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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도론 제6권
8. 행문품 ③[3]
[10념처]
[염불, 부처님을 기억하다]
[문] 무엇이 염불(念佛)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 불이란 세존으로서 자연히 스승 없이 일찍이 듣지 못한 법에서 올바른 진리[正諦]를 바로 깨닫고, 능히 일체를 알아 힘의 자재를 얻은 분이다.
이것을 불[부처님]이라 한다.
불ㆍ세존ㆍ정변지도(正遍知도)ㆍ보리공덕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이고, 염을 수지하고, 염을 망각하지 않고, 근(根)을 염하고, 역(力)을 염하는 정념(正念), 이것을 염불이라 한다.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 이것을 닦음이라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상으로 삼고,
공경을 그 맛으로 삼고,
믿음을 증장시키는 것을 처로 한다.
만약 염불을 수행하면 18공덕을 얻게 되고, 신(信)이 증장하고, 염(念)이 증장하고, 혜(慧)가 증장하고, 공경이 증장하고, 공덕이 증장하며, 환희가 많아지고, 고행을 능히 감당하고, 두려움을 벗어나고, 악법을 받는 것에 대해 참괴(慚愧)를 일으키고, 항상 스승과 함께 머물고, 마음이 불지(佛地)의 행을 즐기고, 선취로 나아가 최후에 제호에 이른다.
『수다라열저리구(修多羅底里句)』에서,
“만약 사람이 염불을 바란다면, 그 불상처(佛像處)에서와 같이 공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처에 이르러 마음을 거두어 어지럽지 않게 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여래ㆍ세존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을 염한다.
여기에서 그는 일체공덕의 피안에 도달한다.
세존(世尊)이란 세간의 명예를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묘법을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공양을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또 복을 구족하게 얻는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도법(道法)의 주인인 까닭에 세존이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존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공양을 받으므로 아라한이라 하고,
번뇌라는 원수를 죽이는 까닭에 아라한이라 하고,
생사라고 하는 윤회의 바큇살을 꺾는 까닭에 아라한이라 한다.
정변지(正遍知)란 일체 행으로써 일체 제법을 올바로 아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또 무명을 죽이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홀로 무상보리를 깨닫는 까닭에 정변각이라 한다.
명행족(明行足)에서 명이란 3명이니, 숙명지명(宿命智明)ㆍ중생생사지명(衆生生死智命)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세존은 숙명지명으로써 과거무명을 끊어 없애고,
중생생사지명으로써 미래의 무명을 끊어 없애며,
누진지명으로써 현재의 무명을 끊어 없앤다.
이미 과거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 과거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곧 나타난다.
이미 미래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의 미래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곧 나타난다.
이미 현재의 무명을 끊어 없앤 까닭에 일체 행으로써 일체 현재법이 세존이 마땅히 염하는 대로 나타난다.
행이란 계정(戒定)이 구족한 것이다. 계란 일체 선법의 처이다. 따라서 명행(明行)이라 한다. 족이란 일체 신통의 처인 까닭에 명행족이라 한다. 구(具)란 일체 정을 말한다.
여기에서 세존은 일체지로써, 3명으로써, 행으로써, 대자비를 얻고, 세간을 요익케 함으로써 밝게 자재를 얻고, 처를 아는 까닭에 논도(論道)를 일으킴으로써 그를 이길만한 자가 없고 모든 번뇌를 소멸한다.
청정한 정행(正行)으로써 명(明)을 구족하여 세간의 눈이 되고, 요익과 불요익을 밝히는 까닭에 이로써 행(行)을 구족하여 세간의 의지처가 된다.
두려움에서 구해내어 명으로써 해탈하고, 제일의에 대해 이미 통달을 얻어 행으로써 제도하며,
세간의 뜻을 이루어 일체의 사(事)에서 자연스럽고 스승이 없으며,
행하는 바가 평등하고, 무상의 적적을 얻고, 명행족으로써 세존이 성취된다.
이것을 명행구족이라 한다.
선서(善逝)란 선로(善路)에 이르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제호의 세계에서 무위열반하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에 전도됨이 없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이 치우치지 않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에 과환이 없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또 설한 법이 많지도 적지도 않는 까닭에 선서라 한다.
세간해(世間解)에서 세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즉 중생세간(衆生世間)과 행세간(行世間)이다.
세존께서는 일체의 행으로써 중생세간을 안다.
중생의 갖가지 욕락을 앎으로써, 근의 차별로써, 숙명으로써, 천안으로써, 오고 감에 따라서, 화합으로써, 성취로써, 갖가지 교화해야 할 것으로써, 갖가지 견딤과 견디지 못함으로써, 갖가지 생으로써, 갖가지 취(趣)로써, 갖가지 지(地)로써, 갖가지 업으로써, 갖가지 번뇌로써, 갖가지 과보로써, 갖가지 선악으로써, 갖가지 얽힘[縛]과 풀림[解]으로써, 이와 같은 행으로써 세존은 중생세간을 남김없이 안다.
또 행세간을 설명하자면, 세존은 또한 일체업을 알고, 또한 모든 행을 안다.
정상(定相)으로써, 그 자상을 따르는 인연의 선ㆍ불선ㆍ무기로써, 갖가지 음(陰)으로써, 갖가지 계(界)로써, 갖가지 입(入)으로써, 지(智)의 명료함으로써, 무상ㆍ고ㆍ무아로써, 생ㆍ불생으로써, 이와 같은 행으로써 세존은 세간의 모든 행을 남김없이 안다.
이것을 세간해라고 한다.
무상(無上)이란 세상에 더 이상 위가 없는 것, 이것을 무상이라 한다.
또 그와 동등한 인간이 없고, 가장 수승해 견줄 자가 없고, 다른 누구도 그를 능가할 수 없는 까닭에 무상이라 한다.
조어장부(調御丈夫)란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혹은 법을 듣고 곧 깨닫고, 혹은 인연을 설하며, 혹은 숙명을 설하는 사람이다.
세존은 8해탈도를 잘 통어해 중생을 조복하는 까닭에 조어장부라 한다.
천인사(天人師)란 세존은 능히 하늘과 인간을 생ㆍ노ㆍ사의 포외원림(怖畏園林)으로부터 제도하는 까닭에 천인사라 한다.
또 견도(見道)와 사유도(思惟道)를 가르치는 까닭에 천인사라 한다.
이와 같이 이 문(門)과 이 행(行)으로써 마땅히 여래를 염해야 한다.
또 본사(本師)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네 가지 행으로써 세존에 대한 염을 닦아야 한다.
즉 과거 본래의 인연, 자신을 일으킴, 수승법을 얻음, 세간을 요익케 함이라는 네 가지 행으로써 세존을 염해야 한다.
“최초의 소원으로부터 최후 생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아주 오랜 시간인 20아승지겁과 1백천억 세계에서 범부의 근을 관하고 근소(根所)를 염하고는 처음으로 세간을 자애(慈哀)하여,
‘나는 이미 해탈을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조어를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조어를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편안함을 얻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얻게 하리라.
나는 이미 열반에 들었다.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리라. 시(施)ㆍ계(戒)ㆍ출(出)ㆍ인(忍)ㆍ제(諦)ㆍ수지(受持)ㆍ자(慈)ㆍ사(捨)ㆍ정진(精進)ㆍ혜(慧) 모두를 만족케 하리라’고 하셨다.”
보리를 얻게 하기 위해 세존이 보살이었을 때의 본생인연을 설하겠다.
토끼 새끼의 몸이 되어 항상 보시를 행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가호(可護)의 생애에서 계(戒)를 염해야 하며,
마하구빈타(摩訶瞿頻陀)의 생애에서 마땅히 출리생(出離生)을 염해야 하며,
인욕(忍辱)의 생애에서 마땅히 인(忍)을 염해야 하며,
보명(普明)의 생애에서 마땅히 실어(實語)를 염해야 하며,
오건(噁蹇)의 생애에서 수지(受持)를 염해야 한다.
제석(帝釋)의 자비를 염해야 하며,
모수(毛竪)의 사(捨)를 염해야 하며,
상주(商主)의 정진(正眞)을 염해야 하며,
사슴의 생애를 염해야 하며,
장수(長壽)의 생애에서 부왕의 말씀을 따랐던 것을 염해야 하며,
어금니가 여섯인 흰 코끼리로 태어나 선인(仙人)을 공경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백마(白馬)로 태어나 나찰국(羅刹國)에 이르러 모든 중생을 제도했던 것을 염해야 하며,
사슴으로 태어나 다른 사슴들의 수명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수명을 버렸던 것을 염해야 하며,
원숭이로 태어나 주어진 큰 고통에서 해탈시켰던 것을 염해야 한다.
또 원숭이로 태어나 사람이 구덩이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자비심으로 구출하고, 나무뿌리와 과일을 공양하고, 그 사람이 고기를 좋아해 자신의 머리를 깨뜨리려 하자 자비로 법을 설해 그 선도(善道)를 말했던 것을 염해야 한다.
이와 같이 중원문(衆願門)으로써 세존의 본생공덕을 염해야 한다.
세존께서 스스로 자신을 구출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은 이와 같은 본생의 구족을 갖추고 있어 어린 나이에 모든 거처에 대한 집착을 끊고, 처자ㆍ부모ㆍ친구에 대한 집착을 끊고,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홀로 텅 비고 한가로운 무소유처에 머무셨다.
그리고 무위인 니원(泥洹)의 적멸을 구하고자 마가다국에서 니련선하를 건너 보리수에 앉아 마왕과 모든 귀신군대를 항복시키고는,
초야 때에는 스스로 숙명을 기억해 내고, 중야 때에는 천안을 얻었으며,
후야 때에는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어 제호의 세계를 증득하고,
8정도분(正道分)을 닦고 누진을 깨달아 보리각을 얻어 세간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여 제일 청정한 누진의 땅에 머물렀다.
이와 같이 중행문(衆行門)으로써 세존께서 스스로 자신을 구출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
세존께서 얻은 수승한 법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세존에게는 해탈과 심해탈이 있어 여래의 10력으로써, 열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로써, 열여덟 가지 불법으로써, 이미 동일하지 않은[不一] 선법(禪法)을 성취하여 자재의 피안에 도달하셨다는 것을 염해야 한다.
세존께서 성취한 10력이란 무엇인가?
여래는 시처(是處)와 비처(非處)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선업인연을 알며,
계(戒)와 인(因)으로써 과보 등을 여실히 알며,
여래는 일체처에 이르러 구족함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하나의 계로써가 아니라 갖가지 계로써 세간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갖가지 욕락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갖가지 모든 근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선해탈(禪解脫)ㆍ정정수(定正受)ㆍ유번뇌(有煩惱)ㆍ무번뇌(無煩惱)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숙명을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중생의 생사를 아는데 여실히 알며,
여래는 누진을 아는데 여실히 안다.
세존은 이 10력을 성취하셨다.
무엇이 세존께서 성취한 열네 가지 부처님의 지혜인가?
소위 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ㆍ의변지(義辯智)ㆍ법변지(法辯智)ㆍ사변지(辭辯智)ㆍ요설변지(樂說辯智)ㆍ제근지(諸根智)ㆍ중생욕락번뇌사지(衆生欲樂煩惱使智)ㆍ쌍변지(雙變智)ㆍ대자비정지(大慈悲定智)ㆍ일체지(一切智)ㆍ부장애지(不障碍智)이다. 세존은 이 열네 가지 지혜를 성취하셨다.
무엇이 세존께서 성취한 18법인가?
과거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미래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현재에 부처님의 지혜는 장애가 없으며,
그 부처님의 지혜에 따라서 두루 신업을 일으키며,
그 부처님의 지혜에 따라서 두루 구업을 일으키며,
그 부처님 지혜에 따라서 두루 의업을 일으킨다.
세존께서는 이 6법을 성취하셨다.
욕무퇴(欲無退)ㆍ정진무퇴(精進無退)ㆍ염무퇴(念無退)ㆍ정무퇴(定無退)ㆍ혜무퇴(慧無退)ㆍ해탈무퇴(解脫無退), 이상의 12법을 세존은 성취하셨다.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고, 나쁜 스승의 일이 없고, 분명치 않은 것이 없고, 급하게 하는 일이 없고, 감추는 것이 없고, 관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없다.
의심받을 만한 일이 없이 없다는 것은 위의에 있어서 교활해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쁜 스승의 일이 없다는 것은 급히 위의를 나타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치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앎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급히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위의를 급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감추는 바가 없다는 것은 마음의 행위에 있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관하지 않고 버리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모르고 버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존은 이 열여덟 가지 부처님 법을 성취하셨다.
또 세존은 4무외ㆍ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6신통ㆍ7보리분ㆍ8성도분ㆍ8제입ㆍ8해탈ㆍ9차제정ㆍ10성거지(聖居止)ㆍ10누진력으로써, 나머지 동일하지 않은 선법(善法)으로써, 세존은 자재의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성취하셨다.
이와 같이 이 문과 이 행으로써, 세존께서 얻은 수승한 법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
세존께서 세간을 요익케 한 공덕을 염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께서 모든 행을 성취하고 모든 공덕의 피안에 도달하여 자비로 중생을 위해 굴리신 법륜은 세간이 굴릴 수 없는 것이었다.
엄밀히 보호함으로써 내외가 없는 제호의 문을 열어 이미 한량없는 천인을 만드셨고, 사문과(沙門果)에서 한량없는 중생이 공덕분을 얻어 능히 공덕을 구족하게 하셨다.
세 가지 변 즉 신변(身變)ㆍ설변(說變)ㆍ교변(敎變)으로써 세간을 믿게 하여 사견의 주술사들을 이미 조복하고, 이미 악도를 덮고, 이미 선취를 열고, 이미 천상에 이르러 해탈과를 얻게 하고, 이미 성문을 안온케 하여 성문법에 머물게 하고, 이미 모든 계를 제정하고, 이미 바라제목차를 설하고, 이미 훌륭한 이양(利養)을 얻고 부처의 승법을 얻고, 이미 자재를 얻어 세간을 두루 채웠기에 일체중생이 공경하고 존중하였으며, 나아가 천인들도 모두 듣고 알았다.
부동에 안주하여 세간을 자비로 대하고, 세간을 요익케 하며 지어야 할 바를 세존은 이미 지으셨다. 이 문과 이 행으로써, 세존께서 이미 세간을 요익케 하신 공덕을 염해야 한다.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여래를 염해 그 마음에 믿음을 성취하고, 믿음이 자재하고 염이 자재함으로써 마음이 항상 어지럽지 않게 된다.
만약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개(蓋)를 없애 선분(禪分)이 일어나게 되고, 내행선(內行禪)이 머물게 된다.
[문] 어떠한 까닭에 부처님을 염하면 안(安)이 아닌 내행(內行)이 일어나는가?
[답] 부처님의 공덕이란 제일의(第一義)의 깊은 지혜의 행처이며, 제일의는 깊은 지혜의 행처에서 작용하며[事] 마음은 안을 얻지 못한다. 미세한 까닭이다.
또 마땅히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염해야 한다.
만약 좌선인이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억념하면, 마음이 갖가지 작의를 반연하여 함께 일어나 마음이 불안을 이루게 된다.
이 상(相)이 일체외행(一切外行)의 행처가 된다.
[문] 만약 동일하지 않은 공덕을 염하면 마음이 이미 동일하지 않기에 외행선(外行禪)은 마땅히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면 외행선이 성취되어 머물게 되는가?
[답] 만약 여래의 공덕을 염하고 불을 염하면 일심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까닭에 과실이 없다.
또 설하기를, 불을 염함으로써 4선 또한 생겨난다.
<염불을 마친다.>
[염법, 법을 기억하다]
[문] 무엇이 염법(念法)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 법이란 니원(泥洹) 및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다.
무엇이 니원인가?
모든 행을 소멸하고,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애(愛)를 소멸해 물듦이 없고 적멸한 것을 니원이라 한다.
무엇이 니원에 이르는 수행인가?
소위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정도분, 이것을 열반에 이르는 수행이라 한다.
법의 출리공덕(出離功德)과 승공덕(乘功德)을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ㆍ정념(正念)인 것을 염법이라 한다.
그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하고,
공덕의 법을 일으키는 것이 그 상이며,
법을 간택하는 것이 그 맛이며,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그 처이다.
공덕은 염불의 공덕과 같다.
어떻게 닦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모든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법이란 세존에 의해 훌륭히 설해진[善說] 법으로 현재 증득하기에 시절이 필요 없고, 와서 보면 올라타기에 시절이 필요 없다.
와서 보면 승(乘)과 상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서 증득해 알 수 있다”라고 염한다.
세존에 의해 훌륭히 설해진 법이란,
양극단을 떠난 까닭에 선설(善說)이라 하고,
다르지 않은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오류가 없고 세 가지 착함인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청정이 가득한 까닭에 선설이라 하고,
니원을 나타내게 하고 니원에 이르는 수행인 까닭에 선설이라 한다.
현재 증득한다는 것은,
차례대로 도과를 얻는 까닭에 현재 증득한다고 한다.
니원 및 도과를 깨닫는 까닭에 현재 증득하게 된다.
시절이 필요 없다는 것은 다른 시점에 과를 얻는 것이 아닌 까닭에 현재 증득한다고 한다.
와서 보라는,
“너는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나의 선법을 보라”고 한 것이니,
그 성품이 남을 가르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와서 보라”고 한다.
승과 상응한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받아들여 항복하면 제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승과 상응하는 것이라 하고,
사문(沙門)의 과(果)로 향하는 것을 승과 상응하는 것이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서 증득해 알 수 있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받아들여 항복하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멸지(滅智)ㆍ무생지(無生智)ㆍ해탈지(解脫智)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을 지혜로우면 현재에서 증득한다고 한다.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법을 염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눈이고, 이것은 지(智)이고, 이것은 안락이고, 이것은 제호로 들어가는 수레이고 문이며, 이것은 출리이고, 이것은 방편이고, 이것은 소멸에 이르는 것이며, 이것은 제호에 이르는 것으로서 타락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제호로서 무위이고, 적적하고 미묘하며, 스승 흉내만 내는 자가 행하는 바가 아니다.
이것은 묘한 지혜를 가진 자가 아는 바이고, 피안으로 건너는 것이며,
이것은 귀의처이다.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과 이 공덕으로써 현재에서 그 법을 염해 그 마음에 믿음을 이루고, 그 믿음과 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러움 없이 머물게 되며,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써 모든 개(蓋)를 없애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행선이 머물게 된다.
나머지는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염법을 마친다.>
[염승, 승가를 기억하다]
[문] 무엇이 염승(念僧)인가?
(무엇을 닦음으로 삼고,) 무엇을 상으로 삼고, 무엇을 맛으로 삼고, 무엇을 처로 삼고, 무엇이 그 공덕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답] 승이란 성인의 화합이니, 이것을 승이라 한다.
승의 수행공덕을 현재 염하는데, 그 염이 수념(隨念)ㆍ정념(正念)인 것을 염승이라 한다.
그 염이 어지러움 없이 머무는 것을 닦음이라 한다.
염으로 일으킨 승의 공덕을 상으로 삼고,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을 맛으로 삼고,
화합의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 처이며,
공덕은 염불의 공덕과 같다.
어떻게 수행하는가?
처음 좌선하는 사람은 적적에 들어가 앉아 일체의 마음을 거두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훌륭히 능히 수행한다. 세존의 사문 대중은 부드럽고 선함[軟善]을 따르며, 세존의 사문 대중은 여법(如法)을 따르며, 세존의 성스러운 대중은 화합을 따른다.
세존의 성스러운 대중이란 소위 4쌍(雙) 8배(輩)이다.
세존의 사문 대중은 가히 공경을 받고 공양을 받을 만하고, 합장을 받을 만하고, 위없는 세간의 복전이다”라고 염한다.
여기서 훌륭히 수행하는 세존의 사문 대중은 훌륭한 설법을 따르는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修行隨從]”고 한다.
자타를 요익케 하는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이미 구족에 이른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원수 없음을 구족한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하고,
양 극단을 떠난 중도를 구족한 까닭에 따라서 수행한다고 한다.
허황된 아첨[幻諂]을 떠나는 까닭에 부드럽고 선하다 하며,
신(身)ㆍ구(口)의 삿됨[邪]과 왜곡[曲]과 악(惡)을 떠나는 까닭에 부드럽고 선하다고 한다.
여(如)를 따른다는 것은,
8정성도(正聖道)를 따르는 까닭에 여를 따른다고 한다.
또 여란 니원을 말한다. 그것을 따름으로써 니원을 얻는 까닭에 여수행(如修行)이라 한다.
세존께서 설하신 4성제를 여실한 지혜로 따르는 까닭에 여수행이라 한다.
화합을 따른다는 것은,
사문의 화합구족을 따르는 까닭에 화합을 따른다고 한다.
만약 이와 같이 화합하는 일을 따라서 지으면 큰 과와 큰 공덕을 이룬다.
이와 같이 따르는 까닭에 화합을 따른다고 한다.
4쌍 8배란 수다원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사다함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아나함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아라한도에 머무르고 그 과에 머무르는 까닭에 1쌍이 된다.
이것을 4쌍이라 하는 것은 그 도 및 도과에 머무는 까닭에 4쌍이라 한다.
8배란 4향 4과로서 이것을 8배라 한다.
사문이란 견문[聞]을 따라서 성취하는 까닭에 사문이라 한다.
승(僧)이란 성스러운 화합 대중으로서 청할 만하고, 공양할 만하고, 보시할 만하고, 공경할 만한 위없는 세간의 복전이다.
청할 만하다는 것은 초청을 받을 만한 것을 청할 만하다고 한다.
공양할 만하다는 것은 대중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이루므로 공양을 받을 만한 것이다.
보시할 만하다는 것은 대중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공경을 받을 만하다는 것은 공경하는 일을 받을 만한 것을 공경을 받을 만하다고 한다.
위가 없다는 것은 공덕이 가장 많은 까닭에 위가 없다고 한다.
세간의 복전이란 이것이 중생의 공덕처인 까닭에 세간의 복전이라 한다.
나머지 행으로써 마땅히 대중을 염해야 하니,
“이와 같이 수승한 대중이고, 진실한 대중이기에 이를 제호라고 하니, 계를 구족하고, 정을 구족하고, 혜를 구족하고, 해탈을 구족하고, 해탈지견을 구족하였다”고 염해야 한다.
그 좌선인은 이 문과 이 행으로써, 현재에서 대중의 공덕을 염해야 한다.
이와 같이 현재에서 대중의 공덕을 염하면 그 마음이 믿음을 성취하고,
믿음과 염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되고,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능히 모든 개(蓋)를 소멸하여 선분이 일어나게 되고 외선이 머물게 된다.
앞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염승을 마친다.>