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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七回 宋國納賂誅長萬 楚王杯酒虜息媯
제17회: 송나라는 뇌물을 받고 장만을 죽이고, 초왕은 술을 마시며 식규를 잡다
話說,魯莊公大敗齊師,乃問於曹劌曰:「卿何以一鼓而勝三鼓,有說乎?」曹劌曰:「夫戰以氣為主,氣勇則勝,氣衰則敗。鼓,所以作氣也。一鼓氣方盛,再鼓則氣衰,三鼓則氣竭。吾不鼓以養三軍之氣,彼三鼓而已竭,我一鼓而方盈。以盈禦竭,不勝何為?」莊公曰:「齊師既敗,始何所見而不追,繼何所見而追?請言其故。」曹劌曰:「齊人多詐,恐有伏兵,其敗走未可信也。吾視其轍跡縱橫,軍心已亂,又望其旌旗不整,急於奔馳,是以逐之。」莊公曰:「卿可謂知兵矣!」乃拜為大夫。厚賞施伯薦賢之功。髯翁有詩云:「強齊壓境舉朝憂,韋布誰知握勝籌?莫怪邊庭捷報杳,繇來肉食少佳謀。」
한편, 노장공이 제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친 후에 조귀에게 묻기를, “경이 어떻게 하여 한 번 친 북소리로 세 번 친 북소리를 이길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겠소?” 하니, 조귀가 말하기를, “무릇 싸움이란 기운을 위주로 합니다. 기운이 씩씩하면 이기고 기운이 쇠약하면 집니다. 북은 기운을 돋우는 것입니다. 북을 한 번 울리면 기운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두 번 울리면 쇠하며, 세 번 울리면 기운이 다합니다. 제가 북을 치지 않고 3군의 사기를 키우고 있는 동안에 저들은 북을 세 번 울려 그 기운이 이미 다했습니다. 제가 북을 한 번 울려 기운을 왕성하게 일으키니 그 가득한 기로 이미 다한 기를 제압했습니다. 어찌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겠습니까?”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이 이미 패하였는데 처음에 어떤 생각으로 추격하지 못하게 하고, 후에는 어떤 생각으로 추격하게 했소? 그 까닭을 말해 주시오.” 하니, 조귀가 말하기를, “제나라 사람들은 속임수가 많아서 복병이 있을까 염려되어 그들이 패주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차의 바퀴 자국이 종힁으로 나 있는 것을 보고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어지러운 것을 알았습니다. 또 멀리서 깃발이 정연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고 도망가기에 급급한 것을 알고 뒤를 추격하도록 말씀드렸습니다.”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경은 가히 군사의 일을 안다고 할 수 있겠소!” 했다. 노장공은 그를 즉시 대부로 임명하고, 시백에게는 훌륭한 사람을 천거했다는 공으로 후한 상을 내렸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강한 제나라의 침략에 노나라의 조정이 근심했지만, 포의의 은사가 승전의 계책을 알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변경의 군사들로부터 첩보가 없다고 괴이하다 생각하지 말라. 원래 육식자(고관)는 좋은 계책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한 법이다.” 했다.
時周莊王十三年之春。齊師敗歸,桓公怒曰:「兵出無功,何以服諸候乎?」鮑叔牙曰:「齊魯皆千乘之國,勢不相下,以主客為強弱。昔乾時之戰,我為主,是以勝魯。今長勺之戰,魯為主,是以敗於魯。臣願以君命乞師於宋,齊宋同兵,可以得志。」桓公許之。乃遣使行聘於宋,請出宋師。宋閔公捷,自齊襄公時,兩國時常共事。今聞小白即位,正欲通好,遂訂師期,以夏六月初旬,兵至郎城相會。至期,宋使南宮長萬為將,猛獲副之。齊使鮑叔牙為將,仲孫湫副之。各統大兵,集於郎城,齊軍於東北,宋軍於東南。
때는 주장왕(周庄王) 13년(기원전 684년)의 봄이었다. 제나라 군사가 패하고 돌아가자 제환공이 노하여 말하기를, “군사가 출동하여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어찌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했다. 포숙아가 말하기를, “제나라와 노나라는 모두 전차 천 대를 보유한 나라라 그 세력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주인과 손님이 강했다 약했다 합니다. 옛날에 건시의 싸움은 우리가 주인이었기 때문에 노나라를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장작의 싸움에서는 노나라가 주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노나라에 졌습니다. 원컨대 명을 내려주시면 송나라에서 군사를 빌려 제나라와 송나라가 힘을 합하여 이번 패전을 설욕하겠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허락했다. 즉시 송나라에 사자를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그때 송민공 첩(捷)은 제양공 때부터 어떤 일이건 두 나라가 항상 협력해 왔던 만큼 제나라에 소백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지 않아도 장차 우호를 맺으려던 참이라, (지원 요청에) 곧바로 출병 날짜를 정하여, 그해 여름 6월 초순에 군사가 낭성(郎城)에 이르러 서로 만나기로 했다. 이윽고 출병할 날이 되자 송나라에서는 남궁장만(南宮長萬)을 대장으로 삼고, 맹흭(猛獲)을 부장으로 삼았다. 제나라도 포숙을 대장으로 삼고, 중손추를 부장으로 삼아 각각 대병을 거느리고 낭성에 모여, 제나라 군사는 낭성의 동북에, 송나라 군사는 동남에 각각 진을 쳤다.
魯莊公曰:「鮑叔牙挾忿而來,加以宋助,南宮長萬有觸山舉鼎之力,吾國無其對手。兩軍並峙,互為犄角,何以禦之?」大夫公子偃進曰:「容臣自出覘其軍。」還報曰:「鮑叔牙有戒心,軍容甚整。南宮長萬自恃其勇,以為無敵,其行伍雜亂。倘自雩門竊出,掩其不備,宋可敗也。宋敗,齊不能獨留矣。」莊公曰:「汝非長萬敵也。」公子偃曰:「臣請試之。」莊公曰:「寡人自為接應。」公子偃乃以虎皮百餘,冒於馬上,乘月色朦朧,偃旗息鼓,開雩門而出。將近宋營,宋兵全然不覺。
노장공이 말하기를, “포숙아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송나라 군사까지 가세하여 쳐들어왔는데, 남궁장만은 촉산(觸山)에 있는 가마솥을 들어 올렸다는 장사다. 우리나라에는 그를 대적할만한 장수가 없다. 두 나라 군사들이 마주 보면서 서로 기각지세(掎角之勢 ; 군사를 나누어 서로 도우면서 공격하는 전술)를 이루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막아 낼 수 있겠는가?” 하니, 대부 공자 언(公子偃)이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신이 나아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펴보겠습니다.” 하고, 다시 돌아와 보고하기를, “포숙아는 경계심이 있어 진용이 매우 엄숙합니다. 그러나 남궁장만은 자기의 용기를 믿고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 대오가 어지럽습니다. 만일 우문(雩門 ; 남쪽 성문)으로 몰래 나가서 방비하지 않은 송나라 군사를 엄습하면 그들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송나라 군사가 패하면 제나라 군사는 혼자서는 더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장만의 적수가 아니다.” 하니, 공자 언이 말하기를, “신이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했다. 노장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친히 지원하겠다.” 했다. 곧 공자언이 호랑이 가죽 백여 개를 말에다 뒤집어씌우고 희미한 달빛을 이용하여 깃발을 눕히고 북소리를 내지 않고 남쪽 성문을 열고 나갔다. 송나라 진영에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송나라 군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公子偃命軍中舉火,一時金鼓喧天,直前衝突。火光之下,遙見一隊猛虎咆哮。宋營人馬,無不股慄,四下驚皇,爭先馳奔。南宮長萬雖勇,爭奈車徒先散,只得驅車而退。魯莊公後隊已到,合兵一處,連夜追逐。到乘邱地方,南宮長萬謂猛獲曰:「今日必須死戰,不然不免。」猛獲應聲而出,剛遇公子偃,兩下對殺。南宮長萬挺著長戟,直撞入魯侯大軍,逢人便刺。魯兵懼其驍勇,無敢近前。莊公謂戎右歂孫生曰:「汝素以力聞,能與長萬決一勝負乎?」歂孫生亦挺大戟,逕尋長萬交鋒。
공자 언은 군사들에게 송군 진영에 불을 놓게 하고 일시에 하늘이 진동하도록 징과 북을 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 충돌했다. 불빛 아래 한 떼의 호랑이들이 포효하는 것을 멀리 보고, 송나라 진영의 사람과 말들은 무서워서 다리가 떨리고 혼비백산하여 허둥대며 도망치기에 바빴다. 남궁장만이 비록 용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서로 다투어 도망치기에 바쁜 전차와 보졸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전차를 몰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노장공의 후대가 도착하여 공자 언의 부대와 합친 후 밤을 새워 도망치는 송나라군의 뒤를 추격했다. 승구(乘邱) 땅에 이르러 남궁장만이 맹획에게 말하기를, “오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면할 수가 없다.” 했다. 맹획이 큰 소리로 대답하고 곧바로 공자 언과 맞닥뜨려 싸움이 벌어졌다. 남궁장만도 긴 극을 들고 노장공의 대군을 치고 들어가며 앞을 가로막는 군사들을 모두 찔러 넘어뜨렸다. 노나라 군사들은 그 사나운 용력이 두려워서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노장공이 호위병 전손생(顓孫生)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평소에 용력으로 소문났는데, 능히 장만과 한번 승부를 결하여 보지 않겠는가?” 하니, 전손생이 역시 큰 극을 잡고 장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싸움을 걸었다.
莊公登軾望之,見歂孫生戰長萬不下,顧左右曰:「取我金僕姑來!」(金僕姑者,魯軍府之勁矢也。)左右捧矢以進,莊公搭上弓弦,覷得長萬親切,颼的一箭,正中右肩,深入於骨。長萬用手拔箭,歂孫生乘其手慢,復儘力一戟,刺透左股。長萬倒撞於地,急欲掙扎,被歂孫生跳下車來,雙手緊緊按定,眾軍一擁上前擒住。猛獲見主將被擒,棄車而逃。魯莊公大獲全勝,嗚金收軍。歂孫生解長萬獻功。長萬肩股被創,尚能挺立,毫無痛楚之態。莊公愛其勇,厚禮待之。鮑叔牙知宋師失利,全軍而返。
노장공이 수레 앞턱 가로댄 나무에 올라서서 전손생이 장만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시자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내 금복고(金僕姑)를 가져오너라.” 했다. (금복고는 노나라 군사 창고에 있는 갑옷을 뚫는 강한 화살이다.) 시자가 화살을 바치자, 노장공이 화살을 시위에 매겨 장만을 겨냥해서 쉿 소리를 내며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장만의 오른쪽 어깨에 맞아 뼛속 깊이 밝혔다. 장만이 손으로 화살을 뽑는 사이에 전손생이 힘을 다해 극으로 장만의 왼쪽 넓적다리를 찔렀다. 장만이 땅에 떨어져 다급하게 저항해 보지만 전손생이 전차에서 뛰어내려 두 손을 결박했다. 노나라 군사들이 달려들어 장만을 사로잡았다. 맹획은 주장이 사로잡힌 것을 보고 전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노장공은 크게 승리를 거둔 후에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전손생이 장만을 끌고 와서 노장공에게 바쳤다. 장만은 어깨와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었으나 오히려 꼿꼿이 서서 조금도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다. 노장공이 그 용기를 가상하게 생각하고 예를 갖추어 후대했다. 포숙아는 송나라 군사가 패한 것을 알고, 전군을 돌려 본국으로 돌아갔다.
是年,齊桓公遣大行隰朋,告即位於周,且求婚焉。明年,周使魯莊公主婚,將王姬下嫁於齊。徐、蔡、衛各以其女來媵。因魯有主婚之勞,故此齊魯復通,各捐兩敗之辱,約為兄弟。其秋,宋大水,魯莊公曰:「齊既通好,何惡於宋?」使人弔之。宋感魯恤災之情,亦遣人來謝,因請南宮長萬。魯莊公釋之歸國。自此三國和好,各消前隙。髯翁有詩曰:「乾時長勺互雄雌,又見乘邱覆宋師。勝負無常終有失,何如修好兩無危?」卻說,南宮長萬歸宋,宋閔公戲之曰:「始吾敬子,今子魯囚也,吾弗敬子矣。」長萬大慚而退。
이 해에, 제환공은 대사행 습붕을 사자로 삼아 주나라에 군주의 즉위를 고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주나라 왕실에 혼사를 청했다. 다음 해에 주나라가 노장공을 주혼으로 삼아 왕녀를 제나라에 시집보내기로 했다. 서(徐)나라, 채(蔡)나라, 위(衛)나라 세 나라는 각각 그 주군의 딸을 왕녀의 시중을 드는 첩으로 바쳤다. 노장공이 혼사를 주선하는 연고로 제나라와 노나라가 다시 우호하고 각각 두 번 패한 치욕을 잊어버리고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그해 가을 송나라에 큰 홍수가 나자 노장공이 말하기를, “우리가 제나라와는 이미 우호를 맺었는데 어찌 송나라와 나쁘게 지내겠는가?” 하고, 사자를 보내어 홍수 피해를 위문했다. 송나라도 수재를 위문하는 노나라의 마음에 감동하여 송나라 역시 사자를 보내 감사하고, 장만을 석방해 달라고 청했다. 노장공이 그를 석방하여 귀국하게 했다. 이때부터 제(齊)나라, 노(魯)나라, 송(宋)나라는 서로 친목하고 전날의 감정을 털어 버렸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건시와 장작에서 서로 자웅을 다투더니, 또다시 승구에서 송나라 군사가 패퇴했다. 승부는 무상하여 결국은 잃는 것뿐이니, 어찌 수호를 맺어 위태로움을 없애는 것만 하겠는가?” 했다. 한편, 남궁장만이 노나라에서 송나라로 돌아오니, 송민공이 놀리면서 말하기를, “지난날에는 내가 그대를 존경했으나, 지금은 노나라의 포로일 뿐이라 내가 그대를 존경할 수가 없다.” 하니, 장만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
大夫仇牧私諫閔公曰:「君臣之間,以禮相交,不可戲也。戲則不敬,不敬則慢,慢而無禮,悖逆將生,君必戒之!」閔公曰:「孤與長萬習狎,無傷也。」 再說,周莊王十五年,王有疾,崩。太子胡齊立,是為僖王。訃告至宋。時宋閔公與宮人遊於蒙澤,使南宮長萬擲戟為戲。原來長萬有一絕技,能擲戟於空中,高數丈,以手接之,百不失一。宮人欲觀其技,所以閔公召長萬同遊。長萬奉命耍弄了一回,宮人都誇獎不已。閔公微有妒恨之意,命內侍取博局與長萬決賭,以大金斗盛酒為罰。這博戲卻是閔公所長。長萬連負五局,罰酒五斗,已醉到八九分地位了,心中不服,再請覆局。
대부 구목(仇牧)이 몰래 민공에게 간하기를, “군주와 신하 사이에는 예로써 대하여야 하며 희롱해서는 안 됩니다. 희롱하면 존중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면 태만하게 됩니다. 태만하면 예의가 없어지게 되어 패역이 장차 생기니, 주군께서는 반드시 경계하십시오.” 했다. 송민공이 말하기를, “나와 장만은 서로 스스럼없는 사이라 마음을 상하지 않을 것이오.” 했다. 한편, 주나라 장왕 15년(기원전 681년) 왕이 병이 들어 죽었다. 태자 호제(胡齊)가 뒤를 이어 즉위하니, 이가 주희왕(周僖王)이다. 천자의 부고가 송나라에 이르니, 그때 송민공은 궁인들과 몽택에서 놀면서, 장만에게 극을 던졌다가 받는 놀이를 시켰다. 원래 장만은 기막힌 재주를 하나 가졌는데, 극을 여러 길 높이로 공중에 던졌다가 손으로 잡되 백 번에 한 번도 놓치는 일이 없었다. 궁인들이 그 기술을 보고자 하였으므로 민공이 장만을 불러 함께 놀게 된 것이다. 장만이 명을 받들어 한바탕 재주를 부리자 궁녀들이 그 재주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송민공은 슬며시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 내시에게 명하여 박국(博局 ; 장기판)을 가져오도록 하여 장만과 내기 장기를 두어, 진 사람은 금으로 만든 큰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벌주로 마시기로 했다. 그러나 장기 두기는 송민공의 잘하는 바였다. 장만이 연달아 다섯 판을 지게 되어 벌주 다섯 잔을 내리 마시게 되어, 이미 취하여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고 다시 한 판만 더 두자고 졸랐다.
閔公曰:「囚乃常敗之家,安敢復與寡人賭勝?」長萬心懷慚忿,嘿嘿無言。忽宮侍報道:「周王有使命到。」閔公問其來意,乃是報莊王之喪,且告立新王。閔公曰:「周已更立新王,即當遣使弔賀。」長萬奏曰:「臣未睹王都之盛,願奉使一往!」閔公笑曰:「宋國即無人,何至以囚奉使?」宮人皆大笑。長萬面頰發赤,羞變成怒,兼乘酒醉,一時性起,不顧君臣之分,大罵曰:「無道昏君!汝知囚能殺人乎?」閔公亦怒曰:「賊囚!怎敢無禮!」便去搶長萬之戟,欲以刺之。長萬也不來奪戟,逕提博局,把閔公打倒。再復揮拳,嗚呼哀哉,閔公死於長萬拳下。宮人驚散。
송민공이 말하기를, “항상 지는 죄수가 어찌 감히 과인에게 이기겠는가?” 하니, 장만이 마음속으로 부끄럽고 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궁 안의 시종이 와서 보고하기를, “천자의 명을 전하기 위해 사자가 왔습니다.” 하니, 송민공이 사자가 온 뜻을 묻자, 천자가 붕어하여 새로운 천자가 섰음을 알리기 위해 왔다고 했다. 민공이 말하기를, “주나라에 이미 새로운 왕이 섰으니 마땅히 사자를 보내 조문과 경축을 해야겠다.” 하니, 장만이 아뢰기를, “신은 아직 주나라 왕도의 번성함을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사자로 주나라에 한번 가고 싶습니다.” 했다. 송민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송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죄수를 사자로 보내겠느냐?” 했다. 궁인들이 모두 웃자, 장만의 얼굴이 붉게 물들면서 수치심이 분노로 변하고, 또한 술에 취하여 갑자기 노기가 폭발하면서 군주와 신하의 분별도 잊은 채 크게 욕하기를, “무도한 혼군아! 죄수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아느냐?” 하니, 송민공도 역시 화를 내며 말하기를, “죄수 놈이 어찌 이리 무례하냐?” 하고, 장만이 재주를 자랑하던 그 극을 성큼 움켜잡고 장만을 찌르려고 했다. 그러나 장만은 극을 빼앗으려 하지도 않고, 장기판을 들어 민공을 쳐서 넘어뜨렸다. 장만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니, 아, 가엽게도 민공은 장만의 주먹을 맞고 죽고 말았다. 궁인들이 놀라서 흩어졌다.
長萬怒氣猶勃勃未息,提戟步行。及於朝門,遇大夫仇牧,問:「主公何在?」長萬曰:「昏君無禮,吾已殺之矣。」仇牧笑曰:「將軍醉耶?」長萬曰:「吾非醉,乃實話也。」遂以手中血污示之。仇牧勃然變色,大罵:「弒逆之賊,天理不容!」便舉笏來擊長萬。怎當得長萬有力如虎,擲戟於地,以手來迎。左手將笏打落,右手一揮,正中其頭,頭如齏粉。齒折,隨手躍去,嵌入門內三寸。真絕力也!仇牧已死,長萬乃拾起畫戟,緩步登車,旁若無人。宋閔公即位共十年,只因一句戲言,遂遭逆臣毒手。
장만이 화를 식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극을 잡고 걸어 나오는데 조정의 문에서 대부 구목을 만났다. 구목이 묻기를, “주공은 어디 계십니까?” 하니, 장만이 말하기를, “혼군이 무례하여 내가 이미 죽여버렸소.” 했다. 구목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장군께서 취하셨소?” 하니, 장만이 말하기를, “나는 취하지 않았다. 내가 한 말은 정말이다.” 하고, 곧 손바닥의 핏자국을 보여주었다. 구목이 갑자기 안색을 바꿔 큰 소리로 꾸짖기를, “시역을 저지른 도적놈아! 하늘이 용서하지 않으리라!” 했다. 문득 홀(笏)을 들어 장만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어찌 호랑이 같은 장만의 힘을 당해 내리오. 장만은 손에 잡고 있던 극을 던져버리고 두 팔을 벌리고 덤벼들어 왼손으로 홀을 쳐 떨어뜨리고 오른손을 한 번 휘둘러 구목의 머리를 가격했다. 구목의 머리는 마치 가루가 되듯 부서져 버렸다. 이가 부러져 손을 따라 튕겨나가 문안에 세치나 박혔다. 정말 대단한 힘이었다. 구목이 이미 죽자 장만은 화극을 주워들고 천천히 걸어 수레에 올라타는데 그 태도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송민공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단지 한마디의 희롱하는 말 때문에 역신의 독한 주먹을 맞고 죽었다.
春秋世亂,視弒君不啻割雞,可嘆,可嘆!史臣有《仇牧贊》云:「世降道斁,綱常掃地。堂簾不隔,君臣交戲。君戲以言,臣戲以戟。壯哉仇牧,以笏擊賊!不畏強禦,忠肝瀝血。死重泰山,名光日月。」太宰華督聞變,挺劍登車,將起兵討亂。行至東宮之西,正遇長萬。長萬並不交言,一戟刺去,華督墜於車下,又復一戟殺之。遂奉閔公之從弟公子游為君,盡逐戴、武、宣、穆、莊之族。群公子出奔蕭,公子御說奔毫。長萬曰:「御說文而有才,且君之嫡弟,今在毫,必有變。若殺御說,群公子不足慮也。」乃使其子南宮牛同猛獲率師圍毫。
춘추의 난세에는 군주를 시해하기를 마치 닭 모가지 비틀어 죽이듯이 하였으니 가히 한탄스러운 일이었다. 사관이 <구목을 찬양함>이라는 글을 지어 이르기를, “세상의 도덕이 무너지고,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상하의 질서가 없어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희롱했다. 군주가 말로써 놀리니, 신하가 극으로 답했다. 장하다 구목이여! 홀(笏)로 역적을 내리치니, 흉포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충성스러운 가슴에서 피를 뿌렸다. 죽음은 태산과 같이 무겁고, 이름은 해와 달처럼 빛났도다.” 했다. 태재 화독이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칼을 들고 수레에 올라 군사를 일으켜 난을 토벌하려 했다. 동궁의 서쪽에 이르러서 장만과 마주쳤다. 장만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 창에 화독을 찔러 수레에서 떨어뜨려서 다시 한번 찔러 살해했다. 남궁장만은 곧 송민공의 종제(從弟)인 공자 유(公子游)를 받들어 군주로 삼고, 대공(戴公), 무공(武公), 선공(宣公), 목공(穆公), 장공(莊公)의 후손들을 모두 쫓아냈다. 여러 공자는 소(蕭)읍으로 도망쳤으나 공자 어설(公子御說)은 박(亳) 땅으로 달아났다. 장만이 말하기를, “어설은 학문과 재능이 있고, 또한 송민공의 친동생이다. 지금 박 땅에 머무르게 둔다면 반드시 변란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어설을 죽인다면 여러 공자는 염려할 게 없다.” 하고, 곧 그의 아들 남궁우(南宮牛)를 시켜 맹흭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박 땅을 포위하게 했다.
冬十月,蕭叔大心率戴、武、宣、穆、莊五族之眾,又合曹國之師救毫。公子御說悉起毫人,開城接應。內外夾攻,南宮牛大敗被殺。宋兵盡降於御說。猛獲不敢回宋,逕投衛國去了。戴叔皮獻策於御說:「即用降兵旗號,假稱南宮牛等已克毫邑,擒了御說,得勝回朝。」先使數人一路傳言,南宮長萬信之,不做準備。群公子兵到,賺開城門,一擁而入,只叫「單要拿逆賊長萬一人,餘人勿得驚慌。」長萬倉忙無計,急奔朝中,欲奉子游出奔。見滿朝俱是甲士填塞,有內侍走出,言:「子游已被眾軍所殺。」
그해 겨울 10월에 소(蕭)읍 대부 소숙대심(蕭叔大心)이 대공, 무공, 선공, 목공, 장공의 오족 무리를 이끌고 조(曹)나라의 군사들과 합하여 박(亳)성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공자 어설이 박성 사람들을 모두 일으켜 성문을 열고 호응했다. 안팎에서 협공을 당한 남궁우는 대패하여 피살됐다. 송나라 군사들은 모두 어설에게 항복했다. 맹획은 감히 송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위(衛)나라로 달려가 투항했다. 대숙 피(戴叔皮)가 어설에게 계책을 말하기를, “항복한 군사들의 깃발을 사용하여 남궁우 등이 이곳 박읍을 점령하여 어설을 포로로 잡아 개선하는 중이라고 헛소문을 내면서 진격하십시오.” 했다. 먼저 몇 사람을 보내 소문을 퍼뜨리게 하자, 남궁장만은 그 말을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여러 공자의 군사들이 도착하여 남궁우의 군사들이라고 속이자 성문을 열어주었다. 일제히 성안으로 들어간 군사들이 소리치기를, “역적 장만 한 사람만 잡고자 하니 다른 사람들은 놀라지 말라!” 했다. 장만이 창황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급히 조정으로 달려가 공자 유를 받들고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조정에는 무장한 군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시 한 사람이 달려나와 말하기를, “공자 유께서 이미 군사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했다.
長萬長嘆一聲,思列國惟陳與宋無交,欲待奔陳。又想家有八十餘歲老母,嘆曰:「天倫不可棄也!」復翻身至家,扶母登輦,左手挾戟,右手推輦而行,斬門而出,其行如風,無人敢攔阻者。宋國至陳,相去二百六十餘里,長萬推輦,一日便到。如此神力,古今罕有。卻說,群公子既殺子游,遂奉公子御說即位,是為桓公。拜戴叔皮為大夫。選五族之賢者,為公族大夫。蕭叔大心仍歸守蕭。遣使往衛,請執猛獲。再遣使往陳,請執南宮長萬。公子目夷時止五歲,侍於宋桓公之側,笑曰:「長萬不來矣!」
장만이 장탄식을 한번 하더니, 열국에서 송나라와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오직 진(陳)나라뿐임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집에 계시는 팔십여 세의 노모를 생각하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천륜을 저버릴 수는 없다.” 하고 다시 몸을 돌려 집에 이르러 노모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 왼손으로 극을 들고 오른손으로 수레를 밀면서 성문을 지키는 군사를 참하고 나갔다. 그 행동이 마치 바람 같아 아무도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송나라에서 진나라까지는 2백 6십 리였으나 장만은 수레를 몰아 불과 하루 만에 도착했다. 이처럼 귀신같은 힘은 고금에 드문 일이었다. 한편 여러 공자는 이미 공자 유를 죽이고, 마침내 공자 어설(御說)을 받들어 송나라 군주로 추대했다. 이가 송환공(宋桓公)이다. 대숙 피(戴叔皮)를 대부로 삼고 5족 중에 현명한 사람을 뽑아 공족대부를 삼았다. 소숙대심은 봉지인 소성(蕭城)을 지키기 위해서 돌아갔다. 또한 사자를 위나라에 보내어 맹획을 잡아서 보내달라고 청하고, 다시 진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남궁장만을 잡아 보내달라고 청했다. 공자 목이(目夷)가 그때 5살인데 송환공의 옆에 서 있다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장만은 데려오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宋公曰:「童子何以知之?」目夷曰:「勇力人所敬也,宋之所棄,陳必庇之。空手而行,何愛於我?」宋公大悟,乃命齎重寶以賂之。先說宋使至衛,衛惠公問於群臣曰:「與猛獲,與不與孰便?」群臣皆曰:「人急而投我,奈何棄之?」大夫公孫耳諫曰:「天下之惡,一也。宋之惡,猶衛之惡。留一惡人,於衛何益。況衛宋之好舊矣,不遺獲,宋必怒。庇一人之惡,而失一國之歡,非計之善也。」衛侯曰:「善。」乃縛猛獲以畀宋。
송환공이 말하기를, “어린애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 하니, 목이가 말하기를, “용력이 있는 장사는 공경을 받습니다. 송나라가 버렸으니 진나라가 반드시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사자가 빈손으로 가서 어떻게 진나라가 우리를 위해 힘쓰겠습니까?” 했다. 송환공이 크게 깨닫고, 즉시 많은 보물을 주어 진나라에 뇌물로 바치게 했다. 먼저 송나라 사자가 위나라에 당도하여 맹획을 넘겨달라고 청하자, 위혜공이 여러 신하에게 말하기를, “맹획을 주는 것이 좋겠는가? 주지 않는 것이 좋겠는가?” 하니, 여러 신하가 모두 말하기를, “사람이 위급해서 우리에게 투항하였는데 어찌 이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했다. 대부 공손이(公孫耳)가 간하기를, “천하의 악은 한가지입니다. 송나라에 악한 것은 위나라에도 악합니다. 한 사람의 악당을 머무르게 한다고 해서 위나라에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하물며 위나라와 송나라는 오래도록 우호적인 사이인데 맹획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송나라는 반드시 화를 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악당을 비호하려다 한 나라의 환심을 잃게 되니 좋은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했다. 위혜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소.!” 하고, 곧바로 맹획을 포박하여 송나라로 보냈다.
再說,宋使至陳,以重寶獻於陳宣公。宣公貪其賂,許送長萬。又慮長萬絕力難制,必須以計困之。乃使公子結謂長萬曰:「寡君得吾子,猶獲十城。宋人雖百請,猶不從也。寡君恐吾子見疑,使結布腹心。如以陳國褊小,更適大國,亦願從容數月,為吾子治車乘。」長萬泣曰:「君能容萬,萬又何求?」公子結乃攜酒為歡,結為兄弟。明日長萬親至公子結之家稱謝。公子結復留款,酒半,大出婢妾勸酬。長萬歡飲大醉,臥於坐席。公子結使力士以犀革包裹,用牛筋束之;並囚其老母,星夜傳至於宋。
한편, 송나라 사신이 진나라에 이르러, 많은 보물을 진선공(陳宣公)에 바쳤다. 진선공은 뇌물을 좋아하여 장만을 잡아 보낼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힘이 장사인 장만을 포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여 틀림없이 그를 잡을 계책을 세웠다. 그래서 공자 결(公子結)을 시켜 장만에게 말하기를, “우리 주군이 그대를 얻은 것을 열 개 성을 얻은 것같이 여깁니다. 송나라가 백방으로 청할지라도 따르지 않을 것이오. 우리 주군은 그대 때문에 송나라로부터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마음속 진심을 서로 맺으라 하셨소. 그러니 그대는 우리 진나라가 좁다는 핑계로 큰 나라에 가서 조용히 몇 달만 놀다 오면 어떻겠소. 내가 그대를 위해 수레를 장만해 드리리다.” 했다. 장만이 울면서 말하기를, “군주께서 저를 용납해 주시니 제가 또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했다. 공자결이 곧 술을 내와 마시며 즐거워하다가 형제의 의를 맺었다. 다음날 장만이 친히 공자 결의 집을 방문하여 감사했다. 공자 결이 다시 영접하여 술이 반쯤 취하자 비첩들을 모두 나오게 하여 술을 권했다. 장만이 즐겨 마시다가 대취하여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공자 결이 장사들에게 물소 가죽으로 만든 자루 속에 장만을 집어넣고 소 힘줄로 묶게 했다. 아울러 그의 노모도 잡아 가두어서 밤을 새워 송나라에 넘겨주었다.
至半路,長萬方醒,奮身蹴踏,革堅縛固,終不能脫。將及宋城,犀革俱被掙破,手足皆露於外。押送軍人以槌擊之,脛骨俱折。宋桓公命與猛獲一同綁至市曹,剁為肉泥。使庖人治為醢,遍賜群臣曰:「人臣有不能事君者,視此醢矣!」八十歲老母,亦並誅之。髯翁有詩嘆曰:「可惜赳赳力絕倫,但知母子昧君臣。到頭駢戮難追悔,好諭將來造逆人。」宋桓公以蕭叔大心有救毫之功,升蕭為附庸,稱大心為蕭君。念華督死難,仍用其子家為司馬。自是華氏世為宋大夫。
송나라로 돌아오는 도중에 장만이 비로소 술에서 깨어나 전신의 힘을 다 내어 발버둥쳤으나 가죽이 질기고 포박이 단단해서 끝내 몸을 빼내지 못했다. 그러나 송나라 도성에 이르렀을 때는 물소 가죽으로 만든 자루가 모두 찢어져서 장만의 팔다리가 모두 밖으로 나왔다. 압송하던 군인들이 몽둥이로 때려서 장만의 정강이뼈를 모두 분질러 놓았다. 송환공은 맹획과 같이 묶어 저잣거리로 끌고 나가 칼로 찔러 저민 고기를 만들고, 다시 요리사에게 육젓을 만들게 해서, 군신들에게 두루 나누어주면서 말하기를, “신하된 자로써 그 임금을 능히 섬기지 못하는 자는 이 육젓을 보아라!” 했다. 남궁장만의 팔십 노모도 역시 같이 죽임을 당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씩씩하고 빼어난 힘을 지닌 장사가 아깝구나! 모친만 알았지 군주와 신하는 몰랐구나. 머리를 나란히 육시를 당하니 후회한들 소용이 있나? 장래의 역적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였도다!” 했다. 송환공은 소숙대심이 박 땅에 있던 자기를 구하여 준 공로를 생각하여 소성(蕭城)을 부용(附庸)으로 승격시키고 대심을 소군(蕭君)이라고 부르게 했다. 또한 난 중에 죽은 화독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그 아들 화가(華家)를 사마(司馬)로 삼았다. 그 후로 화(華)씨는 대대로 송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再說,齊桓公自長勺大挫之後,深悔用兵。乃委國管仲,日與婦人飲酒為樂。有以國事來告者,桓公曰:「何不告仲父?」時有豎貂者,乃桓公之幸童。因欲親近內庭,不便往來,乃自宮以進。桓公憐之,寵信愈加,不離左右。又齊之雍邑人名巫者,謂之雍巫,字易牙,為人多權術,工射御,兼精於烹調之技。一日,衛姬病,易牙和五味以進,衛姬食之而愈,因愛近之。易牙又以滋味媚豎貂,貂薦之於桓公。桓公召易牙而問曰:「汝善調味乎?」對曰:「然。」桓公戲曰:「寡人嘗鳥獸蟲魚之味幾遍矣。所不知者,人肉味何如耳?」易牙既退,及午膳,獻蒸肉一盤,嫩如乳羊,而甘美過之。
한편, 제환공은 장작에서 노나라 군사에게 크게 패한 후에 출병시킨 일을 깊히 후회했다. 곧 나라의 정사를 관중에게 맡기고, 자기는 날마다 여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즐겼다. 나라의 일로 보고하러 오는 자가 있으면, 환공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중보에게 고하지 않는가?” 했다. 그때 수초(竪貂)라는 자가 환공의 총애를 받는 시동이었다. 내정에서 가까이 모시려고 밖에서 왕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스스로 거세한 후 내정으로 들어왔다. 환공이 이를 가엽게 여겨 더욱 총애하고 자기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다. 또 제나라의 옹읍(雍邑)에 무(巫)라는 자가 있었는데 옹무(雍巫)라고 불렀고 자를 역아(易牙)라고 했다. 위인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활쏘기와 말 몰기도 잘했다. 또한 음식을 삶아서 조리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하루는 위희(衛姬)가 병이 났다. 역아가 오미(五味)를 갖추어 요리해서 바치자 위회가 먹고 병이 나았다. 그래서 역아를 총애하여 가까이 두었다. 역아는 또 맛있는 요리를 해서 수초에게 아첨을 했다. 수초가 역아를 환공에게 추천했다. 환공이 역아를 불러서 묻기를, “네가 요리를 잘하느냐?” 하니, 역아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했다. 환공이 장난삼아 말하기를, “과인은 새와 짐승, 벌레와 물고기 등의 요리를 다 먹어 봤으나, 사람 고기 맛은 어떠한지 모르겠다.” 했다. 역아가 물러 나와 점심 때에 찐 고기 한 쟁반을 갖다 바쳤다. 그 고기는 젖먹이 양고기보다 연하고 감미롭기가 그지없었다.
桓公食之盡,問易牙曰:「此何肉,而美至此?」易牙跪而對曰:「此人肉也。」桓公大驚,問:「何從得之?」易牙曰:「臣之長子三歲矣。臣聞『忠君者不有其家。』君未嘗人味,臣故殺子以適君之口。」桓公曰:「子退矣!」桓公以易牙為愛己,亦寵信之。衛姬復從中稱譽。自此豎貂易牙內外用事,陰忌管仲。至是,豎貂與易牙合詞進曰:「聞『君出令,臣奉令』,今君一則仲父,二則仲父,齊國疑於無君矣!」桓公笑曰:「寡人於仲父,猶身之有股肱也。有股肱方成其身,有仲父方成其君。爾等小人何知?」二人乃不敢再言。管仲秉政三年,齊國大治。髯仙有詩云:疑人勿用用無疑,仲父當年獨制齊。都似桓公能信任,貂巫百口亦何為?
제환공이 다 먹고 난 다음 역아에게 묻기를, “무슨 고기인데 이렇게 맛이 있느냐?” 하니, 역아가 무릎을 꿇고 대답하기를, “그것은 사람의 고기입니다.” 했다. 환공이 크게 놀라 묻기를,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가?” 하니, 역아가 말하기를, “신의 큰아들이 세 살입니다. 신이 듣기로, ‘임금에게 충성하는 자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아직 사람의 고기 맛을 못 보셨다고 하시어 신의 아들을 죽여서 요리하여 주군께 바친 것입니다.” 했다. 환공이 말하기를, “그만 물러가라!” 했다. 제환공은 역아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역시 총애하고 믿었다. 위희(魏姬)도 궁중에서 역아를 칭찬했다. 이때부터 수초와 역아가 안팎으로 일을 맡아 했고, 은근히 관중을 꺼렸다. 어느 날 수초와 역아가 말을 맞추어 환공에게 나아가 아뢰기를, “저희가 듣기로는, ‘군주는 명령하고 신하는 명령을 받든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하나도 중보(仲父)이고 둘도 중보이니, 제나라는 군주가 없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니, 제환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과인에게 중보는 마치 몸에 팔다리가 있는 것과 같다. 팔다리가 있어야 몸이 온전해지듯이, 중부가 있어야 군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 같은 소인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했다. 두 사람이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관중이 정사를 맡은 지 3년 만에 제나라는 크게 다스려졌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 사람을 의심하면 쓰지 말고 쓰게 되면 의심하지 말라. 중보가 그때 제나라를 혼자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환공이 능히 신임했기 때문인데, 수초나 옹무같은 소인배들이 백 명이라 한들 어쩌겠는가?” 했다.
是時楚方強盛,滅鄧,克權,服隨,敗鄖,盟絞,役息。凡漢東小國,無不稱臣納貢。惟蔡恃與齊侯婚姻,中國諸侯通盟同兵,未曾服楚。至文王熊貲,稱王已及二世。有鬥祈、屈重、鬥伯比、薳章、鬥廉、鬻拳諸人為輔,虎視漢陽,漸有侵軼中原之意。卻說,蔡哀侯獻舞,與息侯同娶陳女為夫人。蔡娶在先,息娶在後。息夫人媯氏有絕世之貌,因歸寧於陳,道經蔡國。蔡哀侯曰:「吾姨至此,豈可不一相見?」乃使人要至宮中款待,語及戲謔,全無敬客之意。息媯大怒而去。及自陳返息,遂不入蔡國。
그때 초나라는 바야흐로 강성하여 등(鄧)나라를 멸하고, 권(權)나라는 점령하고 수(隨)나라는 복종시켰으며 운(鄖)나라는 패배시키고, 교(絞)나라와 동맹했으며 식(息)나라는 그 백성들을 불러 노역을 시켰다. 모든 한수 동쪽의 작은 나라들은 모두가 초나라에게 신하로 칭하고 조공을 바쳤다. 오직 채나라는 제환공과 혼인 관계임을 믿고 중원의 제후들과 동맹을 맺어서 아직 초나라에 복종하지 않았다. 초나라 문왕 웅자(熊貲)에 이르러서 왕으로 칭한 지 이미 2대가 지났다. 투기(鬪祈), 굴중(屈重), 투백비(鬪伯比), 원장(薳章), 투렴(鬥廉), 육권(鬻拳) 등 여러 사람의 보좌를 받아 호시탐탐 한양을 노리고, 점점 중원으로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한편, 채애후(蔡哀侯) 헌무(獻舞)는 식나라 군주와 함께 진(陳)나라 여자를 부인으로 삼고 있었다. 채나라 군주가 장녀를 취하고 식나라 군주는 차녀를 취했다. 그런데 식나라 군주의 부인 규(嬀)씨가 천하절색이었다. 식규(식나라 규씨)가 진나라 친정집에 가기 위해 채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다. 채애후가 말하기를, “처제가 우리나라를 지나가는데 내가 어찌 한번 상면하지 않겠는가?” 하고, 곧 사람을 시켜 궁중으로 데려오게 하여 접대하는데 희롱하는 말뿐이고 전혀 손님을 공경하는 뜻이 없었다. 식규가 크게 노한 마음을 품고 친정인 진나라로 갔다가, 마침내 채나라를 거치지 않고 식나라로 돌아갔다.
息侯聞蔡侯怠慢其妻,思有以報之。乃遣使入貢於楚,因密告楚文王曰:「蔡恃中國,不肯納款。若楚兵加我,我因求救於蔡,蔡君勇而輕,必然親來相救。我因與楚合兵攻之,獻舞可虜也。既虜獻舞,不患蔡不朝貢矣。」楚文王大喜,乃興兵伐息。息侯求救於蔡,蔡哀侯果起大兵,親來救息。安營未定,楚伏兵齊起。哀侯不能抵當,急走息城。息侯閉門不納,乃大敗而走。楚兵從後追趕,直至莘野,活虜哀侯歸國。息侯大犒楚軍,送楚文王出境而返。蔡哀侯始知中了息侯之計,恨之入骨。
식나라 군주는 자기 아내에게 채애후가 무례하게 대했다는 말을 듣고, 그 원수를 갚으려고 생각했다. 곧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어 공물을 바치며 초문왕에게 은밀히 고하기를, “채나라가 중원의 여러 나라를 믿고 초나라에 조공을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초나라 군사가 우리 식나라를 공격하면 우리는 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겠습니다. 채애후는 용감하지만 경박하여 반드시 친히 구원하려고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와 초나라가 군사를 합하여 채나라를 공격한다면 채애후 헌무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미 헌무를 사로잡으면 채나라의 조공을 받는 일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했다. 초문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군사를 내어 식나라를 공격했다. 식나라 군주가 채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자 채애후가 과연 대군을 일으켜 식나라를 구원하려고 친히 왔다. 채나라 군사들이 영채를 아직 세우기도 전에 초나라 복병이 일제히 일어나 기습하니, 채애후가 당해 내지 못하고 급히 식나라 도성으로 달아났다. 식후가 성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자 대패하여 도망쳤다. 초나라 군사들이 추격하여 곧바로 신야(莘野)에 이르러 채애후를 사로잡아서 식나라로 회군했다. 식나라 군주가 초나라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초문왕을 국경까지 나와서 배웅했다. 채애후가 이 모두가 식후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원한이 뼛속까지 사무쳤다.
楚文王回國,欲殺蔡哀侯烹之,以饗太廟。鬻拳諫曰:「王方有事中原,若殺獻舞,諸侯皆懼矣!不如歸之,以取成焉。」再四苦諫,楚文王只是不從。鬻拳憤氣勃發,乃左手執王之袖,右手拔佩刀擬王曰:「臣當與王俱死,不忍見王之失諸侯也!」楚王懼,連聲曰:「孤聽汝!」遂捨蔡侯。鬻拳曰:「王幸聽臣言,楚國之福。然臣而劫君,罪當萬死。請伏斧鑕!」楚王曰:「卿忠心貫日,孤不罪也。」鬻拳曰:「王雖赦臣,臣何敢自赦?」即以佩刀自斷其足,大呼曰:「人臣有無禮於君者,視此!」
초문왕이 회군하여 채애후를 죽여서 삶아 태묘에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육권이 간하기를, “대왕께서 바야흐로 중원을 도모하시려는데 만약에 채애후 헌무를 죽인다면 제후들이 모두 두려워할 것입니다. 채애후를 돌려보내서 동맹을 맺는 것이 낫습니다.” 했다. 두서너 번 굳이 간했으나 초문왕은 따르지 않았다. 육권이 분기가 일어나 왼손으로 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왕을 겨누면서 말하기를, “신이 차라리 왕과 함께 죽을지언정 제후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하니, 초문왕이 놀라서 연달아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말을 듣겠노라!” 하고, 마침내 채후를 풀어주었다. 육권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다행히 신의 말을 들어 주시니 이것은 초나라의 복입니다. 그러나 신하가 그 군주를 겁박했으니 그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청컨대 죽여 주십시오.” 하니, 초문왕이 말하기를, “경의 충성심은 저 해도 무색할 지경인데 내가 어찌 벌을 줄 수 있겠소!” 했다. 육권이 말하기를, “대왕께서 비록 신을 용서하셨으나 신이 어찌 감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즉시 칼로 발을 자르고, 큰소리로 외치기를, “신하로서 군주께 무례한 자는 이 꼴을 보아라.” 했다.
楚王命藏其足於大府:「以識孤違諫之過!」使醫人療治鬻拳之病,雖愈不能行走。楚王使為大閽,以掌城門,尊之曰太伯。遂釋蔡侯歸國,大排筵席,為之餞行,席中盛張女樂。有彈箏女子,儀容秀麗。楚王指謂蔡侯曰:「此女色技俱勝,可進一觴。」即命此女以大觥送蔡侯,蔡侯一飲而盡。還斟大觥,親為楚王壽。楚王笑曰:「君生平所見,有絕世美色否?」蔡侯想起息侯導楚敗蔡之仇,乃曰:「天下女色,未有如息媯之美者,真天人也。」楚王曰:「其色何如?」蔡侯曰:「目如秋水,臉似桃花,長短適中,舉動生態,目中未見其二!」
초문왕이 명하여 육권의 발을 나라 창고에 보관하게 하고, “내가 육권의 간언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초문왕은 의원를 불러 육권을 치료하게 하여 비록 상처는 나았지만 걸어 다니지는 못했다. 초문왕이 육권을 대혼(大閽)에 임명하여 성문을 담당하게 하고, 존칭하여 태백(太伯)이라 불렀다. 마침내 채애후를 석방하여 귀국시키려고 크게 전별연을 열어,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을 불러 접대하게 했다. 그중에 쟁(현악기)을 타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용모가 수려했다. 초문왕이 그 여인을 가리키며 채애후에게 말하기를, “저 여인은 미모와 재주가 빼어납니다. 술 한 잔을 바치게 하겠습니다.” 하고, 즉시 그 여인에게 명하여 큰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채후에게 바치게 했다. 채애후가 술을 받아 마시고, 다시 그 술잔을 채워 친히 초문왕에게 만수무강을 빌면서 바쳤다. 초문왕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평생에 절세미인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니, 채애후가 식나라 군주가 초나라를 끌어들여 자기를 초나라의 포로로 잡히게 한 원수임을 생각하고, 이에 말하기를, “천하의 미색으로 식규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없지요. 식규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입니다.” 했다. 초문왕이 말하기를, “그 아름다운 모습이 어떠합니까?” 하니, 채애후가 말하기를, “눈은 가을 물 같고 뺨은 복숭아꽃 같으며 그 길고 짧은 것이 적당하고 거동은 생기가 있어, 아직까지 그녀와 비교할 만한 여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했다.
楚王曰:「寡人得一見息夫人,死不恨矣!」蔡侯曰:「以君之威,雖齊姬宋子,致之不難,何況宇下一婦人乎?」楚王大悅,是日盡歡而散。蔡侯遂辭歸本國。楚王思蔡侯之言,欲得息媯,假以巡方為名,來至息國。息侯迎謁道左,極其恭敬。親自闢除館舍,設大饗於朝堂,息侯執爵而前,為楚王壽。楚王接爵在手,微笑而言曰:「昔者寡人曾效微勞於君夫人,今寡人至此,君夫人何惜為寡人進一觴乎?」息侯懼楚之威,不敢違拒,連聲唯唯,即時傳語宮中。不一時,但聞環珮之聲,夫人媯氏盛服而至,別設毯褥,再拜稱謝。楚王答禮不迭。
초문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식부인을 한번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소!” 하니. 채애후가 말하기를, “대왕의 위엄이면 비록 제나라 군주의 딸이나 송나라 군주의 아들이라도 어려움이 없을진대 하물며 휘하 식나라 군주의 부인인데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했다. 초왕이 크게 기뻐하며 채애후와 마음껏 마시고 헤어졌다. 이윽고 채애후가 작별의 인사를 초왕에게 올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초문왕은 채애후의 말을 생각하고 식규를 얻고자 하여, 지방을 순시한다는 핑계로 식국을 방문했다. 식나라 군주가 마중 나와 길에서 초왕을 알현하고 공경하기를 극진히 했다. 식후는 친히 관사의 청소를 감독하고 다시 조정에 큰 연회석을 마련하여, 식후가 앞으로 나가 큰 잔에 술을 따라 바치면서 만수무강을 빌었다. 초왕이 잔을 받으며 미소를 짓고 말하기를, “옛날에 과인이 그대의 부인을 위해 작은 수고를 했고, 지금 내가 여기에 와 있는데, 그대의 부인은 어찌하여 나에게 술 한 잔을 따르지 않소?” 하니, 식후가 초나라의 위엄에 두려움을 느껴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연신 “예, 예”라고 대답하고, 즉시 궁중에 사람을 보냈다. 얼마 후 패옥소리가 들리더니 부인 규씨가 성장하고 이르러 따로 담요를 펴고 초문왕에게 재배했다. 그러나 초문왕은 답례도 하지 못했다.
媯氏取白玉卮滿斟以進。素手與玉色相映,楚王視之大驚。果然天上徒聞,人間罕見,便欲以手親接其卮。那媯氏不慌不忙,將卮遞與宮人,轉遞楚正。楚王一飲而盡。媯氏復再拜請辭回宮。楚王心念息媯,反未盡飲。席散歸館,寢不能寐。次日,楚王亦設享於館舍,名為答禮,暗伏兵甲。息侯赴席,酒至半酣,楚王假醉,謂息侯曰:「寡人有大功於君夫人,今三軍在此,君夫人不能為寡人一犒勞乎?」息侯辭曰:「敝邑褊小,不足以優從者,容與寡小君圖之。」楚王拍案曰:「匹夫背義,敢巧言拒我?左右何不為我擒下!」息侯正待分訴,伏甲猝起,薳章鬥丹二將,就席間擒息侯而縶之。
규씨(嬀氏)가 백옥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초문왕에게 바쳤다. 하얀 손과 백옥 잔이 서로 비치어, 초왕이 보고 크게 놀랐다. 과연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라는 소문에 어긋나지 않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문득 초문왕이 친히 손을 내밀어 술잔을 받고자 했다. 규씨는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술잔을 궁녀 한 사람에게 넘겨 초왕에게 바치게 했다. 잔을 받은 초문왕은 한 번에 마셔 버렸다. 규씨가 다시 절을 하며 물러나기를 청하여 궁으로 돌아갔다. 초문왕이 식규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겨 술을 몇 잔 더 마시다가 자리를 파하고 관사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초문왕이 답례를 명목으로 다시 관사에 잔치상을 차려 놓고 무장한 병사를 몰래 매복시켰다. 식후가 와서 자리에 앉아 술기운이 무르익자 초문왕이 취한 척하면서 그에게 말하기를, “과인이 군주의 부인을 위해 큰 공을 세웠고, 지금 삼군의 군사들이 여기에 있는데, 군주의 부인은 어찌하여 과인을 위하여 군사들에게 음식으로 위로하지 않소?” 하니, 식후가 사양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변방의 작은 나라라 뛰어난 신하들의 수효가 부족합니다. 부디 작은 나라 군주의 처지를 용서해 주십시오.” 했다. 초문왕이 술상을 치며 말하기를, “필부가 의리를 배반하고 감히 교묘한 말로 나에게 거역하느냐? 좌우의 무사들은 어찌하여 이 자를 묶어서 끌어내리지 않느냐?” 했다. 식후가 호소하려는 순간 갑자기 매복한 무장병들이 달려 나오고, 원장과 투단 두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식후를 잡아서 묶었다.
楚王自引兵逕入息宮,來尋息媯。息媯聞變,嘆曰:「引虎入室,吾自取也!」遂奔入後園中,欲投井而死。被鬥丹搶前一步,牽住衣裾曰:「夫人不欲全息侯之命乎?何為夫婦俱死!」息媯嘿然。鬥丹引見楚王,楚王以好言撫慰,許以不殺息侯,不斬息祀。遂即軍中立息媯為夫人,載以後車。以其臉似桃花,又曰桃花夫人。今漢陽府城外有桃花洞,上有桃花夫人廟,即息媯也。唐人杜牧有詩云:「細腰宮裏露桃新,脈脈無言幾度春。畢竟息亡緣底事?可憐金谷墜樓人!」楚王安置息侯於汝水,封以十家之邑,使守息祀。息侯忿鬱而死。楚之無道,至此極矣!
초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곧바로 식나라의 궁궐로 쳐들어가서 식규를 찾았다. 식규가 변을 듣고 탄식하기를, “호랑이를 안방으로 불러들였으니 내가 자초한 것이다!” 했다. 식규는 곧바로 후원으로 달아나 우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고 했다. 그때 투단이 앞을 가로막으면서 옷자락을 붙들고 말하기를, “부인께서는 식후가 목숨을 보전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부부가 함께 죽으려고 하십니까?” 하니, 식규가 말이 없었다. 투단이 식규를 데리고 와서 초문왕을 뵙고, 초문왕이 좋은 말로 위로하여 식후를 죽이지 않고 식나라 제사를 없애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초문왕은 곧 군중에서 식규를 부인으로 세운 후에 뒤따르는 수레에 태웠다. (초나라 사람들은) 식규의 얼굴이 복숭아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도화부인(桃花夫人)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호북성) 한양성(漢陽城) 밖에 도화동(桃花洞)이 있고, 거기에 도화부인(桃花夫人)의 묘가 있는데, 이것이 식규의 무덤이다. 당나라 때의 두목(杜牧)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궁 안의 미인은 이슬 맺힌 복숭아꽃처럼 어여쁜데, 은근하구나! 말없이 몇 봄을 지냈던가? 필경 식나라는 그녀 때문에 망해 버리고, 금곡원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녹주(綠珠 ; 西晉 石崇의 첩)만 가련하구나.” 했다. 초왕이 식나라 군주를 여수(汝水)강변의 안치하고, 십 호의 읍에 봉하여 식나라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식후가 울분으로 죽었다. 초나라의 무도함은 이렇게 극에 달했다.
要知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뒷이야기가 어찌 될지 알고 싶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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