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산 이야기를 올리기 전에, 먼저 다윗성과 기혼샘, 히스기야 터널, 실로암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야겠군요.
다윗성, 기혼샘, 히스기야 터널, 실로암은, 이번 답사에서 저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은 답사하셨지요.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히스기야 터널은 한 번 경험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사유로 참여하지 않은 분들과 함께 대기하며 쉬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곳이므로 과거 답사했던 사진들을 활용하며 간략하게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들을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Western Wall(통곡의 벽)을 떠나Dung Gate(분문-예루살렘 올드시티 성벽의 8개 문 중 하나. 통곡의 벽, 다윗성과 가장 가까운 문)을 나와 동남쪽으로 약간만 내려오면 The City of David(다윗성 발굴지역)이 있습니다.
다윗성 전망대에서 전체적인 지형을 조망한 후 발굴 현장을 답사하고, G Area라고 불리우는 지역을 들른 후 더 아래로 내려오면 기혼샘, 워렌 수구, 히스기야 터널로 들어가게 됩니다.
히스기야 터널을 지나면 그 출구는 실로암 연못이 되는 것이지요.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함께 가보시지요.
사진은 금번 답사(2013. 2월) 사진과 2년 전 답사(2011. 8월) 사진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사진: 예루살렘 관광 안내도를 스캔한 그림. 주황색으로 표기된 곳이 이동 지점들. 위에서 아래로 이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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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ung gate를 나와 다윗성 쪽으로 내려오면서. 이정표]
![](https://t1.daumcdn.net/cfile/cafe/0235603D5187A6FF1A)
[사진: Dung gate를 나와 다윗성 쪽으로 내려와 올려다 본 예루살렘 성벽. 알 악사 모스크 돔이 보이는군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02476A445187A76B1E)
[사진: 다윗성 입구]
![](https://t1.daumcdn.net/cfile/cafe/013C63405187A7B635)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BCB405187A7B71A)
[사진: 안으로 들어가보니 간이 휴게소가 있고, 다윗의 시편 한 편이 영문으로 부착되어 있군요. 시122편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C99405187A7B715)
![](https://t1.daumcdn.net/cfile/cafe/034C0A405187A7B818)
[시122편]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다윗성 유적지 공원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와 전망대를 오릅니다.
[사진: 전망대 표지판]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0D2445187A8CF32)
[사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다윗성 입구와 쉼터]
![](https://t1.daumcdn.net/cfile/cafe/244BB0445187A8D022)
[사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G Area와 기드론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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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망대에서 본 기드론 골짜기 맞은편 감람산 기슭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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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망대에서 올라뎌 본 예루살렘 성벽]
![](https://t1.daumcdn.net/cfile/cafe/0348BF445187A8D125)
전망대에서 내려와 지하 유적 발굴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다윗의 왕궁터였던 것으로 알려진 유적입니다.
[사진: 다윗궁 발굴 현장]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D8C445187A8D11D)
![](https://t1.daumcdn.net/cfile/cafe/035344445187A8D112)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DDA445187A8D21C)
![](https://t1.daumcdn.net/cfile/cafe/03449F405187A8D230)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823405187A8D329)
이 지역을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G area라고 불리우는 다윗성 동쪽 축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이어집니다.
이곳에 여부스 시대부터 다윗과 솔로몬이 세운 성벽, 이후 불타 무너진 흔적과 이후 느헤미야가 세운 성벽, 그리고 하스모니안 시대의 성벽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유적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좁은 성벽에서 그 다양한 시대의 유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전망대-가운데 맨 위, 사람들 서있는 곳-를 내려와 다윗성 발굴현장을 지나 G Area로 오는 모습.]![](https://t1.daumcdn.net/cfile/cafe/014B07465187B1311B)
![](https://t1.daumcdn.net/cfile/cafe/253AFC465187B1312F)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0A2465187B1312B)
[사진: 다양한 성벽의 모습 그대로 다양한 시대의 성벽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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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75070465187B13411)
![](https://t1.daumcdn.net/cfile/cafe/255807465187B13402)
G area를 답사하고 계단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면 히스기야 터널 입구가 있고, 터널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와 내려오면 Warren‘s Shaft(워렌 수구)와 히스기야 터널을 통과하여 실로암에 다다르게 됩니다.
[사진: G Area에서 히스기냐 터널 입구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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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03511A495187B2D510)
![](https://t1.daumcdn.net/cfile/cafe/033C8F495187B2D62D)
[사진: 계속 지하로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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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워렌의 수구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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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혼샘 Guard tower. 우리 말로는 파수대라고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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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수대 유적 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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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122864A5187B2D807)
[사진: 히스기야 터널로 내려갑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120754A5187B2D80B)
![](https://t1.daumcdn.net/cfile/cafe/031E1B4A5187B2D90F)
[사진: 히스기야 터널 종점. 실로암 풀. 이 실로암 풀은 예수님 시대가 아니라 비잔틴 시대의 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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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수님 시대의 풀로 가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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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근 발굴된 예수님 시대의 실로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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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021E294B5187B2DA19)
![](https://t1.daumcdn.net/cfile/cafe/2128C44B5187B2DB01)
![](https://t1.daumcdn.net/cfile/cafe/2611F04B5187B2DD30)
[사진: 예수님 당시의 실로암 연못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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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2 성전 모형의 다윗성과 실로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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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실로암 연못 클로즈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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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성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습니다.
처음 다윗이 예루살렘에 도읍했을 때의 다윗성은 그렇게 규모가 큰 도성은 아니었습니다.
기드론 골짜기와 중앙 골짜기 사이의 조그만 언덕 위에 있었던 성읍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예루살렘 박물관의 예수님 시대 예루살렘 모형 미니어처. 이 사진은 예루살렘의 남쪽 절반 정도를 찍은 사진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이니 다윗이 처음 자리잡을 때의 예루살렘에 비해 크게 확장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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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남쪽에서 성전쪽을 향해 찍은 사진. 성전 아래쪽이 초기 다윗성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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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초기 다윗성을 클로즈업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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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처음 다윗성 지역을 형광펜으로 표시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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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성은 원래는 가나안 원주민인 여부스 족이 살던 곳이지요.
비록 규모가 큰 성읍은 아니었지만 여부스 족이 차지하고 있던 이 성읍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언덕위에 견고한 성벽으로 지어진 성읍.
문 단단히 걸어잠그면 정복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요새입니다.
성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식량과 물입니다.
식량은 비축하면 되지만, 물은 마냥 비축할 수 만은 없지요.
그러나 예루살렘성의 여부스 사람들에게 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밖의 기혼샘물을 성내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밖의 기혼샘물을 성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우선 성밖의 기혼샘은 위장해서 적군이 알지 못하도록 합니다.
기혼샘에서 흘러들어오는 수로가 있고, 그 수로를 통해 들어온 물이 고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 물이 고이는 곳을 향해 굴을 뚫습니다.
먼저 계단으로 내려가, 수평으로 이동한 다음, 수직으로 뚫려 있는 수구(수직으로 뚫린 갱도와 같은 것. 우리 우물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를 통해 물을 길어 올립니다.
펑펑 솟아나는 수도나 펌프는 아니지만, 적이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성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버티면서 사용할 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부스 족의 성, 예루살렘 성은 난공불락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이 여부스의 성 예루살렘을 정복한 것일까요?
요압이 이끄는 정예부대가 바로 이 수구를 통해 예루살렘성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여부스 사람들의 입장에서 설마 이 수구를 통해 군대가 들어올 것은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
[삼하5:6-9]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그림으로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그림: 기혼샘 여부스족의 수구]
![](https://t1.daumcdn.net/cfile/cafe/27799B395187B9EE15)
[출처: http://www.academia.edu/2477830/Jerusalem_History_Archaeology_and_Apologetic_Proof_of_Scripture
]
위 그림에서 파란 색은 물 길, 초록색은 산 위 성에 거주하는 여부스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오는 길, 붉은 색은 다윗의 군대가 물 길을 통해 진입한 경로를 표기해 본 것입니다.
붉게 표기된 수직의 통로가 워렌의 수구입니다.
우물인 셈이지요.
남쪽 유다부족의 왕으로 7년간 다스리던 다윗은 북쪽 나머지 부족들의 추대를 받아 통일 이스라엘의 왕에 즉위했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새로운 도읍지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이 새로운 도읍지로 정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여부스 족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성.
이렇게 예루살렘성을 차지한 다윗은 여부스 족의 산성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가장 노른자위 자리는 비워둡니다.
군사 전략가인 다윗이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자리를 두고 그 아래쪽에 자신의 처소를 만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요.
다윗은 가장 좋은 땅을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땅으로 비워둔 것입니다.
워렌의 수구도 보충 설명을 드리면,
이 수구는 여부스 족이 파서 사용하던 수구였지요.
그런데 이름이 ‘워렌의 수구’인 이유는, 영국의 고고학자 워렌이 발굴하였기 때문입니다.
워렌은 성경의 사무엘하를 읽고 이 지역을 탐사하던 중 1867년에 이 수구를 발굴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다윗의 군사들은 그 수직 갱구를 기어 올라 성내로 들어왔고, 곧 이어지는 43미터의 인공 동굴을 지나 순식간에 성을 함락한 것이지요.
단, 이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다양한 이론이 있기는 합니다만,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히스기야 터널에 대하여는 이미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유대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침략에 대비 기혼샘의 물을 성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판 수로입니다.
히스기야 터널을 팔 때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돌을 깨고 파 들어갔다고 알려지고 있지요.
돌을 깨며 파고들어가던 사람들이 서로 불과 3규빗(1.3미터) 남았을 때,
맞은 편에서 파 들어오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양쪽의 일꾼들이 서로 통할 수 있게 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하여 파 들어가 남은 바위를 깨는 순간 연장과 연장이 서로 맞부딪쳤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았습니다.
기혼샘쪽에 있던 저장고의 물들이 실로암으로 흘러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기혼샘에서 출발하여 실로암에서 끝나는 히스기야 터널은 그 길이가 자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는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도 다 다르게 나옵니다.
어떤 책에는 길이가 518미터라고 하기도 하고, 또 533미터라고 하는 책도 있습니다.
또 다른 책에는 512미터라고 되어 있기도 하군요.
기혼샘과 실로암의 고도 차이에 대하여도 책마다 다 차이가 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 가운데 두 곳에서 고도 차이를 언급하고 있는데,
한 곳에서는 32센티 미터라고 하고,
한 곳에서는 2.18미터의 차이라고 하는군요.
그냥 고도의 차이를 두어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맺어야겠습니다.
2013. 5. 6 밤.
여러분의 목사 김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