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의 꽃다발, 이삭이 패었다
한 해에 논둑을 네다섯 번은 베는 것 같다. 8월 하순 벼꽃 핀 후 논둑을 또 벴다. 우리가 짓는 논이 아홉 배미라 베야 할 논둑도 수십 군데다. 우리 논배미가 모여 있는 논둑은 언제 베도 관계없지만, 남의 논과 우리 논을 경계 짓는 논둑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운다. 풀 자라는 속도로 보아 며칠만 더 기다리자 했다가, 하루 만에 싹 베어진 논둑 앞에서 민망하고 난감하다. 그런 경험을 한번 하고 나면 다음 풀 벨 시기엔 며칠 앞당겨 예초기를 들게 된다. 우리 논둑 남이 베어주는 걸 보느니, 차라리 우리가 먼저 남의 논둑 베는 게 낫다.
우리 논과 남의 논을 구분 짓는 경계 논둑을 예초기로 벴다.
이웃 농부들의 연배가 60~80대, 내것 네것 칼같이 계산하고 가르는 세상을 살아오시지 않았다. 내 논둑 베는 김에 남의 논둑 벨 수도 있는 거고, 내 집 앞 치우다 내친 김에 마을길 청소도 할 수 있는 게지. 여럿이 함께 먹은 밥값이야 오늘은 내가 내고 내일은 네가 내면 되지 않는가 말이다. 그게 자연스럽다 여기며 살아온 세대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50대 후반에 ‘청년’ 소리를 듣는 옆사람도 그와 다르지 않아, 남보다 앞서서 밥값을 내고 시간 날 때 마을길 풀 깎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농촌에서는 이런 모습이 흔하다. 아직까지는.
한 달 전쯤, 논 아홉 배미 중 한 곳에서 신기한 장면과 마주쳤다. 우리 논과 옆 논의 경계 논둑이 베어져 있는데, 논둑 중앙에서 옆 논 쪽으로 절반은 깨끗하게 깎여 있고, 우리 논 쪽으로 절반은 풀이 무성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웃음이 터졌다.
절반만 깎은 경계 논둑.
얼마 전 아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식당에 가든 술집에 가든 ‘더치페이’가 기본이란다. 식당에선 자기가 먹은 음식값만 내고, 술자리에선 보통 1/n로 나누는데 카카오톡 정산하기 기능을 사용하면 개인 할당 금액을 간편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로 1원 단위 잔돈까지 송금할 수 있으니 정산도 깔끔하다고 했다.
그렇구나. 체면 때문에 밥값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없고, 한 번 얻어먹었으니 다음번엔 내가 사야 한다는 암묵적 채무도 없으며, 중요하지 않은 관계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과한 허세나 시혜적 태도도 차단할 수 있으니 그거 괜찮겠다 싶다. 그런데 곧장 따라붙는 생각. 나라면? 옆사람이라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면? 이런 ‘각자 내기’가 가능할까? 답은 바로 나온다. 불가능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고 인간관계가 심플한 나도, 누굴 만나 음식값을 각자 내는 상상을 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냥 내가 내고 말지, 어떻게 그 자리에서 밥값을 나눈단 말인가. ‘각자 내기’에 딸려오는 불편한 감정엔 인색함, 야박함, 궁색함, 어른답지 못함, 체면, 평판, 자존심 같은 부정적 어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젊은 세대의 더치페이에 대해선 합리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는 이 심리는 뭔가.
더치페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나만큼이나 더치페이가 어색할 거다. 더치페이가 편한 젊은 세대를 만나더라도 음식값을 나눠 낼 것 같진 않다. 그냥 사주고 싶다. 남한테 궁핍을 드러내는 게 거북하고, 아무리 돈이 없어도 계산은 내 카드로 하는 게 마음 편하며, 대접을 받으면 나도 대접하는 것이 도리라 여기고 살아왔다. 관념이 몸에 붙고 태도가 습관이 되었다. 나도 영락없는 구세대구나.
절반만 깎은 야박한 논둑 앞에서 더치페이를 떠올리다 옆사람에게 물었다. “전에도 이런 적 있어?” “아니. 주인이 바뀌었나? 최근에 본 적이 없네.” 우리가 짓는 이 논은 임대 논이다. 옆 논도 누군가 새로 임대했을지 모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젊은 사람일 것 같다. 마을의 ‘청년’인 우리보다 더 젊은 사람. 반쪽만 풀이 사라진 논둑이 검은 교복 시절 ‘바리깡’으로 절반만 밀어버린 중학생 두상처럼 우스꽝스럽다. “귀엽네.” 그가 쿡쿡 웃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여름 풀이 금세 자라 논둑을 덮었다. 중앙분리선이 뚜렷했던 경계 논둑도 이쪽저쪽 공평하게 무성해졌다. 이번엔 옆사람이 선수를 쳤다. 예초기를 둘러맨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계 논둑의 이쪽저쪽을 차별 없이 말끔하게 베어버렸다. 나중에 옆 논의 농부가 보면 민망하고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민망함을 걱정해 주느라 절반만 베고 말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 방식이니까.
벼꽃 한 송이가 쌀 한 톨
벼꽃이 피었다. 여름 내내 등을 떠밀던 일거리들이 일시에 멈춘 느낌이다. 매일 논을 오가며 물 관리를 하고 논둑도 돌아가며 베야 하지만, 한여름 논매기에 비하면 그 정도야 가볍다.
벼 줄기 속에서 이삭이 올라온다. 이를 ‘출수’라 한다.
이삭이 패기 직전, 벼 줄기는 임신한 배처럼 불룩해진다. 이때를 수잉기(穗孕期)라 하는데, 벼가 어린 알곡을 배는 시기라 아이 밸 잉(孕) 자를 쓴다. 얼마 후, 줄기를 감싼 잎을 뻐근하게 벌리며 어린 이삭이 머리를 밀어 올린다. 우리말로는 “이삭이 팬다” 하고 한자로는 ‘출수(出穗)’라 쓴다. 날 출(出)에 이삭 수(穗). 처음 들었을 땐 낯설고 어렵던 ‘출수’라는 어휘가, 벼 이삭이 줄기 사이로 머리를 밀어 올리는 모습을 보자 그림처럼 생생해진다. 도시민일 땐 생경했던 용어들이 농부의 기억과 경험에 링크되며 쉬운 용어로 변해가는 것, 나름 재미있다.
이삭 줄기 하나에 대략 1백여 개의 벼알이 달린다. 이삭은 벼의 꽃다발이다. 먼저 올라온 벼알부터 꽃을 피우는데 저게 꽃인가 싶을 만큼 꽃 같지가 않다. 벼는 속씨식물이라 벼 껍질(왕겨) 안에서 폐화수정(閉花受精)을 한다. 꽃가루받이를 곤충에 의존하지 않는 자가수분 식물이라 고운 꽃잎이나 달콤한 꿀이 필요치 않다.
벼알의 열린 껍질 사이로 하얀 수술이 고개를 내민다.
초록의 벼 껍질이 양쪽으로 벌어지면 벼알 안에서는 조용한 소동이 벌어진다. 6개의 하얀 수술이 앞다투어 고개를 들고, 수술의 꽃밥이 터져 꽃가루가 흩날린다. 꽃가루는 벼알 깊숙이 들어앉은 암술머리로 내려앉는다. 한 알의 쌀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이 모든 과정이 1~2시간 안에 끝난다. 수정이 되면 벼는 껍질을 닫고 벼알을 키운다. 자라나는 어린 벼알에는 어미 벼의 모든 데이터가 들어있다. 암술과 수술의 꽃가루받이가 벼알 내부에서 이루어지니 외부 품종이 섞일 염려가 없다. 그렇게 벼는 제 종자를 이어간다.
이 무렵 벼꽃을 보면 어린 이삭에 희끗희끗 깨알 같은 게 묻어 있다. 수정을 마친 벼의 꽃밥들이다. 잠깐 열렸던 벼 껍질이 도로 닫히면 바깥으로 튀어나온 수술 꽃밥은 구슬 장식처럼 이삭에 붙어 있다가 누렇게 시든다. 그리고 이내 떨어진다.
벼꽃이 지고 있다. 이제 알곡의 시간이다.
벼꽃은 처서 무렵 핀다. 보통 맑은 날 오전 10시 전후에 껍질이 열려 미세한 바람의 흔들림으로 수정된 후 정오를 지나 문이 닫힌다. 바람이 수정을 돕는 풍매화라 꽃가루가 비에 젖으면 수정이 어렵다. “처서에 비가 오면 단지에 곡식 준다”, “자마구(벼의 꽃가루) 때 비 오면 흉년 든다”는 옛말은 그런 맥락에서 생겼다.
무농약과 유기농의 차이
친환경 인증기관 담당자가 우리 논에 왔다.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 이삭 출수 후에 시료(벼)를 채취해 ‘작물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무농약 또는 유기농 재배 농가들이 해마다 거치는 친환경 인증 과정의 하나다. (연초엔 ‘토양검사’를 한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나와서 무작위 토양 샘플을 채취한다.)
40만 원 남짓 되는 인증심사비는 농업인이 낸다. (무농약, 전환기, 유기농 각각 따로 부과) 인증심사는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인증기관에 맡겨 진행하는데, 채취한 시료를 검사하여 인증에 통과하면 지자체에서 심사비를 지원해 농업인에게 돌려준다. 그러나 기준에 안 맞는 물질(농약, 제초제, 비료 성분 등)이 검출되면 불합격 처리하고 심사비는 돌려주지 않는다. 인증은 매해 갱신해야 한다.
인증기관 담당자가 낫과 시료용 비닐을 들고 논에 들어가 이삭을 채취하고 있다.
‘무농약’과 ‘유기농’의 차이는 뭘까? 소비자들 사이에선, 무농약은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를 1/3 이하로 사용한 농산물, 유기농은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대신 유기질 퇴비를 쓰는 농산물, 이렇게 간단히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생산자에겐 세부적인 조항이 더 있다. 다음은 인증기관 담당자에게 물어서 정리한 친환경 벼 인증 조건이다.
① 무농약 :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있다.(단, 관행농의 1/3 이내) 화학비료를 쓸 수 있으므로 소먹이 작물(이탈리안 라이그라스 등)을 이모작으로 재배해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화학농약과 제초제를 치면 안 된다. 무농약은 유기농의 전 단계가 아니다.
② 유기농 :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안 된다. 화학농약과 제초제를 치면 안 된다. 인증받은 유기질 퇴비만 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공시한 유기농업 자재(미생물, 오일, 토탄 등 유기질 자재)는 사용 가능하다. 토양 지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풋거름작물을 윤작한다. (질소 고정하는 콩과식물인 헤어리베치를 겨울 동안 재배)
③ 전환기 유기농 : 유기농의 전 단계다. 재배 조건은 유기농과 같다. 최소기간 3년을 거쳐 유기농으로 넘어간다.
논에 꽂은 친환경 인증 깃발.
화학 약제를 잘 모르는 데다 관심도 없었던 우리는 처음부터 농약과 제초제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기농 인증까지 받게 됐다. 옆사람은 “그냥 나랑 안 맞아서”라고 말한다. ‘환경’과 ‘생태계’를 살린다는 의미부여는 우리한테 과하다. 우리 논밭에 농약 안 친다고 인류가 쉴 새 없이 착취해온 지구 생태계가 살아나리라 여기지 않는다. 다만 잠시 땅에 발붙였다 떠날 존재로서 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물을 건강하게 키워서 우리와 연결된 이들을 먹이고 싶다. 그것이 작은 보람이다.
이삭이 여물기 시작하는 논.
황대권 선생은 오래전 『고맙다 잡초야』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혁명은 귀농”이라 했는데 글쎄, 혁명인지는 모르겠고, 우리에게 농사는 삶의 방편이다. 한 해 농사지은 쌀을 돈으로 바꿔 다음 해 수확 전까지 빠듯한 생활을 유지한다. 농사로 생계유지가 가능해진 게 불과 3년 전부터다. 먹고사는 일은 생각보다 무겁고 엄중하다.
귀농해 소농으로 사는 것도 좋고, 귀촌해서 작은 텃밭을 일구는 것도 좋고, 도시 텃밭이나 주말농장을 경험하는 것도 좋다. 흙을 만지고 작물을 돌보는 동안 일상에 빈틈이 생기고 새 기운이 들어온다. 기왕이면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길러보길 권한다. 건강한 채소를 자급하는 즐거움이 클 것이다. 텃밭이 소규모라면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일이 대다수 관행농들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작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행여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넉넉한 경제적 자원을 가졌거나 농사 외 생계 수단이 있는 이들이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자급하는 것과, 수천수만 평 논밭에서 키운 채소와 곡식을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잇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농사로 생계를 잇는 어려움을 잘 알기에 주위의 관행농들을 깊이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초제는 좀 줄여나갔으면 좋겠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