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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입능가경 제4권
3. 무상품 ①[3]
[아홉 가지 옮기고 변하는 견해轉變見]]
또한 대혜여, 모든 외도는 아홉 가지 옮기고 변하는 견해[轉變見]가 있느니라.
이른바 형(形)이 바뀌어 변함[形轉變]ㆍ상이 변함[相轉變]ㆍ
인이 변함[因轉變]ㆍ상응하여 변함[相應轉變]ㆍ
견해가 변함[見轉變]ㆍ생이 변함[生轉變]ㆍ사물이 변함[事轉變]ㆍ
연이 명료하게 변함[緣明了轉變]ㆍ지은 것이 명료히 변함[所作明了轉變]의 아홉 가지이다.
일체 외도는 이 견해를 인으로 하기 때문에 유ㆍ무의 전변론(轉變論)을 일으킨다.
이 가운데서 형(形)이 변한다는 것은 형이 달라진다는 견해이니,
비유하면 금으로 장엄하는 도구를 만듦에 가락지, 비녀, 영락 등 여러 가지가 같지 아니하며 형상이 다르나 금의 체성[金體]은 변함이 없듯이 일체법의 변함 또한 이와 같다.
모든 다른 외도는 갖가지를 헤아려 집착함이 모두 이와 같이 아니하고, 또한 특별히 다르지도 아니하다.
다만 분별하는 까닭에 일체가 변함이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우유ㆍ타락[酪:우유를 가공한 것]ㆍ술ㆍ과일 등이 익는 것과 같이,
외도는 이것이 모두 변함이 있다고 말하나, 실은 변함이 없다. 있고 없는 것은 자기 마음으로 보는 것이요, 밖의 물건[外物]은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 어리석고 미혹한 범부가 스스로 분별한 습기에서 일으킴이요 실은 한 법도 생기거나 멸함이 없나니,
요술과 꿈으로 인하여 모든 물질을 보는 것과 같고,
석녀의 아이가 나고 죽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형상과 장소와 때가 변한다고 하고
대종(大種:四大)과 모든 근(根)에서
중유(中有:중음)가 점차 생긴다 하나
망상일 뿐 밝은 지혜는 아니니라.
모든 부처님은 연기와
세간을 분별하지 않나니
다만 모든 연기와 세간은
건달바성(乾闥婆城) 같으니라.
[일체법의 깊은 비밀의 뜻과 뜻의 모양]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여래께서 저희를 위하여 일체법의 깊은 비밀의 뜻과 뜻의 모양을 알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와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잘 알게 하시어 말씀과 같이 뜻을 취하여 깊은 비밀의 집착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문자와 언어의 허망한 분별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널리 일체 모든 불국토에 들어가 힘[力]과 신통 자재한 총지(總持)의 도장을 얻으며[所印], 깨달은 지혜의 십무진원(十無盡願:보현 십대원)에 잘 머물며, 공들임이 없이[無功用] 갖가지로 변화하여 나타나게 하시고,
광명을 밝게 비춤이 해와 달ㆍ마니ㆍ땅ㆍ물ㆍ불ㆍ바람과 같고, 모든 지(地)에 머물러 분별의 견해를 떠나며, 일체법이 환(幻)과 같고 꿈과 같음을 알고, 미래의 지위[位]에 들어가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법이 허망하고 진실하지 아니함을 알게 하시고,
있고 없다는 종류[有無品]를 떠나 생멸의 집착을 끊고 말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의지하는 곳을 바꾸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대혜여, 일체법에서 말과 같이 뜻을 취하여 집착함이 깊고 비밀하여 그 수가 한량없나니,
말하면 모양[相]에 집착하고, 인연[緣]에 집착하고,
있다거나 있지 않음에 집착하며,
생기거나 생기지 않음에 집착하며,
멸하거나 멸하지 않음[滅非滅]에 집착하며,
타거나[乘] 타지 않음에 집착하며,
한다거나[爲] 함이 없음에 집착하며,
지(地)와 지의 자기 모습[地自相]에 집착하며,
스스로가 분별하여 현재 깨달았다고 집착하며,
외도의 종(宗)ㆍ유(有)ㆍ무(無)ㆍ품(品)에 집착하며,
3승(乘)과 1승(乘)에 집착하는 것이다.
대혜여, 이들 비밀의 집착은 한량없는 종류가 있으나, 이것은 다 어리석은 범부가 스스로 분별하여 집착한 비밀의 집착이니,
이 모든 분별은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것과 같아 상상의 실로 스스로도 얽어매고 남도 얽어매어, 있고 없음에 집착하여 욕락(欲樂)에 굳게 집착한다.
대혜여, 이 가운데에 비밀이나 비밀 아닌 모양이 없나니, 보살마하살이 일체법을 봄에 고요함에 머무는 까닭에 분별이 없다.
만약 모든 법이 오직 마음으로 보는 것임을 깨달아 밖의 물건은 없고 다 같이 모양이 없음에 순수하게 따라 관찰하면, 있다거나 없다고 함을 분별하고 비밀히 집착하여 모두 고요함을 본다.
그러므로 비밀함이나 비밀이 아닌 모양이 없다.
대혜여, 이 가운데는 속박도 없고 또한 해탈도 없으나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속박과 해탈을 본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이 있다거나 없다고 하여 그 체성을 찾지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세 가지 비밀의 속박이 있나니,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과 내생(來生)을 애착함과 기쁨을 탐애함과 함께 함이니,
이런 비밀의 속박으로 모든 중생이 상속하여 다섯 무리[五趣]에 태어나게 한다.
만약 비밀한 속박을 끊으면 이것은 곧 비밀과 비밀 아닌 모양이 없다.
또한 대혜여, 만약 세 가지 화합한 인연에 집착함이 있으면 모든 식(識)이 비밀하게 속박하여 차례로 일어난다.
집착이 있는 까닭으로 곧 비밀의 속박이 있고,
만약 3해탈(解脫)을 보고 세 가지 화합한 식[和合識]을 떠나면 일체 모든 비밀이 모두 다 생기지 않는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실하고 허망한 분별
이것은 비밀한 모양이라 하고
만약 능히 진실과 같이 알면
모든 비밀의 그물 다 끊어지리라.
어리석은 범부 능히 깨닫지 못하고
말 따라 뜻을 취하네.
비유하면 누에가 고치 치듯
망상에 스스로를 얽어매느니라.
[하밍힌 분별]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갖가지 마음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지만 모든 법은 자성이 있지 아니하고 다만 이것은 허망한 분별일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다만 잘못된 분별로 모든 법이 없다면 물들거나 깨끗한 모든 법은 장차 모두 허물어짐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렇고 그렇다.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일체 어리석은 범부가 모든 법을 분별한다.
그러나 모든 법의 성품은 이와 같이 있지 아니하니 이것은 다만 허망한 집착일 뿐 성품과 모양은 없다.
그러나 모든 성자는 성스러운 지혜의 눈으로 진실과 같이 모든 법의 자성이 있는 것을 알고 본다.”
대혜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성인들같이 거룩한 지혜의 눈으로 모든 법의 성품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천안(天眼)이나 육안(肉眼)이 아니고 어리석은 범부가 분별하는 것과 같지 않다면,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가 분별을 떠나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聖法]을 깨달아 알지 못합니까?
세존이시여, 그들(범부)은 전도(顚倒)됨도 아니요 전도되지 아니함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보는 법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성인의 견해는 유(有)ㆍ무(無)의 모양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며,
성인은 또한 범부가 분별하는 것과 같이 분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행하는 경계의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성인)도 또한 모든 법성의 모양을 허망하게 집착한 성품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보기 때문이며,
인연이 있음[有因]과 인연이 없음[無因]을 설하시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법성의 모양의 견해[諸法性相見]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다른 경계도 이미 이와 같지 아니하나니, 이와 같으면 곧 끝없는 과실[失]이 이루어지거늘, 누가 능히 법에서 성품과 모양을 깨달아 알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성품과 모양은 분별을 인하지 않는데, 왜 분별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분별상(分別相)이 다르고 모든 법상(法相)도 다르다면 인이 서로 같지 않은데 어찌하여 모든 법이 분별에서 시작된다고 합니까?
또한 무슨 까닭으로 어리석은 범부는 분별하나 제법은 이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고, 중생으로 하여금 분별을 버리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분별하여 보는 법의 모양과 같은 이와 같은 법이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유무(有無)의 견해에 집착한 법을 떠나게 하시며, 또한 바른 지혜의 경계에 집착하여 있다는 견해[有見]에 떨어지게 하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적정(寂靜)ㆍ공(空)ㆍ무(無)의 법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바른 지혜의 자성의 일[聖智自性事]만을 설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고요하고[寂] 공한 법을 설하지 않아서 유(有)의 견해에 떨어지게 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바른 지혜의 자성의 일을 설했기 때문이다.
나는 중생의 시작 없는 때부터 있다고 헤아려 집착하는 것을 위하여 고요한 법에서 성스러운 일[聖事:聖智自性事]을 설하였다.
이제 그들이 법문을 듣게 하고 나서 공포가 생기지 아니하고 능히 깨닫고 의혹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떠나 유식(唯識)의 이치에 들어가,
보는 바가 밖의 법이 없음을 알고 3해탈문(解脫門)을 깨달으며,
진실과 같은 인(印)을 얻어 법의 자성(自性)을 보고 성인의 경계[聖境界]를 깨달으며,
유무(有無)의 일체 모든 집착을 멀리 떠나게 한다.
또한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일체 제법은 모두 다 생기지 않는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 법은 본래 없기 때문이고, 또 그 근본은 생상(生相)을 인(因)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혜여, 일체법은 불생(不生)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종(宗)은 상대가 있어서 생기기 때문이다.
또 종(宗)은 곧 일체법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니, 생기지 않는 모양[不生相]도 또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종(宗)도 모든 분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또 그 종에서 유무(有無)법이 모두 생기지 않고,
이 종은 곧 일체법 속에 들어가 유무의 모양도 또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 종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니, 반드시 이와 같이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분별은 과실이 많기 때문이요,
바뀌고 바뀌어[展轉] 인(因)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불생(不生)과 일체법ㆍ공(空)ㆍ무자성(無自性)도 또한 이와 같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일체 법을 환(幻)과 같고 꿈과 같다고 말해야 하나니,
보아도 볼 수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이 모두 미혹하고 어지러운 모양이기 때문이니,
어리석은 범부가 공포심을 내는 것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대혜여, 범부는 어리석어 유ㆍ무의 견해에 떨어져 있으므로 그들로 하여금 놀라고 두려움이 생기게 하여 대승을 멀리 떠나게 하지 말라.”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성 없고 말이 없고
일이 없고 의지처가 없는데
어리석은 범부는 허망하게 분별하니
나쁜 사상[惡覺]은 죽은 시체와 같으니라.
일체법 생기지 아니함은
외도가 세운 바라
그 있는 바의 생(生)으로
인연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 까닭이니라.
일체법 생기지 아니함을
지혜로운 이 분별하지 않나니
그 종취[宗]는 생(生)을 인한 까닭이라고
이러한 생각[覺]은 곧 무너지리라.
비유하면 눈에 병이 있으면
망상으로 털 수레바퀴 보이듯이
모든 법 또한 이와 같아
어리석은 범부는 허망하게 분별하느니라.
삼계[三有]는 오직 거짓 이름뿐
진실한 법체(法體)는 없건만
이로 말미암아 거짓 시설하여
분별하여 허망하게 헤아리느니라.
거짓 이름의 모든 일과 모양에
마음과 식(識) 움직여 어지럽히니
불자는 모두 뛰어넘어
유행(遊行)함에 분별없느니라.
물이 없는데 물[水相]을 가지려 함은
갈애(渴愛)로 말미암아 생기니
어리석은 범부가 보는 법은 그러하나
모든 성인은 그렇지 않느니라.
성인의 견해는 청정하여
3해탈(解脫)을 생(生)하고
생멸을 멀리 떠나
무상(無相)의 경계를 항상 행하느니라.
모양 없는 경계 수행하여
또다시 유(有)와 무(無)도 없고
유ㆍ무가 다 평등하니
그러므로 성과(聖果:열반)가 생기느니라.
어떤 것이 법의 유ㆍ무이며
어떤 것이 평등을 이루는가?
만약 마음에 법을 깨닫지 못하면
안팎이 이에 움직여 어지럽느니라.
깨닫고 나면 평등하리니
어지러운 모습 그때 멸하리라.
[모든 경계는 임시의 이름[假名]이다]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로는,
‘만약 경계가 다만 가명(假名)이요 전혀 얻을 수 없나니, 취할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는 까닭에 또한 능히 취함[能取]도 없고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둘이 다 없는 까닭에 분별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름하여 지혜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그 지혜는 경계에서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일체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의 같고 다른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법의 자상ㆍ공상이 여러 가지로 같지 아니하고 다시 서로 은폐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하십니까?
산ㆍ바위ㆍ석벽ㆍ발[簾]ㆍ장막에 덮이고 막히어서 얻지 못합니까?
지극히 멀고 지극히 가깝고, 늙고 젊고, 눈멀고 어둡고 모든 근(根)이 불구라서 얻지 못합니까?
만약 모든 법의 자상ㆍ공상의 같고 다른 뜻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에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이것은 지혜라 이름할 수 없고 마땅히 이것은 지혜가 없음이며 경계가 있으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법의 자상ㆍ공상이 여러 가지로 같지 않고 다시 서로 은폐되어 얻지 못한다면, 이것도 또한 지혜가 아닐 것이며 경계를 인식하기를 지혜라 하는 것이기에 지(智)는 곧 알지 못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산ㆍ바위ㆍ석벽ㆍ발ㆍ장막이 덮고 막아서 지극히 멀고 지극히 가깝고, 늙고 젊고, 눈멀고 어두워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한 지혜가 아니니, 경계가 있으나 지혜가 구족하지 못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이것이 진실한 지혜이니 너의 말과 같지 않다.
내가 설한 것은 숨기고 덮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나는 말하기를,
‘경계는 오직 가명이라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다만 이것이 자기 마음에 보는 바가 밖의 법[外法]의 유ㆍ무를 알므로 지혜를 그 가운데서 필경 얻을 수 없다.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이염(爾焰:境界, 所知)이 일어나지 않고 3해탈문에 들어가 지혜의 체성[知體]도 또한 잊는다.
3 일체 각상(覺相:깨닫고 생각함) 범부는 무시이래로 희론에 훈습되어 밖의 법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갖가지 형상(形相)을 헤아려 집착함이 같지 아니하니,
이와 같이 앎을 이름하여 모든 법이 오직 마음으로 본 것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나와 내 것을 분별하는 경계와 지혜에 집착하여 밖의 법이 있고 없음을 알지 못하고, 그 마음이 단견(斷見) 가운데 머물러 있는 까닭으로,
이와 같은 분별을 버리고 떠나게 하려고 일체 법은 오직 마음으로 세워 일으킨 것이라고 설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반연할 바가 있는데
지혜가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혜가 없음이요 지혜는 아니니
이것을 망계(妄計)라 이름하느니라.
끝없이 서로 숨고
막고 또 멀고 가까우나
지혜 능히 보지 못하니
이를 삿된 지혜라 이름하느니라.
늙고 젊고 모든 근(根) 어두워
진실로 경계가 있는데
능히 지혜 생기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을 삿된 지혜라 하느니라.
또한 대혜여, 어리석은 범부는 시작 없는 예부터 허망하고 거짓되며 악하고 삿된 분별의 환(幻)에 미혹되어 실다움과 말[言說]의 법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 밖의 모양을 헤아리고 방편의 말에 집착하여 능히 청정하고 진실하게 4구(句)를 떠난 법을 닦고 익히지 못한다.”
[언설법(言說法)과 여실법(如實法)]
대혜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고 그러하옵니다. 진실로 세존께서 가르치신 바와 같습니다.
원하옵건대 저희를 위하여 여실한 법과 언설(言說)의 법을 설하시어 저와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에서 선교방편을 얻게 하시여 외도와 2승이 능히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대혜여, 3세(世) 여래께서는 두 가지 법이 있나니,
언설법(言說法)과 여실법(如實法)이다.
언설법이란 중생심을 따라 갖가지 방편으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다.
여실법이란 수행자가 마음에 나타나는 것에서 모든 분별을 떠나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구족하다거나 구족하지 않는 종류[品]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일체 마음[心]ㆍ뜻[意]ㆍ의식(意識)을 뛰어넘어 스스로 깨닫는 바른 지혜로 행하는 경계에서 모든 인연과 상응하는 견상(見相)을 떠나는 것이니,
일체 외도와 성문ㆍ연각의 2변(邊)에 떨어진 이는 능히 알지 못하므로 이것을 여실법이라 한다.
이 두 가지 법을 너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잘 닦고 배워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두 가지 법 설하니
말로 가르침[言敎]과 진실[如實]법이니
언교법[敎法]은 중생에 보이고
여실법[實]은 수행자를 위함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