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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의 악몽- 베트남(Viet Nam) 여행
베트남 전도(全圖) / 베트남 국기(金星紅旗)
◆ 베트남 국기
<공산월남 때>
붉은 색: 혁명의 피와 조국 별의 오각: 사농공상병(士農工商兵:노동자·농민·지식인·청년·군인)의 다섯 인민
<월남통일 이 후>
붉은 색: 프롤레타리아 혁명 별의 오각: 공산당 리더쉽
◆ 베트남 개관(槪觀)
베트남의 면적은 약 33만 ㎢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약 3배이고 인구는 약 9천 7백만 명이다.
수도(首都)는 하노이(Hanoi)이고 인종은 베트남 족이 90%이고 기타 53개 소수민족이 있다고 한다. 언어는 베트남어, 종교는 불교가 90%, 가톨릭이 9% 정도라고 한다. 열대 몬순기후대에 속하며 1인당 GDP는 2,740 달러(2019)로 매우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환율은 우리나라 돈 1,000원이 베트남 돈으로 약 20,000동(VND)이다.
◆ 베트남 약사(略史)
BC 2세기, 인도차이나반도 동쪽 해안을 따라 베트남(Nam Viet/南越)이 처음으로 국가형태를 갖추지만 중국의 팽창으로 국경부근에서 끊임없는 갈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고, 19세기 들어 프랑스에 정복당하여 약 60여 년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에 점령당하는데,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프랑스가 다시 인도차이나에 복귀하지만 베트남 북부지역에 공산주의자 호치민(胡志明)이 베트남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越盟)을 세우고 프랑스의 식민정치에 대항한다.
프랑스는 1946년 남부지역에 월남(越南)이라는 프랑스 보호령 국가를 선언하고 제1차 베트남전쟁이 시작된다. 8년에 걸친 프랑스와 월맹의 대결은 1954년 월맹이 프랑스군에 승리를 거두어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양분된다. 남부에는 사이공(Saigon)을 수도로 하는 베트남공화국(Republic of Vietnam:월남), 즉 고딘디엠 정권이, 북쪽은 하노이(Hanoi)를 수도로 하는 호찌민 공산정권이 차지한다.
◆ 베트남 전쟁
프랑스가 물러난 후 고딘디엠 정권은 미국의 지원 아래 월맹과 전쟁이 시작되는데 제2차 베트남전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비둘기부대를 필두로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등을 파월하여 미국을 포함, 자유진영 동맹군과 함께 호치민이 이끄는 공산주의 월맹과 맞서 지루한 소모전을 전개한다.
아래 사진에서 울면서 벌거벗고 뛰어오는 소녀는 팬티 킴 푹(Phan Thi Kim Phuc)인데 미군이 투하한 네이팜탄(Napalm:燒夷彈)에 집이 불타고 온몸에 화상을 입어 뛰쳐나오는 장면이다. 1972년 당시 7살이었다니 올해(2020)에 55세가 되겠다. 저 사진을 찍은 베트남의 사진기자 닉 우트(Nick Ut)는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받았고, 킴 푹은 유엔 평화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작년에(2019) 인권평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월남전의 참상
짜빈동 전투 1,2 / 월남전 비극의 상징인 소녀 팬티 킴 푹
또, 짜빈동 전투는 우리나라 청룡부대인 제2해병여단 3대대 11중대원 294명이 월맹군 2,400명의 기습을 받지만 끝까지 분투하여 대승을 거둔다. 결과는 청룡부대원 전사 15명, 부상 33명이었고, 월맹군은 전사 243명, 포로 2명으로 해병대가 대승을 거둔,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전투이다.
8년 간 지속된 지루한 월남전은 국제적 여론에 밀려 미국이 1973년 휴전협정에 조인하고 물러서자 우리나라도 같은 해 철군을 한다. 그러나 월맹은 협정을 깨고 1975년 대공세를 전개하여 4월 30일 마침내 사이공을 함락시키고 남북 월남을 합쳐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합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Saigon)을 호치민시(胡志明市)로 개명한다.
호치민은 공산화 성공 이후 소련 및 동구권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경제부흥에 발버둥치지만 1990년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결국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호치민은 아시아 및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민간 기업들에 대한 자유화 조치를 시행 하는 등 유화(宥和)정책을 펴면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 남부 베트남(S. Viet Nam) ◆
1. 호치민시(胡志明/Ho Chi Minh City)
베트남(越南) 남부의 대도시 호치민(胡志明/Ho Chi Minh)은 공산화되기 전 사이공(Saigon)으로, 자유월남의 수도(首都)였는데 공산화 후 민족의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바꾸고 공산월남(越南社會主義共和國)의 제2의 도시가 되었으며, 인구는 약 800만 명으로 가장 많다.
베트남은 10년에 걸친 월남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지만 그 이후 급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지금은 촉망받는 신흥개발도상국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남부 호치민시는 경제의 중심, 과거 월맹의 근거지였던 북부 하노이(Hanoi)는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지역은 열대사바나기후대(Savanna 氣候帶)로 연중 강우량이 많고 몹시 습한 기후를 보이며, 연평균기온은 28℃ 정도이고, 일 년은 두 절기로 나누는데 5월~10월은 우기(雨期), 12월~4월은 건기(乾期)라고 한다.
호치민 동상(뒤:인민위원회) / 오토바이 물결 / 사이공 노틀담 대성당
대도시 호치민은 거리마다 엄청나게 많은 오토바이 물결을 볼 수 있는데 대중교통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 오토바이가 주된 교통수단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사이공 강변의 밀림 / 정글 탐험 카누
남부 베트남 관광의 주요 상품 중 하나인 정글탐험 카누 타기는 울창한 밀림 속에 미로처럼 뚫려있는 작은 물길을 따라 카누를 저어가는 것인데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또 중국, 태국과 함께 아시아 3대 요리로 꼽힌다는 월남요리는 비교적 저렴하여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길거리의 노천식당 /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월남요리
쌀국수, 월남 쌈을 비롯하여 채소를 곁들인 다양한 육류볶음요리, 다양한 생선류와 해산물 요리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또 다양하고 신기한 열대과일들을 맛보는 즐거움도 큰데 가격은 매우 저렴해서 맘껏 맛볼 수 있다.
하루는 관광 일정이 끝나고 예약한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갔는데 가이드와 식당 매니저가 실랑이를 한다. 가이드는 좀 저렴한 식사를 예약한 모양인데 식탁에 준비된 것은 장어구이였다.
가이드가 너희 잘못이라고 호통을 치니 매니저는 쩔쩔... 장어를 배 두드리며 실컷 먹어보기는 난생처음이다. 우리 가이드(한국인)는 기세 등등, 처음 예약했던 음식 값(싼) 만 치르고 나온다. ㅎ
풍부한 열대과일들 / 배터지게 먹은 장어구이
◆ 월남전(越南戰)의 아픈 흔적들
호치민시 남서쪽 약 60km 지점에 있는 구치터널은 기억하기조차 싫은 월남전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막강한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유연합군(한국군 포함)의 무자비한 공중폭격을 피해 땅속으로 파고들어가 처절한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베트남의 아픈 상처이자 자랑인 곳이다.
내 친구들도 월남전에 참가하였기에 당시의 전쟁 상황을 비교적 많이 알고 있는 나는 이번 여행을 오며 월남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이 있었고, 또 월남 사람들이 반한감정이 있어 신변위협이 걱정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미국이나 한국에 대해서 반감이 없는 듯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어서 놀라웠다. 그러나 한 편 생각해보면 북쪽 공산월맹 측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원한 사무치는 적국이었겠지만 남쪽 자유월남 측에서 보면 피를 나눈 혈맹이었으니... 아이러니다. 또 아픈 상처의 하나인... 라이따이한... 한국 군인들이 뿌린 한국인 2세들의 비극도 생각난다.
◐ 구찌터널(Cu Chi Tunnel)
엄청나게 좁은 구찌터널
구찌(Cu Chi) 터널은 입구가 도처에 감쪽같이 숨겨져 있어 신기했고, 들어가면 우선 너무 좁은 것에 놀라게 되는데 월남인들은 체구가 비교적 작으니 드나드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덩치가 좀 있는 사람들은 앉아서 오리걸음을 하는데도 여기저기 닿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터널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또 한 번 놀라게 되는데 단체로 모여 회의를 했을 법한 조금 넓은 공간도 있고, 조악해 보이기는 하지만 가지가지 편의시설도 있어서 놀라웠다. 이렇게 미로처럼 얽혀있는 터널의 총 길이를 합치면 수백 km로, 다른 여러 땅굴들과 연결된다고 한다.
고무나무 하면 말레이시아지만 이 곳 구찌마을에도 고무나무 농장이 있어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줄을 맞춰 나무를 심고 표피에 V자 모양의 칼집을 내서 진액을 모으면 고무의 원료가 된다는...
또 근처에는 여러 가지 과일 농장도 있는데 고약한 냄새가 나는, 그러나 과일의 여왕이라는 두리안(Durian) 나무도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있다.
구찌마을 고무나무 농장 / 과일의 여왕 두리안
2. 관광도시 붕타우(Vung Tau)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30km, 인도차이나반도 끝 해변에 위치한 붕타우는 아름다운 관광도시이다. 인구 40만 정도인 붕타우는 끝없이 길게 뻗어있는 깨끗한 모래해변과 천혜의 해수욕장으로 관광객들을 손짓하는 곳으로, 이곳에는 붕타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예수상도 있다. 바다를 굽어보는 자그마한 언덕위에 우뚝 솟아있는 예수상은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예수동상으로 두 팔을 쭉 뻗고 있는 모습이 흡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보는 것 같다. 예수상 오르는 계단 입구 주변은 아기자기한 조각들과 꽃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휴식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입구에서 예수상 있는 곳까지 800여 계단, 또 예수상 내부로 들어가 목 부분까지 오르는 좁은 계단도 만만치 않다. 목 부분에 오르면 어깨부분이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발코니 역할을 한다. 입장료는 없다.
붕타우의 ‘파라다이스 리조트’ / 리조트 뒤쪽은 남지나해
붕타우 해안모습 / 붕타우의 상징 예수상
◆ 중부 베트남(M. Viet Nam) ◆
1. 중부 베트남의 볼거리들
2011년 절친 세 명과 2차 베트남 여행을 했는데 다낭(Da Nang), 호이안(Hội An:會安) 등을 둘러보는 베트남 중부여행이었다. 우리들이 사흘간 묵었던 호이안의 팜 가든 리조트(Palm Garden Resort)는 월남전 때 미군들이 쓰던 시설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데 쾌적한 시설은 물론 아름다운 정원, 수영장 등이 있어 만족스러웠다. 리조트 뒷문을 나서면 곧바로 확 트인 남지나해(南支那海)이다.
리조트 내에도 식당이 있었지만 우리는 리조트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주로 식사를 했는데 식당 주인도 매우 친절하고 식당 써빙을 하는 아가씨가 매우 쾌활하고 우리에게 호감을 보여 식사 때마다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한국을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아가씨로 전쟁의 기억은 없는지 한국 팬이다. 철없는 것...
내 친구들 중에 몇 명이 월남전에 참전했었는데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몹쓸 짓도...
우리들의 아름다운 숙소 팜 가든 리조트(Palm Garden Resort)와 수영장
단골 식당 아가씨의 예쁜 짓 / 돼지고기 가두 판매상(고깔모자 농)
남북 월남의 경계부근인 중부월남의 다낭(Da Nang)은 인구 150만 정도의 대도시이고 여기서 북쪽으로 2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베트남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다는 고대도시 후에(Hue)가 있다.
후에의 옛 이름이 딴 호아(Than Hoa)인데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하며, 월남전 당시 다낭과 함께 최대의 격전지였던 곳으로 대부분 황폐화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 복구를 하고 관광지로 개발하여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후에의 인구는 약 35만 명 정도이고, 다낭에서 다시 남쪽으로 40분 거리에 고대 도시 호이안(H0i An)이 있다.
2. 세계문화유산 호이안의 올드 마켓(Old Market)
호이안 올드 마켓의 오래된 가게 / 호이안의 명물 일본교(日本橋)
다낭 남쪽 30km 지점에 있는 옛 도시 호이안은 인구 35만의 자그마한 도시지만 일찍부터 외국 무역상들이 드나들던 국제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곳곳에서 옛 무역상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도시인데 마을의 외국인 중에서 일본 무역상들이 제일먼저 집단으로 들어와 한때 천 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거주했다하며, 일본인들이 건축한 일본교도 있다. 그 이후 중국 화상(華商)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왔다는데 곳곳에서 중국풍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나중에는 유럽의 포르투갈, 프랑스 상인들도 많이 들어왔고 프랑스 식민시절도 겪었는데 그래서인지 길거리에 백인들이 보여 물어보면 대부분 프랑스인들이다.
옛날 화상(華商)들의 본거지였던 건물 / 예쁜 베트남 전통집
이곳 베트남의 가옥들은 모양은 단순하지만 지붕이나 외부 치장이 화려한 것이 특이하다. 지붕위에 용(龍) 장식물을 설치하는가 하면 기둥들도 요란스럽게 치장을 한다. 저녁에 길거리를 거니는 야경투어도 재미있는데 중국식 형형색색의 등(燈)도 많지만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집들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호이안 중심부를 흐르는 자그마한 강이 있는데 투본강(Thu Bon River)이라고 한다.
종일 올드타운(Old Town)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자그마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며 주인에게 마사지를 받는 곳이 없냐고 물었더니 소개를 해 주겠다며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가격을 흥정했는데 전신마사지가 1인당 10달러라고...
◐ 아마추어 마사지사들
매우 싼 가격이라 식사가 끝난 후 식당주인을 따라 갔는데 베트남 전통가옥이다. 일행 넷이 들어가니 서둘러 널찍한 방에 담요를 깔고...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아주머니들 넷이 들어오는데 한 눈에 봐도 전문 마사지꾼들이 아니다. 암튼지 싸니까... 우선 담요위에 엎드렸는데 꼴을 보니 40대 아줌마 한 사람은 마사지를 좀 해 본 모양이고 나머지는 모두 초보들로 친척들인 모양이다. ㅎㅎ 슬쩍 곁눈질로 보니 지네들끼리 이렇게 눌러라, 이렇게 문질러라... 눈치 짓들을 한다.
마사지인지, 간지럽히는 것인지 지네들끼리도 쿡쿡거리며 암튼 한 시간을 채운다. 우리도 모르는 체 내버려두고 짧은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끝나고 난 후 팁을 1불씩 주었더니 입이 함지박만... 담배를 피우려고 꺼내니 한 개비만 달라고 한다. 주었더니 얼른 주머니에... 남편 갖다 주려는 것이겠지...
호이안을 감싸고 흐르는 투본강 / 호이안의 야경
마사지를 끝내고 나와 보니 마침 강기슭에 보트가 있기에 주인을 불러 물어보니 서둘러 뱃사공을 불러 온다. 강을 건너는데 1인당 1불... 삐거덕거리는 보트를 타고 투본강을 건넜는데 그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돌아오면서 우리끼리 주고받은 말... 그 동네 아줌마들 오늘 횡재했다고 좋아했을 거야... 그냥 주물럭거리고 11불을 벌었으니... ㅎㅎ
3. 세계문화유산 후에(Hue) 성(城)
베트남왕조의 수도였던 후에는 1945년 호치민(胡志明)에게 정권이 넘겨지기 전까지 베트남 황족들의 거처였다고 하며, 후에(Hue) 성(城), 왕릉(王陵)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세계 문화유산 후에성(城 ) / 후에 왕궁 건물
1802년, 중국의 자금성(紫禁城)을 본 떠 지었다는 후에성은 월남전으로 거의 대부분 파괴되어 남은 건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파괴된 건축물들은 지금 복원 중에 있는데 면적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후에성의 정전(正殿)인 태화전(太和殿)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는데 벽화들도 볼만하다.
오히려 더 잘 보존된 것이 역대 황제들의 묘지인데 후에 외곽을 흐르는 흐엉(Hương/香江) 강변을 따라 수많은 왕릉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후에성의 아름다운 벽화 / 카이딘(Khai Dinh) 왕릉
4. 월남전의 격전지 다낭(Da Nang)
19세기 프랑스 식민시절 중요 항구였고 월남전 당시에는 미군의 기지가 있던 다낭은 인구 150만으로 베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1965년 월남전 사상 가장 치열했던 다낭 광찌(Quang Tri) 전투... 미군사망 900명, 베트콩 사망 2.000명. 미군들이 무차별 퍼부었던 네이팜탄, 고엽제 살포...
100대의 미군헬기, 70대의 전투기, 105대의 전차 투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 살육전이었지만 결국 어느 쪽도 승리했다고 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베트남을 남과 북으로 나누는 하이번(Hai Van) 고개는 월남전 때 우리 청룡부대가 전투에 참가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기도 한데 고개 마루에는 당시의 총탄자국이 선명한 참호도 남아있다. 고개 높이 1.172m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세계50대 자연경관으로 꼽은, 세계 8대 비경의 하나로 꼽히는 경관을 자랑하는 고개이다.
다낭 인근의 미썬 유적 / 다낭과 후에(Hue)의 경계 하이번 고개
호이안에서 남서쪽 내륙으로 1시간쯤 달리면 투본(Thu Bon)강 상류 정글지역에 고대 왕국의 유적이 있는데 미썬유적지(My Son/참파왕국 유적)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 후에(Hue) 지역을 중심으로 AD 2세기 참족(Cham)이 세운 참파(Cham Pa)왕국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4세기말 참파왕이 목조로 힌두사원을 조성했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폐허로 있다가 7세기부터 벽돌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15세기, 참파왕국이 몰락하고 유적지도 밀림 속에 파묻혀 잊혀졌던 유적이다.
그 이후 월남전이 발발하자 최대의 격전지가 이 부근이어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복원을 하였다지만 제대로 복원과 관리가 되지 않아 버려진 유적이라는 느낌이다. 70여 개의 건축물 유적을 셀 수 있다는데 온전하게 형태가 유지된 건축물들도 더러 있어서 내부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인도식 힌두교 유적들이지만 월남인들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와 힌두교의 혼합된 세계관을 신봉했던 까닭으로 모든 신상이나 제단의 모습들이 힌두와 불교의 혼합된 모습을 보여서 힌두사원인지, 불교사원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5. 오행산(五行山) 지옥동굴
다낭 오행산 지옥동굴 / 순진한 베트남 아이들
다낭에서 12km 쯤 떨어진 곳에 오행산(五行山/金,木,水,火,土/Marvel Mountain)이라는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있는데 여기에 지옥 동굴이 있다. 동굴로 들어가면 처음 천정이 굉장히 높은 광장이 나타나는데 조명이 어두컴컴하여 꼭 지옥에 들어온 느낌이다. 괴상망측한 조각들로 가득 차있는 동굴은 구불구불 미로처럼 얽혀 이어져 있고, 바깥에 나오면 주변을 둘러볼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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