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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김동리 선생이 1974년 등단 기념으로 써 준 진서체 글씨다.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힘쓰는데 쉬지 말라’ (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는 주역에 있는 글이다.
나는 이 편액을 볼 때마다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다’ 는 의미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곤 한다. 하늘의 운행은 엄숙한 자연의 법칙임
으로 아무도 이를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자연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 됨 (天人合一)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해왔다.
옛날 선비들이 정원을 만들 때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옮기지 않고 오롯이 그대로 마당 안으로 끌어들인 것도 자연의 순리
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자연의 굳건한 법칙을 어기고 있다. 4대강 사업이 바로 그렇다. 강의 흐름
이나 깊이를 인위적으로 변형시켜 재앙을 자초했다.
처음 4대 강 운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끝내 22조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죽어가는 강을 두 번 죽이고 말았다.
홍수피해가 생기고 수질이 크게 나빠진 것이다. 영산강의 경우, 사업 이전인 2008년에 0원이었던 홍수피해액이 2012년에는 828억
이나 발생했다. 무안, 광주, 광산, 나주 4곳의 수질이 사업이전 2급수였던 것이 4급수 5급수로 떨어져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전
락하고 말았다.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고라니가 마시고 죽을 정도로 수질이 악화됐으니 어찌 생물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잘못된 토목공사로
역류 침하와 물 흐름 차단이 이루어져 녹조 등 심각한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부실공사로 보에 금이 가고 사업과정에
서는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
이번 국감에서 4대강 문제는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으로 비판 받았다.
이 엄청난 재앙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번 국감장에서 감사원 김영호 사무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을 언급했다. 이명박
뿐 아니라 4대강 사업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물론 공사에 참여한 업체, 4대강 사업 찬양가를 부르고 부추겼던 사람들 모두가 책임
져야한다.
국정감사를 통해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강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차라리 보를 모두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
른다. 강이 죽어가고 있는데 강변길을 말끔히 닦고 레저시설과 문화관을 짓는 등 인위적인 경관을 만들어 놓고 무엇을 어찌하겠
다는 것인가.
나는 영산강이 배경인 졸작 ‘타오르는 강’을 쓸 때, 영산강변에 사는 어른들로부터 강이 운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강이 어떻게
울지? 나는 어른들의 그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강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싶어 밤중이고, 새벽이고, 강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던 어느 여름, 사흘 동안 쉬지 않고 줄기차게 내린 비로 강물이 새끼내(소설의 무대가 된 영산강 줄기) 둑 위로 넘쳐 벼 논을
깡그리 덮치고 말았다. 나는 어스름한 새벽 강둑에 서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다가 강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온 소리는 마치 늙은 사내의 흐느낌처럼 격렬하면서도 거칠었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고 둑을 범람했던 물이 서서히 빠지자 한 맺힌 여인의 통곡소리로 들려왔고, 하늘이 맑게 개고 해가 떠오른
후에는 갓난아기 울음처럼 가냘프게 들렸다. 나는 그때서야 강물이 우는 소리는 바로 사람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강도 함께 운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은 강변에 사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안고 흐른다는 것도.지금도 나는 자주 영산강에 간다. 그리고 여전히 영산강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지금 듣는 울음소리는
3∼40년 전에 들었던 소리와는 다르다. 옛날에 들었던 영산강이 우는 소리는 분명 사람의 울음소리였는데, 지금 내가 듣는 소리는
전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옛날에는 강이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해서 울어주었는데 지금은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울고 있는 것이다. 짐승이 고통
을 참지 못하고, 신음하고, 울부짖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은 죽어가는 마지막 비명과도 같다. 사람의 슬픔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음하는 영산강. 통곡하는 울음이 너무 애절하여 진저리가 처진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