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50여년전 내 나이 7~8살때 인거 같아요. 그 나이 때에는 우리들의 놀이 문화가 지금하고는 너무 틀렸어요.
어린 시절의 놀이 문화는 서로 놀이를 하면서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어요. 서로 놀이를 하면서도 단합 그리고, 서로의 배려, 양보, 아무튼 위 아래 서열, 뭐 어려서부터 그런걸 어린아이의 놀이에서 어른인 누가 안가르쳐 주더라도 서로 놀이를 하면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알아야할 도덕성을 다 알게 된다. 즉, 갖추어야할 소위 오늘날 말하는 이성교육을 서로가 공감을 하게 되면서 위 아래 언니 누나들이 일깨워 준다. 우리는 놀을때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땅따먹기, 딱지, 구슬치기, 숨바꼭질, 강강술레, 오 재미, 등이다. 어린시절 고무줄 놀이 부터, 잠깐, 지금부터 이야기좀 쓸게요~ 고무줄 놀이는 서로 양쪽 편을 정해요, 혼자 놀아도 되요, 양쪽 기둥에 고무줄을 묶어 놓고 놀아요.
아니면 서로 상대끼리 편을 짜서 놀죠. 노래를 부르면서, 물론 동요지요, 1절 .2절.3절 동요를 정해놓고 고무줄을 넘어다니면서 놀지요. 거기에는 규칙이 있어요. 고무줄을 타고 넘다가 걸쳐서 잘못되면 그거는 안되는 거에요. 규칙위반 이에요. 고무줄에 걸리면은 지는거에요. 남자 아이들은 그틈을 타고 고무줄을 끊어 놓든지 끊어 가든지 치마입은 여자 아이들을 들치곤,"아이스케키!" 하고 치마를 올리고는 가죠. 우리 여자아이들은 고무줄을 끊고 , 아이스케키 하고 치마 걷는 것은 괜찮게 양보를 하지만, 고무즐을 끊어 가는 것은 끝까지 라도 쫓아가서 고무줄을 찾아와요. 그 시절엔 고무줄도 굉장히 귀했었어요. 어린 계집아이들은 누가 뜀뛰기라도 시킨것처럼 서로 뛰었지요. 고무줄을 찾아야 하니까요. 즉 보이지 않는 단체심과 단합심이에요. 즉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다구요. 고무줄을 찾아야하니까요. 그래야지 우리들이 재밌게 놀죠.
고무줄이 없으면 놀지를 못해요. 남자 아이들 한테 고무줄을 찾아다가 그렇게 고무줄 놀이를 했지요. 다음은 공기 놀이도 서로 양팀을 나누지요. 그리고 서로 편을 갈라 참 공기가 무엇이냐구요? 공기가 조그마한 톨이에요. 에쁘장하게 생긴 서로 양팀을 나누지요. 그러고 서로 편을 갈라 공기 5개 , 크기가 같은 돌맹이를 여러개 잔뜩 놓고 갯수를 관계없어요. 손가락을 들어올려 공기들을 집어 올리는 것이에요. 그러면 자연히 손가락운동과 같이 노는 아이들이 서로 서로 돈독한 관계가 형성이 되지요. 둘이하기도 하고 혼자하기도하고 여럿이 하기도하고, 땅따먹기 놀이도 땅따먹기란, 다 비슷비슷 해요. 다 놀이가.
둘이 넷이 짝짝이 하면 더 재밌어요. 항상, 땅따먹기 놀이랑 땅바닥에다 그림을 어느정도 그려놓고 놀이의 적합하게 그린다음에 서로 조그마한 납작돌을 가지고 엄지손톱으로 멀리 납작돌을 던져 땅을 차지하는 것이에요. 먼저 서로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에요. 승부가 결정이 되지요. 먼 옛날 농경 사회 시절 하도 가난하게 살았었던 조상님들의 한이맺힌 것에서 유래가 된것인가요.
소작인 농부의한이 서려 있는것 같아요 땅따먹기 놀이는 딱지 구슬치기도 할 수 있죠. 어떻게 하는 것이냐구요? 딱지도 서로 네딱지 내 딱지 서로 따먹고 뒤집기 하면 되요. 아니면 서로 계급 높은 딱지가 이기는 것이에요. 여러분도 잘 아시잖아요. 구슬치기도 어떤 공간에 구슬을 넣어 놓고 여럿이 구슬을 던져 가져가는 것이에요. 구슬끼리 부딪쳐서 금을 그어 놓은 공간에서 구슬이 나가면 가져가기 여러분 일리쌈(일본어로 으찌니쌈) 일종의 여럿이서 상대해서 한명의 주먹속에 구슬의 갯수를 알아내는 것이지요, 못알아 맞추면 한사람이 그 많은 사람것을 가져가는 것이에요. 어린아이들의 놀음이나 마찬가지에요.
저는 8~9살 먹은 여자아이가 그 당시에 중고등학교 동네 2~3학년 열여섯, 열일곱, 열아홉살 먹은 동네 오빠들 하고 으찌니쌈(일리쌈) 이라는 구슬가지고 어린이 놀음 , 도박 그것을 했어요. 나이도 어린 여자아이가!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나보다 큰 사내 아이들하고 그 당시 나이가 중고등학생 남자 동네 공갈 오라버니 또래랑 즉 저보다 열살에서 열한살 열두살 그정도 더 나이를 먹은 동네 오빠들이 많았어요.
전 나이도 어린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그 추운 겨울에 땅바닥에 앉아서 날씨도 추운데 머리를 빡빡머리(빡빡대가리 동네 오빠들) 동네 중고등학생 오빠들이랑 머리통을 맞대고 오글오글 쭈그리고 앉아서 으찌니쌈! 일본말로 구슬치기 용어를 대면서 일본말로 일명 다마놀이에 빠져서 쪼그만 주먹을 내놓고 "오빠 뭐야! 빨리 말해봐! 내가 뭐 줬간! 빨리 말해봐!" 네다섯명 오빠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누가 쪼그리고 .옹크리고 . 앉아서 구슬 다마 놀이를 하고 있는 나의 머리카락을 누가 내 머리카락을 갑자기 번쩍! 들어요. 꽤 아프지요! 나는 깜짝 놀라면서 " 아휴 아파! 누구야! 아아악 아파 ! 어떤 새끼야! " 조그마한 계집애가 고개를 번쩍드는 그 순간, "앗!" 무서운 나의 아버지가 내 머리정수리를 확! 끄집어 올리시는 것이에요.
아버지는 "이놈의 계집애야. 어린 계집애가 다큰 사내놈들과 구슬 치기냐?" 하고 저를 끌고 갑니다. 이런 걸렸다 댓방한테 어디냐구요? 물론, 우리집이지요. 아버지에게 끌려가서 손등 손바닥 검사를 받죠. 우리 아버지는 제 손등을 보고 놀라셔요. 왜냐구요? 손등이 매일 흙바닥에서 놀고 하니까 정말 어린 계집아이 손등이 손때와 함께 갈라져 거북등 같아요. 쩍쩍 갈라져 있지요. 많이 핏기가 보인다니까요 손등에서요. 그럼 아버지는 여자계집아이가 공부도 하고 계집애 끼리 놀아야지 하면서 제 손등을 닦아주셔요 어떻게 닦아주시냐구요? 먼저 뜨끈한 물에 제 손을 담그고 있으라하고, 지키고 계셔
요.
전 대야에다 팔뚝까지 물이 닺게하고 손때를 불리지요. 더운물이 거북이 처럼 갈라진 손등에 닫는 그 순간! 거북이 처럼 갈라진 손등은 뜨거운물에 닫는 순간 얼마나 따갑고 아프다구요. 어린 나이에도 너무 아파 얼굴을 찡그리지요. 손등을 담근지 30~40분있으면 손에 때가 불려져요.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제 손등을 닦아줘요 손등 때랑 무엇으로 닦느냐구요? 옛날에는 때타월이 없었어요. 납작한 금방 태어난 아기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로 아버지는 "우리 큰 딸 오복아?,사내 아들하고 구슬놀이 하지 말아라, 착하지 예쁘지? 여자아이들 하고 놀아 왜 나이도 어린게 너보다 나이가 10살11살 많은 아이들하고 노니 그러지 말어. 이놈의 계집애 배짱도 좋네, 어이구 착해 우리딸 예쁘지? 구슬먹기 하지 마라" 하시면서 절 달래요. 참! 아버지는 팔뚝까지 제 때를 밀어내요. 그게 다 구슬 먹기하고 매일 흙에서 놀아서 그래요. 저는 울면서 "아버지 아파요! " 하면서 막 울면은 " 이놈아 좀참아라! 계집아이 손이 이게 무엇이니? 거북등 처럼 갈라져있게 이 때좀봐라!" 하시면서 제 아기때 이야기를 해주죠 무슨이야기냐구요? 제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자 마자 매일 아무리 바쁘셨어도 아기인 저를 여섯번씩 씻기 셨대요.
항상 손을 먼저 씻겨주셨대요 왜냐구요? 여자는 손이 예뻐야 시집가서 잘산다고 하시면서요. 손부터 씻기면서 목욕을 시키셨대요. 그런데 손이 그모양이니 아버지 입장에서 보기엔 얼마나 안쓰럽고 측은하겠어요. 어린 계집아이가 총각만한 사내아이들과 구슬 놀음이나 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으시겠어요. 저 엄마 없냐구요? 엄마있어요 친엄마! 지금도 살아계셔요 82살 이세요 제 친엄마요. 아버지는 제 손을 깨끗이 다 닦아놓으시구요 물기를 다 닦으시고 그 시절 구하기 힘든 화장품의 일종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여러분 아시죠? 바세린 미제래요! 미제! 그 바세린을요. 손가락 끝부터 팔꿈치 팔뚝까지 아버지의 큰손으로 마사지를 해주셔요. 한 15~20분까지요. 그러면 손이 예쁘고 뽀얗게 되요. 여자아이 손처럼 되요. 마사지가 끝나면요. 세수 수건을 아주 더운물에 흠뻑 적셔서 짜가지고 닦아주셔요.
물기가 마르잖아요. 그러면 그때 바세린을 다시 듬뿍발라 한 10분간 다시 마사지를 해주셔요. 그러고 다시 뜨근뜨근 한 면 수건 타올로 다시 닦아주셔요. 그리고 왜 예식장에서 신랑이 끼는 면장갑 얇은 것을 다시 바세린으로 살짝 발라 제 팔뚝까지 발라주시구요. 제 손에 장갑을 끼워 놓죠. 무슨 면장갑이냐구요? 좀아까 말했잖아요. 예식장에서 신랑이 끼는 면장갑이었어요. 그래도 그 시절엔 고급 면장갑이었어요. 결혼식때 신랑이 끼는 흰색면장갑 있잖아요. 흰색 그런 면장갑을 끼고 하루밤을 자요. 팔뚝에는 토시를 끼어요. 면 토시요. 아침에 보면요 .애기 손등같아요. 물론 팔뚝도 애기 살 같아요. 손톱도 아버지가 다 깎아 주시죠. 손톱밑에 더러운 흙먼지가 새까맣죠 구슬치기 일명 다마치기 있잖아요. 놀이를 해서 그래요 .어린저는 그 세계에서 도박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참 조그마한 어린 계집애가 배짱도 많다고 아버지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저희 친정아버지는 저를 많이 사랑 하셨어요. 그럴만도 하시지요. 아버지 36살때 절 낳으셨대요. 제가 아버지한테 첫 자식이었대요 참. 아버지의 직업은 군의관 이셨어요 .저는 외가집에서 5살까지 컷어요. 친엄마가 오면 아줌마 왔다고 그랬대요. 외갓집에서 왜컸냐구요? 아버지는 전근 다니시죠 엄마는 아버지랑 같이 아버지 쫓아다녀야죠. 그리고 제 동생이 저보다 한살 어려요. 약한 어미니께서 자식들이 힘에 겨우셨나봐요.
그래서 제가 외갓집에서 5살까지 커가지고 외할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저희 엄마 아버지에게로 이모님이 보내셨대요. 저 오복이가 아기였을때 우유먹고 체해서 우유(분유) 안먹더래요. 그 시절에 우리 외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순토종인 우리나라 개구리를 잡아오면 한마리당 얼마씩 돈으로 주셨대요 .어떤 개구리냐구요? 그 때 당시는 개구리가 어른 주먹 3/2만했대요 .개구리 등에 색이있었어요. 3~4가지 색이에요. 푸른색, 검은색, 도토리 영근색, 아무튼 제법 커요. 어떻게 아냐구요? 어린 시절에 우리들이 잡아먹었어요. 이웃에 아이들이랑 동생이랑 개구리를 우리들은 잘잡아요. 잡아서 논뚝길 에 힘껏 내리쳐요. 그러면 개구리가 쭉 뻗어요. 개구리가 쭉 뻗으면 개구 리 대가리를 신발 밑에 넣고 다리를 확 잡아다니면 개구리 넙적다리가 하얗게 허물 벗으면서 나와요 .대가리는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개삶어주고 다리는 석쇠에 구워먹지요. 참 맛있어요. 아 ! 우리아이들이 몬더가네(야만인) 이냐구요?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개구리 넙적다리를 굵은 소금 살짝 뿌리고 장작불이나 연탄불에 구워먹어봐요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몰라요. 좀 뻥좀 넣었 어요 .그만큼 맛이 있다구요 .정말이에요. 저는 지금도 없어서 못먹어요. 진짜! 최고에 맛입니다. 쫄깃하고 단백해요. 아 ! 제가 잔인하다구요? 그래요. 저는 잔인해요. 그 시절엔 어쩔수 없었어요. 그래도 그런 아이들이 어디 있냐구요? 우리들이요,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은요. 메뚜기도 잘잡아서 볶아먹었어요 .맛있어요. 개구리 메뚜기는요. 단백질의 공급원 이에요. 그시절에는 어쩔수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시골에 안살았어요 .도시 근처에요 .도시 근처에도 개발이 안되었던 농경사회 시절이라 그래서인지 자연친환경 시절이었구요 .자연적으로 먹이사슬인 뱀도.많았지요. 뱀에물려죽은 사람도 꽤많아요. 지금은 다귀해요. 농약때에 농약안하고는 인간입까지 들어갈수가 없어요 .그많큼 자연이 다 이제는 황페화 되어가고 공기오염으로 파괴되어서 그런데요'
어제tv 에서 나오데요 . 개구리는 식용개구리를 튀겼더라구요 .그리고 메뚜기잡아서 풀줄기에 메뚜기 아가미 꿰이는것도요.
tv에서왜 그프로보여 주시는지 아시지요? 아이들 시골놀이 전통문화놀이 체험그렇게 포커스를 마추어가지고 보여주더라구요.삭막하니깐 요즘아이들이 저만알고 배려심도 없고 부모에게 공경도 할줄모를고 누굴탓하나요. 다 내 새끼부터그런것을 .야기들어보면 뉘집 자식슝을봐요 .요즘 캥거루족 이라구 부모가 다 길러 공부 가르쳐놔도 않나간다고 지 집구석에 부모들이 그러더라구요. 이집 저집요.그도 그렇치 얼마나 편한대 내부모가 내집이 내부모는 내가원하는것 다해주지 말만하면 왠만한것은 다들어주지요.우리 자랄때에는 어림반푼어치도 없어요. 애들 용돈도 없었어요. 밥안굶고 살면 땡이라고 요즘 인사 말도 바뀌었어요. 우리는 지금도 만나면 "식사하셨어요 " 밥때 이쪽 저쪽 되면 아니조금 지났어도 그러잖아요?
그런 우리가 쓰는 인사 언어 절때 안씁니다. 밥도 안굶어 보았고 또모르고 그런이야기 하면왜 바보 같이 밥을 굶냐고 라면이라도 삶아먹지 "이 바보야 그래요" 나원참 나도 배는한번도 골아보지는 않았어요. 즉 쌀 없어서 굶어보지는 않았다구요 .도시에도 전에는 조금 외각으로 가까운데는3ㅡ4키로 먼데는5ㅡ6ㅡ8키로 벗어나면 즉바로 농경이었다 .우리동네에서도 개울이 꽤 큰것이있어서 여름엔 일명미역 감는다하지요. 고기도 잡고 그립다 그시절이 왜인간은 태어나면 일회용인가 지나간 시절좀 다시 돌렸으면 좋겠어요. 죽어도 원이없겠어요. 부모님 말씀잘고...
도시에도 어김없이 논밭은 있었어요 .지금 말하면 인천 쪽이나 경기도 수원 용인 그쪽 이었던거 같아요. 좀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아이들 놀이 문화도 북고 풍으로 다시오는것이에요 요즘아이들 컴푸터에빠져서 아휴무서워라 삭막해지니깐 우리들의어려서 그냥놀던놀이을 어른들이 모방을해서 돈을받고판다 웬병 딴병 비호감이야 그게무슨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라고 개뿔! 정말 서프라이즈다 초특급만행이다 . 메뚜기잡아먹고 개구리 튀겨먹고 난리 부르스다 우리가 어린시절먹었던 단백질이 무었인지도 모르고 아이들이 배고프고 허기지고 간식거리 없어 잡어먹었던 그 시절 그눈물어린 추억
의 작은 개구리 메뚜기가 이제 와서 오늘날 아이들에게 이런 온실속의 아이들에게 빵당할시추에이션 이라니 웃긴다. 정말! 복고도 아니고 우리들이 몬더가네 라구요? 야만인이라구요? 아니에요. 그 시절 아이들은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아 단백질을 보충하러 볶아먹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개구리도 잡고 물고기도 잡고 그랬어요 어른들은 뱀도 잡아 굽고 삶아 먹었어요 왜 그런말도 있잖아요.
학교갔다오다보면 어쩌다가 뱀 장사가 있었잖아요 뱀장사 근처 가면 뱀장사 한다는 소리가 왈 한다는 소리가 " 애들은 가라 어른들만 모여라 이 뱀으로 말하면 양기에 좋고, 정력에 좋고, 하룻밤 7~8번은 끄덕없다고," 그러면서 뱀을 선전하면 아버지들은 귀는 쫑긋 눈은 뻐금 빤작 뿌잉뿌잉 있잖아요 그런거 아시잖아요 제가 말 안하여도. 뱀 장사는 (비얌) 장사는 어린 우리들을 막 쫓았어요 가라고 우리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많이 모여있으니까 도망갔다 도로오고 뱀장사가 쫓아오면 서 한다는 소리가 " 너네 애미 애비가 누구냐 술먹고 만들었냐 왜 그렇게 말을 안듣냐 하면서 우리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으면 뱀구경을 하던 아저씨들이 깔깔대고 웃는다 . 그러면 어린 우리들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따라서 웃곤 했다. 아이들이 개구리 넙적다리 대가리 분리해서 가지고 우리 외할머니 댁에 가지고 오면 할머니는 개구리 넙적다리랑 찹쌀을 넣고 죽을 쑤어 걸러 어린 아이인 저에게 먹이셨데요. 그렇게 어린 저를 기르셨답니다 . 조금 크니까 밤에 제가 운데요. 외갓집은 어머니 처녀시절때까지 비단가게와 이불송 가게는 물론 잡화 가계를 크게 하셨데요. 농사도 지으시는데 과수원도 같이 하셨데요 무슨 과수원이냐구요.
사과 배 과수원인데요 사과는 국강 , 홍옥, 껍데기가 두꺼운 사과랑 껍데기가 얇고 빨간사과 인데요 지금은 그 종자가 없어졌어요 맛이 되게 없어요 달기는 해요 배 감 그런것들이었나봐요. 그 시절에는 좀 괜찮게 살으셨나봐요 국광사과는 정말너무 껍데기가 두껍고 아 맛은괞찬아요 . 홍옥사과도 새콤달콤 맛있어요. 일본산 후지라는 사과의 개량종자로 자꾸좋아졌어요 .그래서오늘날 좋은사과 명품 사과가 많이 대량으로나오는것이에요. 일본이라고무조건나쁘게는안봐요 저는요 ..
그래야 빨리 무엇이던지 빠른 결과와 개혁의 혁신이보이지요 . 즉 나의 발전이 빨리온다구요. 누구 든지 모방은 좋은것도 많아요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비단가게 처분하시고 지금으로 말하면 동네 미니슈퍼 .소위 잡화가계를 했었데요 그런데. 제가 자다가 울면 사탕을 잘게 잘게 부셔서 입에 넣어주셨데요 그러면 두 세살 되는 아기는 단맛에 잠을 잔대요 사탕을 입에 물고 무슨 사탕이냐구요. 일명 심리 사탕이라구요 . 어른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되는 볼따구가 한쪽볼록 나와요 그걸 입에 물면서 걸어가면은요 십리길을 걸어간데요. 십리를 걸어간다해도 안녹는다하여 일명 십리 사탕이라구 하더라구요 그 사탕이 어린 저에게 화근 이었어요 어머니하고 외할머니하고 싸우셨데요. 왜냐구요. 제 이빨이 새로나기 무섭게 당분에 다 썩어서
우리 아버지는 장모님에게 말도 못하고 어머니에게 야단이시고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난리를 치시고 아이 이빨 다 썩게 만드셨다고 정말 제 어린 시절은 아버지가 제 이빨 뽑냐고 고생하셨지요. 저도 고생많이 했어요 흔들거리는 제 이빨을 실에 메달고 탁! 잡아당기면 이빨이 뽑혀 나와요 아프고 나는 이빨이 빠지면은 아이들이 놀려대요 앞이빨 빠지면 놀리지요 이빨빠진 금광쇠 라구요어린 시절 이빨 갈때 아마 거의 치과엔 안갔을걸요 이빨들빼러요 집에서 거의 부모님이빼주셨잖아요 집집마다 부모님들은 다나이롱 치과의사였어요. 이빨 빼주는 식구들전용주치의사요 얼레 꼴레 나좀봐요 오재미 이야기를 해야지요.
그렇게 어린 시절을보내면서 어느날 아홉살 인지 아홉살이 안되었는지 가물가물 나이가 동네 아이들이랑 고무줄 놀이를 끝마추고 다시 모이기로 했지요. 그때가 여름방학이었을때에요 우리는 동네 정자나무 아래서 점심먹고 모여 서 놀기로 했는데 오재미 놀이를 하자는 약속을 아이들 몇명이서 "오복아 너 오재미 가지고와라 " 하더라구요 저는 "그래 " 하고 집으로 왔어요 " 엄마 " 하고 찾으니 안계시더라구요 저는 " 얘들아 " 동생들을 찾으니 동생들도 없고 도대체 어디로 갔나하고 안방인 어머니 방에 들어가도 아무도 없고 우리들방에가도 아무도 없고 다들 어디로 갔는지 없더라구요 나는 오재미 만들 옷감을 찾으니 없더라구요 마땅한 것이 아! 그런데 어린 제눈에 번쩍 ! 뜨이 는 장롱에 겉문에다가 예쁘계생긴 저고리 동전달아 다소곳이 두신 비단 저고리와 양단 저고리가 눈에 확띠더라구요 저는 갑자기 어린 마음에 저거다! 하고 번쩍 띄인 비단 양단 저고리 두벌이 엄마방 장농 에 얌전히치마위로 단정하게옷고름도 길게 걸려있더라구요저는 어린마음마음에너무예쁘더라구요.
아마 제기 억으론 은은항 약간 옥색 푸른색이감도는 색상에다가 화려한 매화수에다 금실로 뜨문뜨문 수가 아름답게 넣어져 있고 그게 비단 한복이 었었던것같고요. 양단한복은 약간골드색상에 거기에도 목단꽃 무늬에 금실로 업그레이드 데어서 더한복과 입은사람의 운치을 맵시 있게 해주는 고급제품 이었어요 . 왜 제가 이두 한복기지를 이 나이 먹도록 잊지를 못하냐면 어머님이 밤에 비단 양단 한복오려버린 짜뚜리를 만지작 거리시면서 면서 우시는걸 보았어요. 그래서 제가 기억을 합니다 .옷감의 돈의 값어치 아냐구요. 당연히 모르니깐 그렇게 그 비싼 옷 한복을 가지고 이리 저리 웬일이니 파리똥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그난리 부르스를 치고 싹뚝 싹뚝가위로 자르고 아이들하고 숭구리 당 당 거리고 질랄 난방 생쇼를 했지요. 오재미 많든다고 철모르는 자식이 그랬으니 그걸 어째겟냐구요 우리어머니 입장에서는 비싼 저고리를 그것도 두벌씩이나 .얼마나 속이 짜증 폭발 이었을까요. 비단 양단 저고리를 꺼내놓고 다 닭모이처럼 쫒아 놓았으니 얼마나 황당 빵당 놀라셨을까?! 나는 나이가 어린것이 놀이에 정신나간 보리문둥이 아...병신 빵고 똥고 에요. 요즘에들 말로는 개미코딱지래요. 우습대요. 요즘말로.어쨌던지간에 그비싼 비단 양단저고리 비련의 고급옷을 내어머니를.울게만든 어머니의 최고급옷을 어린나는 아~내가 뭘알아요 .
비싼것을 장농에서 꺼내서 방바닥에 놓고 가위를 찾아서 방바닥에 저고리를 널어놓고 어디를 자를까? 고민을 하며 저고리를 앞뒤로 돌리고 하다가 뒤로 돌리니 뒷면이 평평한것이 어린 마음에 괜찮더라구요. 팔뚝도 그렇고 저는 비단 저고리 뒤를 정사각형으로 오재미 두개 만들 천을 가위로 그냥 나중생각도 안하고 인정사정없이 큰 가위로 숭당 쑥덕 싹싹 숭그리 당당 쑥쑥 자르고 이왕 만드는거 에이 양단 저고리도 엎어놓고 등쪽으로 숭당 쑥덕 싹싹 잘랐죠. 비단 저고리와 양단 저고리 두벌을 오재미 만드는데 다잘랐어요. 등판 두개를 나의 작품인 오재미를 두개를 만들었어요 비단에서 두개 양단에서 2개 어떻게 만들었냐구요 ? 이불 꽤매는 실과 바늘로요 숭덩 숭덩 꽤면서 오재미 속에 흙을 놓고 다시 꽤매서 아이들에게 가져가니 " 야 오복아 오재미 정말 예쁘다 이렇게 예쁜 오재미 만드는천 어디서 구했냐?" 고 하기래 저는 어린 마음에 어깨를 들썩들썩 하면서 주먹코에다 뻥코인 내코도 벌름벌름 .아마도 그랬을것같아요. 가끔기분좋을때.제가 그런버릇을 하면 제딸이 ."엄마" 하구요. 목에 힘을주면서 "우리집에 많아 줄까?' 하니 내 또래 친구들 여자애들이 우루루 몰려 우리집으로 왔지요 .아이들은 오재미 천이 좋다고 야단 난리 였어요 . 저희들 좀 달라고 하길래 오재미 놀이는 안하고 우리집으로 몰려와서 어린 나는내 어머니 비단 저고리 , 양단 저고리 옷고름 잘라주고 내가 싫어하는 저고리 팔뚝을 잘라 주었더니 비단 양단 저고리가 군데 군데 잘려나간 거 갔더라구요.
오늘날 옷에 디자인에 대한 가치가 아니 저고리 팔뚝선이 U자는 여인의 가는 허리선과 이어져 디자인해서 부드럽게 나간것인데 그래서 저고리 옷솜이랑 팔뚝이랑 이어져 자연스럽게 아름다운것을 똑바로 안되있고 U자 를 길게 이어진것이 나쁜것인줄 알았죠 저는 아이들과 오재미도 하고 고무줄도 하고 재밌게 놀다보니 여름에는 좀 길잖아요. 해가 좀 어둑 어둑할때 까지 놀다 .지친몸을 가지고 집에오니 아뿔사 동생들이 집에왔을땐 안방에다 비단 저고리 양단 저고리 오리고 짜투리를 그냥 두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안방에다 그냥 놔두고 몸만 빠져나왔잖아요. 어머니는 화가 나셨고 동생들은"너 언니 엄마 한테 혼났다. " 그러더라구요 "왜?" 그랬더니 엄마가 아끼는 유일한 어머님의 외출복인 한복 두벌을 다 이리저리 오려 오재미를 네개를 양단 저고리에서 오재미 두개 비단저고리에서 오재미 두개 만들고 동네 친구 계집아이들이 오재미 천이 예쁘다고 다 오재미 만들어서 이리저리 오린 양단 비단 저고리 굴러다니는 찌끄러기 오린 것만 어지럽게 안 방에다 늘어놓았으니 이제와서 생각하니 내 어머니 심정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어머니는 아무말도 안하시고 "니 에미 외출복인데 아무리 어린것이지만 철딱서니도 너무 없다 " 하시면서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하시더라구요. 저는 어린마음에 어머니가 마음좋은 아주머니 갔더라구요 .저녁잘먹고 잠을자다 밤에 열한시쯤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났는데 안방에서 어미니의 우시는 소리가 나서 살짝 문을 열어보니 비단 저고리와 양단 저고리 오린 찌그러기 천을 어머님의 손으로 만지막 거리면서 우시더라구요 .저는 혼날까봐 얼른 제방으로 와서 자는 척하고 있다가 깨보니 아침이더라구요. 여러분 비단 저고리 양단 저고리는 실크에요. 실크가 무엇인지 아시죠? 누에 꼬치 에서 나온 실에서 만든 사람이 손으로 직접짠 수공예 품이에요. 그당시에는 금실 은실 을 넣고 아름답게 꽃무니를 넣어서 짠 것이었어요. 옛날에는 구 중.궁궐 에서 임금과 중전 후궁 그런사람이 입었던 것이래요 .사십 칠팔년 전에는 비단 저고리 양단 저고리가 굉장히 비쌋었나봐요. 굉장히 비쌌대요. 그런종류의 옷감들이 부의 상징이었고 아무나 못입었대요. 어머님 내 어머니 세월은 너무나 많이 유수와 같이 흘러 제 나이도 육십을 바라보고 있군요 저희 친정어머니는 팔십두살이세요 어머니는 그때 제가 이야기를 하면은 저에게 "이 극성맞은 년아 저고리 하나 가지면 오재미 오십개는 더 만들어 이년아" 하시면서 제 머리를 콱 쥐어 박으셔요. 저는 "엄마 나 그때 왜 안때리고 그대로 내버려두었어요?" 하고 물어보니 " 아 이년아 이왕 그렇게 된거 저고리는 다 망쳐놓은거 어린널 혼내고 때리면 뭘하니 어린것이 뭘안다고 네가 알고 그랬냐 내새끼가" 그러시더라구요 .어머니의 자식에대한 깊은 사랑 고맙습니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내 어머니. 엄마 보고싶어요. 부여에서 넓괭이 빠진 내 친정 엄마의 큰 딸 장오복이가.
그리운내어머니
어머니 !그립고 보고싶군요 그때어린 시절에 철딱서니 없이했던 그런일들!
어린시절엔 부모님아랑 죽을때까지 같이 사는줄 알았어요 어머니 !
보고싶은어머니 언제나 말이없으시고 조용하시고 항상 어머님 !....
손엔 뜨게질 거리가 매달려있던.....
생각이나네요 "엄마 ?이것잡수세요"? 하면 "엄마는 그것못먹는다 .
" 너네 끼리 나누어 먹어라 엄마것까지"?
나중에커서 알았네 내가시집을 가서 자식에게 울엄마 했던말을
나도모르게 똑 같이 하고있네 !
모성애란 정말 무섭다 누가가르켜주었나 내리사랑이라더라더니........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비록서로 몸은떨어져있지많 전 어머님의 분신이잖아요"
제가 잘해드려야지요 경노당 에서 고스톱 쳐서 돈많이따셔요 .
부여 시골사는 큰딸 용돈좀 많이주셔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