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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문보살십주제구단결경 제6권
17. 변재품(辯才品)
그때에 최승보살이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보살은 온갖 덕을 두루 갖추어 중생을 끊겠다는 희망과 모든 것을 배부르게 하고 혐오나 원한이 없게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최승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광명]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이제 너에게 이것을 분별하여 주리라.
보살이 처음 발심(發心)해서부터 부처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청정한 도량을 장엄하여 큰 광명을 놓아 그의 경계에 비추면 어두운 곳에서도 그의 광명을 받으며,
그 광명을 본 이면 마음에 두려움을 품지 않고 어려운 바가 없으며,
마음이 드디어 왕성하여 갑절이나 더 기쁘게 하고,
공덕을 더욱 늘려 청정한 행을 여의지 않고,
스스로 그의 행을 청정하게 하고 위없는 도를 닦으며,
공덕의 업(業)으로 하여금 다할 수 없고 지혜가 끝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보살행의 법은 역시 끝이 없는 행이요, 보살승(菩薩乘)도 역시 밑[底]이 없으며,
보살의 경계는 불가사의하여 이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로서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보살이 제도할 바는 다시 가장자리나 폭이 없고,
온갖 덕을 성취하여 다시는 낭떠러지가 없으며,
보살이 청정하게 할 바 큰 서원을 버리지 않고,
보살의 출요(出要)는 도의 문[道門]을 가리켜 보이느니라.
보살의 모든 법은 단서를 논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으며,
보살마하살은 수없는 겁으로부터 바야흐로 보살을 얻었으니,
그런 뒤에야 보살의 도를 이루느니라.
어떤 이가 와서 친근하고 보살을 받들되 더욱더 권하고 일으키어 보살의 덕을 이루어 명칭이 멀리까지 들리게 하고,
그 이름을 들은 이가 모두 와서 받들어 섬기고 묵으면서 호위하고 공양올려 후세에서 어질게 돕는 복전이 되게 하느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보살을 보면 곧 그를 위하여 위없는 지혜를 설법하고,
전에 법을 들은 이면 만족해 함이 없게 하며,
널리 지혜의 광명을 펴고 법성을 무너뜨리지 않나니,
그렇게 하는 까닭은 법을 들은 중생이 바른 가르침을 받들고 받아 지혜의 업을 갑절 더하고 바른 교훈을 널리 펴서 모두 없어짐이 없게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 가운데에 머무르면 곧 모든 선한 공덕을 널리 펼 수 있으며,
보살은 한량 없고 수없고 헤아릴 수 없이 넓고 큰 뜻과 낱낱이 베푸는 뜻은 그 앞의 인연에 따르고 삼매의 정(定)에 들어가 다시 그 정을 좇아 일어나며,
스스로 법성의 관(觀)을 살피되 이 삼매로 인하여 삼매의 경계를 알고,
수없는 삼매인 정의관(定意觀)삼매ㆍ광보관(廣普觀)삼매ㆍ무욕관(無欲觀)삼매ㆍ상관(相觀)삼매ㆍ소현관(所現觀)삼매ㆍ위의관(威儀觀)삼매ㆍ의관(猗觀)삼매ㆍ염관(念觀)삼매ㆍ대관(待觀)삼매ㆍ희관(喜觀)삼매ㆍ안은관(安隱觀)삼매ㆍ호관(護觀)삼매ㆍ출요관(出要觀)삼매를 분별하나니,
이미 생긴 것은 버리고 아직 생기지 않은 것도 모두 버리되 선열(禪悅)의 정의(定意)에 상응하나니,
비록 선정에서 노닌다 하더라도 역시 선정에 물들지 않느니라.
[아뇩달샘의 강물]
최승아, 알아야 하느니라.
마치 아뇩달대용왕(阿耨達大龍王)의 궁전 모두가 7보(寶)로 이루어지고 아뇩달샘[阿耨達泉]에서는 4개의 큰 강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4문(門)에서 흘러 넘치는데도 생 모종[生苗]을 상하지 않는 맑은 샘물은 사무쳐서 마치 허공 빛깔과 같으며,
이때에 4개의 강물은 4개의 문으로부터 나와 사방으로 나아가 모두 바다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라.
[4개의 강물의 보배]
그 4개의 강물이란,
첫째의 이름은 항가(恒伽)이니 코끼리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둘째의 이름은 사두(私頭)이니 사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며,
셋째의 이름은 사타(私陀)이니 소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넷째의 이름은 바차(婆叉)이니 말의 입으로부터 나오느니라.
이 4개의 큰 강물은 4개의 입으로부터 나와서 사방으로 나아가 4개의 바다로 돌아가느니라.
항가의 큰 강물은 자거(車璖)의 진짜 보배로 코끼리의 몸이 되어서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고,
사두의 큰 강물은 진짜 금강(金剛)의 보배로써 사자의 몸이 되어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며,
사타의 큰 강물은 마노(馬瑙) 보배로써 소의 몸이 되어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고,
바차의 큰 강물은 푸른 유리(琉璃) 보배로써 말의 몸이 되어 그 물을 흘러 나오게 하나니,
이 네 가지 보배는 모두가 천상의 보배요 인간의 보배는 아니니라.
이 4개의 큰 강물은 처음 흘러 나오는 곳은 각각 너비가 1유순(由旬)이요 흐를 때에는 차례로 고요하여 소리나 메아리가 없으며,
낱낱의 큰 강물은 저마다 오른편으로 신령한 샘[神泉]을 일곱 바퀴를 돌고 모두 바다로 들어가는데, 일곱 바퀴를 도는 그 중간은 서로 한 유순씩 떨어졌고 그 사이에는 여러 가지 연꽃이 나 있나니,
우발연꽃[優鉢蓮花]과 발두모꽃[鉢頭牟花]과 수건제꽃[須犍提花]과 만원건제꽃[滿願犍提花]이며, 여러 가지가 섞인 보배가 모두 그 안에 나 있느니라.
다시 갖가지 미묘한 향기가 풍기나니, 그 빛깔은 향기롭고 아름다우며,
여러 가지 보배는 서로서로 광명을 비추며,
그것을 보는 이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구경하나니,
기이한 보배들은 겉도 보이고 속도 보이되 1유순 안을 보배끼리 서로 비추니 마치 마니주(摩尼珠)가 빛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고,
그 일곱 겹으로 된 안에는 기이한 새들이 지저귀고 화답하며 울면서 서로 함께 즐기고 있느니라.
다시 백 가지 신령한 나무와 약초들이 나 있고 향기로운 바람이 멀리 퍼지나니,
그것에 사무치되 사문(沙門)의 경계를 따르며,
그 아뇩달 용궁(龍宮)의 전각들은 동ㆍ서ㆍ남ㆍ북이 각각 50유순씩이요 순전히 7보로써 장식하였으며,
다시 여러 가지 기이한 빛의 마니보가 사이사이 섞였고,
다시 마니보주가 허공에 걸려 있으며,
해ㆍ달과 별이 허공에 줄 지어 늘어서 있고,
우두전단(牛頭栴檀)을 땔감으로 사용하여 공양을 지으며,
궁전 안에는 하루 동안 세 때[三時]에 여러 가지 향기로운 꽃인 우발연꽃과 구모두꽃[拘牟頭花]과 분타리꽃과 수건제꽃과 만원건제꽃이 비처럼 내리며 여러 가지 보배로 궁전이 이루어졌고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추면서 밝음이 서로 이어지느니라.
마치 아뇩달의 샘물이 4개의 큰 강물을 나오게 하고 4개의 입으로부터 흘러 나와 네 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변재의 걸림이 없는 강물을 얻어 네 가지 도(道)를 분별하여 지혜 바다[智海]로 돌아가느니라.
마치 저 항가의 강물이 자거의 진보(眞寶)로 이루어져서 코끼리의 입으로부터 나와 바다에 흘러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청백한 법의 입을 좇아 한량없는 뜻을 나오게 하되,
모두가 이것은 여래께서 비밀히 간직한 상자[篋]로 깊은 이치를 풀어 드날리며,
모두가 모든 법으로 하여금 저마다 이름을 듣고 법의 맛[法味]을 펴 나타나게 하며,
지혜의 광명을 훨훨 태워 모두 끝없는 지혜 바다에 몸이 들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저 사두의 큰 강물이 진짜 금강의 보배로써 그 바탕을 이루고 사자의 입으로부터 바다에 흘러드는 것처럼,
보살 대사(大士)도 역시 그와 같아서,
법변(法辯)을 연출하여 부처님의 금강(金剛)을 부리되,
모든 중생들을 보호하고 비추어 밝음을 얻게 하며,
지혜의 금강을 가지고 걸림없는 바다[無碍海]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마치 저 사타의 큰 강물이 마노의 보배로써 이루어지고 소의 입으로부터 나와 바다로 흘러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상응한 변재를 연출하여 의심이나 막힘이 있는 이에게 영원히 망설임이 없게 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다툼이 없고 근기와 보응에 따라 이치를 분별하게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순수하게 그 행이 성숙하여 모두 연의 집착이 없는 바다[無緣着海]에 돌아가게 하느니라.
마치 바차의 큰 강물이 푸른 유리로 이루어지고 말의 입으로부터 나와 다 바다에 드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다함 없는 변재[無盡辯]를 얻어 모든 법을 사유하고 억백천 겁 동안 그 가운데 나타내 보이되 다함이 없으며,
선한 법[善法]으로 경영하고 보호하여 선도(善道)에 이르고, 모든 금계를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 부처님 바다로 돌아가서 동일한 맛이 되게 하느니라.
마치 저 4개의 큰 강물이 오른편으로 아뇩달샘을 일곱 바퀴 돌고 사방으로 나아가 네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몸의 행[身行]이 성취되면 또한 왼편에 있지 않고,
입의 행[口行]이 성취되면 또한 왼편에 있지 않으며,
뜻의 행[意行]이 성취되어도 왼편에 있지 않나니, 뜻으로 닦는 바 지혜로 우두머리를 삼느니라.
마치 저 4개의 강물이 사방으로 나아가서 바다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살 대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네 지혜의 변재를 타고 사방으로 나아가나니,
이에 보살은 모든 부처님께서 계시는 방소를 관하여 받들어 섬기고 예경하며 위의를 잃지 않아야 하느니라.
또 모든 부처님 법의 광명이 빛남을 나타내되 총지의 법을 지니고 망실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또 모든 지도(智度)를 나타내며, 보살의 온갖 행의 근본을 두루 갖추며,
또 대자비를 나타내어 중생에 처해 있으면서 실제로 법륜을 굴리느니라.
마치 저 4개의 강물이 아뇩달을 일곱 바퀴 돌 적에,
그 중간에는 여러 가지의 우발연꽃과 구모두꽃과 분타리꽃과 수건제꽃과 만원건제꽃이 피어 있고 그 향기로운 꽃에서는 향기가 사방에 자욱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부처님이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한 중생들을 교화하고 인도하며 나아가도록 설법하고 권하여 불퇴전에 이르게 하고,
그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되 억백천 겁으로부터 또한 고달파하지 않았으며,
한 사람이라도 제도되지 않았으면 끝내 버리지 않았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되 머물러 있는 땅을 장엄하게 다스리며,
사자보정의(師子步定意)삼매에 들어가서 도수(道樹)을 향하여 나아가고 뜻이 금강과 같으니, 특별한 어려움이 없느니라.
마치 저 아뇩달샘의 일곱 겹 안에 7보로 된 나무가 나서 스스로 장식하였고 온갖 열매와 향기로운 꽃이 한량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세계의 청정한 국토를 장엄하고 서른일곱 도수(道樹)의 꽃이 피며 각관(覺觀)과 도의 마음[道心]으로 정법(正法)을 사유하느니라.
마치 저 아뇩달 궁전이 세로와 너비가 50유순이나 청정하여 하자가 없으며,
또한 비바람에 날리는 티끌이나 일어나는 먼지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다시 그와 같아서,
도의 마음이 청정하여 하자가 없고, 안으로는 갖가지 선의 근본 공덕을 품으며, 한량없는 정의 법문(定意法門)을 완전히 갖추느니라.
마치 아뇩달의 샘이 우두전단과 여러 가지 보배로 담이 둘린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와 십억백천의 지혜와 소견으로 에워싸고,
서원한 바가 이지러지지 않고 본래 심통(心通)이 없으며,
심통을 이룬 행으로 지혜의 업이 성취되었으니,
온갖 선의 근본이 모두 청정하느니라.
마치 아뇩달 궁전 안은 순수하게 진주(眞珠)와 호박(琥珀)으로써 그 땅에 섞었으므로 여러 가지 광명이 나와 빛나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지극히 미묘한 지혜에 들어가서 뜻으로 규도(規度)한 바가 불가사의하고 중생을 돕고 보호하되,
근심이 없는 못을 내어 여러 가지 값진 보물과 영락(瓔珞)으로써 스스로 장엄하고 또한 법계의 체성(體性)을 파괴하지 않으며,
모든 여래의 무위(無爲)의 방에 머무르되 뜻이 나아가는 바가 끝내 퇴전(退轉)하지 않느니라.
마치 저 아뇩달용왕이 여러 작은 용[小龍]들과 함께하되 덮어 보호하여 주나니, 두려움이 있는 이면 두려운 바가 없게 하느니라.
좌우에 있는 신령한 용은 모두가 위덕이 있어 바다 안의 작은 용왕들이 모두 와서 뵙고 하례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온갖 형상 있는 중생으로서 두려움을 품고 있는 이면 덮고 보호하여 주고 때에 따라 돕고 기르면서 원한이 없게 하며,
지경 안이나 지경 밖이거나 간에 마음이 평등하기 허공과 같으며,
비록 세간에 처한다 하더라도 지혜의 광명을 펴 백성들을 돕고 수호하는 것이 마치 자기 몸과 같이하되 다름이 없느니라
마치 아뇩달샘에서 4개의 강물이 나와 염부지(閻浮地)에 두루하고 굽이쳐 돌아 흘러 바다로 돌아가며, 지나는 처소마다 윤택한 바가 많은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4지(智)의 바다를 타고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악마며, 또는 마천(魔天)ㆍ제석ㆍ범왕의 모든 천인(天人)들과, 사람[人]과 사람 아닌[非人] 따위를 싣고는, 모두 큰 지혜의 바다에 나아가게 하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키고,
10력과, 두려움 없음과, 18불공(不共)의 일이 있게 하며,
도수 아래에 이르러서 끝내 퇴전하지 않느니라.
[4지의 강물이란]
이른바 4지의 강물이란,
첫째 원지(願智)의 강물이니,
항상 서원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요,
또한 안 몸[內身]을 의지하지 않고 집착한 바도 없느니라.
둘째 지도(智度)를 두루 갖춘 끝없는 강물이니,
청정한 보살도로 온갖 세계를 섭수하여 오가고 돌아다니되 역시 집착하는 바가 없고,
듣는 바가 그지없되 역시 다함이 있지 않으며,
삼세의 지혜를 내고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의 뜻을 연출하느니라.
셋째 보살 정의(定意)의 지혜 바다이니,
헤아릴 수 없는 정(定)으로써 스스로 장엄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 가 노닐되,
모든 부처님 세존께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 없는[無源] 바다를 연출하느니라.
넷째 대자비의 강물이니,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자비에 편안히 있으면서 불퇴전에 서게 하고,
온갖 고통을 뽑아 주어 뜨거운 고뇌가 없게 하며,
다시 수없는 선권방편으로써 그들을 인도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되, 돌아보며 그리는 바가 없게 하고,
10력(力)으로 많이 쌓은 진기한 보배로써 반연이나 집착이 있는 이에게 돌아갈 바를 알게 하느니라.
마치 저 아뇩달샘에서 4개의 큰 강물이 나와 모두 다 바다로 돌아가되 끝이 없고 다함이 없고 불가사의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뛰어난 큰 서원을 얻어 원지(願智)를 성취하여 보살행을 수행하고 지혜와 관법(觀法) 또한 다할 수 없으며,
위없는 도를 이루어서 의심이나 막힘이 없고,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두루 쌓으신 정의[普集定意]를 알며 부처님들이 좋아하는 바로써 즐기느니라.
마치 저 아뇩달샘에서 4개의 큰 강물이 나오되 한 개의 강물에서 5백의 지류로 나뉘어지고,
그 낱낱의 5백 지류는 모두 다 바다로 돌아가되, 중생을 번거롭게 하지도 않고 상해하는 바도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크게 서원한 지혜에 의지하여 뜻이 이동하지 않고,
두루 구제하는 행을 닦아 자비가 온갖 것에 미치며,
모양[相]이 있는 것과 모양이 없는 것을 나타내어 온갖 법을 깨닫고,
걸림이 없는 지혜[無碍智]를 행하되 법의 근본을 끊지 않으며,
벗어남[出要]을 가르쳐 주어 걸림이 없는 자리[無碍地]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마치 아뇩달샘의 일곱 겹으로 된 그 중간에 여러 가지 진기한 보물이 나 있고 광명과 광명이 서로 비추어 햇빛과 똑같이 밝으며, 비추어진 곳은 백 배(倍), 천 배로 다 그 밝음을 받는지라,
눈이 있는 선비는 아뇩달 궁전의 5색(色)이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과 같으며,
마치 해가 공중에 있을 적에는 빛을 힘입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각각의 형질에는 스스로 광명이 있어 모습이 쪼그라들게 하지 않고,
보배와 보배를 비빌 때에는 약간의 소리가 나되 그 소리는 매우 부드러워 들어도 싫증남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법계의 자재정의(自在定意)에 머무르면서,
낱낱의 털구멍에 수없고 헤아릴 수 없는 억백천의 여래와 부처님 국토의 보살 제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을 관하면서,
법의 맛을 듣고 지니어 잊지 않으며 밤낮 읊고 외우느니라.
마치 저 사람이 깊은 못에 빠졌을 적에,
여래의 몸이 두루 모든 세계에 나타나서 구제한 것 같아서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다시 가서 모든 부처님 세계를 친근하여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면서 현지에서 법의 맛을 들으며,
백천 겁 동안 들었던 정의(定意)에 대하여 장점을 보지도 않고 또한 단점도 보지 않으며 큰 것도 보지 않고 다시 작은 것도 보지 않느니라.
보살은 낱낱의 털구멍에서 모든 부처님 여래의 국토와, 성곽과, 제자들이 좌우에서 모시는 것과, 중생들의 많고 적은 것과, 여러 가지 형상과, 언사(言辭)가 같지 않은 것과, 돌아다니고 오가면서 뜻대로 짓는 바를 보되,
저마다 뜻하고 원하는 바에 따라 함께 서로 재미있게 즐기며,
또한 좁은 것도 보지 않고 다시 넓은 것도 보지 않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 어떤 보살로서 법계의 정의에 들어간 이는 마음이 미세하여 보기도 어렵고,
또한 형질이 없으며 그 행적은 지극히 미세하여 비유할 수조차 없고,
생기는 것마다 스스로 파괴되고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삼매의 경계는 불가사의한지라 선행(禪行)을 사유하면 노니는 경계도 헤아리거나 말로 할 수 없으며,
모든 부처님께서 머무르는 곳도 역시 처소가 없고,
드러난 부처님의 위의도 다할 수 없어서 하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우며,
끝내 중도에 보살의 행을 버리거나 잃지도 않고, 모든 악마의 경계를 초월하나니,
견고하지 못한 이는 무위(無爲)에 편안히 있되 청정한 덕을 획득하고,
여래의 10력(力)과 대요(大要)를 두루 갖추며,
위없고 한이 없는 업(業)을 구하되 바른 법의 깊고 묘한 뜻을 수행하지만 어렵게 여기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그 마음과 뜻에 따라 한 생각 동안에 삼매로부터 일어나 삼세의 일을 알며,
곧 선악(善惡)으로 나아간 바를 능히 분별하고, 모든 법계에서 자재함을 얻으며,
또한 안[內]을 의지하지도 않고, 또 바깥[外]을 의지하지 않으며,
그 근본과 지말을 미루어 찾아도 실마리를 보지 못하고,
도무지 처소가 없으며 또한 생각[想]을 보지도 않고,
그로써 온갖 생각을 제도하며 모든 의변(義辯)을 변론하고,
부처님 국토의 지경에 노닐며 예배하고 섬기고 공양올리되 역시 만족해 함이 없느니라.
모든 법계에 들어가 사유하고 분별하되 그 근원을 다하며,
무위(無爲)에 처하지도 않고 가장자리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온갖 지혜를 닦되 지혜에 집착하지 않고,
비록 왕래함이 있어도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않으며,
지혜는 요술[幻]과 같되 실로 요술조차도 없다고 관하고,
중생의 등분(等分)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그 근본을 찾으면 제한이 없으며,
모든 세계를 청정하게 하되 청정함이 있음을 보지 않고,
중생의 고통은 무엇 때문에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는가를 널리 보이며,
고(苦)ㆍ공(空)ㆍ비신(非身)ㆍ무아(無我)ㆍ인(人)ㆍ수(壽)는 모두 다 아무것도 없고,
여러 가지 무상(無常)한 변화를 나타내되, 생사에 처하지 않고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며,
온갖 겁을 초월하여 모든 죽음의 자리를 건너고 모든 모습[相貌]을 관하되 뜻이 미혹되지 않느니라.
그리고 그 보살은 선권방편으로써 진실로 온갖 지혜를 원만히 하고,
마지막까지 청정하여 뜻이 옮아가거나 바뀌지 않으며,
모든 세계와 중생을 관찰하되 가고 돌아옴[往還]이 있는 이와 가고 돌아옴이 없는 이를 다 제도하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가 줄어듦이 없게 하며,
온갖 세간과 법계와 위의와 법을 잇고 법을 얻는 데서 차례를 잃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쌓은 행을 관하되 또 만족해 함이 없고,
모든 부처님의 창고[藏]에 의지하여 큰 진보(珍寶)에 이르게 하며,
모든 삼매와 권현(權現)에서 장애가 없이 그대로 자연히 수호하며,
깊은 법의 구절이 뜻에 막힘이 없고 통한 바의 도교(道敎)는 다할 수 없으며,
변재와 큰 지혜로 자체(字體)를 분별하고,
총지를 널리 펴 내어 여러 가지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창고[秘藏]를 드날리며,
이미 탐욕을 여의면서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게 하느니라.
보살 대사는 수없는 겁 동안 권방편을 행하되 갖가지의 도(道)를 나타내었고,
무리에 따라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였으며,
모든 법이 자연히 제도되고 해탈함도 자연히 보지 않고,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기 위하여 큰 자비를 세웠으며,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또한 중생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고,
들숨ㆍ날숨을 세되 숨을 내쉴 때에나 들이쉴 때에, 모든 세계의 성품은 본래 자연이요 법은 스스로 항상 머무른다[常住]는 것을 분명히 알며,
앞 사람이 행하는 것이나 스스로 식(識)을 일으킨 이에게 안정하지 않다[不定]고 여기지만 동요하거나 말과 법에 내닫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비록 중생을 교화한다 할지라도 교화함이 있다고 보지 않고,
3계장(戒場)을 청정하게 하여 여래의 방에 들어가며,
모든 법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되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설법하여 청정하게 법륜을 굴리되 무너뜨릴 수 없으며,
도의 마음이 융성하여 끝내 아라한이나 벽지불의 뜻이 없나니,
최승아,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이 법계의 자재정의삼매(自在定意三昧)를 얻으면 큰 일[大事]이 더욱더 늘어나 보살의 지위에 오르고 마침내 헛되이 수고하지 않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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