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통일교 천일국경전 공부방 원문보기 글쓴이: 천일국 경전
제5장 부활론: 부활의 진정한 의미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성서의 예언대로 이미 흙 속에 파묻혀 삭아져 버린 모든 성도들의 육신이 다시 원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 나올 것인가?
•성서에서 말하는 삶과 죽음,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제5장 부활론
성서의 예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이미 흙 속에 파묻혀 삭아져버린 모든 성도들의 육신이, 다시 원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나올 것으로 보아야 한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마태복음 27장 52절).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적인 처지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인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진정한 내용을 해명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제1절 부활
부활이라는 것은 다시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은 죽었기 때문이므로, 우리가 부활의 의의를 알기 위하여는, 먼저 죽음과 삶에 대한 성서적인 개념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Ⅰ. 죽음과 삶에 대한 성서적 개념
누가복음 9장 60절의 기록을 보면, 부친을 장사하기 위하여 자기 집에 가려고 하는 제자에게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죽음과 삶에 각각 서로 뜻을 달리하는 두 가지의 개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장사를 치루어야 할 그 제자의 부친과 같이,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에 대한 생사의 개념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삶’은 그 육신이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둘째는 그 죽은 부친을 장사하기 위하여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여 말하는 ‘죽음’에 대한 생사의 개념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현재 그 육신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여 죽은 자라고 말씀하셨던가?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버린 자리, 즉 사탄의 주관권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은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을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서 사탄 주관권내에 떨어진 것을 의미하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죽음’에 대한 ‘삶’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권내에서 그의 뜻대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 육신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서 사탄의 주관권내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창조본연의 가치기준으로 보아 죽은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기록된 바, 비신앙적인 세례교회의 신도들에게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한 말씀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 반면에 이미 육신의 목숨이 끊어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의 영인체가 영계의 천상천국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권내에 있다면 그는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장 25절)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서 하나님의 주관권내에서 사는 사람은, 목숨이 끊어지고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영인체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관권내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또 계속하여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지상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는 뜻이 아니라, 육신을 쓰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현재 살아 있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후일 그가 죽어 육신을 벗어버리고 지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그의 영인체는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의 품 속에서 여전히 삶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따라서 위의 성구에 보인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에 있어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그 죽음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에는 아무런 영향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고 하신 누가복음 17장 33절의 말씀도, 육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사람은, 비록 그 육신이 활동하고 있어도 그는 죽은 자요, 또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육신을 희생하는 사람이고 보면, 설혹 그 육신은 흙 속에 묻혀 썩어버린다 할지라도, 그 영인체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영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는 곧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Ⅱ. 타락으로 인한 죽음
우리는 위에서 서로 뜻을 달리하는 두 가지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그 중 어느 것이 인간 시조의 타락으로 인하여 초래된 죽음일 것인가?
하나님은 원래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어도, 노쇠하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930세에 죽어 그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타락 때문에 온 죽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창조원리에 의하면, 육신은 영인체의 옷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옷이 더러워지면 벗는 것 같이 육신도 노쇠하면 벗어버리고, 그 영인체만이 무형세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질로 된 생물체로서 영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도 이 창조원칙을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인간의 육신이라고 해서 영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지상에서 육신을 쓴 채로 영존 한다면, 영인체의 가 곳인 무형세계는 당초부터 창조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무형세계는 타락한 인간의 영인체가 가서 살게 하기 위하여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들이 지상에서 생활하다가, 육신을 벗은 후에 그 영인체가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으로서 창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타락인간이 육적인 생명에 강한 미련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이 원래 육신을 벗은 후에는 보다 아름답고 영원한 무형세계에가서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타락으로 인하여 알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있어서의 육신생활과 무형세계에 있어서의 영인생활은, 애벌레와 나비의 생활에 비교할 수 있다. 만일 애벌레에게 의식이 있다고 하면, 마치 인간이 육신생활에 대하여 애착을 느끼고 있듯이, 그도 역시 허물 속에 삶에 애착을 느끼어 벗고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애벌레가 일단 나비가 된 후에는 향기로운 꽃과 단 꿀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인과 영인과의 관계는 바로 이 애벌레와 나비와의 관계와 흡사한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지상인들은 같은 지상인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인들과도 자유로이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육신을 벗는 것이 결코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서 완성되어 생활하다가 노쇠한 후에, 육신을 벗고 가게 되는 그 영인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오히려 육신을 벗고 가게 되는 그 영인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오히려 육신을 벗고 그 세계로 갈 수 있는 날을 그리워하며 고대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논술한 두 가지의 죽음 중에서,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 타락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탄 주관군내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 곧 타락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성서를 중심하고 좀더 상세히 검토해 보기로 하자.
타락으로 인한 죽음은, 곧 인간시조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초래된 바로 그 죽음을 말한다. 그러면 그 죽음은 어떠한 죽음이었을 것인가? 창세기 2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그들은 따먹은 그 날을 기해서 정녕 죽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은 아담과 해와는 오늘날의 우리들고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상에서 육신생활을 계속하면서 자손을 번식하여, 마침내 오늘의 타락한 인류사회를 이루어 놓았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타락으로 인하여 초래된 그 죽음은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주관권으로부터 사탄의 악주관권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을 말하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성서에서 이에 관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요한 일서 3장 14절에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물론 하나님의 사망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지상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어디까지나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와 동일한 뜻으로서 로마서 6장 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니라고 하였고, 또 로마서 8장 6절에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Ⅲ. 부활의 의의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이 목숨이 끊어져서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타락으로 인한 죽음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성서가 의미하는 부활이라고 해석하여 왔기 때문에, 이미 타계한 성도들의 부활은 곧 흙으로 분해되었던 그 육신이 다시 원상대로 살아나는 것으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창조원리에 의하며, 이러한 죽음은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것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란 노쇠하면, 그 육신은 자연히 흙으로 돌아가도록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번 흙으로 분해되어버린 육신은 다시 원상대로 부활할 수도 없으려니와, 영계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된 영인체가 다시 육신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인간이 그의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 즉 사탄 주관권내에 덜어진 입장으로부터, 복귀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그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더 선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부활한 것이 된다.
성서에서 부활에 관한 예를 들어보면,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품속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곧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한편 또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게 된 것이 사망이요,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늘의 혈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 말씀인 것이다.
Ⅳ. 부활은 인간에게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창세기 2장 17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된 아담과 해와는 죽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외형적인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변한 것이 있었다면,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그들의 안색이 변했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으로 부활된다 하더라도, 그의 외형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성신으로 중생한 사람은 중생하기 이전에 비하여 분명히 부활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그와 강도를 비교해 본다면, 하나는 하늘편의 사람으로서 중생한 정도만큼 부활한 처지에 있고, 또 하나는 지옥에 가야 할 사람으로서 죽은 처지에 있지만, 그들의 외형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예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으로부터 생명에로 옮겨져서 부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기 전 사망한 상태에 있을 때나, 예수를 믿고 생명에로 옮겨짐으로써 부활한 뒤나, 그의 육체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오셨던 것이 사실이다(기독론 참조). 그러나 외형으로 본 예수님은 타락인간에 비하여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만일 그에게 다른 것이 있었다면, 당시의 측근자들이 그를 믿고 따르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부활로 인하여 사탄의 주관을 벗어나,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신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타락인간이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관을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심령에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심령의 변화에 의하여 인간의 육신도 사탄이 들어와 사는 집으로부터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성전으로 사실상 성화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신도 부활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악한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 왔던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성스러운 건물로 변화된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인 것이다.
제2절 부활섭리
Ⅰ. 부활섭리는 어떻게 하시는가?
부활은 타락인간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는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부활섭리는 곧 복귀섭리를 의미한다. 복귀섭리는 곧 재창조섭리이므로, 부활섭리는 또한 재창조섭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활섭리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섭리하시게 되는 것이다.
첫째로 부활섭리역사에 있어서, 그 사명적인 책임을 맡았던 인물들이 비록 그 자신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늘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타락인간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터전을 넓혀 왔던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인간들은 역사가 흐를수록 그 이전의 선지선열들이 쌓아올린 심정적인 기대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더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섭리는 이러한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이루어 지게 된다.
둘째로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책임분담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실천하게 될 때, 비로소 완성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의 책임분담으로서의 섭리를 위한 말씀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타락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해야만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로 창조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하여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복귀섭리에 의한 영인체의 부활도 역시 지상의 육신생활을 중심하고서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넷째로 인간은 창조원리를 따라 성장기간의 질서적인 3단계를 거쳐서 완성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에 대한 부활섭리도 그 섭리기간의 질서적인 3단계를 거쳐서야 완성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Ⅱ. 지상인에 대한 부활섭리
1.부활기대섭리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부터 부활섭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 뜻을 받들고 나선 인물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그 섭리는 연장되어 나오다가 2,000년 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찾아 세움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2,000년기간은 결과적으로 다음시대에 들어 부활섭리를 하실 수 있는 그 기대를 조성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부활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2. 소생부활섭리
부활섭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아브라함 때로부터 예수님에 이르기까지의 2,000년 기간은 소생부활섭리를 해 나오셨다. 따라서 이 시대를 소생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모든 지상인들은 하나님의 소생 부활섭리에 의한 시대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소생부활섭리는 하나님이 이 시대의 섭리를 위하여 주셨던 구약 율법의 말씀을 인간이 믿고 행함으로써,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의롭다함을 받도록 섭리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행의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의 인간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인체가 육신을 터로 하여 소생부활을 함으로써 영형체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서 영형체를 이룬 인간들이 육신을 벗으면, 그 영인체는 영형체급의 영계에 가서 살게 되는 것이다.
3. 장성부활섭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섭리는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재림기까지 연장되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연장된 2,000년기간은 영적 구원에 의하여 장성부활섭리를 해온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장성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의 모든 지상인들은 하나님의 장성부활섭리에 의한 시대적인 혜택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장성부활섭리는 하나님이 이 시대의 섭리를 위하여 주셨던 신약의 말씀을 인간이 믿음으로써,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의롭다함을 받도록 섭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신의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의 인간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인체가 육신을 터로 하여서 장성부활을 함으로써 생명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상에서 생명체급의 영인체를 이룬 인간들은, 육신을 벗은 후에 생명체급 영계인 낙원으로 가서 살게 되는 것이다.
4. 완성 부활섭리
재림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영육 아울러 부활하여서, 부활섭리를 완성하는 시대를 완성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이 새대에 있어서의 모든 지상인들은, 완성부활섭리에 의한 시대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재림주님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새 말씀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시다(전편 제3장 제5절 Ⅰ). 그러므로 완성부활섭리는 신.구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시는 새 말씀(이 말씀은 성약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을 인간들이 믿고 또 주님을 직접 모심으로써,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의롭다함을 받도록 섭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시의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의 인간들은 재림주님을 믿고 모심으로 말미암아, 영 육 아울러 완전히 부활되어 그의 영인체는 생령체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지상에서 생령체를 완성한 인간들이 생활하는 곳을 지상천국이라 한다. 그리고 지상천국에서 생활하던 완성한 인간들이 육신을 벗으면, 생령체의 영인으로서 생령체급의 영계인 천상천국으로 가서 살게 되는 것이다.
5. 천국과 낙원
이제까지의 기독교 신도들은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낙원과 천국을 혼동해 왔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지상에 강림하셨던 목적이 완성되었더라면, 그 때에 이미 지상천국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지상천국에서 생활하던 완성한 인간들이 육신을 벗고 생령체를 완성한 영인체로서 영계에 갔다면, 천상천국도 그 때에 이루어 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에 생령체를 완성함 인간은 나타나 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날까지 생령체의 영인들이 생활하도록 창조된 천상천국에 들어간 영인은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상천국은 아직도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 주민이 되어야 할 인간들을 중심삼고 보면, 아직 천상천국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자기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던가? 그것은 예수님이 지상에 오셨던 본래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천국을 이루시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끝내 믿어 주지 않았던 그 가운데서, 자신을 믿어준 오직 한 사람이 였으며 십자가의 동반자였던 강도에게, 예수님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을 허락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23장 43절).
결국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소망적인 과정에서는 천국에 들어갈 것을 강조하셨지만, 이 뜻을 못 이루고 떠나서는 십자가의 죽음길에 임해서는, 실상 낙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이된 사실을 표명하셨던 것이다. 낙원은 이렇듯 지상에서 예수를 믿음으로써 생명체급의 영인 체를 이루어 가지고, 육신을 벗고 간 영인들이 천국 문이 열릴 때까지 머물러 있는 영계를 말하는 것이다.
6. 말세에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
장성기 완성 급에서 타락되었던 인간이, 복귀섭리에 의하여 소생 구약시대를 지나 장성 신약시대의 완성급까지 복귀되어 인간시조가 타락되기 전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시대를 말세라고 한다. 이 시대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되기 직전,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그 때를 세계적으로 복귀하는 시대이므로, 지상에는 영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많이 부어주시마고 약속하셨던 것(사도행전 2장 17절)은, 바로 이러한 원리적인 근거에 의하여서만 그 이유가 해명되는 것이다.
말세에는 ‘너는 주라’는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흔히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재림주인 줄로 알고 바른 길을 찾아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피조세계를 주관하는 주가 되라고 축복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이 복귀섭리에 의하여 장성기의 완성급까지 영적으로 복귀되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의 입장과 맞먹는 심령기준에 달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피조세계의 주가 되라고 축복하셨던 그 입장을 복귀했다는 뜻에서, ‘너는 주라’는 계시를 주시는 것이다.
말세에 들어서 이와 같이 ‘주라’는 계시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신앙이 독실한 성도들은, 예수님 당시에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던 세례요한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게 된다(요한복음 1장 23절). 따라서 그들에게도 각자가 맡은 바 그 사명분야에 있어서, 재림하실 예수님의 앞길을 곧게 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각자의 사명분야에 있어 재림주님을 위한 시대적인 대신 사명자로 택함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주라’는 계시를 내려 주시는 것이다.
영통인들이 ‘너는 주라’는 계시를 받았을 때, 이와 같은 원리적인 사정을 알지 못하여, 자기가 재림주인 것으로 잘못 알고 행동하다가는, 그는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처지에 서게 된다.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리라고 예언하신 이유 는 실상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통인들은 모두 제각기 통하고 있는 영계의 위치와 계시의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고린도전서 15장 41절), 피차가 상충적인 혼란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통인들은 사실상 모두 동일한 영계를 찾아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대하고 있는 각자의 환경, 위치, 특성, 심령 정도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나타나는 영계도 각각 다른 모양으로 인식되어 상충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뜻을 받들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각각 섭리의 부분적인 사명을 담당하고,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만을 맺고 있기 때문에, 다른 영통인들과의 횡적인 관계를 알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각자가 받고 나아가는 하늘의 뜻이 각각 다른 것 같이 여겨져서 상충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더욱이 하나님은 각자로 하여금 복귀섭리의 목적을 달성케 함에 있어서, 그들이 제만큼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하시기 위함에 있어서, ‘네가 제일이라’는 계시를 주시기 때문에 횡적인 상충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맡은 부분적인 사명분야에 있어서는, 사실상 그가 제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계시를 내리시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독실한 신앙자들이, 아담과 해와의 타락 직전의 심령기준까지 성장하여 영통하게 되면, 아담과 해와가 넘지못하고 타락한 것과 같은 시험으로 인하여, 타락되기 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원리를 모르는 한 이러한 입장을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인들이, 이 시험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오랜 동안 수도한 공적인 일조일석에 허사로 돌려보내곤 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영통인들의 이러한 혼란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빨리 이루시기 위하여, 그 섭리의 과정에 있어서, 부분적인 사명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담시켜 그 자체들을 종적으로만 대하여 나오시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영통인들은 상호간에 횡적인 상충을 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종말 기에 이르면 그들 각자의 사명이 모두 복귀섭리의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분담되어진 것이었음을 다함께 깨닫고, 서로 횡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로 결합하여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주시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모든 영통인들은 자기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온 고집을 버리고, 보다 고차적이며 전체적인 진리의 말씀 앞에 나와, 자기 자신의 섭리적인 사명과 위치를 바로 깨달아야만, 횡적인 상충에서 일어났던 지난날의 모든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동시에, 각자가 걸어온 신앙노정에 대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될 것이다.
7. 첫째 부활
‘첫째부활’이라 함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가 시작된 이후, 재림역사에 의해서 맨 처음으로 인간이 원죄를 벗고, 창조본연의 자아를 복귀하여 창조목적을 이루게 하는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유일한 소망은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재림 주님이 강림하시게 될 때, 맨 먼저 그를 믿고 모시고 따라, 복귀섭리노정의 전체적이며 또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시는 그의 일을 협조함으로써, 모든 인간에 앞서 먼저 원죄를 벗고 생령체급 영인체를 이루어 창조목적을 완성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 우리는 성경에 표시된 14만 4천 무리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하는 사실을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복귀섭리를 완수하시기 위하여는,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하늘 뜻을 받들고 나오다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모든 성현들의 처지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대신 자들을 재림주님이 그 일대에서 횡적으로 찾아 세워, 사탄세계에 대한 승리의 기대를 닦아 놓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재림주님이 오셔서 찾아 세워야 할 성도들의 그 전체 수가 바로 요한계시록 14장 1절 내지 4절과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기록되어 있는 14만 4천 무리인 것이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가정 복귀의 사명자였던 야곱은 12자식을 중심하고 출발하였고, 민족복귀를 위하여 출발하였던 모세는 12지파를 거느렸는데, 이 각 지파가 다시 12지파형으로 번식하면 144수가 된다. 세계 복귀의 사명자로 오셨던 예수님은, 영 육 아울러 이 144의 수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12제자를 세우셨으나, 십자가에 돌아가게 되어 영적으로만 이것을 탕감복귀하여 나오셨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내주었던, 노아로부터 야곱까지의 종적인 12대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야곱이 12자식을 세웠던 것과 같이, 재림주님은 초림 이후 영적으로만 144지파형을 세워 나왔던 종적인 섭리노정을, 영 육 아울러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144의 수에 해당하는 일정한 필요수의 성도들을 찾아 세우셔야 하는 것이다.
Ⅲ. 영인에 대한 부활섭리
1. 영인들이 재림부활하는 이유와 그 방법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의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생소와, 육신으로부터 공급되어지는 생력요소의 수수작용에 의하여서만 성장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인체는 육신을 떠나서는 성장할 수 없으며, 또한 부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완성하지 못하고 타계해 보인 영인들이 부활하기 위하여는 지상에 재림하여서 자기들이 지상의 육신생활에서 이루지 못하였던 그 사명부분을, 육신생활을 하고 있는 지상의 성도들을 협조하여 그것을 이루게 함으로써, 지상인들의 육신을 통하여 대신 이루어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유다서 1장 14절에 끝날에 주님과 함께 수만 성도가 임하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인들은 어떤 방법으로써 지상인으로 하여금 뜻을 이루도록 협조하는가? 지상의 성도들이 기도 및 기타 영적인 활동을 하는 가운데 영인들의 상대가 되면, 그 영인들은 재림하여서 그 지상인들의 영인체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역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영인들은 지상인들로 하여금 불을 받게 하고, 병을 고치게 하는 등 여러 가지의 능력을 행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입신상태에 들어가서 영계의 사실을 보고 듣게도 하고, 혹은 계시와 묵시에 의하여 예언을 하도록 하며, 그 심령에 감명을 주는 등 여러 면에 걸쳐 성신의 대신 역사를 함으로써, 지상인으로 하여금 뜻을 이루어 나아가도록 협조하는 것이다.
2. 기독교를 믿고 간 영인들의 재림부활
(1) 장성 재림부활
지상에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간 구약시대의 영형체급 영인들은 메시아 강림 후에 전부 지상에 재림하여서, 지상성도들로 하여금 뜻을 이루어 생명체급의 영인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협조하였다. 이렇듯 재림 협조한 그 영인들도 그들의 협조를 받은 지상의 성도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아, 함께 생명체를 이루어 가지고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장성재림부활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실례를 성경 가운데서 들어보기로 하자. 마태복음 17장 3절에 엘리야가 영인체로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앞에 나타난 데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엘리야는 그대로 영계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마태복음 17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잇는 세례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엘리야가 세례요한에게 재림하여, 그로 하여금 자기가 지상에서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까지 대신 이루도록 협조함으로써, 재림부활의 목적을 달성코자 하였으므로, 사명으로 보면 세례요한의 육신은 곧 엘리야의 육신의 대신도 되었었기 때문이다.
한편 마태복음 27장 52절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무덤에서 자고 있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흙속에서 이미 썩어 없어져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원상대로 육신을 쓰고 일어났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형체급의 영인체로서 영계에 머물러 있었던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혜택권내에 있는 지상 성도들을 생명체를 이룰 수 있도록 협조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입어 자기들도 함께 생명체를 이루기 위하여, 영적으로 재림한 것을 보고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만일 성경의 문자대로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무덤에서 육신을 쓰고 다시 일어났다고 하면 그들은 반드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거하였을 것이니, 무덤에서 일어난 성도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을 유대인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에 관한 사적은 반드시 성서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밖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무덤에서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그 성도들은, 영안이 열린 신도들만이 잠깐 동안 볼 수 있었던 영인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에 의하여서 갈 수 있는 낙원에 비교해 볼 때,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머물러 있던 곳은, 보다 어둡고 괴로운 세계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덤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2) 완성 재림부활
신약시대에 지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낙원으로 간 생명체급의 영인들은, 메시아가 재강림하신 후 전부 지상에 재림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영인들은 지상의 성도들로 하여금, 재림하신 예수님을믿고 모시어, 생령체급의 영인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협조함으로써, 그들도 동일한 혜택을 받아서 생령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상의 성도들이 육신을 벗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그 영인들도 그들과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섭리를 완성재림부활섭리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섭리를 두고 볼 때에 영인들이 지상인들을 협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결과적으로 보아 지상인들도 영인들의 부활역사를 협조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39절 이하에 이 사람들(구약시대 성현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천국 들어가는 허락)을 받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이 우리(지상인)를 위하여 더 좋은 것(천국)을 예비하셨은즉 우리(지상인)가 아니면 저희(영인들)로 온전함(지상인)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된 말씀은, 결국 위에서 설명한 사실을 실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이 구절은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은 지상인의 협조를 받지 않고서는 완성할 수 없다는 원리를 증거한 것이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기록된 바 무엇이든지 너희(지상성도)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신 말씀도, 결국 지상 성도들이 풀어 주지 않으면, 영인들에게 맺혀진 것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었다.
이와 같이 영인들은 지상의 성도들에게 재림하여서 그를 협조함으로써만 부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국문의 열쇠를 지상성도들의 대표로 베드로에게 주시어, 그로 하여금 천국문을 지상에서 열도록 하셨던 것이었다.
3. 낙원 이외의 영인들의 재림부활
먼저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를 믿고 간 영인들은 어떻게 하여서 재림부활하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인간들끼리 어떠한 목적을 공동으로 이루려면, 반드시 서로 상대기준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과 같이, 지상 인간과 영인들도 공동으로 복귀섭리의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는 서로 상대기준을 조성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부활을 위하여 재림하는 영인들은, 자기들이 지상에 생존하였을 때에 신봉하였던 것과 같은 종교를 믿고 있는 지상인 중에서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신도를 택하여 가지고 그에게 재림한다. 그리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협조함으로써 마침내 그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는 지상에서 종교생활을 하지 않았으나 양심적으로 살다 간 선영인들은 어떻게 재림부활하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원죄를 벗지 못한 타락인간 중에는 절대적인 선인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선령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성품보다 선한 성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영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영인들은 지상의 선인들에게 재림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협조함으로써 마침내 그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게 된다.
셋째로는 악영인들은 어떻게 재림부활하는가를 알아보자.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마귀’와 그 사자라고 한 말이 있다. 이 사자는 바로 ‘마귀’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악영인체를 말하는 것이다. 세칭 유령이라고 하는 정체 불명의 영물은 바로 이러한 악영인체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악령들도 역시 재림하여 가지고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악영인들의 역사가 모두 다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사가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벌로써 지상인의 죄를 청산하려 하셨던 것에 대한 탕감조건으로 세워졌을 때 비로소 그 악영인들은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다.그러면 악령의 역사가 하늘을 대신하여 심판의 행사를 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실례를 하나 들어보자. 이제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혜택권으로부터 종족적인 혜택권으로 옮겨질 수 있는 한 지상인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이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나 혹은 그 선조가 지은 어떠한 죄가 남아 있으면, 그에 해당하는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 그 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종족적인 혜택권으로 넘어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때에 하늘은 악영인들로 하여금, 그 죄에 대한 벌로서 이 지상인에게 고통을 주게 하는 역사를 하게 하신다. 이런 겨우 이 지상인이 그 악영인들이 주는 고통을 감수하고 잘 넘어가면, 이 것을 탕감조건으로 하여 그는 가정적인 혜택 권으로부터 종족적인 혜택권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 그에게 고통을 주었던 악영인도 그에게 해당하는 혜택을 받게 된다. 이렇게 하여서 복귀섭리는 시대적인 혜택에 의하여, 가정적인 혜택 권에서 종족적인 혜택권으로,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민족적인 것으로, 나중에는 세계적인 것으로 점차 그 혜택의 범위를 넓혀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시대적인 혜택권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 섭리를 담당한 인물은 반드시 그 자신이나 혹은 그 선조들이 지은 죄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그것을 청산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리고 이렇게 악령들의 역사로써 지상인의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는 경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째로는 악영인으로 하여금 직접 그 지상인에게 접하여 역사하게 함으로써 그 지상인이 스스로 청산해야 할 죄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둘째로는 그 악영인이 어떤 지상인에게 직접 역사하려는 것과 동일한 정도의 범죄를 행하려는 다른 지상의 악인에게 그 악영인을 재림하게 하여서, 그 악인으로 하여금 실체로써 그 지상인에게 악의 역사를 하게 함으로써, 그 지상인이 스스로 청산해야 할 죄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워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경우 그 지상인이 이 악령의 역사를 당연한 것으로서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면 그는 자기나 혹은 그의 선조가 지은 죄에 대한 탕감조건을 세우게 되므로, 그 죄를 청산하고 새 시대의 혜택권내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악영인들의 역사는, 하늘을 대신하여 지상인의 죄에 대한 심판의 행사를 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그 역사로 말미암아 이 악령인들도 그 지상인과 같은 혜택을 받아 새 시대의 혜택권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Ⅳ. 재림부활로 본 윤회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그 전체적인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각 개체를 부르시어 그 개체에 적합한 사명을 분담시켜 나오셨다. 그리고 인간은 이 사명을 계속적으로 그와 동일한 형의 개체에로 전승하면서,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그 분담된 사명분야를 점차적으로 완수하여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는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정과 민족을 거쳐 세계를 넘어 천주까지 복귀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에 맡겨진 사명은 비록 부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형은 개인형에서 시작하여 가정과 민족과 세계의 각 형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내려오는 것이다. 성서에서 그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개인형 또는 가정형이었고, 모세는 민족형이었으며, 예수님은 세계형이었다.
그런데 지상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간 영인들은, 각각 자기들이 지상에서 맡았던 것과 같은 사명을 맡은 동형의 지상인에게 재림하여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협조하는 것이다. 이 때에 그 협조를 받는 지상인은, 자기 자신의 사명도 이루어 나아가는 동시에, 자신을 협조하는 영인의 사명을 중심하고 보면, 그 지상인의 육신은 그를 협조하는 영인의 육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되면 그 지상인은 그를 협조하고 있는 영인의 재림자가 되는 것이므로, 그 지상인은 흔히 그를 협조하는 영인의 이름으로 대신 불리곤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 지상인은 흔히 그 영인이 윤회환생한 실체인 것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성서에서 이에 관한 예를 들어보면, 세례요한은 엘리아의 협조를 받아서 그의 뜻을 세워 나아갔기 때문에, 그는 엘리아가 지상에 있을 때에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까지 다해 주어야만 했었다. 따라서 세례요한의 육신은 엘리아의 육신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하였으므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엘리아라고 하셨던 것이다(본장 제2절 Ⅱ.2)
말세에 있어서 세계형의 분담사명을 맡은 지상인들은, 각각 과거에 그와 동형의 사명을 띠고 왔다 간 모든 영인들의 책임분담을 다 계승하여 완수해야 될 입장에 있다. 따라서 그 모든 영인들은 그 지상인들에게 재림하여 그를 협조함으로써, 그들이 지상에 있을 때에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인들의 협조를 받는 지상인은, 그를 협조하는 모든 영인들의 재림자요, 따라서 그 지상인은 그 모든 영인들이 환생한 것 같이 보여지는 것이다. 끝날에 자기가 재림 예수요, 미륵불이요, 석가요, 공자요, 혹은 감람나무 혹은 생명나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윤회환생을 주장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재림부활의 원리를 모르고, 다만 그 나타나는 결과만을 보고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제3절 재림부활에 의한 종교의 통일
Ⅰ. 재림부활에 의한 기독교의 통일
이미 본장 제2절 Ⅱ.2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낙원에 머물러 있는 생명체급 영인들은, 재림하신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생령체급 영인체를 완성할 수 있는 지상의 성도들에게 재림한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귀섭리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협조함으로써, 그들과 동일한 혜택을 받아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기에는 낙원에 있는 모든 영인들이 함께 지상성도들에게 재림하여, 그들을 협조하는 역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각 개체의 신앙태도와 그가 가지고 있는 천품, 그리고 뜻을 위하여 세운 그 선조들의 공적 등에 의하여, 그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처지에서, 지상성도들은 낙원에 있는 영인들의 협조에 의하여 재림주님 앞으로 나아가, 뜻을 위하여 헌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연히 통일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Ⅱ. 재림부활에 의한 다른 모든 종교의 통일
이미 말세론에서 논한 바와 같이, 이제까지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고 나왔던 모든 종교가, 하나의 기독교문화권으로 점차 흡수되어 가고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기독교는 기독교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과거 역사상에 나타났던 모든 종교의 목적까지 아울러 성취해야 되는 최종적인 사명을 가지고 나타난 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중심으로 오실 재림주님은, 결국 불교에서 재림할 것으로 고대하고 있는 미륵불도 되는 것이며, 한편 또 많은 한국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정도령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밖에 모든 종교에서 각각 그들 앞에 나타나리라고 믿고 있는 그 중심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에서 고대하고 있는 재림 예수님은, 다른 모든 종교에서 재림하리라고 믿고 있는 그 중심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다가 타계한 영인들도 그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위치에 따라 그에 적응될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기 위하여, 낙원에 있는 영인들과 같이 재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각자가 지상에 있을 때 믿었던 종교의 지상 신자들을 재림하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여, 그를 믿고 모시어 뜻을 이루도록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결국 기독교를 중심하고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
Ⅲ. 재림부활에 의한 비종교인의 통일
어떠한 종교도 믿지 않고 다만 양심적으로 생활하다가 타계한 영인들도 모두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기 위하여, 각각 그들에게 허락되어 있는 시기에 지상에 재림한다. 그리하여 그들도 양심적인 지상인으로 하여금 재림주님을 찾아 모시어, 그 뜻을 이룰 수 잇도록 협조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장 2절이하에 기록된 바, 예수님의 탄생 때 점성술사(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고 모시었던 일은 이러한 예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궁극의 목적은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각각 그 죄를 탕감하는데 필요한 어느 기간만 다 경과하면, 지옥까지도 완전히 철폐하시려는 것이다.만약 하나님의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피조세계에 지옥이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이나 복귀섭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까지도 불완전한 분이 되어지는 모순을 초래하게될 것이다.
타락인간에 있어서도 그 어느 한 자녀라도 불행하게 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이 그 부모의 심정이어든, 하물며 하늘 부모로 계신 하나님에 있어서랴. 베드로후서 3장 9절을 보면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져야 할 이상세계에 지옥이 영원한 것으로 남아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8장 29절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 바로 사탄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였던 것과 같이, 끝날에 있어서도 때가 이르면 악영인들까지도 각각 동급의 지상의 악인들에게 재림하여, 그들이 뜻을 위하여 나아가도록 협조함으로써, 결국 오랜 기간을 경과하면서 점차적으로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통일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