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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을 버리지 않은 용 이정희, 그리고 눈물
1.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니,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아프게 하고 분노케 한다. 이 사진은 11월 12일 저녁, ‘영화, 남영동1985’의 VIP시사회가 열린 한 영화관에서 찍은 것이다. 27년 전, 잔혹한 군사독재에 민주주의가 능욕 당하던 그 때, 고 김근태 상임고문이 안기부원에게 짐승처럼 고문을 당한 내용을 담은 영화를 기리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볼수록 참기 힘든 슬픔과 분노가 치민다. 그건 어둔 시대의 질곡을 되새기게 하는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재인 인철수 후보 등 포트라인 인물 뒤편에 외떨어져있는 한 여인 때문이다. 사진 속으로 냉큼 다가서도 못하고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후보의 기막힌 모습 때문이다. 어찌 저럴 수 있는가. 어찌 저렇게 한 인물에 대해 집단적으로 린치를 가할 수 있는가. 그것도 이 나라 민주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분들이.
물론 사진 속 인물 모두가 악의를 가지고 그렇게 연출했다고 단언할 순 없다. 그러나 행사진행의 어떤 스텝이 이정희 후보에게 무대뒤편에서 잠시 기리려 달라고 두 차례나 요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시 그곳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예초부터 사진 촬영 시엔 이정희 후보를 제외시키기로 했거나, 이정희 후보완 같은 포트라인에 설 수 없다는 암묵적 동의가 일으킨 사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어이없고 무례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예기치 않은 해프닝이나 주최 측 무성의로 넘기기엔 너무 중대한 일이다. 저 자리의 이정희 후보는 한 개인이 아니다. 정식으로 초대된 인사고, 우리 헌법에 기초한 정당의 대통령후보로, 또 수많은 양심적 진보인의 상징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무례한 대접을 하다니...... 나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분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의 그런 행태 속에 혹시 ‘밟아버리려면 아주 확실하게 밟아 버려야한다.’ 는 새누리당 박근혜후보류의 반인륜적인 잔혹함이 숨어있던 건 아닌가 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새누리당류의 야수적 특질에 현혹되었던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2.
나는 저기 저렇게 외떨어진 이정희 후보만 안타까워 이러는 게 아니다. 그것이 이정희 후보 개인적인 아픔뿐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정희 후보 뒤로 겹겹이 겹쳐지는 민중의 아픔을 본다. 소외받고 억압당하고 있는 민중의 고통을 느낀다. 이 땅 국민의 절반이 넘은 민중이, 정작 주인이면서도 기 한번 펴지 못하고 무시만 당하는 기막힌 처지를 다시금 절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외와 아픔에 대한 공감은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젊은 모습으로 이어졌다. 그분 역시 지금 사진 속 이정희 후보처럼 정치계에서 왕따를 당해 낭인처럼 떠돈 적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고향에서조차 따돌림을 당해 부산 시내 한 공터에서 허공을 향해 연설하던 그의 외로운 모습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하지만 젊은 노무현은 그를 끝내 이기고 대통령이 됨으로서 그 왕따의 근거가 얼마나 무고하고 허무맹랑했던 것임을 증명했고, 그를 왕따 시킨 수많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민주진영에서 그런 황당한 왕따놀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훨씬 더 심하고 악의적으로 조작된 ‘종북녀’ 라는 조동중의 여론몰이를 바탕으로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반복되는가.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무한 반복된다는 말이 여기에도 또 적용된단 말인가. 우리는 젊은 시절 노무현을 향했던 왕따가 죽은 듯 숨죽이고있다 되살아나 결국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너무도 짧았다. 불행히 죽어간 그를 위해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한 인물을, 한 정파를 지목해서 왕따놀이가 또 벌어지고 있음을 지금 공개석상에서 찍힌 저 한 장의 사진이 잘 말해주고 있다.
이는 여전히 이정희에 대한 마녀사냥이 진행중임을 말해 준다. 이참에 이정희의 정치생명을 아예 끊어 놓아야한다는 저들의 임무가 계속 작동되고 있다는 실례다. 지난 5월에 벌어진 진보대란이 이정희 책임이 아니라 유시민계가 벌린 부정선거에 있었다는 것이 누구도 아닌 진보당과 가장 껄끄러운 관계인 검찰에 의해 밝혀졌음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반년 간 벌어졌던 이정희 죽이기 마녀사냥이 이제 이정희 지우기 왕따놀이로 이어진 것뿐이고, 이 일에도 역시 민주진보진영 일부가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것이 마음 약한 한 작가의 감상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제 그 사진을 보고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러면 정말로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수구도 아닌 민주진영에서 저럴 수 있습니까’ 하며 울먹이던 분과 조금도 다르지 심정이다. 그것이 어려움에 처한 이정희 후보를 도와주고 싶어도 무력하기만 한 내 자신에 대한 절망감이요, 탄식임을 잘 알지만 사실이 그랬다. ‘이러면 정말로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라는 그 분의 말을 나 역시 수없이 되뇌었다.
3.
사실 세상 모든 따돌림이 그렇지만 이정희 후보 역시 그렇게 당할 근거가 전혀 없다. 그동안 멀리서나마 지켜본 이정희는 누구보다도 민주주의에 충실한 자유인이었다. 그렇다. 이정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 자유가 조동중이 말하는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야수적 자유, 박근혜 후보가 탐욕을 감추기 위해 쓰는 거짓 자유, 즉 저들의 더러운 입에 오염된 자유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압박에서 민족의 자존을 세우는 민족적 자유. 자국민을 신민지화 하는 거대자본의 억압에서 사람을 우선하는 휴머니스트적 자유. 그리고 인간 내재적 야수성을 극복하여 행복공유의 이상에 도달하려는 진보적 자유 추구가 이정희의 자유다. 그녀는 그를 위해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했고, 그를 통해 자유를 체화한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타인과 평등적 접점 찾아가는 평등주의자적 실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이정희후보에게 가당치도 않은 종북녀라는 딱지를 붙여 따돌림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기층민중과 결합된 이정희의 힘이 두려운 것이고, 이정희의 진정성과 대비되는 자신의 거짓과 위선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정희가 개천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용이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노무현의 왕따현상을 떠돌이 용에 대한 박해로 말한바 있다. 어려운 관문이나 시험을 거치는 과정이 등용문인데, 이 문을 걸친 용은 마땅히 용끼리 어울려야한다. 그것이 그때까지 유지해 온 지배질서고 상식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이 그를 거부함으로써 다른 용들의 질시와 시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지금 이정희 후보 역시 그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정희는 개천이 낳은 용이다. 봉천동 재래시장 두부장수의 딸로 태어나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하고, 서울 법대 재학 시 여학생 회장에, 사법고시를 패스 한다. 그러니 그녀는 너른 강에서도 나오기 힘든 용중에 용이라 할 수 있다. 좁은 개천에서 넓고 안락한 세계로의 계층이동이 가능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상류계층의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개천에 남아 있을 것을 선언한다. 가장 낮은 민중을 대변하는 열악한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이 그 증거다. 자기 주변의 자잘한 물고기와 함께 개천을 바다로 만들어 함께 살 수 있는 새 세상을 열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이에 다른 용들이 펄쩍 뛰며 반발한 건 너무도 당연했다. 용이 개천에 남아있다는 그 자체로 반역이었다. 수많은 개천주변의 민중들을 도구화하는 용들의 지배구도에 흠집을 내는 일이며, 타락한 용들의 탐욕과 선민의식을 까발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개천을 떠나지 않은 용이 힘의 근원인 기층민중과 서로 복종관계의 동지로 결합하는 모습을 보고 타락한 용들이 위험을 감지한 때문이다. 지난 5월에 유시민과 심상정이 이정희에게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제시하며 몰아친 것도 실은 그런 맥락에서 읽어야한다. 이정희의 왕따놀이에 수구기득권은 물론이고 좌우를 가리지 않고 가세한 것은 이런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4.
따라서 저들이 이정희 후보에 대한 견제와 따돌림을 쉽게 풀리 없다. 종북녀, 종파주의, 처키 등등 가당치도 않은 딱지를 붙여 모함할 것이고, 사진에서 보듯 얼굴지우기를 계속해나갈 것이다. 동시에 심상정처럼 자본가지배구도의 대리인으로 만들려는 회유와 유혹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희 후보가 그 정도로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과 민중의 염원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정희 후보에게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따돌림이 실은 역사적 소명을 띤 선각자 주의에서만 드러나는 강력한 변혁의 힘임을 그녀도 자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힘이 옳게 방향을 틀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폭제가 될 때가지 이정희 후보가 흘려야할 눈물의 무게다. 마음이 여린 나는 그 눈물을 가늠해보는 것조차 벅차다. 그 눈물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따돌림을 감내하면서 젊은 노무현이 흘렸을 눈물보다 훨씬 많을 것이고, 남영동 1985. 바로 이 영화 속 주인공 김근태가 흘린 눈물보다 더 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민주화 달성보다 경제민주화의 완성이 훨씬 어렵다는 걸 모두가 아는 일 아닌가.
그날 영화 관람을 마친 뒤 사진 속 인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잔혹한 시대였다. 다시는 이 땅에 저런 불의가 자행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 이번 대선에 꼭 승리해야한다 ’고 말이다. 그러면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진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정희 후보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 맞는 말이고 공감할 수 있는 풍경이다. 고문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던 잔혹한 시절을 다 온몸으로 지나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 시절 필부만큼도 인간의 기본권인 권익과 공익을 위해 살지 않은 것 같은 안철수후보를 제외하면 회한의 진한 눈물을 흘렸을 법하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같은 눈물을 흘린 건 같지만 이정희 후보가 흘린 눈물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정희 후보의 눈물 중에 어이없는 따돌림이 분하고 억울해 흘린 눈물도 조금은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새삼스레 그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정희 후보는 영화도 영화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보안법이라는 반시대적 악법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동시에 느껴져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바로 이 점이 이정희 후보의 눈물이 다른 사람들의 눈물과 다른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회한으로 몰려드는 과거의 시간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라면, 이정희 후보는 지금 이 순간 생생한 아픔을 주고 있는 현재 시간의 불의함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에 나는 이정희의 눈물이 훨씬 더 진정성 있으며 호소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회한의 눈물이 아무리 진하다고 한들 지금 이 순간 아픔 때문에 흘린 눈물보다 진할 수 없다. 게다가 회한으로 짖는 눈물 속엔 자기만족의 감동도 섞여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정희 후보를 제외하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속의 김근태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각을 아무도 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날 이정희 후보가 흘린 눈물은 특별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 회한이나 감상이 아닌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며 흘린 눈물이기에 그렇다. 이미 흘러간 과거의 시간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유의미한 현재의 시간 때문에 흘린 눈물이기에 또한 그렇다. 그리고 그런 눈물이 앞으로 이정희 후보가 흘려야할 눈물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인만이 현재의 모순을 자각하고 끝내 그를 극복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그 지점이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시간이고 민중의 오랜 염원이 풀리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사진 속 이정희 후보의 모습이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미래 행복의 예시임을 믿는 이유다. 이정희 후보가 웃고 서 있는 다른 후보들보다 미래의 큰 희망임을 말해주는 증거다. 개천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용, 이정희 후보의 눈물에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김 준 식 / 작가 / www.djjb.kr/ 11. 15
**덧글
추워지는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진보의 시간입니다.
지난 5월 진보대란의 진실이 낫낫이 밝혀 진다해도
진보진영의 어려운 상황이 한동안 계속될 것임을 예상했지만
너무도 가슴 쓰린 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오늘입니다.
힘이 없음이 이렇게 애절한 것임을 다시금 절감합니다.
이정희 응원하기 팬카페, ‘희소식 : http://cafe.daum.net/heenews에 동참을 바랍니다.
첫댓글 살다보면 참기 힘든 분노가 일때가 있습니다.
저 한 장의 사진이 그랬습니다.
그제, 저 사진을 봤다면 드레고드님이 울먹이며 전화를 하셨드랬습니다.
저 역시 꼭 같은 심정이었고요. 기록을 위해 글로 남겨 둡니다.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또 글로 뵙네요. 모임때 뵙죠.
여전히 수고 많지여 대장님! 옙, 대전에서 뵈어요
제마음을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마음이지요. 저도
절실합니다. 가슴 아픔이.
무엇하나 흠 잡을 것이 없는 FM아우 김준식 작가, 홧팅!1 대전에서 만나세~
아궁. 성님도.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가슴 만 졸이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제대로 할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마음을 삭힘니다.
댓글 늦어 죄송합니다.
ㅎㅎ김점식이 누구래요?
김준식의 오타였슈~~~~~~~~~~~~~~^^
바람님 대전에서 뵈어요,
동학사 계곡, 익숙한 곳입니다
우리의 어른인 작가님, 늘 고맙습니다^^
크으, 나이만 먹은 애랍니다.
이번에 진보대란을 겪으며,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아서여.
힘이 없으니 그저 애만 태우는 꼴이지요. 노력은 하는 중입니다.
대구 모임에서 제 의견을 말씀드렸는데 잡것들과 섞이지 않으신 우리의 순수한 영혼 대표님...
페북에 저 상황을 옆에서 보고 설명을 했던데 의전 관계로 대기 중인데 포토라인에 배우들과 감독들이 나오자 잡것들은 언론에 노출되기 위해 우르르 몰려 갔고 우리 대표님만 자리를 지키셨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런 것에 상처 받을 이유도 없고 항상 정도를 걸으시는 대표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그래서 저 사진을 보고 자랑스러운 맘이 더 들더군요
이후보님, 참 소중한 분이지요.
앞으로도 참 어려움이 많을 텐데,,,, 함께 할 수 있도록 제 자신부터 노력하려고요
'개천을 버리지 않은 용!' 우리 후보님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저는 요즘 가끔씩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존경스럽지 못한 정치인이 하늘에 올라 뜬구름잡는 소리만 할때
이정희 후보님은 이땅에 발을 딛고 민중과 함께 하신다고 말입니다.
예, 동의합니다, 소중한 분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아쉬우면 아쉬운데로 함께 가려합니다.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이후보님이 감사한 일이지요.
제 무력함이 참 애절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놓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후보님이 함께 하는 한
라린님!
어디서 저런 귀한 사진을 구하셨나요?
저 사진 속 이정희의 눈물은 이정희가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무참히 짓밟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흘리는 눈물이고, 둘로 갈라진 겨레와 국토가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고, 망가지는 민족정기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하지만 이정희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자면 저 웃고있는 사람들을 도구삼아 딛고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저 건물과 영화가 어떤 영화인데 저 앞에서 저렇도록 희희낙낙할 수가 있는지?
비록 이정희는 따돌렸다 해도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그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정희 눈에 눈물을 닥아줄 소명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이정희의 눈물이 우리모두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예, 꺾은 붓님과 같은 심정입니다.
저 한 장의 사진이 먼 훗날 진보인의 길을 얼마나 고단했던 길인가를 증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희 후보님께는 정치인으로서의 소중한 스토링을 만들어 더 큰 인물로 밀어올리는
힘으로 작용하겠지요.
아마 김근태님이 살아 있고, 그가 민주당대선후보로 나섰다면 이정희를 저토록 매몰차게 뒷쳐져서 눈물 흘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맑고 고운 심성과 불의 앞에서는 목숨을 흔쾌히 내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게 바로 이정희입니다.
만주벌판에서 죽어가는 독립투사의 빛 바랜 사진한장이 우리의 처절했던 독립운동사를 증거하듯이, 평화통일잉 된 먼 뒷날 저 사진이 앞선 세대가 어떻게 해서 평화통일을 이루어 냈는지 증명하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무심히 보다 설명을 보고 뒷처진 이정희를 보는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이 불쑥 치밀어 올라 사진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