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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 - 단군기檀君紀 5
盖東方諸山 以太白吊者頗多俗士 卒以寧邊妙香山當之 實由於一
개동방제산 이태백조자파다속사 졸이녕변묘향산당지 실유어일
三國遺事之說 而彼等眼孔如豆 安足以與論哉! 今白頭山上有大池
삼국유사지설 이피등안공여두 안족이여론재! 금백두산상유대지
周八十里 鴨綠混同諸江發源於此 曰天池卽上述神市氏乘雲朝天處也
주팔십리 압록혼동제강발원어차 왈천지즉상술신시씨승운조천처야
무릇 동방의 모든 산 중에 ‘태백(太白)'이라 이름한 것이 자못 많은데 세속의 선비들이 졸지에 영변의 묘향산을 그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이는 그저 일연의《삼국유사》의 이야기에서 연유한 것일 뿐이니, 저들의 눈구멍이 마치 콩알 같음에 어찌 족히 더불어 논박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백두산 위에는 큰 못이 있어 주위가 80여 리며, 압록(鴨綠)과 혼동(混同) 등의 여러 강이 여기에서 발원하기에 ‘천지(天池)'라 일컫는데, 곧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신시씨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곳이다.
妙香曾無一小 其不爲桓雄肇降之太白 上足辨也 盖白頭巨岳
묘향증무일소 기불위환웅조강지태백 상족변야 개백두거악
盤據大荒之南 橫千里高出二百里 雄偉山層磅 爲東方諸國之鎭山
반거대황지남 횡천리고출이백리 웅위산층방 위동방제국지진산
神人陟降實始於此 豈區區妙香一山只係狼林西走之一
신인척강실시어차 개구구묘향일산지손낭림서주지일
묘향산에는 일찍이 작은 물줄기 하나 없었으니 그 곳이 환웅이 처음으로 내려온 ‘태백'이 될 수 없음은 밝힐 필요도 없다. 무릇 백두의 웅대한 산악은 대황(大荒)의 남쪽에 굳게 자리하여 좌우로 1천리에 뻗치고 위로 2백리를 솟아 있으며, 웅장하면서도 층을 지은 험한 능선이 길게 이어지면서 아울러 하나가 되어 있으니, 동방의 모든 나라를 위엄으로 진압하는 명산이다. 신인의 오르내림이 실로 여기에서 처음 하였거늘, 구구하게 단지 서쪽으로 내달은 낭림의 한 줄기에 매어 달린 묘향의 산 하나가
而得如許聖事耶! 世俗旣以妙香爲太白 則其見只局於鴨水以
이득여허성사야! 세속기이묘향위태백 즉기견지국어압수이
南一隅之地 便唱山之祖宗崑崙 欣欣然 以小中華自甘宜
남일우지지 편창산지조숭곤륜 흔흔연 이소중화자감의
其貢使北行屢 百年而不爲之恨 僅以南漢下城之羞 然自歎者也
기공사북행루 백년이불위지한 근이남한하성지수 연자탄자야
어찌 그와 같은 많은 신성한 일들에 참여할 수 있었겠는가! 세속에선 이미 묘향을 태백으로 여기지만, 이는 곧 그 견해가 단지 압록강 이남의 한 모퉁이에만 국한된 것일 뿐이다. 곧잘 산의 으뜸이 되는 우두머리는 곤륜이라 노래 부르고 기꺼이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마땅한 듯 달갑게 여기며, 그 조공의 사절이 북으로 다닌지가 수백년이 되었으나 이는 한스러워 하지 않다가 겨우 남한산성 아래의 수치만을 떠들썩해 하니 스스로 한탄스러울 뿐이다.
余嘗歷觀載籍, 白頭山之異吊, 頗多山海經曰 大荒之中有山吊不咸
서상력관재적 백두산지이조 파다산해경왈 대황지중유산조불함
有肅愼氏之國 後漢書曰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太山之東, 東濱大海
유숙신씨지국 후한서왈 동요조재고구려 개마태백지동 동빈대해
北與婁接註云 在平壤城西此 漢士眩學之妄語也 婁乃肅愼後身
북여루접주운 재평양성서북 한사현학지망어야 루내숙신후신
내가 일찍이 여러 서적들을 두루 살펴 보건대 백두산의 다른 이름이 자못 많았다.《산해경》에 이르기를 [대황의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함(不咸)이라 하며 숙신씨의 나라가 있다] 하였으며,《후한서》에 이르기를 [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태산(蓋馬太山)의 동쪽에 있다. 동으로 큰 바다를 접해 있고 북으로 읍루와 더불어 접해 있다] 하고는 그 주석에 [평양성의 서쪽에 있다] 하였는데 이것은 한나라 선비가 잘 알지 못하고 배웠기에 생긴 망령된 말이다. 읍루는 곧 숙신의 후신이며
東沃沮又在今咸鏡之地 則蓋馬之謂爲太白可知. 且麗史?列傳曰
동요저우재금함경지지 즉개마지위위태백가지 차려사?열전왈
女眞本高句麗之部落 聚居于蓋馬山東云 當時女眞 明在白頭山之東北
여진본고구려지부락 취거우개마산동운 당시여진 명재백두산지동북
蓋馬之爲白頭明矣魏書? 勿吉傳曰 國有徒太山魏言 太白有虎豹熊狼不害人
개마지위백두명의위서? 물길전왈 국유도태산위언 태백유호표웅랑불해인
동옥저 또한 지금의 함경의 땅에 있었으니 ‘개마'가 ‘태백'이 됨을 알 수 있다. 또한《고려사.열전》에 이르기를 [여진은 본래 고구려의 한 부락이었는데 개마산의 동쪽에 모여 살았다]라 하였으니, 당시의 여진이 분명히 백두산의 동북에 있었으므로 ‘개마'가 ‘백두'가 됨은 분명하다.《위서.물길전》에 [나라에 도태산(徒太山)이 있는데 위(魏)나라 말로는 ‘태백'이라 한다. 범과 표범곰, 승냥이 등이 있으나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人不得上山溺? 云云北史?勿吉傳曰亦曰國有徒太山 華言太白
인부득상산뇨? 운운북사?물길전왈역왈국유도태산 화언태백
俗甚畏敬之 唐書曰 粟末部居最南 抵太白山 亦曰徒太山 與高麗接
속심외경지 당서왈 속미부거최남 저태백산 역왈도태산 여고려접
括地志曰 靺鞨古故肅愼也 其南有白山 鳥獸艸木皆白 金史高麗傳?
괄지지왈 말갈고고숙신야 기남유백산 조수초목개백 금사고려전?
,사람들은 산위에 올라가서는 방뇨를 하지 않았다] 하였고,《북사.물길전》에도 역시 [나라에 도태산(徒太山)이 있는데 중원의 말로 ‘태백'이라 하며, 풍속에 그것을 매우 삼가며 공경한다]고 하였다.《당서》에는[속말부가 가장 남쪽에 살고 있는데,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일컬어지는 태백산과 맞닥뜨린 곳에서 고려와 더불어 접해있다] 하였다.《괄지지》에는 [말갈은 옛 숙신이다. 그 남쪽에 백산(白山)이 있는데 새와 짐승이며 풀과 나무가 모두 희다]라 하였고,《금사.고려전》에는
述高句麗以來靺鞨之事曰 黑水末曷 居故肅愼地 有山曰白山 蓋長白山
술고구려이래말갈지사왈 흑수말갈 거고숙신지 유산왈백산 개장백산
金國之所起焉 葉隆禮遼志曰 長白山在冷山東南千餘里 盖白衣觀音所居
금국지소기언 엽륭예요지왈 장백산재냉산동남천여리 개자의관음소거
其山內禽獸皆白 人不敢入 恐穢其間? 云云 又曰 黑水發源于此
기산내금수개백 인불감입 공예기간? 운운 우왈 흑수발원우차
고구려 이래 말갈의 일을 기술하며 [흑수말갈이 옛 숙신의 땅에 거주하였는데'백산(白山)'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으니 곧 ‘장백산'으로서 금나라가 일어난 곳이다]라고 하였다. 엽융례(葉隆禮)의《요지(遼志)》에는 [장백산은 냉산(冷山)의 동쪽 1천여 리에 있으며 대저 백의관음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 산 안의 짐승은 모두 희다. 사람들은 그 곳을 더럽힐까 염려하여 감히 들어가지 않는다]라 하였고, 또 [흑수(黑水)가 그 곳에서 발원하였다]라고 하였다
明一統志曰 長白山在三萬衛東北千餘里 故會寧府南六十里 橫千里
명일통지왈 장백산재삼만위동북천여리 고회녕부남육십리 횡천리
高二百里 其有潭周八十里 淵深莫測 南流爲鴨綠江 北流爲混同江
고이백리 기유담주팔십리 연심막측 남유위압록강 북류위혼동강
東流爲阿也 苦河云 然則不咸蓋馬太白徒太長白等吊 皆爲同山異吊
동류위아야 약하운 연즉불함개마태백도태장맥등조 개위동산이조
《명일통지(明一統志)》에는 [장백산은 삼만위(三萬衛) 동북쪽의 1천여 리에 있으니 옛 회녕부(會寧府)의 남쪽 60리에 있다. 좌우로 1천리에 뻗어 있고 위로 2백리를 솟아 있으며, 그 곳의 정상에 못이 있는데 주위는 80리이며 못은 깊어서 측량할수 없다.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서 혼동강이 되며 동쪽으로 흘러서 아야고하(阿也苦河)가 된다] 하였으니, 불함, 개마, 태백, 도태, 장백 등의 이름은 모두 같은 산의 다른 이름으로
而歷代方言之異也 又高麗史光宗十年 逐鴨綠江外女眞於
이력대방언지이야 우고려사광종십년 축압록강외녀진어
白頭山外居之云 則白頭之吊 始見於此 而蓋字之音 近於白字之意
백두산외거지운 즉백두지조 시견어차 이개자지음 근어백자지의
東語馬頭亦同訓 蓋馬白頭之異字同意亦可明辨 而白頭之吊 其來亦尙矣
동어마두역동훈 개마백두지이자동의역가명변 이백두지조 기래역상의
역대 방언의 차이점일 뿐이다. 또《고려사》에 [광종(光宗) 10년에 압록강 밖의 여진을 백두산 밖으로 몰아내어 살게 하였다] 하였으니, 곧 ‘백두'의 이름이 처음으로 여기에서 보인다. ‘개(蓋)'의 음은 ‘백(白)' 자의 뜻과 가까우며, 동방의 말에 ‘말(馬)'과 ‘두(頭)'는 같은 새김이기에 글자의 뜻으로 새기면 ‘개마(蓋馬)'와 ‘백두(白頭)'가 글자는 다르지만 같은 뜻임이 분명한 것이 되므로 ‘백두'라는 이름의 유래 또한 오래된 것이라 할 것이다.
東方諸山有馬耳 摩尼等山 俗人幷以摩利呼之 曾不相別 盖馬耳摩尼
동방제산유마이 마니등산 속인병이마리호지 증불상별 개마이마니
幷出於頭字之意也 今廣州有修理山 此必鷲山之意也 積城有紺岳山
병출어두자지의야 금광주유수리산 차필취산지의야 적성유감악산
則乃玄山之意也 忠州有達川 則是月川之意也 而馬耳摩利之爲頭嶽
즉내현산지의야 충주유달천 즉시월천지의야 이마이마리지위두악
동방의 여러 산에는 ‘마이(馬耳)'나‘마니(摩尼)'등의 산이 있는데, 항간의 사람들은 뭉뚱그려‘마리(摩利)'라고 부를 뿐 일찍이 구별하지 않았다. 대저'마이'와 ‘마니'는 모두 ‘頭'의 ‘머리'라는 뜻에서 나왔다. 지금의 광주에 ‘修理山'이 있는데 이는 필시 ‘수리산(鷲山)'이라는 뜻이며, 적성에 있는 ‘紺岳山'은 곧 ‘검은산(玄山)'이라는 뜻이며, 충주에 있는 ‘達川'은 바로 ‘달천(月川)'이라는 뜻이니, ‘마이'나 ‘마리'가 ‘頭嶽'
或頭山之訛 尤可辨矣 太白之一吊曰 白頭甲比古次之祭天處曰
혹두산지와 우가변의 태백지일조왈 백두갑비고차지제천처왈
頭岳此非檀君祭天 必隨頭吊之山也 乃檀君祭天處 必成頭吊之山也
두악차비단군제천 필수두조지산야 내단군제천처 필성두조지산야
盖頭者 最上或元首之稱也 白頭爲東方諸山之宗 而又是東人始降之地
개두자 최상혹원수지칭야 백두위동방제산지종 이우시동인시강지지
혹은 ‘頭山'이 잘못 전해져 그리되었음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태백'을 달리 일컬어 ‘백두'라 하였으며 갑비고차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을 ‘두악'이라 하였는데, 이는 단지단군이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아니라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은 반드시 ‘머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무릇 ‘머리'라 함은 가장 높다거나 혹은 으뜸 되는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백두'가 동방 모든 산의 으뜸이되고 또한 동방의 사람이 하늘로부터 처음 내려온 땅이 되며,
兼復元首檀君 恒行祭天禮于其山 當時之人 吊之曰 頭山也必矣
겸부원수단군 환행제천예우기산 당시지인 조지왈 두산야필의
而甲比古次之頭嶽 亦不出於此外也 獨不知牛首河之吊 亦只出於
이갑비고차지두악 역불출어차외야 독부지우수하지조 역지출어
沈牛首之俗耶? 此不可斷矣 然則神市氏之降 旣在於白頭山
침우수지속야? 차불가단의 연즉신시씨지강 기재어백두산
게다가 더하여 으뜸 되는 우두머리인 단군이 항상 그 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예식을 행하였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머리산(頭山)'이라 이름하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갑비고차의 ‘두악'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수하(牛首河)'라는 이름은 알지 못하겠는데, 이 역시 단지 소머리를 물 속에 담그는 풍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시씨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이미 백두산에 있으면서
乃漸徙西南 復沿浿水而南來 三氏之族 又各四遷也
내점사서남 부연패수이남래 삼씨지족 우각사천야
且太白旣爲東方靈地 祭天大儀必始於其山 則自古東民之崇敬是山也
차태백기위동방영지 제천대의필시어기산 즉자고동민지숭경시산야
不尋常且古者昔禽獸悉沾神化 安捿於其山而未曾傷人 人亦不敢
불침상차고자 석금수실첨신화 안첩어기산이미증상인 인역불감
점차 서남쪽으로 옮기고, 다시 패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니 삼씨(三氏)의 겨레들은 각자 더욱더 사방으로 옮겨갔다. 또한 태백이 이미동방의 신령스러운 땅이 되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의식은 반드시 그 산에서 시작하였으니, 예로부터 동방 민족이 이 산을 숭상하고 공경함은 남다른 것이었다. 또 옛날에는 짐승들이 모두 신의 교화에 젖어 그 산에 편안히 깃들여 살며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사람 또한
上山溺而瀆神 恒爲萬代敬護之表矣 夫我先民 皆出於神市所率三千團部之
산상뇨이독신 환위만대경호지표의 부아선민 개출어신시소솔삼천단부지
裔後世 雖有諸氏之別 實不外於檀祖同仁之神孫 因雄儉三神之
예후세 수유제씨지별 실불이어단조동인지신손 인웅검삼신지
開創肇定之功德 常傳誦而不忘 則古民指其靈山曰 三神山者 亦必矣
개창조정지공덕 상전송이불망 즉고민지기영산왈 삼신산자 역필의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는 등의 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감히 하지 않았으니, 만대에 걸쳐 항상 받들고 보호하는 지표가 되었다. 무릇 우리 선조들은 모두 신시씨가 거느린 3천의 무리에서 나온 후예들이다. 뒷 날 비록 여러 씨(氏)의 구별이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단군 선조께서 똑같이 어여삐 여기는 신의 후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검(檀儉)의 삼신이 나라를 열고 기초를 바로잡은 공덕을 항상 전하여 예기하고 잊지 않았으니, 곧 옛 백성들이 그 신령스러운 산을 가리켜 ‘삼신산'이라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盖神市以降 神化之漸 逐歲益深 立國經世之本 自與人國逈異
개신시이강 신화지점 축세익심 립국경세지본 자여인국회이
其神風聖俗 遠播於漢土 漢土之人 有慕於神化者 必推崇三神
기신풍성속 원번어한토 한토지인 유모어신화자 필추숭삼신
至有東北 神明之舊之焉 及其末流之弊 則漸陷於荒誕不經 愈出愈奇
지유동북 신명지구지언 급기말류지폐 즉점함어황탄불경 유출유기
대저 신시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이래로 신의 교화가 점차 세월에 따라 더욱더 깊어 감에,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경영하는 근본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는 자못 다르게 되었기에 그 신성한 풍속이 멀리 한나라 땅에까지 퍼져서 한나라 땅의 사람 가운데 신의 교화를 사모하는 자가 있었으니, 오로지 삼신을 추앙하여 동북 지방에는 ‘신명의 집(神明之舊)'이라는 명칭까지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단의 폐해에 이르러 곧 점차 허무맹랑함에 빠지고 더욱 기괴해지더니 괴이하고
怪誕之說 迭出於所謂燕齊海上怪異之方士 盖其地與我震邦相接
괴탄지설 질출어소위연제해상괴이지방사 개기지여아진방상접
民物之交特盛 自能聞風驚奇 又推演傅會曰 三神山是蓬萊方丈瀛洲
민물지교특성 자능문풍경기 우추연전회왈 삼신산시봉래방장영주
在渤海中?云云 且患其無驗則曰 望之如雲 終莫能至?云云 以惑其世主
재발해중?운운 차환기무험즉왈 망지여운 종막능지?운운 이혹기세주
허망한 말들이 꼬리를 물고 갈마들어 나왔는데, 심지어 ‘연나라와 제나라의 바다 위에 신선의 술법을 닦는 괴이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해지기까지 하였다. 무릇 그 땅은 우리의 진방(震邦)과 더불어 서로 접해 있어 백성과 사물의 교류가 특히 왕성한데, 직접 그 풍문을 듣고는 놀라며 이상하게 여겼다. 또한 생각을 미루어 넓히고 억지로 이치에 맞춰 말하기를 [삼신산은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으로 발해 가운데 있다.] 라고 하였다. 또한 그 증거가 없음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결국에는 능히 다다르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주목을 미혹케 하였다.
神仙傳又以海中字 推以斷之曰 海上有三神山 曰 蓬萊方丈瀛洲山
신선전우이해중자 추이단지왈 해상유삼신산 왈 봉래방장영주산
謂之三島?云云 而於是海上六鰲 荒怪之說 繼出於閒人之革
위지삼도?운운 이어시해상육오 황괴지설 계출어간인지혁
筆乃我國之士 則更效嚬於此曰 金剛蓬萊也智異方丈也
필내아국지사 즉갱효빈어차왈 금강봉래야지리방장야
신선전(神仙傳)에서는 또 ‘海中'이라는 글자만으로 추측하고 단정지어 말하기를 [바다 위에 삼신산이 있는데 봉래, 방장, 영주산이라 하며 이를 일컬어 삼도(三島)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해상(海上)'이나 ‘육오(六鰲)' 등의 황당무계한 말들이 한가로운 사람들의 붓 끝에서 연이어 나왔음에도 우리나라 선비들은 다시 그것을 억지로 흉내만 내어 [금강산이 봉래산이며, 지리산이 방장산이고,
漢拏瀛洲也 則此又返咀漢士之餘唾也 史記?封禪書曰 三神山者其傳
한나영주야 즉차우반저한사지여타야 사기?봉선서왈 삼신산자기전
在渤海中 盖嘗有至者 諸僊人及不死之藥皆在焉 其物禽獸盡白 而黃金銀
재발해중 개상유지자 제선인급불사지약개재언 기물금수진백 이황금은
爲宮闕?云云 又仙家書類或曰 三神山有還魂 不老等艸 一吊震檀云
위궁궐?운운 우선가서류혹왈 삼신산유환혼 불노등초 일조진단운
한라산이 영주산이다]라고 말하니, 이는 또한 한나라의 선비가 뱉은 침을 도리어 받아 곱씹는 격이다.《사기》의 <봉선서>에 말하기를 [삼신산이란 발해의 바다 가운데 있다고 전해진다. 무릇 가본 적이 있는 사람에 의하면 뭇 신선들과 불사의 영약이 모두 있으며, 그 곳의 사물과 짐승들은 모두 희고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으며] 하였고, 또한 선가(仙家)의 서책에서 혹은 말하기를 [삼신산에는 넋을 부를 수 있거나 먹으면 늙지 않는 등의 풀이 있는데 일명 ‘진단(震檀)'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今白頭山 自古有白鹿 白雉或白鷹之屬 括地志所云 其南有白山
금백두산 자고유백록 백치혹백응지속 괄지지소운 기남유백산
鳥獸草木皆白者是也 方士之說 亦頗有所據也 又白頭山一帶
조수초목개백자시야 방사지설 역파유소거야 우백두산일대
時産山蔘 世人擬之以不老草 山氓欲採取 則必沐浴致齋祭山以後敢發
시산산삼 세인의지이불로초 산맹욕채패 즉필목욕치재제산이후감발
지금의 백두산에 예로부터 흰사슴이나 흰꿩 혹은 흰매의 무리가 있었으며,《괄지지》에서 말한 바 대로 [그 남쪽에 ‘백산'이 있는데 날짐승과 들짐승 및 초목이 모두 희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니,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의 얘기 역시 상당히 근거하는 바가 있다. 또한 백두산 일대에는 때때로 산삼이 나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불로초로 생각하였다. 산에 사는 백성들이 이를 캐고자 하면 반드시 목욕하고 정성을 들여 산에 제사를 드린 후에야 감히 캐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
其還魂不老之吊想 亦原於此也 古烏斯帝北巡而得靈草 則此尤驗矣
기환혼불로지조상 역원어차야 고오사제북순이득영초 즉차우험의
且白頭山産紫檀樹 從古所稱檀木者是也 而古記所傳 九震檀之說
차백두산산자단수 종고소칭단목자시야 이고기소전 구진단지설
想必有因於此 而不老震檀?云云者 盖亦聽者之錯誤也 然則燕齊方士
상필유인어차 이불로진단?운운자 개역청자지착오야 연즉연제방사
‘환혼(還魂)'이나 ‘불사(不老)'라는 이름은 생각건대 역시 이러한 것에 근거한 것 일 것이다. 옛날 오사제(烏斯帝)께서 북쪽을 순행하다 신령스러운 풀을 얻었다 하였으니, 곧 그것으로 더욱 증거가 된다. 또한 백두산에는 자단수(紫檀樹)가 나는데 예로부터 단목(檀木)이라 일컫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생각건대 옛 기록에 전하는 ‘구변진단(九 震檀)'이란 얘기는 반드시 이러한 것에 연유함이 있을 것이나 ‘불로진단(不老震檀)' 운운하는 것은 아마도 역시 전해들은 사람의 착오일 것이다. 그러한 즉 연나라와 제나라의 방사들이
扼腕而言海中三山者 亦遊於夢中 欺其主而又自欺也 今我國有
액완이언해중삼산자 역유어몽중 기기주이우자기야 금아국유
願得三山不老草 拜獻高堂白髮親之句 殆爲養老者 春祝之定文
원득삼산불로초 배헌고당백발친지구 태위양로자 춘주지정문
究其原則 亦可噴飯何不 卽往白頭山 拜檀帝之靈 而祈其萬壽耶?
구기원즉 역가분반하부 즉왕백두산 배단제지영 이기기만수야?
팔을 걷어붙이고 ‘바다 속의 삼신산'을 말하는 것 역시 똑 같이 꿈속을 노닐며 그 주인을 속이고 또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된다 . 지금 우리나라에 [원하건대 삼신산의 불로초를 얻어 윗채에 계신 백발의 어버이에게 바치고자 한다]는 글귀가 있으니, 아마도 노인을 봉양하는 자가 젊음을 찾아 드리고자 하는 전형적인 글인 것 같은데, 그 근원을 따져 보면 역시 가히 웃음을 참지 못할 뿐이다. 어찌하여 백두산에 가서 단제(檀帝)의 영정에 절을 하고 만수를 기원하지 않는 것인가?
漢淮陽之地 古陳國地 本太昊之墟 婦人崇好祭祀用史巫 故其俗崇巫鬼
한회양지지 고진국지 본태호지허 부인숭호제사용사무 고기속숭무귀
陳詩曰 坎其擊鼓宛丘之下 亡冬亡夏 値其鷺羽又曰 東門之宛丘之
진시왈 감기격고완구지하 망동망하 치기로우우왈 동문지완구지
子仲之子婆娑其下吳札 聞其歌則曰 國亡主其能久乎?云 此又伏犧所傳
자중지자파사기하오찰 문기가즉왈 국망주기능구호?운 차우복희소전
한나라 회양(淮陽) 땅은 옛적 진(陳)나라의 땅으로 본디 태호씨(太昊氏)의 옛터이다. 그 땅의 부인들이 제사지내 받들기를 좋아하여 화려하게 꾸민 무당을 이용하였기에 그 곳의 풍속은 무당과 도깨비를 숭상하게 되었다.《시경》의 <진시(陳詩)>에서 이르기를, 그 북을 둥둥치며 완구(宛丘) 아래에서 놀고 있네. 겨울이나 여름도 잊고 저 백로깃을 가지고 춤추네. 또 이르기를, 동문(東門)에는 흰느릅나무 완구땅에는 상수리 나무. 자중(子仲)씨 딸이 그 아래서 덩실덩실 춤을 추네. 라 하니, 오찰(吳札)이 그 노래를 듣고는 말하기를 [나라는 망하고 주인은 없는데 그 향락이 오래 가겠는가?] 하였다. 이는 또한 복희씨가 전한
倚數觀變之餘弊也 孟子舜曰 曰舜生諸馮 東夷之人也 尙書曰
의수관변지여폐야 맹자순왈 왈순생제빙 동이지인야 상서왈
舜肆類于上帝 于六宗望秩于山川 于神虞舜以前 曾無是事 此或原於上古
순사류우상제 우육종망질우산천 우신우순이전 증무시사 차혹원어상고
東邦祭天報本之禮 及山嶽河川洋海沼澤 皆有奉命主治之神者也
동방제천보본지예 급산악하천양해소택 개유봉명주치지신자야
의수관변(倚數觀變)'의 남겨진 폐단이다. 《맹자》에 이르기를 [순(舜)은 제풍(諸馮)에서 났으며 동이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며,《상서》에 이르기를 [순(舜)에 이르러드디어 상제(上帝)에게 성대히 제를 올리고, 육종(六宗)에게 정성으로 제사를 지내며, 섶을 태워 멀리 산천에 제를 지내고, 여러 신들에게 두루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우순(虞舜) 이전에는 일찊이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옛적에 동방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그 근본에 보답한다'는 예식과 ‘산악, 하천, 해양, 소택에 있어서도 모두 하늘의 명을 받들어 맡은 곳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신이 있다'는 생각에서 근원 하였을 것이다.
漢土自古 以雍州積高爲神明之 故立郊上帝 諸神祠皆聚云
한토자고 이옹주적고위신명지 고립교상제 제신사개취운
則此又與檀祖祭太白 同其類也 齊俗有八神之祭 八神者曰天主地主兵主
즉차우여단조제태백 동기류야 제속유팔신지제 팔신자왈 천주지주병주
陰主陽主月主 日主及四時主也 天好陰故祠之必於高山之下小山之上
음주양주월주 일주급사시주야 천호음고사지필어고산지하소산지상
한나라 땅에는 예로부터 옹주(雍州)의 높은 산을 신명이 거처하는 곳으로 여기고 제사 터를 세워 상제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뭇 신들의 사당 또한 모두 모여 있다 하니, 이는 또한 단군이 태백에서 제사지내던 것과 같은 것이다. 제(齊)나라의 풍속에 ‘팔신제(八神祭)'라는 것이 있는데, 여덟 신이라 함은 천주(天主), 지주(地主), 병주(兵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및 사시주(四時主)를 말한다.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기에 제를 올릴 때는 반드시 높은 산 아래의 작은 산 위에서 지냈으니
此祭天太白之麓之類也 地貴陽祭之必於澤中丘 此祭天頭嶽之類也 兵主祠
차제천태백지록지류야 지귀양제지필어택중구 차제천두옥지류야 병주사
蚩尤蚩尤氏爲萬代强勇之祖 作大霧驅水火 又爲萬代道術之宗
치우치우씨위만대강용지조 작대무구수화 우위만대도술지종
이는 태백산의 기슭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던 것과 같은 것이며,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못 가운데의 둥근 언덕에서 지냈으니 이는 두악(頭嶽)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던 것과 같은 것이다. 군사를 주재하는 자는 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치우씨는 만대에 걸쳐 굳셈과 용감함의 조상으로서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몰아쳐 부리니 또한 만대에 걸친 도술의 근본이 된다.
是以太初之世 恒爲東方戎事之主 海岱一帶 曾爲其族虎據之地
시이태초지세 환위동방융사지주 해대일대 증위기족호거지지
藍侯之民 再進而建奄 徐諸國於淮岱之地 則八神之說 萌於是時也
람후지민 재진이건엄 서제국어회대지지 즉팔신지설 맹어시시야
그러한 까닭에 태초의 세상에서는 항상 동방의 군사(軍事)를 주재하는 자가 되었으며, 해대(海岱) 일대는 일찍부터 그의 부족들이 자리잡고 앉은 땅이 되었다. 남후(藍侯)의 백성들이 다시 더욱 나아가서 엄국(奄國)과 서국(徐國) 등의 뭇 나라들을 회대(淮岱)의 땅에 세웠으니, ‘팔신(八神)' 등의 얘기는 이 때 싹튼 것이다.
漢高起兵於豊沛 則祠蚩尤鼓旗遂以十月至上 與諸侯平咸陽 而立爲漢王則
한고기병어풍패 즉사치우고기대이시월지상 여제후평함양 이립위한왕즉
因以十月爲年首 此雖襲於秦之正朔 而亦有因於敬蚩尤也 後四歲
인이시월위년수 차수습어진지정삭 이역유인어경치우야 후사세
天下已定則令祝官 立蚩尤之祠於長安 其敬蚩尤之篤如此 晋書?天文志
천하이정즉령주관 립치우지사어장안 기경치우지독여차 진서?천문지
한나라 고조는 풍패( 沛)에서 병사를 일으키며 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내고는 북과 깃발에 희생의 피를 발랐으며, 마침내 10월에 패상( 上)에 이르러 제후들과 더불어 함양(咸陽)을 평정하고 한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런 연유로 10월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비록 진(秦)의 책력을 이어서 따른 것이긴 하지만 역시 치우씨를 공경함에서 연유되었다 할 것이다. 그 뒤 4년에 천하가 이미 안정되자 곧 축관(祝官)에게 명하여 치우씨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하였으니, 치우씨를 공경함이 이와 같이 돈독하였다. 《진서.천문지(晋書.天文志)》에
蚩尤旗類彗而後曲象旗 主所見之方下有兵云 則是乃蚩尤氏 上爲列宿也
치우기류혜이후곡상기 주소견지방하유병운 즉시내치우씨 상위렬숙야
通志?氏族略蚩氏 蚩尤之後也云 則是蚩尤氏之後而永居於漢土者也
통지?씨족략치씨 치우지후야운 즉시치우씨지후이영거어한토자야
[치우기(蚩尤旗) 유형의 혜성은 그 뒷 꼬리의 곡선이 마치 깃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주로 나타나는 방향의 아래에는 병사가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치우씨가 하늘로 올라가서 별자리가 되었음을 말한다.《통지.씨족략(通志.氏族略)》에 [치(蚩)씨는 치우의 후손이다]라 하였으니, 곧 이들은 치우씨의후손으로서 영원히 한나라 땅에 머무른 자들이다.
蚩尤氏之英風雄烈 播傳異域之深 推此可知而今世人 殆無過問者
치우씨지영풍웅열 파전이역지심 추차가지이금세인 태무과문자
則此又國史散滅之故也 而後代學者 竟不免疎迂之譏矣
즉차우국사산멸지고야 이후대학자 경불면소우지기의
치우씨의 영웅된 기풍은 다른 지역까지 매우 널리 퍼졌음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으나 지금의 세상 사람들 가운데 이를 물어 오는 자가 거의 없으니, 곧 이는 또한 나라의 역사가 흩어지고 없어진 까닭이지만, 후대의 학자들도 그것을 소흘히하고 멀리하였다는 비난을 결국에는 면할 수 없을 것이다.
盖燕齊之士 沈惑於神異之說 亦尙矣自齊 威宣燕昭之時 遣使求三神山
개연제지사 침혹어신이지설 역상의자제 위선연소지시 견사구삼신산
秦漢之際宋無忌 正伯僑克尙門子高之徒 則皆燕人也 文成五利公孫卿
진한지제송무기 정백교극상문자고지도 즉개연이야 문성오리공손경
무릇 제나라와 연나라의 선비들은 신비하고 괴이한 말에 깊이 현혹되고 또한 이를 높이 여겼다.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선왕(宣王) 및 연나라의 소왕(昭王) 때부터 사신을 보내 삼신산을 찾게 하였으니, 진(秦)과 한(漢) 때의 송무기(宋無忌), 정백(正伯), 교극(僑克), 상선(尙羨), 문자고(門子高) 같은 무리는 모두 연나라 사람이고, 문성(文成), 오리(五利), 공손경(公孫卿),
申公之屬 皆齊人也 昔太公治齊修道術 後世其地 多好經術者
신공지속 개제인야 석태공치제수도술 후세기지 다호경술자
則此又太公爲之助俗也 燕齊之士 安得以不好怪異之說哉!
즉차우태공위지조속야 연제지사 안득이불호괴이지설재?
신공(申公) 등의 무리는 모두 제나라 사람이다. 옛날 태공(太公)이 제나라를 다스리며 도술을 닦았더니 뒷날 그 땅의 사람들이 도술 부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곧 이것은 또한 태공이 세상의 풍속을 그렇게 이끈 것이므로, 연나라와 제나라의 선비들이 어찌 괴이한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 규원사화 - 단군기檀君紀 6 @
余幼而嫌梳頭 老婢諭曰 不梳頭者蚤鑽穴 將至耳腦相通 寧不懼乎?
여유이혐소두 노비유왈 불소두자조찬혈 장지이뇌상통 녕불구호?
余曰 寧有是事乎? 曰東部山邨之兒 正如是矣及後 到山村無有是事
여왈 녕유시사호? 왈동부산촌지아 정여시의급후 도산촌무유시사
嘗與客坐談客曰 木之最大者有徑數間者曰 寧有是事乎?
내가 어렸을 때 머리에 빗질하기를 싫어하였더니 늙은 종이 빗대어 말하기를 “머리를 빗지 않으면 이가 구멍을 뚫어 장차 귀와 뇌가 서로 통하게 되기에 이르는데 어찌 두렵지 않는가?”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였더니 “동쪽 산골 마을의 아이가 바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 나중에 산 마을에 가 보았더니 그런 일이 있은 적이 없었다 한다. 한번은 손님과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데 손님이 말하기를 “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직경이 몇 칸이나 되는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더니
曰嶺東之地多斯木斫而橫之 則行旅可連枕而宿其上 一面至數十人
왈령동지지다사본작이횡지 즉행려가련침이숙기상 일면지수십인
其後余隨舍叔父 至嶺東曾無是木及讀 莊子曰 北溟有魚
기후여수사숙부 지령동증무시본급독 장자왈 북명유어
其名爲鯤化而爲鳥 其名爲鵬 其長數千里 其翼若垂天之雲 余問於師曰
기명위곤화이위조 기명위붕 기장수천리 기익약수천지운 여문어사왈
“영동 땅에 그런 나무가 많습니다. 베어서 가로질러 놓으면 지나가는 나그네가 그 위에서 배게를 나란히 하고 누워 잘 수 있는데, 한 쪽 면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누울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에 내가 작은 아버님을 따라 영동에 가 보았더니 일찍이 그러한 나무는 없었다 한다. 《장자》를 읽으니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다. 변화하여 새가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그 길이는 수천리가 되며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라 하였다. 내가 스승에게 여쭙기를
可信有此事否? 曰窮髮之北安知 其必無耶? 雖然 其後歷觀載籍
가신유차사부? 왈궁발지북안지 기필무야? 수연 기후력관재적
且無是語今大荒數萬里 未聞有數千里巨湖 且寒威酷烈 絶冠天下
차무시어금대황수만리 미문유수천리거호 차한위호렬 절관천하
安容如許大物 能逍遙於寒熱兩極之間耶? 其云扶搖而上者 有九萬里者
안용여허대물 능소요어한열양극지간야? 기운부요이상자 유구만리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믿을 만한 것입니까?” 하니 “초목이 나지 않는 북극 지방인데 어찌 알겠냐 마는 그것이 반드시 없다고는 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그리하여 비록 그 후에 모든 서적들을 낱낱이 살펴보았지만 또한 그러한 말은 없었다. 지금에 대황의 수만 리 넓은 땅에 수천 리에 걸친 큰 호수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며, 또한 추위의 위세가 혹심하기로 으뜸인 하늘 아래 어찌 그와 같은 큰 사물을 받아들여서 능히 춥고 더운 양극 사이를 유유자적히 노닐게 할 수가 있겠는가. [큰 바람을 북돋우며 9만리의 상공으로 오른다]라고 한 것은
欲杜世人之辨也 又看神異經曰 崑崙之西有大蛇繞山 長三萬里?云云
욕사세인지변야 우간신이경왈 곤륜지서유대사요산 장삼만리?운운
長三萬里大蛇 盤據於崑崙之西 則西域諸國 應遊牧於鱗角之下
장삼만리대사 반거어곤륜지서 즉서역제국 응유목어린각지하
세상 사람들의 분별을 가로막기 위해서이다. 또한《신이경(神異經)》을 보았더니 [곤륜산의 서쪽에 큰 뱀이 있어 산을 휘어 감고 있는데 그 길이가 3만리이다] 하였다. 길이가 3만리나 되는 큰 뱀이 곤륜의 서쪽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으면 서역의 뭇 나라들이 응당 그 비늘조각 아래에서 짐승을 길렀을 터인데,
世間寧有是事耶? 盖喜作迂怪之說者 必藉於聽者之所不知
세간녕유시사야? 개희작우괴지설자 필적어청자지소부지
此漢土迂怪之士 只憑東方三神之說 而然胥出浮言 以惑其聽者也
차한토우괴지사 지빙동방삼신지설 이연서출부언 이혹기청자야
세상에 어찌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릇 이상한 말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듣는 사람이 모르는 것을 빌미로 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한나라 땅의 기괴한 선비들도 단지 동방의 삼신 예기에 빙자하여 공연히 시끄럽게 거짓말을 퍼트려 인심을 선동하고 이로서 듣는 자들을 미혹케 하였다.
高麗仁宗九年 因妖僧妙淸之說 置八聖堂于西京 林原宮中 淸平爲之說曰
고려인종구년 인요승묘청지설 치팔성당우서경 림원궁중 청평위지설왈
第一曰 護國白頭嶽太白仙人 有大慧大德助主神造大界 卽桓雄天王之謂也
제일왈 호국백두옥태백선인 유대혜대덕조주신조대계 즉환웅천왕지위야
第二曰 龍圍嶽六通尊者 有化萬理之能 掌人間禍福
제이왈 용위옥육통존자 유화만리지능 장인간화복
고려 인종(仁宗) 9년에 요승 묘청(妙淸)의 말로 말미암아 서경의 임원궁에 팔성당(八聖堂)이 설치되었다. 청평이 그 예기를 보충하여 이르기를 [그 첫번째를 호국백두악(護國白頭嶽)의 태백선인(太白仙人)이라 하는데, 큰 지혜와 큰 덕을 지니고 주신을 도와 큰 세상을 만드니 곧 환웅천왕을 일컫는 것이다. 그 두번째를 용위악(龍圍嶽)의 육통존자(六通尊者)라 하는데, 1만 가지의 이치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길융화복을 관장하고 있다.
第三曰 月城嶽天仙 掌風雨之神 第四曰 駒麗平壤仙人 掌光明之神
제삼왈 월성옥천선 장풍우지신 제사왈 구려평양선인 장광명지신
第五曰 句麗木覓仙人掌人間壽命之神 第六曰 松嶽震主有大勇大力
제오왈 구려복멱선인장인간수명지신 제육왈 송옥진주유대용대력
掌神兵恒鎭守國都 以驅外敵 卽古蚩尤氏之神 第七曰 甑城嶽神人
장신병환진수국도 이구외적 즉고치우씨지신 제칠왈 증성옥신인
그 세번째를 월성악(月城嶽)의 천선(天仙)이라 하는데,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 네번째를 구려(駒麗)의 평양선인(平壤仙人)이라 하는데, 광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 다섯번째를 구려(句麗)의 목멱선인(木覓仙人)이라 하는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 여섯번째를 송악(松嶽)의 진주(震主)라 하는데, 큰 용기와 큰 힘을 지니고서 신의 군사를 관장하고 항시 나라의 도읍을 지키며 외적을 몰아내니 곧 예전의 치우씨 신이다. 그 일곱번째를 증성악(甑城嶽)의 선인(神人)이라 하는데,
掌四時穀蔬草木之事 卽古高矢氏之神 第八曰 頭嶽天女掌地上善惡
장사시곡소초목지사 즉고고시씨지신 제팔왈 두옥천녀장지상선악
卽神市氏之后桓儉神人之母 皆在主神調度之下 掌治天下諸事之神云云
즉신시씨지후환검신인지모 개재주신조도지하 장치천하제사지신운운
盖仁宗之於妙淸 信惑太甚 卒致西京之變 使金富軾討平妙淸 發身於沙門
개인종지어묘청 신혹태심 졸치서경지변 사김부식토평묘청 발신어사문
사시(四時)와 곡식 채소 및 초목의 일을 관장하니 곧 예전의 고시씨 신이다. 그 여덟번째를 두악(頭嶽)의 천녀(天女)라 하는데, 땅위의 선악을 관장하니 곧 예전 신시씨의 황후이며 환검신인의 어머니이다. 이들 모두가 주신의 영도 아래 있으면서 천하의 모든 일을 관장하여 다스리는 신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인종이 묘청에 대하여 믿고서 현혹됨이 너무 심하여 결국에는 서경의 변란이 일어나기에 이르자 김부식으로 하여금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묘청은 불문(佛門)에서 몸을 일으켜
蠱惑其世主 寵傾宗戚權壓內外 漸致驕傲敢謀不軌 其罪固不可誅 然而
고혹기세주 총경종척권압내외 점치교오감모불궤 기좨고불가주 연이
當時猶有 恨國力之不振 憤外侮之至 採古來之神明於殘散傳說之中
당시유유 한국력지불진 분외모지지 채고래지신명어잔산전설지중
欲以激當時之人心 其行雖乖 其志則猶有可采者矣 古之說史者
욕이격당시지인심 기행수승 기지즉유유가채자의 고지설사자
임금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종친과 외척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권력으로 안팎을 누르고는 점차로 교만해져 감히 모반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니 그 죄는 진실로 주살 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당시에도 여전히 국력이 위세를 일으키지못함을 한탄하고 외적들의 업신여김이 거듭됨을 분개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에 헤지고 흩어져 전해 내려온 얘기 가운데에서나마 예로부터 내려오는 신명(神明)을 골라내어 이로서 당시의 인심을 격앙시키고자 하였으니, 그 행위는 비록 어그러졌다 하지만 그 뜻은 오히려 가려서 취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할 것이다. 옛적에 역사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只以妖僧荒誕之說 唾棄而不采 則猶有一分迂 之責八聖矣
지이요승황탄지설 타기이불채 즉유유일분우 지책팔성의
矣八聖之名 必表以佛家名字 僧侶之筆 安不得如斯耶? 此不可深怪也
의팔성지명 필표이불가명자 승려지필 안불득여사야? 차불가심괴야
단지 요승의 황당무계한 말만을 들어 침을 내뱉듯이 버리고는 가려서 취하지 않았으니, 이는 오히려 조금은 그 일에 어둡고 소흘한 책임이 있다 하겠다. 여덟 성인의 이름을 반드시 불가의 이름으로 나타낸 것은 승려의 글이기에 어찌 그와 같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噫! 神市立極檀帝垂訓 聖化神澤皇皇亮亮 足爲萬代之天範 而後孫不肖
희! 신시립극단제수훈 성화신택황황량량 족위만대지천범 이후손불소
乃致聖謨鴻猷 潛消默失於冥冥之中 使堂堂皇謨 盡付於空山臥睡之人
내치성모홍유 잠소묵실어명명지중 사당당황모 진부어공산와수지인
所傳者只遺怪亂之說 不亦悲乎今 崇三神帝釋之風頗盛 每人家正寢壁上
소전자지유괴란지설 불역비호금 숭삼신제석지풍파성 매인가정침벽상
오호라! 신시씨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단제가 그 교훈을 후세에 전하니 성스러운 교화와 신인의 은택은 환히 빛나서 족히만대에 걸쳐 하늘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후손이 불초하여 성스럽고도 원대한 대계(大計)는 어둑어둑한 가운데로 잠겨서 사라지듯 소리 없이 잃어버리고, 당당하던 임금의 천하 경영의 뜻은 빈 산에 누워 잠든 이들에게로 모두 미뤄 버리니, 전해지는 것이라곤 단지 괴상하고 어지러운 말만 남았을 뿐이라, 이 역시 슬프지 않겠는가. 이제 삼신제석(三神帝釋)을 숭배하는 풍조가 자못 성하여, 집집마다 잠자리의 바로 윗 벽에
以檀木爲釘 紙囊盛純白米而掛之 名曰三神囊或帝釋囊 每十月
이단목위정 지낭성순백미이괘지 명왈삼신낭혹제석낭 매시월
新穀肇成則主婦必手 換新甑蒸爲餠 以賽其神而祝景福 此旣出於
신곡조성즉주부필수 환신증증위병 이새기신이주경복 차기출어
박달나무로 만든 못을 박고 종이 주머니에 깨끗한 흰 쌀을 가득 담아 걸어 두며 이름하여 ‘삼신낭(三神囊)’ 혹은 ‘제석낭(帝釋囊)’이라 한다. 매년 10월 새로운 곡식이날 때면 주부는 반드시 손을 정결히 하고 새로 마련한 시루에 떡을 쪄서 그 신에게 정성을 올리며 큰 복을 바란다.
檀朝之遺制 而俗民競以巫覡相尙 或至禍福壽夭 專托巫祝而云爲之
단조지유제 이속민경이무격상상 혹지화복수요 전탁무주이운위지
此乃古俗末流之弊也 能向燕齊之士 而嗤其迂怪也哉! 悲夫!
차내고속말류지폐야 능향연제지사 이치기우괴야재! 비부!
이것은 단조(檀朝)때 생겨나 지금까지 남겨진 풍속인데, 속된 백성들은 다투어 무당과 박수를 받들면서 혹은 길흉화복과 장수하고 단명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무당과 박수에게 의탁하며 말과 행동을 그것에 따르니, 이는 곧 옛 풍속의 끄트머리로 흐르는 폐단이다. 그러니 어찌 연나라와 제나라 선비를 향하여 그들이 괴상하다고 비웃을 수 있겠는가. 슬프도다!
先是夫婁旣平水土 而夏禹適治唐堯九年之水 宇內諸國悉會於塗山
선시부루기평수토 이하우적치당요구년지수 우내제국실회어도산
明鳳陽府 夫婁亦奉命往會 又使神誌氏齋寶玉 弓矢以從焉
명봉양부 부루역봉명왕회 우사신지씨제보옥 궁시이종언
自蚩尤軒轅大戰以後 兩國始以玉帛相見 可稱東方會盟之始矣
자치우간원대전이후 양국시이옥백상견 가칭동방회맹지시의
이 보다앞서 부루가 물과 땅을 모두 안정시키고 나니 하(夏)나라의 우(禹)가 마침 당요(唐堯) 9년의 홍수를 다스리기에 세상의 모든나라들이 모두 도산(塗山)(명明의 봉양부鳳陽府)에 모였다. 부루 역시 명을 받들고 가서 함께 모이며 신지씨로 하여금 보옥 및 활과 화살을 지니고 따르게 하니, 치우와 헌원이 크게 싸운 이후 두 나라가 처음으로 옥과 비단을 가지고 서로 만난 것으로서 가히 동방회맹(東方會盟)의 시초라고 할 만하다.
在位九十餘載 天下然忘其樂焉 乃命夫婁攝位曰 天道昭昭 降在爾心
재위구십여재 천하연망기락언 내명부루섭위왈 천도소소 강재이심
惟秉爾心以親萬民 其惟純誠乎! 乃南至唐莊 入居阿斯達 以孟冬月
유겸이심이친만민 기유순성호! 내남지당장 입거아사달 이맹동월
化神朝天 在世凡二百十年 在君位九十三年 於是夫婁率諸加及諸侯
화신조천 재세범이백십년 재군위구십삼년 어시부루솔제가급제후
재위 90여 년 동안 천하는 공허롭게 넓기에 즐거움을 잊고 지냈다. 이에 부루에게 명하여 재위를 잇게 하며 이르기를 [하늘의 도는 밝디 밝게 네 마음에 내려와 있으니, 오로지 네 마음을 잡고 그로서 만백성을 사랑하면 그 뜻은 순수하고 정성스러울 것이니라] 하고는, 남쪽으로 당장(唐莊)에 이르러 아사달에 들어가 기거하다가 10월에 신이 되어 하늘에 오르니, 세상에 있은 지 무릇 210년이요 임금의 자리에 있은 지 93년이다. 이리하여 부루가 뭇 가와 제후를 거느리고
獻祭於朝天處 以辛丑歲卽位于平壤 是二世檀君也 後有文朴氏居阿斯達
헌제어조천처 이신축세즉위우평양 시이세단군야 후유문박씨거아사달
韶顔方瞳 頗得檀儉之道其後 如向彌山之永郞及馬韓之神女寶德諸人
소안방동 파득단검이도기후 여향미산지영즉급마한지신여보덕제인
只得其一斑淸無爲 適遙塵外 又非檀祖用化萬民之大義也
지득기일반청무위 적요진외 우비단조용화만민지대의야
하늘에 오른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는 신축년에 평양에서 즉위하니 바로 두번째 단군이다. 뒤에 문박씨(文朴氏)가 아사달에 살고 있었는데, 환하게 젊어 보이는 얼굴에 모가 난 눈동자를 하고서 자못 단검(檀儉)의 도를 얻은 듯하였다. 그 후에 향미산(向彌山)의 영랑(永郞)과 마한(馬韓)의 신녀보덕(神女寶德) 등 뭇 사람들은 단지 그 한 부분만을 체득하여 정결하게 무위(無爲)로서 속세를 벗어나 소요할 뿐이었으니, 이 또한 단조(檀朝)가 만백성을 교화시키는 그러한 큰 뜻은 아니다.
辛丑歲王壬儉夫婁元年 夫婁旣卽位 繼父志而治天下凡三年
신축세왕임검부루원년 부루기즉위 계부지이치천하범삼년
出巡國中祭天如禮 復使諸侯 致祭如古居數年 有앙肅者無道
출순국중제천여례 부사제후 치제여고서수년 유앙숙자무도
使仙羅往撫之 其後肅再叛 乃使仙羅會蓋馬之兵 討平之逐其徒於窮北
사선라왕무지 기후숙재반 내사선라회개마지병 토평지축기도어궁북
신축년은 부루 임금의 원년이다. 부루가 즉위하여 부왕의 뜻을 이어 천하를 다스리니, 무릇 삼년만에 나라안으로 순행을 나가서 예를 갖추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다시 제후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냄을 예전처럼 하게 하였다. 수년이 지난 후에 앙숙( 肅)이라는 무도한 자가 있어서 선라(仙羅)로 하여금 가서 그를 달래게 하였는데, 그 후에 앙숙이 다시 배반하기에 선라로 하여금 속진과 개마의 병사를 모으게 하여 그를 토벌하고는 그 무리를 북쪽의 후미진 곳으로 내어쫓았다.
益修德政 廣采賢能 乃擧息達爲龍加 今勿爲馬加 增置主財之職曰鳳加
익수덕정 광채현능 내거식달위용가 금물위마가 증치주재지직왈봉가
使阿密主之 於是浚渠開道路 興農桑勸牧畜 啓學而廣敎 民生益殷
사아밀주지 어시준거개도로 흥농상권목축 계학이광교 민생익은
이에 덕스러운 정치를 더욱 닦으며 널리 현명하고 능력 있는 가려 뽑았으니, 식달(息達)을 등용하여 용가로 삼고, 금물(今勿)을 마가로 삼았으며, 재정을 주관하는 직책을 증설하여 붕가(鳳加)라 이름하고 아밀(阿密)로 하여금 이를 주관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물도랑을 파고 길을 내며 농사와 누에치기를 일으키고 목축을 권장하였으며 학문을 계도하여 널리 가르치니, 백성의 생활은 더욱 윤택하여지고
聲聞大彰令天下 以孟冬西成之後 居民相聚 薦穀而祭天
성문대창령천하 이맹동서성지후 거민상취 천곡이제천
幷祀檀儉在天之神 民人咸悅 推戴欽慕 無異存日
병사단검재천지신 민인함열 추대흠모 무리존일
이를 기리는 소리는 천하에 자자하였다. 천하에 영을 내려 10월 추수를 마친 후에 그 땅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서로 모여 새 곡식으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아울러 하늘에 계신 신(神)인 단검께도 제사 드리게 하니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추대하여 떠받들고 그 덕을 흠모하기를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하였다.
初夫婁踐位之際 虞舜以藍國隣接之地爲營州 凡數十年 夫婁使諸
초부루천위지제 우순이람국린접지지위영주 범수십년 부루사제
加征其地 盡逐其衆是時 天下諸侯 來朝者數十於是作於阿之樂
가정기지 진축기중시시 천하제후 래조자수십어시작어아지락
以諧人神於阿者 喜悅之詞也 時有神獸出於靑丘 白毛九尾 銜書作瑞
이해인신어아자 희열지사야 시유신수출어청구 백모구미 연서작서
처음에 부루가 임금의 자리에 올랐을 때 우순(虞舜)이 남국(藍國)에 인접한 땅을 영주(營州)로 삼은지가 무릇 수십년이기에 부루가 뭇 가로 하여금 그 땅을 정복하게 하고 그 무리들을 모두 내치게 하였다. 이 때 천하의 제후 가운데 들어와 알현하는 자가 수십 명에 이르니, 이에 ‘어아의 노래(於阿之樂)’를 지어 이로서 사람과 신이 어울려 화합하였다. ‘어아’라 함은 기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으니, 털은 희고 꼬리는 아홉에 서책을 입에 물고 상서러움을 드러내는지라,
乃賞高矢氏 令國中奏樂而致歡 又作朝天之舞 封仙羅於肅之地
내상고시씨 령국중진락이치환 우작조천지무 봉선라어숙지지
後數年又封道羅 東武以表其功 卽後之沃沮 沸流
후수년우봉도라 동무이표기공 즉후지요저 비류
卒本諸國也 在位三十四歲崩 壽一百四十六歲 子嘉勒立
졸본제국야 재위삼십사세붕 수일백사십육세 자가륵립
이에 고시씨에게 상을 내리고는 나라 안에 영을 내려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매우 즐기며 또한 ‘조천무(朝天舞)’를 지었다. 선라(仙羅)를 앙숙의 땅에 봉했다가 그 몇 년 뒤에 또 도라(道羅)와 동무(東武)를 봉하여 그 공덕을 표창하니, 곧 뒤에 옥저(沃沮), 비류(沸流), 졸본(卒本) 등의 뭇 나라들이다. 임금으로 있은 지 34년만에 세상을 떠나니 수(壽)는 146세였다. 아들 가륵(嘉勒)이 임금이 되었다.
乙亥歲王壬儉嘉勒元年 亦有聖德 能繼父祖之道 又擧九室氏爲龍加
을해세왕임검가륵원년 역유성덕 능계부조지도 우거구실씨위용가
益致其隆盛焉 時夏王失德 其臣有簒逆者 乃使息達率藍 眞蕃之民
익치기융성언 시하왕실덕 기신유찬역자 내사식달솔람 진번지민
을해년은 가륵 임금의 원년이다. 역시 성스러운 덕이 있어 능히 부왕과 조부의 길을 이었다. 또 구실씨(九室氏)를 등용하여 용가로 삼으니 그 융성함이 더욱 극진하였다. 이 때 하나라 왕이 덕을 잃어 그 신하 가운데 왕위를 넘보고 반역하는 자가 있으므로, 이내 식달(息達)로 하여금 남국(藍國)과 진번(眞蕃)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以征之於是國威益彰 乃行祭天禮 遍及于諸神 在位五十一歲
이정지어시국위익창 내행제천례 편급우제신 재위오십일세
威德流被于四表 國人咸慕其化 以乙丑歲崩 壽八十四 子烏斯立
위덕유피우사표 국인함모기화 이을축세붕 수팔십사 자오사립
그를 정벌케 하니 나라의 위세가 더욱 빛났다. 이에 하늘에 제사의 예식을 행하며 뭇 신들에게 고루 미치게 하였다. 임금으로 있은 지 51년에 위엄 있는 덕은 사방으로 퍼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 교화를 사모하게 되었다. 을축년에 세상을 떠나니 수는 84세였다. 아들 오사(烏斯)가 임금이 되었다.
丙寅歲王壬儉烏斯元年 北巡而得靈草 分天下爲二十一州
병인세왕임검오사원년 북순이득영초 분천하위이십일주
征夏王后相 不克後和遣使相通 在位四十九歲崩 子丘乙立
정하임후상 불극후화견사상통 재위사십구세붕 자구을립
병인년은 오사 임금의 원년이다. 북쪽을 순행하다 신령스러운 풀을 얻었다. 천하를 21주(州)로 나누었다. 하나라 왕 후상(后相)을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으며, 후에 화해하여 사신을 보내고는 서로 교통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49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구을(丘乙)이 임금이 되었다.
乙卯歲王壬儉丘乙元年 時夏民有慕化而至者
을묘세왕임검구을원년 시하민유모화이지자
使處於奄慮忽 後少康復興夏道 久相和好 封太白之山
사처어엄려홀 후소강부흥하도 구상화호 봉태백지산
使凡民不得恣意侵犯 在位三十五歲崩 子達門立
사범민부득자의침범 재위삼십오세붕 자달문립
을묘년은 구을 임금의 원년이다. 이 때 하나라 백성 가운데 임금의 교화를 사모하여 오는 자가 있으므로 엄려홀(奄慮忽)에 거처하게 하였다. 뒤에 소강(少康)이 하나라의 도를 다시 일으키므로 오랫동안 서로 화목하게 지냈다. 태백산을 봉하여 일반 백성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달문(達門)이 임금이 되었다.
庚寅歲王壬儉達門元年 生而有異及長有聖德 又得東海人黎老爲龍加
경인세왕임검달문원년 생이유이급장유성덕 우득동해인려노위룡가
德聞益彰 國人不知惡 不知煩懊 聲敎之漸 可謂盛矣乃西撫兪 北安肅
덕문익창 국인부지악 부지번오 성교지점 가위성의내서무유 북안숙
南攘夏 東至于蒼海 而波息十年 在位三十二歲崩 子翰栗立
남양하 동지우창해 이파식십년 재위삼십이세붕 자한율립
경인년은 달문 임금의 원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름이 있더니 자라서는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또 동해 사람 여로(黎老)를 얻어 용가로 삼으니 그 덕의 평판은 더욱 빛났다. 나라 사람들은 악을 모르고 번민을 몰랐으니, 임금의 가르침이 번져나가 백성에게 물들어 감이 가히 융성하였다 할 것이다. 이에 서쪽으로 설유를 달래고 북쪽으로 앙숙을 진정시켰으며, 남으로 하나라를 물리치고 동쪽은 푸른 바다에 이르니, 십년동안 어려움 없이 조용하였다. 임금자리에 있은 지 32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한율(翰栗)이 임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