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410]上善若水상선약수- 가장 좋은건 물과 같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가장 좋은건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 (수선리만물이부쟁)
-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處衆人之所惡 (처중인지소오)
-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자신을 둔다.
故幾於道(고기어도)-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居善地(거선지) - 머무는 곳은 땅이 좋으며
心善淵(심선연)- 마음은 연못처럼 가져야 한다.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가장 좋은건 물과 같다.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자신을 둔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머무는 곳은 땅이 좋으며
마음은 연못처럼 가져야 한다.
어진 사람과 더불어 지내야 하고
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다스릴 때는 바르게 한다.
일을 할 때는 능히 해야하며
때를 가려 움직인다.
오직 다투지를 않으니
허물을 남기지도 않는다.
上善若水(상선약수) : 가장 좋은건 물과 같다.
첫 문장으로, 최고의 선을 물에 비유하며 시작한다.
노자가 자신의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사람이 느낄수 있는 가장 친숙하고 필수적인 자연물인 ‘물’로
치환하여 설명하는 도입이다. 형이상학적인 도(道)의 개념을
실재하는 물질로 번역해주는 어절이다.
이는 도덕경 8장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이며,
이제부터 글을 읽을 때 기저로 생각해야하는 문장이다.
착할 선(善) 자를 이 어절에선 단순한 의미의 ‘착함’ – 유교적인 도덕률을 넘어,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는 좋음, 즉 도(道)에 걸맞는 것 이란 뜻으로 썼다.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물의 첫 번째 속성으로, 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살게하고
생장하는데에 있어 절대적인 필수요소이나(利萬物) 결코
다른 존재와 경쟁하지 않음(而不爭)을 말하고 있다.
물이 선(善)한 것으로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노자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배경이 춘추전국시대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문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에 거칠게 부딪히거나 반응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흘러 나가지는 물의 성질이 당시의 참사와 비극에
매우 상반되어 노자에게 있어 큰 덕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어절의 善자는 부사적/동사적 어법으로 쓰여 물의 능력을 강조하는데 쓰였다.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자신을 둔다.
물의 두 번째 속성이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위를 향하고, 밝고,
화려한 곳을 지향하지만, 물은 철저히 그 반대로 움직인다.
언제나 아래로 흐르며 구석지고 소외되고 축축한 곳,
즉 '사람들이 꺼리는 가장 낮은 곳'을 향합니다.
철저한 낮춤과 비움의 상태를 나타내는 물의 성질은,
앞서 언급한 시대상과 더불어 세상 문제들을 유연히 피할 수 있는
덕목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故幾於道(고기어도) :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물의 두 가지 속성을 종합해, 저러한 상태들이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도(道)’의 본성과 가장 닮아있음을 선언한다.
이 어절을 기준으로 앞으로 우리가 여길 ‘도’의 의미가 세워졌다.
居善地(거선지) : 머무는 곳은 땅이 좋으며
물은 자신이 머물 곳을 고를 때 높은 곳을 상정하지 않는다.
본인에게 작용하는 중력을 철저히 따라 낮고 평평한 ‘땅’으로 내려간다.
무릇 인간은 재물이나 권력 등에 의한 욕심을 원동력으로
위로 올라가기 위해 투쟁하나 진정 ‘도’를 위해선
물처럼 바닥에 머무는 것이 좋음을 말하고 있다.
이 어절에서 善자는 ‘~하는 것이 좋다’ , ‘이치에 부합한다.’ 정도의 뜻을 의미한다.
心善淵(심선연) : 마음은 연못처럼 가져야 한다.
얕은 웅덩이는 자갈이나 미세한 자극에도 일렁이거나 물이 튀지만, 깊고 넒은 못은 돌을 던져도 고요하게 삼켜버리기 마련이다. 즉, 마음을 쓸 땐 연못처럼 외부의 자극이나 감정에 쉽게 요동치지 않는 묵직한 깊이를 갖추는, 물 중에서도 연못과 같아야 좋다 말하고 있다.
이 어절에서의 善자 또한 ‘~함이 좋다’ 정도로 해석된다.
與善仁(여선인) : 사람과 더불어 지내야 하고
물은 모두에게 공평히 베푼다. 미관상 아름다운 나무에만 물이 스며들지 않고, 의미없는 풀에 불과한다고 마르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곳이라면 스며들어 살려내고, 자연스러운 습도를 맞추어 공평히 작용한다. 내가 선호하는 사람에게만 잘해주는 그릇된 태도 대신, 차별없는 어짐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 어절에서의 善자의 의미는 ‘여선(與善)을 묶어 ‘~하는게 좋다’로 해석되거나 선인(善仁)으로 묶어 ‘ 착한 사람과’ 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허나 이번에도 전자의 의미로 간주하고 해석을 하였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 목차인 [노자의 전체 사상]에서 다루겠다.
言善信(언선신) : 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물론 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허나 자연적인 흐름 속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순종하며, 때를 어기지 않는다.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 우리에게 반전을 주지 않는다. 이는 간신처럼 남을 속이고 과장하며 불신을 싹틔우는 것과 달리, 물에는 신뢰가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물과 같이 믿음을 쌓아야 하며,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말에 신뢰가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正善治(정선치) : 다스릴 때는 바르게 한다.
물은 강제로 물체를 구속하지 않는다. 물은 물체를 씻어내어 깨끗이 만들고, 어느곳에 고여도 수평을 이룬 상태로 존재한다. 즉 다스릴 때는 억압없는 수평적 질서를 바탕으로 물처럼 정치를 해야함을 나타내고 있다.
事善能(사선능) : 일을 할 때는 능히 해야하며
물은 스스로 거스르지 않는다. 어느곳에 따라지든 그에 맞는 모양이나 상태로 변하여 유지된다. 즉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일을 처리할때에 있어 좋은 능력이며, 이에 따라 일 할때도 물처럼 해야한다 말하고 있다.
動善時(동선시) : 때를 가려 움직인다.
물은 주변 환경에 맞춰 알아서 상태를 변화시킨다. 자연의 순환고리에 완벽히 동기화 된다. 사람은 진정 나서야 할 때와 그러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재앙을 피할 수 있다. 물은 순환고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며, 그러기에 화를 항상 피할 수 있다.
앞서 8번째 어절부터 현 어절까지,
善자는 ‘~함이 바람직하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글 내에서 2번째 절을 제외한 善의 의미는 모두 이치에 부합하는 좋음,
훌륭함의 의미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夫唯不爭(부유불쟁) 故無尤(고무우):
오직 다투지를 않으니 허물을 남기지도 않는다.
사람의 모든 고통은 투쟁에서 시작된다.
남들보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나 남과 화합하지 못하고 어긋날 때,
혹은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저질렀을 때 투쟁이 발생한다.
허나 물은 아래로만 내려가고, 빈 공간을 틈 없이 채우며
여타 물체와 반응하지 않기에 물과 투쟁하는 존재는 없다.
이 마지막 음절로, 자신을 비우고 세상에세 고집피우지 않는 삶이
투쟁하지 않고 편히 살 길이란 것을 선언한다.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도덕적 훈계를 말하는게 아니다.
이는 글에서 반복적으로 쓰인 善자를 토대로 알아낼 수 있다.
본래 착할 선(善)자는 ‘착하다’ 라는 의미를 주로 가지고 쓰나
신기하게도 도덕경에선 ‘좋다’의 의미로 대부분 쓰였다.
이는 글이 노자 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 - 無爲自然’ 에 근거하여
쓰였기 때문이다. 인위를 배제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야 말로
진정 바람직한 자세인데, 공자의 ‘인의예지’같은 인간이 만든 규범은
사람을 억지로 착해지도록 규칙을 만들어 강요하고,
이 때문에 세상이 위선적으로 변하고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착함’이라는 유교적 도덕률을 뒤로하고,
이치에 따르는 ‘좋음’을 주로 썼다. 종합적으로 물을 통해
무위자연의 물리적 구현을 이루어 내었다.
글에서 언급된 물의 성질 중 하나로는 낮은 곳을 향해감이 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핏빛 혼란기 속에서, 모든 제후와 사상가들은 '어떻게 하면 가장 높은 곳에 오를 것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노자는 정반대로 어떻게 하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를 설파했다. 만물의 생명줄이면서도 가장 낮은 곳을 자처하는 물의 모습은, 군림하려 들지 않고 섬김으로써 오히려 진정한 리더가 되는 노자의 이상적인 성인(聖人)의 모습을 대변한다.
8장의 첫 절 ; ‘상선약수’와 마지막 절인 ‘부유불쟁 고무우’는
글 전체에서 나타낸 물의 성질을 종합하여 설명한다.
노자에게 '물'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도(道)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세상에 현현한 것이다.
경쟁과 탐욕으로 피로한 인간 사회에 다투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며, 억지 부리지 않는 물의 삶을 살라는
노자의 철학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노자 - 도덕경 8장|작성자 zzetkick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