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백길마을에 위치한 영광김씨효열 정려각을 보려면 호남고속도로의 광산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1번 국도에 있는 비아동으로 들어오면 목포방향으로 좌회전하여 하남공단 9번도로로 진입하거나 지방도 816번도로를 이용하면 9번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오른편에 오일뱅크 주유소가 있고 9번도로를 넘어 임곡방향으로 직진하면 왼편에 폐교된 하남북초등학교가 있고 이곳에서 약 600m정도 진행하면 왼편에 “로뎀나무 아래에서“라는 식당 간판이 멀리 보이면 왼편에 동네를 알리는 표지석을 따라서 진행하면 백길마을에 갈 수가 있다.
영광김씨 효열 정려비는 박세방의 부인인 영광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1921년에 세워진 것으로 백길부락 깊숙한 곳에 있으며 단청은 물론 주변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으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세워져 있으며 자물쇠는 채워지지 않아 관심이 있다면 충분하게 감상 할 수가 있다.
영광김씨는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섬기기를 다 하였고 박세방과 혼인 한 뒤에도 남편과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25살 나던 해에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밤에는 병을 대신하기를 원했고 낮에는 백방으로 약을 구하는데 온 힘을 다했으나 결국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따르려고 했으나 시부모와 자식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돌려 시부모의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위독하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먹였고 시어머니가 위독 할 때는 단지를 하여 피를 먹이기도 하였으며, 90세의 시아버지까지 지극정성으로 모시기를 다하니 조정에서는 남편 박세방에게 예조증직의 포전을 내렸고 효열효부로 최선을 다한 영광김씨에게는 淑人을 하사하고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정려각을 세웠다. 정려각의 형태는 골기와와 팔작지붕이며 사방으로 정사각형 형태의 건물로 주두위에는 우설첨자와 용두를 조석 하였고, 정려 내부에는 숙인영광김씨효열비(淑人靈光金氏孝烈碑)란 해서체의 제하에 효열비 이면에는 효열비 김씨 기적비(孝烈碑金氏紀蹟碑)란 효열내용이 상세하게 음각 되어 있다. |
영광김씨효열정려각이 있는 백길마을은 옛날 마을 뒷쪽에 맑고 푸른 시냇물이 흐르고 "뱃길"이 있어 해수가 들 때면 이곳에 배를 댔다하여 백거리 또는 백계라고 불렀다. (광산문화원 일부 발췌) |
1800년경에 밀양박씨 박세방공이 충청도에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행정구역상 광산구 진곡동 백길마을이나 지금도 이곳에서는 백거리 또는 백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실제 백계라는 이름으로 불렸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마을형성 당시에 있었다는 맑고 푸른 시내가 있어 혹시 백계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는지 확인 할 수가 없으나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진곡마을 앞 들까지 물이 차 있었고 어등산에 그릇을 사러 가려면 배를 타고 갔다고 했으며 실제로 백길마을을 지나 임곡 쪽으로 500여미터 쯤 가면 벽파정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그곳에 배를대는 나루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백길마을 뒤에 있었다는 시내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출처 :깔크막우게히컨집(松泉) 원문보기▶ 글쓴이 : 깔크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