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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라선경 하권
16. 수행관입(修行觀入)
6입(入)이 각각 경계에서 지혜가 없는 중생을 속박하고, 탐욕의 마음 때문에 언제나 정상(淨想)을 일으키는 것이다.
수행을 하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모든 근(根)의 경계에서 법이 아닌 것을 방제(防制)하고 마음의 소연(所緣)을 거두어들여 이를 계박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6입을 바르게 관찰하면, 비유컨대 이는 마치 빈 마을과 같아서, 나와 나의 것을 여읠 것이다.
부정(不定)의 뜻이 곧 입처(入處)의 뜻이고 견하(牽下)의 뜻이 곧 입처의 뜻이니,
장차 중생을 데리고 악도(惡道)에 들 것이다.
또 내입(內入)의 모양이 마치 철장(鐵鏘)을 태우는 것과 같고,
매우 날카로운 검(劍)과 같고 예리한 칼과 같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이 모양을 본다면 능히 이를 버리고 여의어라.”
또 밖에서 나쁜 도둑들이 들어와서 좋은 보물들을 겁탈하는 것을 본다고 할 때,
이는 마치 수행하는 자가 정념(正念)을 버리고 모든 들어오는 문들을 개방해서 6경(境)이 마음대로 횡행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6경의 악한 도둑들이 정계(淨戒)를 겁탈하여 모든 공(功)을 잃게 함은,
마치 새들이 양쪽 날개가 없이 허공을 날려고 하는 것과 같고,
사람이 두 발이 없으면서도 먼 길을 가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행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저 정계의 공덕을 허물기 때문에 지(止)와 관(觀)의 두 날갯죽지가 영원히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생사를 벗어나려고 하여도 이것이 끝내 불가능하니,
마치 깨진 병에 물을 담으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과 같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아서,
삼매의 법수(法水)가 잠시 잠깐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다.
마치 천신의 덕병(德甁)을 잘 보호해서 이를 깨뜨리지 않으면 언제나 원하는 대로 다함이 없이 진보(珍寶)가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이,
수행을 하는 일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정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언제나 성스러운 공덕의 보배를 만들어 내지만,
조금이라도 그 덕병을 깨뜨리면 진보가 곧 소멸하여 버린다.
그러므로 만약 계병(戒甁)을 깨뜨리면 법보(法寶)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니,
이는 비유컨대 마치 사람이 그 코를 잘라버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즐거울 수 없는 것처럼,
파계를 한 비구도 역시 이와 같아서,
안으로 자신을 살펴보면 그 마음이 스스로 즐겁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백곡(百穀)과 약목(藥木)들이 땅을 의지하여 자라는 것처럼,
모든 선한 공덕들도 모두 정계를 의지하여 생긴다.
마치 전단(栴檀)을 몸에 바르면 열뇌(熱惱)를 제거하듯이,
정계가 청량(淸凉)하여 능히 욕화(欲火)를 중지시킨다.
마치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닿는 곳마다 뜨거운데도 이를 식히듯이,
정계 또한 이와 같아서,
번뇌의 불길 속에서 그 뜨거움을 식히는 것이다.
계율을 범한 비구는 스스로 생각할 때 그 죄가 깊어서 몸이 다하고 그 목숨이 끝나면 마침내 악도(惡道)에 들게 되어 그 마음이 항상 근심스럽고 후회를 하면서 죽음의 공포에서 떨지만,
정계를 지킨 사람은 마음이 언제나 기뻐서 살아서는 근심 걱정이 없고 죽어서는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정계가 사다리가 되어서 능히 깨달음의 경지[慧堂]에 오를 수 있으며,
정계가 장엄 도구가 되어 또한 잘 지키는 것이다.
계(界)가 사람을 이끌고 열반에 이르게 하며,
좋은 땅이 되어서 열 가지의 좋은 종자를 낳아서 기른다.
그리하여 교계사(敎誡師)가 때에 따라서 물을 대어주면,
그 신근(信根)이 뿌리를 내려서 무루(無漏)의 음(陰)이 줄기가 되고,
4여의(如意)가 싹이 되고, 자심(慈心)이 나뭇가지가 되고,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함을 아는 것이 그 가지와 잎이 되고,
7각의(覺意)가 꽃이 되고,
해탈의 지혜가 열매가 되고,
적멸의 법이 감로가 될 것이다.
계(戒)의 향기가 흘러나오면 모든 것이 두루 그 훈기를 쐬게 될 것이며, 성현(聖賢)의 조왕(鳥王)이 그 사이에서 머물 것이다.
그리고 비심(悲心)이 중음(重陰)이 되어서 청량한 그늘이 널리 덮을 것이며,
변재(辯才)를 가진 법사가 꿀벌왕[蜜蜂王]이 되어서 소리를 조화롭게 하며 서로 돌아보면서 일찍이 그 정미(精味)를 채취할 것이다.
그 나무가 곧고 길며 견고하고 정실(貞實)해서 허위와 첨곡(諂曲)과 부병(腐病)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공덕대수(功德大樹)라고 한다.
만약 모든 수행을 하는 자들이 열반을 추구하고 삼세의 고통을 멀리하여 해탈의 성(城)을 지향할 때에, 점차로 모든 공덕을 일으켜 행하여, 저 나무 아래에 쉬면서 법의 감로를 마시고 세 가지 갈애의 환란을 그치게 한다면, 그 몸이 안온하여져서 능히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 계(戒)에는 많은 숫자가 있으니, 혹은 1ㆍ2ㆍ3ㆍ4의 계가 있기도 하고, 혹은 7의 계가 있기도 하고, 혹은 12의 계가 있기도 하고, 혹은 21의 계가 있기도 하다.
순간순간 잠시 잠깐의 사이로 말하면 한량없는 계의 종류들이 있는데,
도공(道共)ㆍ정공(定共)ㆍ구생계(俱生戒)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 및 심회전(心廻轉) 등이 있다.
이 모든 계를 보면 그 모양이 각각 서로 다르니, 혹은 순수하고 청정하여 때가 없기도 하고 혹은 가볍고 엷어서 밝고 깨끗하기도 하다.
이와 같이 무구(無垢)한 계상(戒相)의 경계가 나타나면, 수행하여 의(依)ㆍ연(緣)ㆍ염(念)의 3처(處)에서 계상을 관찰해야 한다.
만약 도향(塗香)ㆍ유연(柔軟)ㆍ진구(塵垢)를 여의어 기쁘고 즐거우며 밝고 맑고 깨끗해지면 그것이 의지한 바의 모양이다.
그 땅처럼 넓고 평탄하여 묘화(妙華)와 보배의 그릇과 장엄한 장식구 등 여러 보배들이 매끄럽고 윤택할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수행을 하는 경계 중의 모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이는 마치 저 검정소[犛牛:야아크]가 그 꼬리를 보호함에 있어서 털끝 하나라도 나무에 붙어버리면 그 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그 털을 끊지 않듯이,
비구가 계를 보호함이 또한 이와 같아서,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계라고 하더라도 이를 죽음으로써 지켜서 범하지 않으면, 묘상(妙相)의 장엄한 몸이 모든 상호가 구족하여,
마치 저 밝은 가을달이 허공에서 비추는 것과 같다.
삼매를 수행하여 이와 같은 청정한 모양을 보고 나면, 그 뒤 목숨을 마칠 때까지 다시는 어떤 근심 걱정이나 후회가 없으며, 또한 그 열뇌(熱惱)가 없고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안열(安悅)과 환희가 용약(踊躍)하여 증장하고 적지(寂止)의 즐거움이 생기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가 소멸한다.
이와 같은 것들을 이름하여 억념(憶念)을 수행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또 세 가지 중에 다시 잡상(雜相)이 있어서, 이것이 교란시켜서 장애를 일으켜 실념(失念)토록 하여 마음이 머물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선하지 않은 악업을 뉘우쳐서 죽더라도 범하지 않으니, 행여 꿈속에서라도 이를 범하는 일이 없이 계를 지키는 일을 증익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계는 꽃다발[花鬘]이며 바르는 향[塗香]이며 몸을 장엄하는 온갖 장신구이다.”
향기로운 바람이 한쪽 방향에서 오면 이는 세계의 향기요, 여러 방향에서 오면 계덕(戒德)의 향기인 것이다.
혹은 몸에 수족과 눈과 귀와 코와 혀가 없어서 모든 지절(肢節)을 온전하게 갖추어 있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몸이 진애(塵埃)에 매몰되기도 하고,
혹은 자신을 관찰하여 모든 진구(塵垢)를 여의고 목욕을 한 다음 몸에 향을 바르고 그 위에 이름 있는 좋은 옷을 입기도 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의(依)ㆍ연(緣)ㆍ억념(憶念)을 수행하여 시라(尸羅)의 갖가지 여러 상[雜相]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의(威儀)ㆍ정공(定共)ㆍ도공(道共)의 세 가지 계를 모두 이미 이 가운데서 설하였으니,
이 세 가지의 계는 다시 거기에 한량없는 여러 가지 깊고 묘한 모양들이 있다.
지혜가 밝은 자는 마땅히 이를 널리 풀어서 설하여야 할 것이다.
수행하여 이미 정계(淨戒)를 본 다음여러 들어가는 산을 깨뜨리고자 할 경우 마땅히 두 가지의 법을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른바 지(止)와 관(觀)이다.
먼저 악을 여읜 기쁨과 즐거움이 그 몸에 충만한 것을 관한다면,
거칠고 껄끄러운 4대(大)가 멸하고 유순(柔順)한 4대가 생겨서,
적지(寂止)의 즐거움을 일으켜 일심으로 흩어지지 않고, 스스로 그 몸 안에서 마음을 들어가는 모양에다 묶어 두게 될 것이니,
마땅히 저 들어가는 모양이 일어나는 곳을 잘 수호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찰할 때에 희고 깨끗한 모양이 일어나면, 비구가 이 모양을 보아 이를 잘 수호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비유컨대 이는 마치 새끼를 품는 닭이 그 알을 잘 보호하여 반드시 이를 성취시키는 것과 같다.
비구의 수행 또한 이와 같이 오로지 정밀하게 수호하면 성취를 얻을 것이니, 열두 가지 수과상(修果相)의 나타남이 분명할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여 잘 수호할 때에, 모든 방일함을 여의고 수과(修果)를 성취한다면, 경계가 정묘(淨妙)해서 모든 번뇌의 염오를 여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밝음이 보주(寶珠)와 같고 또한 현수(懸水)와 같을 것이니,
경계가 광만(廣滿)한데 몸은 적은 부분에 처하여 두루 멀리 흐르다가 그런 뒤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시 돌아온 뒤에는 일상(一相)이 나타났다가,
이것이 다시 나뉘어서 두 부분이 되고,
이것이 또 다시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만다라(曼茶羅)의 경계를 이루어서 평정(平正)에 편안하게 머물러 두루 여러 모양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이 마치 뭇 별들이 빛을 발산하면서 포열하는 것과 같다.
그런 다음에 허물어진다.
허물어진 다음에 각각 흘러나왔다가 다시 합쳐져서 하나가 되어, 다시 두루 멀리 흘러나와 제방(諸方)을 충만하고,
제방을 충만한 다음에는 다시 돌아와서 안온하게 굳게 머무른다.
이처럼 굳게 머무른 다음에는 숙상(熟相)이 나타나고,
숙상이 나타난 뒤에는 갖가지 여러 모양들이 두루 널리 넓어져 미묘한 기복(器服) 등 모든 기이하고 특이한 모양들이 모두 그 경계에 나타난다.
안으로는 공취(空聚)에 들고 밖으로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과 3세의 세 가지 법인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 등 모든 것이 나타나서 그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또 외육입(外六入)은 도적과 같고 내육입(內六入)은 공취(空聚)와 같은데,
이들 내입과 외입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12입(入)의 여러 승묘(勝妙)한 모양들의넓음이 한량없으므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다라 중에서 이를 자세하게 설한 것이다.
또 수행을 하는 자는 이 경계에서 숙상(熟相)이 일어나며,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허물어지는데,
그 사이에 단리상(斷離相)이 있고,
그 단리상이 매우 먼 곳에 흘러 한 곳에 머물게 된다.
마치 보병(寶甁)에 물을 담는 것과 같아서 물을 담은 뒤에 다시 이를 열면 점점 그것이 적멸(寂滅)하는 것을 보게 되며,
그것이 적멸한 다음에는 다시 여러 나머지의 일체 공덕의 모양들이 생기게 된다.
제입(諸入)의 문 중에는 언제나 여러 모양이 흘러나오며,
그것이 각각에서 흘러나온 뒤에는 다시 한 곳에서 만다라를 이루는데,
만다라 위에서는 다시 자상(自相)이 일어나고,
자상이 일어나면 다시 그것이 익으며,
익고 나면 오래지 않아서 적멸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수행을 다시 한결같고 순수하게 하기를 더하면,
곧 거기서 청정하고 미묘한 선상(禪相)이 일어나며,
이처럼 선상이 일어나면 전과 마찬가지로 차례로 적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제입(諸入)의 가운데서 수행할 때에 다시 갖가지 묘상(妙相)이 있어서,
그 마음을 묶어 둔 곳에서 결정상(決定相)이 일어나는 것을 이름하여 계(髻) 가운데의 명주(明珠)라고 하는데, 삼매를 비유하는 것이다.
수행하여 스스로 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여러 보장(寶藏) 위에 보련화(寶蓮花)가 있음을 보며,
수행하여 스스로 그 몸이 연화(蓮花) 위에 있어 온갖 보물과 미묘한 꽃들이 장엄하고 꾸며서 둘러싸고 있음을 본다.
또 세존께서 수다라에서 여섯 중생을 비유하여 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을 하는 자가 여기서 구족하게 관찰한다면,
이른바 눈은 개가 되어서 오색촌(五色村)을 뛰어다니고,
귀는 새가 되어서 허공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오고,
코는 독사가 되어서 향기의 구멍을 찾고,
혀는 야간(夜干)이 되어서 죽은 시체의 다섯 가지 맛을 탐하고,
몸은 수수마라(輸收磨羅)가 되어서 언제나 촉해(觸海)에 들기를 즐기고,
마음은 원숭이가 되어서 언제나 3세의 법림(法林)에서 제멋대로 놀기를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여섯 가지의 중생들을 한 곳에다 묶어 두어서 각기 즐거운 곳을 자재로이 놀 수 없게 하듯이,
저 수행을 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삼매의 정념으로 6근을 묶어 두어서 그 인연하는 바를 따라 자유로이 방종할 수 없도록 한 다음에야,
청정한 지혜로써 법의 진실을 볼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6경 가운데 탐착하여 한량없는 악법(惡法)을 희망한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의 경계에 낙착(樂着)해서 스스로 장애를 일으켜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모두 제거하여 없애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하여 그 생사를 깨뜨리고 열반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모든 근(根)을 항복시켜 멀리 경계를 여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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