호시노무라8136-1번지에 있으며 종업원 30명으로 말차, 전차, 티백 및 인스턴트차를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星野製茶園本社工場・店舗全景】 【星野製茶園碾茶 茶工場全景 】
【星野製茶園 店舗】
호시노에서 한 시간 반이 넘게 달려 도착하니 8시가 넘은 시간이 되었다. 비지네스호텔로 크지 않았다. 호텔밖에는 바람이 세차가 불고 저녁 후에 총무랑 같이 빠징코에 가서 2천엔 바찡고를 해보고 돌아왔다. 전자동화 된 기계소리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옛날과 같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텔 526호에 잠을 자고 502호에 모여 가져온 소주를 까고 여러분들이 즐거운 대화를 하였다. 소주를 한잔씩하고 김명희 청류다원 주인이 “안동 아주머니 카바레 -아젠교-에 대한 발표”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주법에 대한 강의도 좋았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즐겁게 마시고 참석한 모든 이들이 무한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호텔 방에서 담화 이후임씨와 김명희씨
2011. 1. 15. 토요일 비, 눈,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8시30분에 우산을 100엔에 하나씩 사가지고 버스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큰 와불이 있는 남장원 절 구경을 갔다. 내리든 안개비가 눈으로 바뀌고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져 내렸다. 환상적인 숲과 사찰의 건축물과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누어있는 와불이 인상적이었다. 와불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리고 와불의 발바닥을 만지면 복권이 당선된다고 다들 발바닥을 만져보고 그리고 내려왔다. 다들 함박눈이 내리는 속에서 옛날 꿈 많던 소녀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역시 환경의 변화를 마음을 변화시키고 마음이 변하면 사람이 변하게 되는 이치를 다시 깨닫게 된다.
난조인(南藏院)은
후쿠오카에 있는 "남장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와불상(누워있는 불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운동장 만큼 넓은 광장 뒤편으로 커다란 와불 누워 있다. 사사쿠리시고쿠 영장의 총본산인 이곳 난조인은 고야산(高野山) 진언종의 또 다른 본산이다. 원래 에의 텐보(1830-1844)시기에 문을 연 사사쿠리시고쿠는 메이지(明治)19년(1886)에 폐불훼석의 혐의를 받고 현령에 의해 영장(靈場)의 폐기를 받았었으나, 그 지방의 주민들이 탄원에 의하여 메이지32년(1899년) 9월에 이곳 고야산으로 남장원을 이전하는 것으로서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 남장원 이전과 함께 사사쿠리로 부임해온 하야시가쿠운(林?運)21대주지는 이곳의 융성을 위해 큐슈 각지에서 포교 활동을 한 결과 일본의 3대 ‘신시고쿠 영장’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이곳에 큰 와불을 세우게 된 것은, 어린이 구호활동에 쓰도록 미얀마 네팔 등에 의약품을 냈는데, 그 답례로 1988년 미얀마 불교회의로부터 석가모니, 아난타, 목련불 등 세 부처님의 사리를 증정 받게 되어, 그 사리를 배알하기위하여 열반상을 건립하게 되었다. 와불은 길이 41m에 높이 11m, 그리고 무게가 300톤 이라고 합니다 .
난조인 와불 난조인 입구
와불의 발다닥 앞에서 난조인 와불 봉견하는 가는 길
그 기에서 자동차를 타고 눈발이 휘날리는 도로를 달려 면세점으로 갔다. 여러 가지 한국사람들을 겨냥한 물건들이 많았다. 세라믹칼과 도마를 사기로 했다. 회원들도 집으로 가져갈 선물을 구입하였다. 한 시간여 쇼핑이 끝나고 太宰府 天滿宮으로 갔다.
태제부천만궁(太宰府天満宮)/다자이후텐만구는 후쿠오카현(福岡県) 다자이후(大宰府)시에 있는 신사로서,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년 해안시대)를 제신으로 모시는 천만궁의 한 곳으로 전국에서 매년 200만명 이상의 참배객이 찾는 곳이다. 이 신사는 학문의 신으로 불리우는 스가와라노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다.
미치자네는 5살에 일본 하이쿠시를 짓고 10살에는 한시를 자유자재로 지은 신동으로 관계에 올라 정승까지 갔으나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그 시대 901년 모함에 의해 다자이후로 귀양을 오고 903년 세상을 떠났고, 그 유해를 교토로 옮기려 했으나 다자이후의 외곽에서 유해를 모시고 가던 소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미치자네가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의지라고 생각해 그 곳에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미치자네가 죽고 난 후 교토에서는 역병과 이상기후 등 불길한 일들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모두 미치자네의 저주라고 무서워 했으며, 이에 919년 미치자네의 무덤위에 신사를 건립, 이것이 다자이후텐만구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의 본전(本殿)<중요문화제>은 1591년 만들어졌고, 다자이후텐만구는 일반적인 신사의 역활(가정의 안녕, 순산, 건강등의 기원)도 하고 있지만,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어서 합격과 학업을 기원하기 위해서 찾는 사람들이 거의 90% 이상이라고 한다.
비가내리는 길을 따라 신사에 들어서자 바로 앞에 소동상이 앉아있고 많은 사람들이 소의 뿔을 만지면 소원 성취가 된다고 소뿔이 반들반들 광이 나있다. 우리 회원들도 소와 스킨쉽을 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상장하는 세 개의 다라를 건너 본관에 들어갔다. 오늘이 일본 수능시험일라고 하는데 많은 참배객들이 신사에 합격을 비는 줄이 늘어서있다.
교또에서 날아와 신사앞에 심어졌다는 飛梅를 구경하고 많은 기원문이 담긴 쪽지를 달아놓은 おみくじ를 달아놓는 곳을 구경하고 신사 뒤쪽에 있는 식당에서 도시락 식사를 하였다. 식사후에 신사 뒷 산에 있는 작은 신사에 올랐다. 계단이 가파랗게 늘어서있는 주변에 빨갛게 칠한 작은 일주문을 붙여 세워놓았다. 산위에 작은 신사앞에서 조사장 사진을 찍어주고 내려와 お石茶屋에서 한홉반짜리 정종을 조사장과 같이 마시고 내려왔다. 2시 30분까지 시간에 맞추어 버스를 탔다.
다자이후 천만궁 신사 앞 경도에서 날라왔다는 비매(飛梅)
천만궁 앞 자유 시간 천만궁 뒷 산 작은 신사 앞(조규용사장님)
항구 전망대에 오르기로 하고 항구로 가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후쿠오카 항은 조용하였다. 바다에 태풍이 불어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팀은 비행기를 타고 온것이 무엇 보다 반가운 일이였다.
항구 전망대구경을 마치고 아사히 비루공장 견학을 갔다. 오늘은 토요일이여서 공장이 쉰다고 한다. 비데오를 보고 내려와 시음한다고 맥주를 한 컵씩 받아 마시고 두 번째 잔은 흑맥주를 주는데 마시지 않았다.
맥주공장 견학을 마치고 천진 지하상가에 가서 숍핑을 하였다. 책방을 찾아 일본어 공부하는 CD가 들어있는 책을 사려고 했는데 지하상가 작은 책방에는 책이 없었다. 직원에게 큰 책방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으나 근처에는 없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어쩌나 하고 있는데 중년 신사가 다가와 책방을 찾느냐고 물어보고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앞서 걸어간다.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와 다시 도로를 건너 들어간 후쿠오카에서 제일 크다는 책방을 소개해주고 3층에 일본어 교본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고 돌아간다. 직업이 치과의사라는 사람은 한국에 부산과 서울을 가본 적이 있다고 있다. 일본에는 아직도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남아있는가할 정도로 친절함을 느꼈다.
이영미 가이드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 중에 신사에 있는 약수에 가서 물떠는 조롱박을 일본인들은 씻지 않고 물을 받아 마시고 난 다음 씻어 걸어 두는데 한국 사람들은 물잔을 씻어 물을 마시고 그대로 걸어두고 가는 것이 한국과 일본인들이 다른 점이라고 함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자신 만을 위하는 모습과 나보다 타인을 위하는 모습에 양 나라의 생각이 많이 다름을 느끼게 되었다.
일본회화 책을 사고 CD 노래를 사기위해 다시 나와 CD점을 찾아 동요와 미야코하루미의 연가 한 장을 사가지고 돌와와서 후쿠오카 캐널 시티 프라자 뷔페를 먹고 다시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려 Chisum Inn Munakata(宗像)(차산인비지네스호텔)에 도착하였다. 다들 몹시 피곤한 기색이었으나 일층 식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이야길 한다고 해서 내려가 차에 대한 이야길 30분쯤하고 올라와 쉬었다.
일본차의 역사적인 과정과 우리나라 차산업과 연관된 부분을 이야기하였으며 질문에 대해서도 첨가된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일본여행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일본어를 배워 보고 싶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귀국하면 영남차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일본어 반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마지막 날 잠자리가 편해졌다. 3박4일 일정이 내일 비행기를 타고 대구로 돌아가면 끝이 나게 된다.
마지막 날 후쿠오카 캐널시피 프라자 뷔페
2011. 1. 16. 일요일 맑음
날씨가 매우 추었다. 바람도 불고 아침 8시에 출발하여 공항도착 9시 수속을 마치고 11시에 한국 부산으로 출발한 비행기 11시40분 도착 수속을 마치고 나와 조규옹사장과 팔공산에 다실을 한다는 정연찬씨와 공항 3층 식당에서 동태탕을 먹고 1시에 경북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도착하니 2시30분이 되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다. 3박4일의 일본여행을 아무 탈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에 같이한 회원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같이 간 여러 회원들의 허심탄회한 교류를 통해 서로 더욱 친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차 관련 시험장과 차 생산 공장을 본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쿠라지마와 활화산과 난조인, 태재부천만궁과 같은 우리문화와 색다른 일본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수확이었다.
언제나 일상을 떠나 나와 다른 것을 본 다는 것은 나를 다시 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고 했다. 이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미흡한 점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과 함께 내가 가고자 하는 내 인생의 최종의 목표를 다시 확인해보고 점검 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차를 통해 만난 우리들의 좋은 인연이 우리 삶속에서 잘 익은 차향 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2011년 1월
영남차회 교육원장 박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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