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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얼굴보이기 행사 및 반쪽 종주
팔공산에 대해서는 (대구의명산에서 발췌)해서 우선 올리고
팔공산(八公山)은 달구벌을 보살피고 보호해주는 대구의 진산(鎭山)인 동시에 주산(主山)이다
그 옛날 왕조시대에는 읍기(邑基)로부터 남쪽 3리에 위치한 지금의 제일여중 터 일대의 연귀산(連龜山)이 대구의 진산이었지만 도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자연스레 팔공산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 땅에 원래부터 산이 많아 어느 지방, 어느 고을이든 대개 명산(名山)하나쯤은 끼고 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팔공산은 여느 산과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산의 덩치나 높이로 봐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지세(地勢)상의 생김새 하나하나도 비범할 뿐더러 그 무한한 역량에 의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질곡의 세월을 무던히 인내할 수 있었을 것 같기에 남다르다는 말이다.
풍수 명산으로서의 팔공산이 지닌 품격은 그 어떤 산에도 견줄 바 아니다.
그만큼 갖추어야 할 지리적인 요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탁옥부(琢玉斧)'라는 풍수서에 이르기를, '사람은 그 근본이 없으면 악인이 나오기 쉽고 산은 그 근원이 없으면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고 하였다.
팔공산이 진정한 명산이라면 그 뿌리 되는 산이 무슨 산인가를 묻는 대목인 셈이다.
알다시피 이 땅의 등골 뼈를 이루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비록 군데군데에 곁가지 지맥들을 가지쳐 놓기는 하였지만 그 본줄기는 줄곧 남쪽으로 내리치 달아 태백산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우측으로 소백산을 지나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잔여줄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곧장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부산의 다대포 앞바다에서 멎는 낙동정맥(洛東正脈)이다
이 낙동정맥의 보현산(普賢山) 부근에서 한 가닥 큰 힘이 솟아나와 서남쪽으로 달리면서 화산(華山)에 잇따라 장엄수려한 명산을 하나 솟구쳐 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팔공산이다
그러고 보면 팔공산은 이 땅 안 만산(萬山)의 조종(祖宗)이 되는 백두산의 기운을 연면히 이어받은 적자(嫡子)의 뼈대있는 명산임이 분명하다
그 뿐이 아니다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에 나타나는 팔공산의 위치를 살펴보면 자못 신비로움마저 느껴진다
북쪽으로는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소백산 등이,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주왕산과 가지산 등이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속리산과 덕유산 등이 남쪽으로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여항산과 신어산 등이 각각 팔공산을 위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신라가 나라의 수호산인 오악(五岳)을 설정할 때도 그 가운데 산(中岳)으로 팔공산을 앉힌 적이 있다
상고(上古)적 삼신오제(三神五帝)사상으로 보자면 황제(黃帝)인 팔공산이 사방으로 흑제(黑帝) 태백산, 청제(靑帝) 토함산, 백제(白帝) 계룡산, 적제(赤帝) 지리산을 거느렸던 셈이다
신라는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비는 천신제를 바로 이 팔공산정상 비로봉에 있었던 제천단(祭天壇)에서 올린 바 있다
비록 고려.조선조를 거치면서 강역(疆域)이 변하여 오악이 다른 명산들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치성 드릴 목적이든 어떻든 간에 지금도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악을 찾는 것을 보면 팔공산은 여전히 민족적 영산(靈山)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팔공산은 그 규모 또한 엄청나게 크다
능선의 길이가 20km에 이르며 앉은 전체 면적만도 122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행정지명상으로도 팔공산은 대구 경산 영천 군위 칠곡 등에 넓게 걸쳐 있다
팔공산 지맥은 금호강과 낙동강을 만나면서 산흐름을 완전히 끝 맺는다
그렇던 팔공산이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현재의 팔공산은 산 자락 산 허리 산 정상 할 것 없이 성한 데가 거의 없다
일반인과 공공기관 심지어는 절 집까지도 공간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까닭이다
팔공산이 그 같은 자본 투자의 각축장으로 전락돼 버린 데는 지방자치제라는 제도도 한 몫 단단히 했음은 물론이다(일부 발췌 끝)
- 산행 후기 -
2002년3월1일(금) 날 씨 : 흐 림
코 스 : 혜원정사-동문-가산바위-다시 동문-한티재-파계재-파계봉-서봉-동봉- 조암-동화사 하산 가산에서 동봉까지는 홀로산행 이후 ok가족들과 하산
거리 : 이정표상의 거리 21.4km
소요시간 : 동봉까지 휴식시간56분 포함 6시간12분 동봉에서 ok가족 기다린 후 동화사까지 1시간25분 총 소요시간 7시간37분
okmountain 가족들과 얼굴 보이기 행사가 두 번째로 대구에서 있단다
지난번 첫 번째 계룡행사 때 참석치 않아서 일까 대구의 이한성 선배님이 은근히 나를 엮어 버렸다
팔공행사 모의 행사를 괴산의 도명산-백악산 가진바 있는데 서울대표로 지리산 밤도깨비 선배님 과 광인을 지목했으니 참석치 않을 수 가 없게 생겼는데 결과를 설명한다면 참석하길 잘했다
대구는 나의 고향이다
물론 산 햇수로 따진다면 대구에서의 생활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 뿐이지만 대구하면 유달리 정감이 가기도하고 이젠 노모와 형님이 다시 고향 땅에서 살고 계신다
팔공행사는 많은 인원들의 참석으로 인해서 코스를 길게 잡을 수 는 없다
따라서 대구에 연고가 있는 나로서는 전날 대구로 내려가서 그동안 두 번 밖에 가보지 못한 팔공산 코스 중에 못 가본 가산서 부터 반쪽 종주를 하고 싶었다
어쨋거나 남들이 보기에는 좀 튀는 행동인 것 같아도 나로서는 산에 대한 욕심이 그보다 앞서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나만의 산행을 할 수 밖에 없다
28일 저녁 열차를 타고 대구로 가는데 몇 몇 산우들에게 전화가 오고 밤 10시30분이 넘어서 택시로 형님댁으로 이동하는 중에 손전화가 울린다
매끄러운 경상도 사투리의 여자 목소리가 겨울아기 같아서 「누고 겨우리 가」 「아닌데예 지는 산처이 인데예」
뜻 밖에 부산의 산처이 에게서 대구 입성의 축하를 받는다
자정이 넘어서 어머니 방에서 눈을 붙이는데 정작 우리 어머님은 서울의 우리집에 계신다
3월1일 06시
어제 저녁 부탁한 콜택시 기사가 초인종을 울린다
만 삼천원에 택시는 혜원정사 입구에 나를 내려준다
당초 학명리 쪽으로 길게 잡으려 했으나 택시기사들이 위치를 잘 모르고 아무래도 동봉에서는 원할한 조우를 위해서 확실한 이 쪽을 택한다
06시25분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않은 매표소입구를 출발한다
약간은 흐린 듯한 날씨에다가 바람이 제법 부는데 서쪽 하늘에는 밝은 달이 걸쳐져 있어 고향 떠난 후 다시 찾은 나그네를 반겨준다
초입부 대나무 숲을 지나고 곧이어 아주 상쾌한 내음을 풍기는 송림 숲을 지나간다
동문 과 치키봉 갈림길을 지나가고, 곧이어 동문과 농원 갈림길을 지나간다
아주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북쪽으로 서서히 오르고 중간 중간 휘돌아 오르는 임도를 자주 만나서 횡단하며 오른다
07시00분
동문에 당도하니 가산바위까지 1.4km라고 이정표가 있으니 다녀오지 않을 수 가 없다
동문을 넘어서니 살짝 내려 섰다가 다시 오르는데 지금 까지와 달리 낙엽송 수림이다
아주 오래된 화전터 흔적이 보이고 물도 흐르는 것 이 보인다
아주 오래 적의...어릴 때의 고향 내음이 문득 코 끝에 닿는 것 같다
07시09분
동쪽 하늘에 태양이 이글거리며 붉은 빛을 띠면서 오르고 있다
따라서 어둠을 밝혀주던 달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다
07시20분
넓은 반석으로 이루어진 가산바위에 올라서니 남쪽 저 아래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바위 아래에 가산바위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다
「가산산성 서북쪽 성변 사이에 위치한 바위로서 가암 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상면은 80평 규모의 넓은 평면으로 되어있으며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다
상면 동단의 큰 구멍은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고승 도선(827년~898년)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지기를 잡기 위해 구멍에다가 쇠로 만든 소와 말 형상을 묻어 지기를 눌렀다는」내용이다
07시30분
가산바위를 출발한다
북사면 쪽이라 녹지 않은 잔 설이 보이고 얼어붙은 곳이 나타난다
07시44분
다시 동문에 닿게되고 이제는 한티재를 향해서 평탄한 길을 달려간다
대구 사람들은 이른 아침의 산행은 하지않는지 아무도 볼 수 가 없고,
이정표에는 한티재까지 5.4km 라고 표시 되어있다
빨리 한티재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음은 내가 산을 빨리 달리는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대구의 마암님께서 한티재에서 종종 출입통제를 한다는 귀 뜸 때문에 일단 한티재까지는 빨리 지나가야 겠다는 생각이다
5분 후 용바위(0.6km)와 유선대(0.7km)갈림길을 지나가고 조금 후 바위지대를 지난다
07시58분
첨성대를 닮은 거대한 바위지대를 지나는데 표지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바위」라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야지..뭐
역시 팔공산 일대는 바위가 아기자기하다
08시10분
치키봉(756m)이다
그러나 저 앞에 더 높은 봉우리는 특별한 이름이나 높이의 표시가 전혀 없다
어제 저녁도 시원치 않게 먹고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라 배가고파 잠시 요기를 한다
그리고는 10분 후 출발이다
치키봉 이후도 계속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게 되나 오히려 이런 곳에는 이정표가 없다
08시33분
아주 높은 봉우리를 지나가고. 14분 후 20번 구조요청지점의 표시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간다
08시50분
오래된 무덤이있는 곳을 지나가고, 4분 후 한티재 직전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지난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뒤 돌아보니 가산이 멀리 묵직하게 바라보인다
09시09분
도로가 시원스럽고 넓은 주차장 시설이있는 한티재 휴게소에 도착했다
캔 맥주로 목을 축이며 구름나그네에게 전화를 해 보니 아직 서울서 내려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단다
아무래도 오늘 행사가 늦어질 것 같은 생각이들고 마침 걸려온 갈대님의 전화는 확신을 심어준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떨면서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천천이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불교의 성지답게 팔공산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낭낭한 염불소리가 들리는 한티재에서 소주라도 한 병 챙기고 가지 못한 걸 후회한 것은 몇 시간 뒤 동봉에서 떨면서 ok가족들을 기달릴 때 였으니 몇 시간 후를 모르는 것이 인간들 인가보다
09시20분
한티재 휴게소를 출발하며 도로를 건너가고 공원관리초소에는 아무도 없다
둔덕을 올라서니 소나무가 울창하다
경기도나 강원도 산을 다닐 때는 이런 울창한 송림 숲을 보기 힘든데 남녁의 산을 오면 울창한 송림 숲을 자주 접하니 기분이 좋다
이제는 정말이지 바쁠 것 없이 흐느적 흐느적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09시47분
넓은 헬기장을 지나고 내려서니 3분 후 파계재 도착이다
한티재에서 2km 구간을 아주 여유있게 30분 걸려서 도착이다
또 그렇게 주저앉아 몇 군데 전화도 하며 간식도 들며 유유자적이다
20분을 지체하고 10시 정각에 파계재를 출발하며 오르막을 오른다
파계재에서 동봉까지는 몇 년전 설 연휴 때 잠시 자투리 시간을 내어 후다닥 다녀온 기억이 있다
10시22분
파게봉을 지나고 계속 오름길이 이어지며 이제 자주 바위능선들이 이어진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북쪽의 군위 쪽을 내려다보니 남쪽의 대구와 칠곡 쪽과 달리 아주 완만한 산세를 보이고 있다
10시39분
바위봉을 오르고 다시 헬기장을 지나서 떨어져 내린다
저 앞으로 보기좋은 암봉들이 바라보이고 그 너머로 서봉 과 비로봉이 보인다
10시47분
바위봉을 오르고 북사면으로 돌아 내려서는데 빙판이 미끄럽다 ..다시 오른다
서봉이 저 앞에 시커멓게 바라보이는 암봉위 따스한 햇살이 비춰지는 반석위에 주저앉아 마음 편하게 저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갈대님의 전화다
어디쯤 오고 있느냐? 그 지점이면 아주 천천히 진행해도 되겠단다
그러니 또 그 자리에서 20분을 보내고 흐느적 거리며 움직인다
늘 산행중 처음으로 다른 산행객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자주 릿지가 나타나고 재미있게 즐기는 산행이 이어진다
서봉을 오를 때 까지 내내 재미있는 암릉이 이어진다
서봉이 가까워오니 야호~ 소리가 요란하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산에서의 소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12시07분
파계재 5.1km의 이정표가 있는 서봉에 오른다
이제 동봉은 바로 저 앞에 보이고 등산로는 진흙탕 투성이다
저 아래 「수태골」깊은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능선을 내려서서 동봉을 향해서 오름길을 재촉하는데
반대쪽에서 오는 대구 등산객이 길을 물어오는데 가르켜 주고 나서 「서울 사람이 대구 사람에게 길 안내를..」하고는 혼자서 빙그레 웃어본다
12시37분
정말로 여유있는 걸음으로 동봉에 올라선다
서울의 북한 도봉산,부산의 금정산,광주의 무등산,대전의 계룡산 과 같이 대구 시민들의 안식처가 팔공산이다
엄청난 인파로... 억센 사투리가 난무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정겨운 고향의 향수요 그리움이다
또 다시 갈대님의 전화다
1시간30분 정도면 선두가 올라갈 것 같단다
땀이 식으니 추워진다
...산행할 때 그렇게도 더워서 반팔로 갈아입을까 했던 것이 말이다
독한 술을 챙기고 오지 못한게 후회스럽다
전국의 많은 고수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어차피 많은 초를 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그 좋아하는 독초를 준비해 오지 못한게 아쉽다니...
조봉 쪽으로 내려서다가 95번 지점의 바위반석에서 기대어 윈드재킷을 꺼내 뒤집어쓰고 선두가 오기를 기다린다
무엇이든 기다림이란 참으로 끈질긴 인내를 요구한다
손 전화의 떨림이 내 온몸의 떨림과 같이 부르르~ 한다
갈대님이다
「광인님!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습니다 ..선두는 이미 내려 갔습니다」
^^ 아이고 이 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13시50분
저 위에서 내려오는 일단의 산행객들의 옷에는 명찰이 붙어있다
제일 선두에 낮 익은 권태진님이 보인다
「어이! 권형!」「아이구 광인거사! 얼굴이 새파랗네」
집 나간 아들놈이 귀가 했대도 이보다 더 기쁠 수가...
곧이어 산처럼,산오름,최중교...모두가 처음보는 얼굴들이지만 십 년 지기인 양 반가운 악수를 나눈다
청주의 심산님은 두 번째 만남이다
최중교님이 죽엽청주를 꺼내서 돌린다
그 큰 덩치에 「광인 엉아야 보고싶었다 ...」
독한 알콜기가 뱃속을 타고 흐르니 후끈거리기도 하지만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으니 꼭 알콜이 아니더라도 홍조 띤 얼굴에 열이 나지 않을 수 가...
「싸부니~임」갑자기 소프라노의 음성이 산속을 메아리친다
대전에서 온 내 제자(?) 후인이가 설중녀와 함께 나타난다
「나그네 시키는?」노으리와 맨 후미에서 여유있는 산행이란다
14시00분
다시 하산길이 이어지고, 재미있는 릿지가 이어진다
1445분
조봉 갈림길에서 이한성선배님과 부산의 우정님과 조우하고
잠시 하산에서의 잘못된 등로를 수정하고 동화사까지 뛸 듯이 내려간다
15시25분
동화사 도착으로 오늘의 산행은 끝이난다
동화사에 관한 것 (퍼온 것)
팔공산도립공원 입구에서 다리가 당길 정도의 가파른 언덕바지를 오르면 기둥이 자그마치 12개나 되는
우람한 동화사 동화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493년(신리 소지왕 15년) 극달화상(劇達和尙)이 처음 이 터에 절을 창건하였을 때는 유가사(瑜伽寺)라
했다가 832년 신라 헌덕왕의 셋째 왕자인 심지(心地) 스님이 이 절을 중창할 때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가득해 동화사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493년은 불교가 공인되기 전인데, 이때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리는
없을 것이므로 동화사의 창건주가 심지 스님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많다.
지금도 팔공산 일대의 사찰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되고 있는 심지 스님이 동화사를 창건했다는
주장은, 마애불좌상(보물 제 243호)·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 244호)·비로암삼층석탑(보물 제 247
호)·금당암삼층석탑(보물 제 248호)· 당간지주(보물 제 254호)등 이 절의 중요한 보물들이 거의
신라후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으로 더욱 근거를 확고히 한다.
천왕문격인 옹호문을 넘어서자 봉서루(鳳棲樓)라는 독특한 이름의 문루가 의젓하게 서서 순례자를
맞는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든다 하였으니 오동꽃이라는 절 이름과 썩 잘 맞아 떨어지는 현판이다.
봉서루 뒷면에 걸려 있는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이라는 현판은 동화사가 임진왜란시 경상도
승군의 총지휘소였음을 알려준다.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으로 승군을 지휘하고,
서사원이 격문을 지어 많은 의병들을 모집하여 훈련시켰던 호국의 본거지가 이 절임을 기억케 한다.
봉서루 아래의 계단은, 대웅전·명부전·심검당·종무소·원음각(종각)이 둘러서 있고 대웅전 뒤편으로
칠성각·조사전·산신각·영산전·천태각이 나란히 있는 절 안마당으로 연결된다.
먼저 봉서루 왼편의 원음각(圓音閣)이라는 종각을 둘러보면 특이한 느낌을 주는 목어가 시선을 모은다.
몸통 부분은 하나의 통나무를 이용하여 내부를 깎고 배 부분이 트이도록 한 일반적인 모습인데
머리 부분이 용두(龍頭)나 어룡(魚龍)이 아니고 잉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부릅뜬 눈과 굳게 다문 입에
돌출되어 있는 날카로운 이빨은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동화사의 주건물은 봉서루 정면의 괘불대와 노주 건너편 축대 위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대웅전이다.
용주사처럼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여래의 삼계여래를 모신 대웅전 안에는 불공드리는 불자들의
머리위에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 법당 안에서 지성으로 예불을 올리면 봉황의 날개를 달고 극락세계에 이를 것 같은 환상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조각이다.
대웅전 참배가 끝나고 나면 발걸음을 근래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석조약사여래불상으로 옮겨
볼 일이다.
12층 아파트와 맞먹는다는 30m 높이의 '통일기원 약사여래석조대불'의 몸체 안에는 미얀마 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2과를 모셔 그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간절한 염원을 엿볼수 있다.
갓바위, 염불암 등에 7기의 약사불이 조성돼 있어 약사여래 신앙의 총본산이기도 한 팔공산에 대규모
약사여래대불이 세워져 질병 퇴치를 기원하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9교구 본사인 동화사는 현재 대구광역시와 달성군·청도군· 칠곡군·성주군의 사찰을
관장하고 있다.
팔공산에는 동화사뿐 아니라 한때 고려대장경 판본을 소장한 바 있는 부인사(符仁寺)를 비롯하여
파계사(把溪寺)·관암사(冠巖寺)등의 사찰들과 비로암(毘盧庵)·부도암(浮屠庵)·양진암(養眞庵)등의
암자가 골짜기 곳곳에서 불법의 등을 밝히고 있어 불자들에게 좋은 순례 코스가 된다 (발췌 끝)
이한성 선배님을 비롯해서 대구산사람들의 일사불란함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산행때도 그러했겠지만
뒷 풀이마당에서 더욱 진가가 보이는 곳이었다
한쪽에서 권태진님과 초록이 족두리님 들과 조용히 주린배를(?) 채우고 있는데 울산의 상귀와 필명으로
알고있지만 얼굴은 처음인 전국의 고수들이 한잔씩 채워주고 가는데 나로서는 긴장이 되지 않을 수 가
없다
워낙 ok에 초 치는 내용의 글을 많이 올린 관계로 잦은 초잔으로 실수를 할까 보아서이다
하기야 기분좋은 이런날에 과초로 인한 실수를 덮어줄 아량이없는 ok동도들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선비풍의 안동의 녹산님이야 벌써 세 번째 만남이고, 수명산 김태웅 선배님도 단아함이 엿 보인다
체격좋은 거인의 이구대장도 동대문을 이용하지 않은 나에게는 초면이다
겨울아이의 입심(?)은 이미 참가자 전원에게 익히 알려진 모양이다
번뜩이는 기지와 해박한 지리산 선배,맘씨좋은 아저씨같은 밤도깨비 형님은 이미 구면이고,
역시 귀천이의 활약은 예견된 것이고,
닝닝이가 자그마한 아가씨라는 것도 처음이고, 아주 착하게 생긴 서미경씨도 처음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명찰을 준비해 준 산오름님,기쁨두배님, 아참 한정수님도초면이지
역시 名不虛傳 ...정선달님의 매끄러운 진행은 정말 밤무대 사회자를 능가하고,
엉근이 보다는 예전의 천안산놈이 좋다고했던 기억도 있고,
광양에서 달려온 시촌님 과 오르뫼님을 볼 수 있음은 더 한층 반갑기 그지없다
구름나그네 처럼 모두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음이 아타까울 뿐이다
어느 곳의 어느 산, 무슨 계곡, 이런 것 들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은 있는데 왜! 사람을 기억하는 능력은
없는걸까?
혹시라도 거론되지않은 대다수의 ok가족 여러분! 죄송 합니다
너무 많은 분들이 보이니 정작 챙겨주고 이야기해야 할 내 직속들(?) 설중녀 와 후인이는 쳐다보지도
못했으니...원
이 친구들에게 나중에 뭐라고 변명하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서울의 강북팀들이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차기 개최지가 서울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다
역시 대전쯤이 가장 적합한 장소인 것 같다
서울이면 부산 대구팀의 움직임이 힘들 것 같고,
부신이면 서울팀의 움직임이 대구보다 더욱 힘들어 질 것 이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ok가족 여러분! 얼굴 보게되어 행복한 광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