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버티컬 리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억만장자 재벌로 나오는 '반'입니다.
그는 4년전에
히말라야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라는 산에 올랐다가 도중에 조난당했는데도
살아나왔을 만큼 등반을 잘하기도 하고
'마제스티'라는 항공사를 시작할 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4년전에 등반 실패를 했던 산 k2에 다시 올라
자신이 시작하는 항공사의 첫 번째 비행기가 그곳을 지나갈 때
손을 흔드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산기슭에 머물며 지원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40명이 넘는 수행원을 데리고 히말라야에 왔습니다.
이 등반 도중 생사의 기로에 서는 위험한 순간에
중요한 결정을 할 인물로 등반 전문가 ‘탐’이 고용되었고
‘피터’의 동생인 ‘애니’도 같이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등반을 시작하고 난 다음 정상 부근에 폭풍이 올 가능성이 커져
지원팀이 등반대장인 ‘탐’에게 ‘등반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을 했을 때
‘반’은 ‘탐’의 중단 결정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결정을 하라고 나를 고용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 ‘탐’에게
‘반’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고용한 것”이라고 응수하고
폭풍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에도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지 않느냐”고 우기고
그래도 조난 가능을 말하며 내려갈 것을 말하는 ‘탐’에게
“가려면 너나 내려가라”며 정상등반을 고집하지요.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반’의 완강함에
하는 수없이 사람들이 등반을 계속하지만
결국은
앞을 볼 수 없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휩싸여
똑바로 서서 숨을 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그들은 정상 등반을 포기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반’은
분노에 차서
산 정상을 향해
큰 소리로
‘f’로 시작하는 욕을 외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서둘러 내려오던 중
‘애니’가 먼저 ‘크레버스’로 불리는 깊은 계곡 중턱으로 떨어지고
뒤이어 발생한 눈사태에 휩쓸려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과 ‘탐’도 같이 ‘애니’가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려옵니다.
그들이 내려왔던 입구가 눈과 얼음으로 막혀버리자
그들은 어둠 속에 갇혀 그들이 가진 후래쉬에 의지하고
설상가상으로 등반대장인 ‘탐’은 떨어지면서 받은 충격으로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고 고통으로 신음하게 됩니다.
고도가 26000피트나 된다는 그곳에서는
물을 마시지 않으면 폐에 물이 차기 때문에 물에 빠지지 않고도 익사하게 되는데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주사약도 갖고 있지만 양이 부족해서
이제 그들이 살아있을 시간은 36시간뿐인 절박한 상황에 처합니다.
무전기로 정상적인 교신이 안되자
산기슭 지원팀에 있는 오빠 ‘피터’와 조난당한 여동생 ‘애니’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모르스부호를 이용해서
그들이 있는 위치와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해 정보를 전하고 받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조직한 구조대가 출발하는 데
그 중에는 4년 전에 실패했던 ‘반’의 등반에
가이드로 산에 올랐다가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해 계속 산을 오르고 있는,
괴팍하지만 탁월한 등반가 ‘몽고메리 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 때문에
구조대가 그들이 갇힌 곳에 오를 때까지
조난당한 사람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하자
‘반’은 다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탐’에게 냉정하게 말합니다.
“너는 전문 등반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가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것을 알지 않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지 않느냐.“
이것은
‘너는 어차피 죽을 것이니까
그나마 살아 내려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네가 맞을 분량의
익사방지 주사약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이지요.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그런 말을 꺼내고 건넬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지요.
그 드문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억만장자인 ‘반’입니다.
프로등반가인 ‘탐’도 물론 그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지요.
격하게 저항하는 반응을 하는 ‘탐’에게
‘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Intelligence doesn't threaten me, stupidity does.”
‘지성, 총명함이 나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우매함’이다.‘
이렇게 번역하면 뜻이 통할까요?
이 말은 결국
‘한 사람만 약을 포기하고 죽으면 되는데
그러지 않다가 세 사람 다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맞는 말이긴 한데...
어디까지나 내가 겪는 죽음이 아니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반’은 ‘탐’에게
“‘애니’가 죽는 것을 바라느냐”고 묻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애니’는 ‘탐’을 극진하게 간호하며 돌보고 있었기에
그가 그녀를 아낄 것은 분명했거든요.
그 후 ‘애니’가
그들이 갇힌 곳 낭떠러지 건너편에 놓여 주인 잃은 배낭에서 주사약을 발견했을 때
고통스러워하는 ‘탐’에게 주사를 놓아주는데
그 것을 본 ‘반’의 눈빛은 험악해지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반’은 공기를 채운 빈 주사기를 들고 ‘탐’에게 접근합니다.
깨어나서 그를 바라보며
“이제 나를 죽이려느냐”고 묻는 ‘탐’에게
“그렇다”고 대답하며
‘반’은 ‘탐’의 입을 손으로 막고 주사기를 그의 몸에 찔러 넣는데
‘탐’의 버둥거림은 오래가지 못하고 멈춰버립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그를 죽여 버리는 정말로 냉혹한 ‘반’...
나중에 깨어 그 사실을 발견한 ‘애니’는 분노에 차서 ‘반’에게 달려들지만
‘탐’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진동에 의해 그들이 내려왔던 곳의 입구가 조금 열리자
그들이 있는 위치를 알리기 위한 시도가 필요했습니다.
이 때 ‘반’은 칼을 들고
아직 굳지 않은 ‘탐’의 몸에서 피를 받아 비닐팩에 모으지요.
정말 대단한 사람...
그럴 수 있는 사람이기에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도 그리 큰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그리고 그 피를 신호탄과 함께 입구로 쏘아 올리는 일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정작 구조대원으로 온 ‘몽고메리 윅’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자
‘반’은 약해져서 비틀거리면서도 등반장비를 무기 삼아 오히려 그를 공격합니다.
사연인즉.
바로 4년전
가이드였던 ‘몽고메리’의 아내와 같이 ‘반’이 조난당했을 때
‘반’이 그녀의 익사방지 약을 빼앗아 자신에게 모두 주사해서 그는 살아남았고
그녀는 죽게 되었던 것을 남편인 ‘몽고메리’가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반’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몽고메리’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고메리’는
‘반’이 손에 든, 무기가 되어버린 등산장비를 제거하고
구조를 위한 줄에 ‘반’을 자신과 같이 연결합니다.
이 때 ‘반’은 믿을 수 없어하는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기 때문일까요?
용서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고
자신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았을지도?
아무튼 드디어 모두가 무사히 구조되는가 했는데...
결국은 다시 사고가 생겨
‘피터’, ‘애니’, ‘몽고메리’, ‘반’
크레버스 입구로부터 이 순서로 위험천만하게 모두 한 줄에 매달려
곧 모두 떨어져 죽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상황을 파악한 ‘몽고메리’는 갖고 있던 칼을 꺼내 들지요.
그것을 본 ‘반’은 자신이 ‘몽고메리’의 아래쪽에 매달려 있어
그가 줄을 끊으면 같이 죽을 것이기에
필사적으로 ‘No!’를 외치며 버둥거리기 시작합니다.
몇시간 전에 ‘탐’에게
‘상황파악을 하고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했던 그였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자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는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보통 사람들도 그럴 텐데 하물며 그렇게
유능하고,
부유하고,
원하던 것을 항상 얻어왔던 그,
앞날이 창창하다고 믿는 그로서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예상치 않은,
때 이른 죽음임이 맞겠습니다.
하지만 ‘반’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로 몇시간 전에,
자그만치 4년 동안이나 그리도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던 아내의 시신을 드디어 발견하고
그녀의 목에서 목걸이의 팬던트로 걸고 있던 반지를 발견하여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몽고메리’는
이제 그녀를 기꺼이 따라가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눈을 감은 채 기도문을 외우고 미소까지 지으며
자신이 잡고 있는 줄을 칼로 자르지요.
그 다음 ‘몽고메리’와 그 밑에 매달렸던 ‘반’,
그 둘은 끝을 모르는 바닥으로 같이 추락을 하게 됩니다.
‘반’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다가 아득해지지요.
이렇게 그 자신만만하고 재능 있는 억만장자 ‘반’은
그곳에서 사고를 만나 세상을 떠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산에 영원히 머물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몽고메리’가 ‘피터’에게
‘반’에 대해 한 말이 있었습니다.
"Mountain owns him. He had to come back."
그 산이
‘몽고메리’의 아내에게 ‘반’이 한 짓을 알고 있기에
그를 다시 불러 그 값을 치루게 하는 것이라고 ‘몽고메리’는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과연 그랬을까요?
산이 알까요?
누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다시 불러 와 그 값을 지불하도록 할까요?
오래 전에 산에 기도를 하러 다니는 분들을 만나고
때로는 산에서 드리는 기도에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산신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모든 산에는 ‘산신’이 계시다는 것이지요.
작은 산에는 작은 신, 큰 산에는 큰 신...
어떤 산신은 고기를 제물로 받기도 하지만
어떤 산신은 기도를 주재하는 사람이 멸치만 먹고 가도 싫어 하신다데요.
한동안 지속되었던 그 기간에 배운 것 하나가
‘산은 아무나 오르는 것이 아니구나’ 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보면서도 다시 한 번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산은 아무나 오르는 것이 아니구나...
영화 속에서 ‘반’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큰 산이니 정말 크고 강한 신이 계실 산의 정상을 향해
욕을 퍼부을 때부터 사실은 불안했었습니다.
너무나 오만하고 불경하지 않은가 싶어서...
그렇다고 산에서 죽는 모든 사람들이 벌을 받은 것은 아니지요.
사람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죽는 시기나 방법, 장소 등을 선택한다고 들었습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것이 행복하기에
그곳을 사랑하기에
그곳에 영원히 머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비극적인 사고일지라도 묻히는 것은 몸 뿐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그곳에서 행복해하는 것...
또한 산은 사람들의 영혼을 공부시키는 장소라고 하데요.
아마 ‘반’도 그곳에서 공부하게 되겠지요?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생존보다도 더 귀한 것이 있다는 것,
또한 그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주요 주제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