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하동신문-지리산에서 만난 사람들
예술 하러 오는 사람들
지리산을 여행 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동에 오면 꼭 들려서 가는 곳이 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서 화합을 이룬다는 화개장터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마을을 그대로 재현하여 만든 악양의 최참판댁이다. 악양의 최참판댁은 200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내가 지리산을 찾아온 것도 그맘때니 최참판댁의 시간과 내가 지낸 시간이 얼추 같이 가고 있다.
그 당시 나도 호기심에 악양 최참판댁을 찾아갔다. 가서 보니 그냥 시골 초가집이 있고 대가 댁 부잣집 한 채가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어 큰 감흥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찾아와 악양에 최참판댁을 가자고 하면 들려오라고 하고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토지문학제를 한다고 해서 다시 찾아가 봤다. 그냥 민속촌처럼 단순히 예전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거기에는 이야기와 문화가 있었다. 그 이야기라는 것이 단순히 소설 <토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 한 시대의 이야기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가 대입이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거기에 더해 참판댁 마루에 올라서서 너른 악양 들판을 보면서 느끼는 특별한 정서도 있었다. 이 너른 들판을 소유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욕망과 이 너른 들판을 유유히 볼 수 있는 절제와 땀 흘려 일하던 민초들의 삶이 그려졌다. 그 사이로 내 안에서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꼬물 거렸다.
지리산이 그랬다. 하동이 그런 곳이었다. 무언가 예술하고 싶은 곳, 예술 하게 하는 원천이 이곳에 있었다. 자연히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음악을 만드는 이나 그리 창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며 하나둘씩 지리산을 찾아왔다. <은별이랑 아빠랑 섬진강 그림여행> <은별이랑 아빠랑 지리산 그림여행>이라는 책을 만들어서 전국에 알리고 있는 오치근 화가는 지리산 운봉이 고향이지만 악양에 집을 지어 정착을 했다. 나보다 먼저 정착했다가 같은 화가 마누라를 얻어 잠시 인천으로 옮긴 사이 내가 왔고, 내가 정착할 즈음 부인 박나리 화가와 함께 다시 악양으로 들어왔다. 어디를 다녀 봐도 이만한 곳이 없었다는 증거일 꺼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사실 토박이에 비길 수 없다. 구례에서 태어난 시인 이시형 선생이나 하동의 정두수 선생님들 같은 분은 이 지세를 타고 나셨으니 감히 어찌 밖에서 들어와 이름을 내밀겠는가! 동향의 그 아래 후배 문인들의 글을 읽으면 태어날 때부터 그 안에 든 정서가 부럽다.
화가들은 그런데 외지에서 오는 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급기야 이웃 구례에는 화가마을까지 생겨나고 하동에는 젊은 화가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앞서 말한 오치근 화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그 그림의 주요 역할을 하고 그림을 전공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차 공부까지 한 부인 박나리 화가는 지리산의 차 문화를 그려 잡지 <차와 문화>에 연재하기도 한다.
그들은 지리산에서 행사가 열리면 열심히 붓을 들고 나선다. 야생차문화축제의 한 켠에서 토지문학제에서 또 지리산행복문화제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재능을 나눠 지리산에서 사는 값을 톡톡히 내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이지만 예술도 그 먹고 사는 한축이기에 예전과 달리 예술이 우리들의 삶과 동 떨어진 먼 일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대봉감 축제를 해도 그 이야기를 재미나게 알려주는 작가가 필요하고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주는 화가가 있으면 그 행사가 더 빛나고 섬진강 가요제를 해도 연주를 잘하는 멋진 연주자가 더 살려주고 코스모스 축제에는 거리의 악사가 있다면 더 신날 것이다.
농사짓고 허리 펴기도 어려운 데 무슨 예술이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지리산에 사는 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콘크리트 회벽에 있다가 예술의 전당에서 멋진 뮤지컬을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더러 아쉬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동문화예술회관에서 요즘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놓치지 말고 챙겨서 한번 들려본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며 허탈해지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 새로운 전기 자극을 받는 것처럼 신선할 것이다. 나는 작년 말, 하동의 국악놀이판 <들뫼>의 공연을 갔다가 신명을 얻고 왔던 기억이 있다.
예술은 대단히 위대한 어떤 분들이 누리는 별세계가 아니다. 일상이 메마르고 누군가가 미워지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날 때 우리의 생각을 여유롭게 해주며 휴식을 준다. 시간이 많아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라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소식이 반갑다. 최참판댁 앞에 오치근, 박나리 화가 부부가 서울 인사동에서나 있을 법한 갤러리 <평사>를 연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참 근사한 곳에 사는 것은 틀림이 없다. 멀리서 오고 싶어 하는 최참판댁도 있고 그 앞에 상시 문을 열고 누구나 반기는 갤러리 <평사>도 있고,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다. 그렇지 않은가!
마침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토지문학제를 들려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에 갤러리도 오픈식을 한다하니 찾아가 봐야겠다. 예술 보러 말이다.
신희지
차와문화 인터뷰작가
지리산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하동신문 10월11일자 신문 중에서...
첫댓글 평사에 빨리 가봐야하는데....ㅠ.ㅠ
찬찬히 가셔도 된다오~!
언제나 열려 있으니^^
하동은 우리 모두의 고향같습니다. 최참판댁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주더군요. 교무처장님 말씀처럼 우리의 생각을 여유롭게 해주며 휴식을 주는 충분한 곳이더라고요....좋은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